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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입었으나 갈 곳이 없다 - 계절은 퍼즐처럼

by 탄천사랑 2021. 4. 6.

·「이제  - 옷을 입었으나 갈 곳이 없다」

 

 

 

계절은 퍼즐처럼


물보라는 겨울의 언어라고 한다.
일본 문학인 하이쿠에는 계절의 단어가 정해져 있다.
하이쿠를 읽으면 나는 꼭 반대되는 계절에 그 단어를 끼워 보곤 했다.
여름에 피어나는 물보라를 상상해 본다.
내가 보냈던 한 계절이 떠오른다.

수영 중에도 특히 더운 날 하는 수영을 나는 좋아한다.
구청에서 운영하는 수영센터가 집 앞에 있어서 자주 수영을 갔다.
그 여름에 나는 친구와 도서관을 같이 다녔으며,
더위를 못 참겠다 싶으면 잠깐 다녀올게, 하고 수영장으로 뛰어갔다.
서울에서 혼자 지중해에 사는 것 겉다고 친구는 말했다.
한참 사람들이 일하거나 학교에 있을 시간에 나는 매일 물보라를 만들었다.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는 없었지만 락스 냄새나는 물이 파란색 타일에 부딪히며 물보라를 일으켰다. 
그해 여름 제일 먼저 기억나는 건 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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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먹는 겨울 제철 과일 같은 것이 요새는 유행이다. 
그런 맛은 신기하긴 해도 온전한 맛은 아니듯,
계절의 모습에 맞게 살았을 때 나는 가장 삶에 충실하다고 느낀다. 
덜 욕망하고 더 펑화롭게. 계절에 나를 퍼즐처럼 끼워 맞출 때 내가 느끼는 것은 안도감이다. 
아직은 세상의 뜻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것,
여전히 계절과 조화될 수 있다는 것에게서 오는 안도감이다.

사계가 보여주는 것을 보고, 
주는 것을 먹고, 

밀치면 넘어진다. 
그것이 나의 기도이고 명상이다.


※ 이 글은 <옷을 입었으나 갈 곳이 없다 >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이제 산문집 - 옷을 입었으나 갈 곳이 없다
행복우물 - 2020. 0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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