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그의 머릿속 들여다보기
<닉 나이트 사진전-거침없이, 아름답게>
핀으로 이마가 꿰인 채 서 있는 기모노 차림의 데본 아오키. ‘패션 필름’이라는 단어를 개발하고 사진에 디지털
기술을 최초 도입한 사진가, 닉 나이트(Nick Night). 알렉산더 맥퀸, 존 갈리아노, 크리스찬 디올, 이브생 로랑,
<보그> 등이 열광한 그가 1985년에 찍은 <아이디i-D>(전위적인 화보로 유명한 패션 비주얼 잡지다) 화보들은
지금 봐도 감각적이다. 아마도 수많은 패션학도의 컴퓨터에 즐겨 찾기 되어 있을 그의 상상력을 만나러 미술관
으로 향했다. 글 박찬은 기자 사진 대림미술관, NK Image
"나는 나 자신과 내가 하는 일을 믿어야만 한다.
그것은 오만한 믿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내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것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그 누구도 다른 이들이 만든 잣대에 자신의 삶을 맞춰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 닉 나이트(Nick Night). -
이전에 없던 패션 사진, 닉 나이트 스타일 패션 사징의 정석을 뒤엎다.
패션 필름 속 기괴한 모델들의 모습과 3D 프린터로 찍어낸 케이트 모스를 보라. 다소 기괴하지만 상상력만은 ‘
갑’이다. 사진과 디지털 그래픽 기술을 결합한 1세대 작가로, 스스로를 ‘이미지-메이커(Image-Maker)’라 칭한
닉 나이트. 전시를 보니 그 별명이 십분 이해가 간다.
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닉 나이트 사진전–거침없이, 아름답게>(NICK KNIGHT: IMAGE)은 다큐멘터리에
서 패션 사진, 디지털 영상에 이르기까지 그의 사진과 영상 인스톨레이션 등 110여 점 이상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2층으로 올라가니 그가 1979년부터 영국 스킨헤드족과 함께 생활하며 찍은 친구들의 모습이 나온다.
1982년에 사진집으로 출간된 이후 세계 최초로 대림미술관에서 공개되는 ‘스킨헤드(SKINHEADS)’ 프로젝트다.
이외에도 2층에선 <아이디(i-D)> 매거진의 의뢰로 100명의 셀러브리티들을 촬영한 ‘초상사진(PORTRAITS)’
시리즈와 함께, 요지 야마모토(Yohji Yamamoto), 질 샌더(Jil Sander) 등과 협업한 ‘디자이너 모노그래프(DE
SIGNER MONOGRAPHS)’를 만날 수 있다.
3층에서는 세계적 크리에이터 및 브랜드의 캠페인 화보를 통해 ‘미’의 전형적 가치관에 도전하는 ‘페인팅 & 폴
리틱스(PAINTING & POLITICS)’, 정밀한 질감과 섬세한 표현력으로 회화와 사진의 경계를 허무는 ‘정물화 &
케이트(STILL LIFE & KATE)’를 소개한다.
4층에서는 알렉산더 맥퀸과의 오랜 협업을 회고하는 영상과 3D 스캐닝 등의 실험적 표현기법을 결합한 최신작
들로 구성된 ‘패션 필름(FASHION FILM)’을 전시하고 있다.
미술관이 보여주는 닉 나이트의 머릿속 세계는 정말 ‘거침없이 아름답다’.
“나는 단지 세상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뿐”
키워드로 만나는 닉 나이트 사진전
런웨이를 걷는 모델의 발걸음을 따라 드레스 자락이 펄럭이면서 분홍색 가루가 떨어진다. 인도 홀리 축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존 갈리아노의 2003 S/S 컬렉션 (2008)를 활용한 전시 포스터다.
물론 미술관 각 층마다 각기 다른 콘셉트로 섹션이 나뉘어져 있지만 닉 나이트 사진 기법에 대한 키워드로 나눠
전시를 관람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스킨헤드 SKINHEADS
목 칼라(옷깃)가 달린 셔츠에 서스펜더, 롤업 청바지에 하이탑 부츠. 여기에 크롬비나 헤링본 코트를 입었다면
당시 노동자 스타일을 과장한 스킨헤드의 시그니처 아이템이라 볼 수 있다.
1960~70년대 히피 문화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스킨헤드는 영국의 청년 노동자 계층에 의해 시작된다. 닉 나이
트는 1979~1981년까지 영국 스킨헤드 족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모습과 감정을 솔직하게 포착했다.
입술을 까뒤집어 ‘SKINS’라고 적힌 문신을 보여주는 친구 더그(Doug), 그의 애인인 여자 스킨헤드 족. ‘사진가
’가 아닌 ‘친구’로 찍어서인지, 피사체와의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경계심을 푼 스킨헤드 족의 모습을 보니 야쿠자와 창녀, 조폭 등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가 친구들의 모습을 찍었던
최근 사진가 양승우가 생각난다. 이는 닉 나이트가 스킨헤드 족의 패션, 음악, 일상에 강하게 매료돼 친밀히 소
통하며 찍은 시리즈로 수년 후 이들의 정치적인 색깔과 가치관에 거부감이 들어 그룹으로부터 빠져 나왔지만
이후 그는 전문 포토그래퍼로 활동하게 된다.
