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 삶을 견디는 기쁨」
2부 조건 없는 행복
한 편의 동화 - 험난한 길
어두컴컴한 바위 문 옆으로 뻗어 있는 골짜기 초입에 멈춰 선 채 나는 머뭇거리며 뒤를 돌아다보았다.
햇빛이 푸르른 세상을 아늑하게 비추고, 풀밭 위에는 연갈색의 꽃들이 바람결에 흔들리며 반짝였다.
그곳에는 따뜻한 온기와 안락함이 있고,
나는 날아다니는 한 마리 벌처럼 꽃 내음과 햇빛을 만끽하며 내 영혼은 깊고 평화로운 안식을 취하고 있다.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려 하는 나는 바보일지도 모른다.
안내인이 내 팔을 가만히 건드렸다.
나는 따뜻한 목욕물에 담근 몸을 마지못해 일으켜야 했을 때처럼 풍경에 미련을 두며 겨우 시선을 떼었다.
그리고는 햇빛이 들지 않아 어두컴컴한 골짜기를 바라보았다.
바위틈으로 시커먼 물이 흐르고 물가에는 색 바랜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바닥에는 물에 씻겨
하얗게 변해 버린 바위가 마치 한때는 살아 있었던 어느 생명체의 유골처럼 창백한 모습을 드러냈다.
“좀 쉬었다 갑시다.”
내가 안내인에게 말했다.
그가 넉넉한 미소를 지었고 우리는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공기가 싸늘했다.
골짜기에서 으스스하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이런 길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 정말 싫다.
이 꺼림칙한 바위 문을 통과한 후 차가운 시냇물을 건너서 좁고 가파른 골짜기를 기어올라 가야 한다.
“길이 고약해 보이는군요.” 내가 머뭇대며 말했다.
내 마음속에서는 강렬하고 비이성적인 희망이 꺼져 가는 불꽃처럼 불안스레 흔들렸다.
혹시 안내인이 생각을 고쳐먹는다면 우리는 발걸음을 돌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안내인도 내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만 돌아가자고 말해 주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우리가 떠나온 곳이 수천 배 더 아름답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곳에서의 삶이 훨씬 더 풍요롭고 따뜻하며 사랑스럽지 않았던가?
더구나 어린애처럼 순진하고 별로 오래 살지도 못하는 존재인 나는 약간의 행복과 태양, 푸르름
그리고 꽃을 보고 즐길 권리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 아니던가?
싫다.
그냥 이대로 머물고 싶다.
영웅이나 순교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여기에 이대로 머무를 수 있다면 나는 평생 동안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벌서부터 으슬으슬 추워지기 시작해서 오래 머물기는 어려웠다.
“몸을 떨고 계시네요.
이제 그만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안내인이 말했다.
그는 몸을 일으켜 잠시 기지개를 켜더니 미소 띤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 미소에서 비웃음이나 동정, 혹은 냉혹함이나 관대함 같은 것은 전혀 엿볼 수 없었다.
다만 모든 것을 이해하며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그의 미소가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당신을 알고 있지.
나는 당신이 느끼는 두려움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제와 그제 당신이 큰소리친 것도 잊지 않았어.
절망적인 심정으로 당신의 영혼이 지금 저지르려고 하는 비겁한 행동과
당신이 떠나온 곳에 있는 따스한 햇빛에 미련을 두는 것은 이미 내게 익숙한 것이거든.’
그런 미소를 띤 채 나를 바라보던 안내인은 어두운 바위 문을 향해 앞서 발걸음을 떼었다.
나는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자신의 목 위에 떨어질 단두대의 칼날을 증오하면서도 시선을 떼지 못하듯,
그 안내인이 미우면서도 그를 떠날 수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싫어하고 경멸한 것은 그의 지식과 통솔력 그리고 냉정함이었으며,
그에게는 애교로 봐줄 수 있는 약점이 전혀 없다는 사실 또한 거슬렸다.
그리고 내가 마음속으로 그의 말이 옳다고 인정하는 것과
그와 생각을 같이해 그를 기꺼이 따르려고 하는 것도 싫었다.
그는 어느새 저만치 멀리 가 있었다.
시커먼 시냇물을 건넌 그는 첫 번째 바위의 모퉁이를 돌아 내 시야에서 막 사라지려던 참이었다.
“잠깐만!”
나는 두려움에 찬 나머지 큰 소리로 외치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다면 내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었을 거야.’
나는 다시 그를 향해 소리쳤다.
“멈춰요!
나는 못 가겠어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단 말이예요.”
안내인은 걸음을 멈추고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비난이 담겨 있지는 않지만,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며 이해하고 있다는 듯한 그 참기 어려운 눈빛으로.
“차라리 돌아갈까요?” 하고 그가 물었으나 결정적인 최후의 말은 아직 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인정하기 싫었지만,
내가 괜찮다고 대답하게 되리라는 것을, 또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서는 절망에 가득 찬 목소리가 ‘그렇게 하자고 말해!’라고 계속 외치고 있었다.
