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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내가만난글/비문학(역사.사회.문학.

생각의 겹 - 정치와 함께 걸어온 녹색의 장정

by 탄천사랑 2021. 5. 27.

이순숙 -  생각의 겹」

 

 

 

김종필 前 총리
김 前 총리는 많은 정치인 중에서도 골프를 지극히 사랑하는 마니아로 알려져 오래전부터 그와의 만남을 고대해

왔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있어서 동일한 관심사와 취향을 가진 사람과의 만남은 그 얼마나 유쾌한 일인가.

..
나이에 따라 선호하는 인생의 멋은 다르지만, 노년의 최고의 멋은 세월을 담보로 내면의 멋을 더 하는 것이다.
안정감과 여유로움을 지닌 김 전 총리야말로 멋을 지닌 '젊은 노신사'였다.

...
김종필 전 총리의 삶에는 한국 역사의 근대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러한 그의 삶에서 정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부분이며, 현대 정치사에도 그만큼 큰 획을 그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권리만 주장하는 모습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1968년 3선 개헌 반대를 주도하다 공직에서 물려 난 후, 
한라산 기슭에서 선글라스를 낀 채 담배를 지그시 물고 그림을 그리던 김종필 전 총리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가 예술적이고 남만적인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낭만적이라는 것은 곧 인간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김종필 전 총리에게는 애초에 권력 자체가 삶의 목적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가 가진 예술적 소양은 단순한 취미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만돌린, 피아노, 전자오르간, 아코디언 같은 악기를 다루는데, 
언젠가 공군 위문 공연 때 아코디언을 직접 연주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는 후문이다.

..
그는 이러한 활동을 통해 개인적인 삶의 즐거움도 찾았던 것 같다. 
격정적이고도 우여곡절 많았던 김종필 전 총리의 정치인생은 그가 회상하기에도 그리 만족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 노사연의 '만남'을 즐겨 연주한다는 그에게서 지극히 소탈한 면이 엿보였다. 
가수 패티김이 유일하게 새해 인사를 가는 정치인이 김종필 전 총리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정도로 그는 대중예술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여유있게 즐긴다.
그의 정치에 대해서 말들이 많을 때에도 9선 국회의원 신분으로 4.13 총선 이후 

당당하게 6개월간 골프를 치러 다닌 일례만 보아도 그렇다. 
가뜩이나 골프를 치는 정치인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때였는데 말이다.

...
그는 5.16 군사혁명 이후 골프장을 갈아엎어 콩밭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던 시절,
골프장을 지키기 위해 골프를 시작했다고 한다. 
삼성 이병철 회장 재임시 지금의 에버랜드가 산림청에서 골프장 허가를 극구 반대하는 것을 이해시켜 

뒤집어 허가를 받게 한 장본인이다.

...
"그때 나와 함께 라운딩을 즐겼던 사람들이 있어요.
  공군 참모총장 김정렬 장군하고, 장지량 장군, 옥만호 장군,..., "

김종필 전 총리는 그가 한창 젊었을 때인 박 대통령 시절을 추억하며 즐거웠던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박 대통령 시절엔 박종규 비서실장과 김진만 국회부의장, 김동조 외무부 장관 등과 

뉴코리아 CC에서 라운딩을 가끔 하곤 했다.

"여름철, 

  그늘집에서 맥주 500cc를 마시는 맛에 라운딩을 했다오.
  그 중에서도 기가 막힌 게 '맥사이다'지요. 
  '맥사이다'라고 압니까?'

...
"박세리 선수가 1997년 US오픈에서 우승을 했잖소.
  마지막 18홀에서 양말을 벗어 던지면서 주저하지 않고 워터 해저드에 들어가 딱 치는데,
  그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때가 IMF시절이었는데 국민들에게 큰 힘이 된 것 같아요.
  한국 여성의 저력을 보여줬다고 할까."

김 전 총리는 올해 들어 뛰어난 성적으로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한 신지애 선수 또한 알고 있었는데, 
'신지애 선수는 믿음이 가서 좋아'라며 특별한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
김종필 전 총리는 이렇듯 골프에서나 인간관계에서나 자연스러움을 중요하게 여겼다.

"골프는 누굴 꼭 이기려 드는 운동은 아니지 않습니까?
  몸과 마음을 관리하면서 자연과 인생을 배우는 운동이지요.
  스스로 마음을 잘 다스리고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골프를 같이 해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 다 드러나게 됩니다."

...
나이가 들면 마음이 얼굴을 만든다.
독일의 문호 괘테의 불세출의 명작 '파우그트'를 90세가 지나서 완성했고,
92세까지 장수한 피카소 역시 80세가 지난 말년에 이르러 그 예술혼이 더욱 빛났다.

김종필 전 총리의 얼굴은 격정의 세월과 흔적 속에 예술적인 조예의 충만함이 담긴,
그리고 삶의 여유로움이 묻어 나오는 진정한 '젊은 노년'의 모습이었다.  

지금은 건강상의 이유로 골프장을 찾지 못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골프장의 푸르른 그린을 그리며 
추억에 젖어 있을 것이다.    - p77 - 

 

 

 

※ 이 글은 <생각의 겹> 중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이순숙 - 생각의 겹
골프헤럴드 - 2013. 0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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