<Hammersmith Palais> 1979~1980
런던 해머스미스(Hammersmith)지역문화 중심지이자 엔터테인먼트 공간이었던 해머스미스 펠리스
(Hammersmith Palais)에 모인 스킨헤드의 거칠고 반향적인 모습을 매우 가까이서 가감없이 포착했다.
초상사진 PORTRAITS
영국의 독선적인 칼럼니스트 줄리 버크만, 유명 안무가 마이클 클락. 닉 나이트의 사진 속에서 이들은 실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아이디> 매거진의 에디터 테리존스가 1985년 창간 5주년을 기념해 닉 나이트에게 의뢰
한 인물사진 프로젝트로, 2009년 창간 30주년을 기념해 다시 한번 진행됐다.
고전적인 촬영 방식에서 벗어나 특정 표정, 자세, 움직임 등을 통해 인물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닉 나이트의
독창적인 초상사진 스타일은 패션계의 주목을 끌 수 밖에 없었다.
그 시대를 대표한 배우, 모델, 아티스트, 뮤지션, 디자이너 등과 오랜 기간 함께 작업하여 탄생한 초상사진 프로
젝트로, 닉 나이트는 이를 계기로 이후 세계적인 디자인 하우스들의 캠페인 화보를 찍게 된다.
디자이너 모노그래프 DESIGNER MONOGRAPHS
얼굴을 포함한 모델의 모든 것은 검정색으로 처리, 빨간 bustle(치마 윗부분을 부풀리기 위한 치마받이 틀)만
돋보이게 찍은 작품에선 관객들이 요지 야마모토의 디테일에만 눈이 간다.
사진의 색이나 명암을 과장되게 부각하는 교차 현상(투명 슬라이드 필름을 네거티브 필름용 화학 약품으로 현
상하는 방식) 방식이다.
“여성의 몸을 보여주지 않아도 충분히 여성스러울 수 있다. ”
닉 나이트는 여성을 상품화의 대상으로 보여주던 당시 정형화된 패션 사진에 염증을 느꼈다. 모델의 여성스러
운 모습보다는 오로지 의상 자체의 표현에 집중한 닉 나이트의 통찰력은 동시대 전위적 디자이너였던 패션 디
자이너 요지 야마모토, 마틴 싯봉, 질 샌더 등을 사로잡는다.
2009 |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의 마지막 컬렉션이었던 2010년 S/S 컬렉션 ‘플라토 아틀란티스
(Plato’s Atlantis)’의 이미지 중 하나로, 메인 모델인 라쿠엘 짐머만(Raquel Zimmermann)이 나체로 누워 있고,
그 위로 여러 마리의 비단뱀들이 기어다니는 모습을 촬영한 다소 충격적인 비주얼로 화제가 되었다.
페인팅 & 폴리틱스 PAINTING & POLITICS
데본 아오키를 유명하게 만든 기모노 복장의 사진과 함께 못틀에 몸이 뚫린 채 누워 있는 모델. 닉 나이트는 그
간 금기시됐던 장애, 차별, 폭력, 죽음 등 사회적 이슈를 패션 캠페인과 결합시켰다.
사진에 디지털 기술을 적용하는 것이 드물었던 1990년대 초부터 퀀텔 페인트 박스(Quantel Paintbox: 퀀텔 사
에서 개발한 디지털 컴퓨터로 키보드와 마우스 등으로 다양한 선, 모양, 애니메이션 등의 표과를 만듦)와 같은
그래픽 장비로 이미지 표현의 한계를 타파했다. 그에게 있어서 패션은 정치적인 발언의 한 형태였다.
정물화 & 케이트 STILL LIFE & KATE
그림을 불로 가열해 흘러내린 물감, 3D 프린터로 찍어낸 조각, 백인 모델을 흑인처럼 보이게 한 사진. 3층에선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허문 작품들과 3D 스캐닝 및 프린팅 같은 실험적 표현기법을 조각과 결합시킨 닉 나이트
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자연에 대한 관심, 탈 장르에 대한 그의 욕망을 읽을 수 있는 섹션으로, 회화는 잉크가 쉽게 흡수되지 않는 특수
용지에 열과 수분 공급을 조절해 자연스럽게 잉크가 흘러내리도록 한 결과다. 물론 여기에 색을 덧입히고 구성
을 다듬어 그의 상상력을 표현해냈다.
2008 | 2008년작 브리티쉬 버드(British Birds)는 닉 나이트의 삶과 자연을 향한 관심에 바탕한 정물 사진의 하
나다. 18세기 이후 발전한 박제술(taxidermy)을 활용하여 새의 사체에 화학처리를 해 부패를 막은 후 새의 날
갯짓이나 웅크린 모습 등을 각각 촬영했다. 이를 그래픽 처리를 통해 하나의 장면으로 선보였다.