온 세상과 두고 온 고향이 무거운 족쇄처럼 내 발목을 붙잡았다.
나는 내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으로는 간절하게 ‘돌아가자!’고 외치고 있었다.
안내인이 손을 뻗어 골짜기를 가리켰고 나는 다시 한번 못내 아쉬운 그곳을 뒤돌아보았다.
그 순간 나는 내 생애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장면을 보았다.
내가 사랑하던 계곡과 평야가
갑자기 희미한 햇빛을 받으며 창백하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내 앞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색채는 어울리지 않는 불협화음을 이루고,
그림자는 그을린 검은색을 띤 채 아무런 매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심장을 도려낸 듯
아름다움과 향기를 잃어버렸으며 너무 많이 먹어서 물린 지 오래된 음식 같은 냄새와 맛이 났다.
내가 사랑하고 기뻐했던 것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 버려 향기와 색을 거의 눈치 채지 못하게 변질시켜 놓은
안내인의 그 잔인한 태도에 나는 증오심과 두려움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아,
어제까지만 해도 포도주였던 것이 이제 식초가 되어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식초가 다시 포도주로 바뀌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슬픈 심정을 억누르며 안내인의 뒤를 따랐다.
언제나 그렇듯이 지금도 그는 옳았다.
그나마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갑자기 사라져 나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고 내 옆에 있으며
항상 내가 보이는 곳에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내 가슴속의 그 낯선 목소리와 더불어 혼자 남겨지는 것은 정말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나는 입을 다물고 있었으나,
내 내면의 목소리는 계속 외쳐댔다.
‘기다려요, 같이 갑시다!’
시냇물에 박혀 있는 돌은 매우 미끄러웠다.
축축하게 젖은 작은 돌을 간신히 한 발씩 디디며 걷는 것은 지치고 현기증 나는 일이었다.
시냇가를 따라가던 길이 급하게 가팔라지기 시작하더니 어둠침침한 암벽이 눈앞에 성큼 다가왔다.
무뚝뚝하게 솟아 있는 암벽의 모퉁이는
저마다 우리를 붙잡은 채 영원히 돌아가지 못하게 하려는 음험한 의도를 드러내고 있었다.
사마귀 모양의 누런 바위 위로 물줄기가 끈적거리며 흘렀다.
우리 머리 위에는 푸른 하늘이나 구름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안내인의 뒤를 부지런히 쫓아가면서 두렵고 개운치 않은 마음에 자주 눈을 감았다.
도중에 어두운 색의 꽃 한 송이가 피어 있는 것을 보았다.
슬픔에 잠긴 듯 우단처럼 검은 빛깔이 감도는 아름다운 그 꽃은 내게 친숙하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안내인은 걸음을 재촉했고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잠시 멈춰 서서 이 외로운 꽃에 눈길을 준다면
슬픔과 절망이 겹친 우울함이 너무나 커져서 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내 영혼은 의미도 없고 망상만 가득한 이 참담한 곳에 영원히 사로잡히게 될지도 모른다.’
온몸이 젖고 더러워진 채 나는 계속해서 기어올라 갔다.
축축한 암벽이 우리를 위협하며 더 가까이 다가오자, 안내인은 오래 전부터 불러 왔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밝고 힘찬 목소리로 박자에 맞춰 발걸음을 떼면서 노래를 불렀다.
“나는 원한다,
나는 원한다, 나는 원한다!”
나는 그가 내게 용기를 북돋워 주고 격려하려고 그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이 지옥과 같은 고행길의 끔직한 고통과 절망을 떨쳐 버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내가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그러한 성취감을 맛보게 허락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노래를 부를 기분이 나겠는가?
더구나 나는 신이 요구한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일도 아닌 것을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는 불쌍하고 평범한 인간일 뿐이지 않은가?
시냇가의 패랭이꽃과 물망초는
원래 있던 자리를 지키면서 자신의 속성대로 꽃을 피운 후에 시들어 가지 않던가?
“가고 싶다,
가고 싶다, 가고 싶다!”
안내인은 계속해서 노래를 불러 댔다.
아,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러나 나는 안내인의 각별한 도움으로 이미 암벽과 낭떠러지를 기어오른 후였기 때문에 더 이상 돌아갈 수도 없었다.
설움이 북받쳐 올랐으나 울 수 없었다.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억지로 울음을 삼키며 나는 반항적이고 큰 목소리로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박자와 음정은 맞추었지만 노래 가사는 다르게 불렀다.
“가야만 해,
가야만 해, 가야만 해!”
산을 오르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쉽지 않았으므로 나는 금세 숨이 차서 헐떡이며 노래를 그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지칠 줄 모르고 노래를 계속 불렀다.
“가고 싶다,
가고 싶다, 가고 싶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결국 나까지도 그의 노래 가사를 따라 부르게 만들었다.
이제 산을 오르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이제는 올라가야만 하기 때문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기 때문에 오르게 되었다.
노래를 불러도 더 이상 지치지 않았다.
