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간의 사랑과 신뢰, 미세한 균열에 무너지다.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진 시간은 멀리서 보면 굵은 실선이다. 남편과 아내는 한 침대에 누워있다.
남편은 똑바로 누워 천장을 보며 이야기를 한다. 아내는 돌아누워 그 이야기를 듣는다.
아마도 두 사람은 자신에게 이야기를 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들을 것이다. 45년 세월을 같이 했던 부부의 모습이다.
감독은 이런 장면들을 통해 ‘작은 균열’이 굳건한 신뢰를 쌓았던 부부에게 어떻게 작용되고, 그 틈에서 왜 헤어나지 못하는지를 보여준다.
영국의 날씨처럼 우울하지만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다. - 글 블랙뤼미에르(필름스토커) 사진 영화 <45년 후>]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진 시간은 멀리서 보면 굵은 실선이다.
하지만 그 시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선은 툭툭 끊어진 점들의 연결임을 발견하게 된다.
그 점들은 그저 습관처럼 하루를 살았던 흔적이자 서로를 이어주는 끈이다.
같이 잠을 자고, 아침을 먹고, 산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잠자리에 드는 일종의 의식들의 모음이다.
그렇게 45년을 함께 한 부부가 있다.
남편과 아내는 이제 부부라면 당연히 해왔고, 하고 있다고 믿는 것(사랑, 신뢰 등등)을 확인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부부의 일상을 질투하는 운명이, 이들에게 작은 균열을 선물했다.
그리고 지켜본다.
과연 이들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봉합하는 가를.
꽤 짓궂은 짓이다.
결혼 45주년 파티를 일주일 앞둔 케이트(샬롯 램플링)와 제프(톰 커트니) 부부에게 스위스에서 편지 한 통이 온다.
50여 년 전에 실종된 남편의 첫사랑인 카티야의 시신이 알프스에서 발견되었다는 내용이다.
그날 이후, 제프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다락방에서 그녀의 사진을 찾아내며 과거를 추억한다.
첫사랑 소식에 흔들리는 남편을 보며 불안해지는 케이트.
하지만 제프는 첫사랑 이야기에 민감한 아내를 이해하기 어렵다.
두 사람은 그동안의 일상에서 멀어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45년을 함께 살았지만 서로가 낯설게 느껴지는 두 사람의 갈등은 점점 깊어진다.
2015년 베를린영화제에서 평론가 최고 평점을 받고 남녀주연상을 휩쓴 작품이다.
데이비드 콘스탄틴의 15장짜리 단편에서 영감을 얻은 앤드류 헤이 감독은
일주일 동안 벌어지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 다양한 에피소드를 더해 부부의 신뢰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시도했다.
마치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샬롯 램플링과 톰 커트니의 연기는 카메라의 영역을 벗어나 관객에게 실제상황으로 감정이입 시킨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이어 다시 만난 두 사람의 연기는 특히 미묘한 갈등 장면에서 방황하는 손,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 허공을 헤매는 눈빛 등 ‘연기를 위한 연기’에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깊이를 선보인다.
영화는 케이트의 시선으로 중심을 잡아간다.
하지만 성급하게 케이트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 영리한 전개가 돋보인다.
결혼기념일을 5일 앞둔 시점에서부터 매일 두 사람이 어떻게 멀어지고,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고,
또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보여준다.
요란스럽지 않은 이야기임에도 관객은 점점 빠져든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현재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과거로 돌아간다.
제프의 사진 속 카티야.
그녀가 임신하고 있는 모습에서 케이트는 단순한 질투의 감정을 넘어선다.
케이트가 묻는다.
“그 여자가 죽지 않았다면 결혼할 생각이었어?”
“그래, 결혼했을 거야.”
케이트는 흔들린다.
제프의 과거의 여자로 인해 45년의 사랑에 미세한 균열이 시작된 것이다.
“혹시 나는 카티야의 대역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케이트의 눈에 비친 것은 흔들린 과거가 아닌 불안한 미래였다.
플래터스의 ‘Smoke Gets In Your Eyes’가 영화의 주제를 집약한다.
‘사랑에 빠진 순간 연기가 눈을 가린다’고.
섬세한 연출, 완벽한 연기가 우리에게 묻는다.
얼어있던 과거, 추억, 사랑, 희망이 지금 해동되어 당신에게 온다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흔들림을 지켜볼 수 있는가?
어려운 일이다. - p 8 -
출처 - 매일경제 Citylife No.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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