2008 | 2006년 <인디펜던트(Independent)> 지의 객원 에디터였던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가 에
이즈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닉 나이트에게 의뢰한 캠페인 화보다.
케이트 모스(Kate Moss)를 모델로 강렬한 컬러 콘트라스트(Colour Contrast) 기술을 적용시켰다.
4층
패션 필름 FASHION FILM
<whaam! lindsey="" wixson="" wearing="" comme="" de="" garcon=""> 2012 | 2012년 <가라지(Garage) > 매거진 F/W 3호 커버 작업으로, 스타일리스트 케이티 잉글랜드와 블로거 </whaam!>
<whaam! lindsey="" wixson="" wearing="" comme="" de="" garcon="">페레즈 힐튼, 모델 린제이 윅슨이 참여했으며, 팝 아트(Pop Art)의 거장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업 ‘Whaam!’을</whaam!>
<whaam! lindsey="" wixson="" wearing="" comme="" de="" garcon="">시대적인 흐름에 맞게 재해석한 GIF 애니메이션이다. </whaam!>
닉 나이트의 최근작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공중에 설치된 4면 미디어 패널에서는 요지 야마모토의 옷을 입은 모델이 연속 동작을 하고 있고, 산탄총을 쏘
는 애니메이션 속 여성은 화려한 플로럴 패턴의 꼼데가르송 코트를 입고 있다.
사진으로써 무궁무진한 이미지의 세계를 보여준 그는 이 섹션을 통해 ‘움직임’으로 그 세계를 더욱 확장시켰다.
지금은 흔해진 ‘패션 필름’이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당시에 그는 애니메이션, 3D 촬영, 비디오 콜라주 등을 패션
브랜드와 협업했다.
전시관 4층은 20여 년 이상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온 알렉산더 맥퀸과의 콜라보 영상과 함께 최근 패션 필름 등
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의상에 깃든 고유한 이야기를 다각도의 프레임으로 저장, 움직임을 표현하는 닉 나이트
의 마법을 경험해보자.
닉 나이트에게 묻는다 Q&A Time
Q 패션 사진처럼 패션 필름에도 내러티브(narrative: 묘사·서술·이야기)가 없어야 한다고 했는데,
좋은 패션 필름이란?
A 패션필름은 오로지 옷과 그것의 움직임에 관한 것이다.
알렉산더 맥퀸이 드레스를 만들 때 모든 내러티브는 이미 그 의상 안에 깃들여져 있다.
따라서 굳이 내러티브를 내세울 필요가 없다.
그래서 나는 패션 필름이 특정 스토리라인을 내포해야 한다는 생각에 강력히 반대한다.
Q 알렉산더 맥퀸과의 작업에 대해 “누군가의 정신 속에 들어가 진실함과 강렬함, 애정을 가지고 일했던 진정한
협업이었다”고 말한 바 있는데, 그 외 기억에 남는 콜라보가 있다면?
A 그는 종종 실현 불가능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곤 했지만 그에 대해서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
10여 년간 그는 내 삶의 매우 큰 부분이었다.
존 갈리아노와의 협업 또한 매우 강렬했다.
내 삶은 존과 맥퀸 사이에 반쯤 걸쳐져 있달까, 마치 베토벤과 미켈란젤로 사이에서 작업하는 것 같았다!
레이 카와쿠보와 요지 야마모토 역시 내가 한번도 목격하지 못한 것들을 보여줬다.
마치 영화 속에 사는 것 같았다.
놀라운 일들을 당신에게 실현해달라고 요청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거다.
그들은 당신이 꿈을 꾸고, 그 꿈들을 실현하는 사람이 되도록 독려해준다.
Profile | 닉 나이트 NICK KNIGHT
1958년 영국 런던 출생. 과감하고 실험적인 촬영 기법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 온 포토그래퍼로 1980년대 중
반부터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톰 포드(Tom Ford), 비요크(Björk), 레이디 가가(Lady Gaga),
케이트 모스(Kate Moss), <보그(Vogue)>, <아이디(i-D)> 등과 지속적으로 협업해왔다.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The V&A Museum, London), 사치 갤러리(Saatchi Gal
lery), 보스턴미술관(The Museum of Fine Art, Boston)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작품을 선보였으며 2000
년도에 설립한 웹사이트 쇼스튜디오(SHOWstudio)를 통해 아티스트들의 영감과 창작과정 등의 실험적 콘텐츠
를 대중에게 실시간 공개, 많은 영감을 선사하고 있다.
닉 나이트 사진전 거침없이, 아름답게 (NICK KNIGHT: IMAGE)
전시 기간 2016년10월6일(목)~2017년3월26일(일)
관람 시간 화요일~일요일 10AM~6PM (목, 토요일 10AM~8PM 야간개관)
관람 요금 성인(19세 이상): 5000원 / 학생(8~14세): 3000원 / 어린이(3~7세): 2000원
장르 사진, 영상
장소 대림미술관(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4길 21)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553호 (16.11.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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