내 마음을 뒤덮고 있던 구름이 걷히는 듯했고,
그와 더불어 바위도 더 이상 미끄럽지 않게 느껴졌다.
우리 머리 위로 작고 푸른 시냇물처럼 청명한 하늘이 차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늘은 작고 푸른 호수처럼 조금씩 넓어졌다.
나는 진심으로 의욕을 갖고 더 씩씩하게 행동하려고 애썼다.
그러자 호수 크기만 하던 하늘이 갈수록 더 커졌고 길은 오르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결국 나는 아무런 불평 없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안내인과 보조를 맞추며 걸었다.
그때 갑자기 우리 앞에 산 정상이 나타났다.
산봉우리는 깎아지른 듯 가파르고 햇빛을 받아 번쩍거리고 있었다.
정상을 얼마 남겨 놓지 않고 우리는 좁은 바위틈을 빠져 나왔다.
햇빛이 부셔서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숨이 막힐 듯하여 무릎이 떨렸다.
가파른 산마루 위에 의지할 곳 없이 우뚝 서 있는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주위에는 끝없이 펼쳐진 하늘과 무섭고 푸른 심연뿐이었고,
기다란 산봉우리만이 사다리처럼 우리 눈앞에 우뚝 솟아 있었다.
그러나 하늘과 태양이 그곳에 있었으므로
우리는 입술을 꽉 다물고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한 발씩 겨우 발걸음을 옮기며 마지막 급경사를 기어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희박한 공기 속에서 산봉우리의 좁은 바위를 딛고 서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았다.
산도 기이했지만 그 꼭대기 역시 그랬다.
우리가 끝없이 펼쳐진 암벽을 넘어 애써 기어오른 그 산 정상에는 바위 사이에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작달막한 그 나무에는 짧고 튼튼한 가지가 몇 개 뻗어 있었다.
나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쓸쓸하고 묘한 모습으로 바위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서 있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차갑고 푸른 하늘이 보였고
나무 꼭대기에는 검은 새 한 마리가 앉아 탁한 목소리로 지저귀고 있었다.
짧게 휴식을 취하는 동안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태양은 활활 타오르고 바위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나무는 우뚝 솟아 있고 새는 탁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랫소리는 '영원, 영원!'이라고 외치는 듯했다.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검은 새의 반짝거리는 눈은 마치 검은 수정처럼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새의 시선뿐만 아니라 노랫소리도 참기 어려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끔직한 것은 그곳의 쓸쓸함과 공허함, 그리고 어지러울 정도로 넓고 적막한 하늘이었다.
죽음은 예측 불가능한 기쁨이고 이곳에 남는 것은 형용하기 어려운 고통이다.
당장 이 순간 무슨 일인가 일어나야 할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공포로 인해 돌처럼 굳어버릴 것이다.
나는 그 일이 뇌우가 몰려오기 전의 돌풍처럼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뜨거운 열처럼 내 육체와 영혼 속으로 전해져 왔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갑자기 검은 새가 나뭇가지에서 날아오르더니 몸을 던져 우주 공간으로 추락하였다.
그리고 안내인도 푸른 심연으로 뛰어내려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제 운명의 파도는 절정에 달했다.
그 파도는 내 심장을 휩쓸어 가 소리 없이 부서졌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떨어지고 있었다.
추락하면서 날고 있었다.
차가운 공기의 소용돌이 속으로 파고들면서 나는 기쁨의 고통에 겨운 나머지
경련을 일으키며 무한한 공간으로 떨어져 내렸다.
어머니의 품속으로.
슬픔이 절정에 달하면 상황이 호전된다.
정신착란에 대한 두려움은 대부분 삶에 대한 것이거나 우리의 성장과 본능이 요구하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일 뿐이다.
본능에 충실한 삶과 우리가 의식하고 싶어 하고,
의식하려고 노력하는 것 사이에는 언제나 깊은 괴리가 있다.
그 괴리를 좁힐 수는 없지만, 그 사이를 뛰어넘는 것은 수백 번도 가능하다.
그럴 때마다 항상 용기가 필요하며 뛰어넘기 전에는 공포가 우리를 엄습한다.
미리부터 마음속의 동요를 억누르거나 ‘미친 짓’이라는 등의 말을 입에 올리지 말라.
오히려 그 동요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분명하게 인식하라!
모든 성장은 그러한 상태와 결부되어 있으며 고난과 고통 없는 성장은 있을 수 없다.
‘망상’이 당신을 괴롭히더라도 눈을 감지 말고 그 망상이 마음속에서 분명해지도록 애써 보라.
그렇지 않으면 여느 사람처럼 당신의 내부에 있는 혼돈과 점점 더 반목하게 될 뿐이다.
당신은 그 혼돈과 친구가 되어 그것을 받아들이고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심지어 당신의 내부에 들어 있는 것이 정신착란일지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정신착란은 한 인간이 접할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사악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정신착란에도 나름대로 신성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나는 영웅주의나 스토아 철학에 대해 반대하는, 아니 불신하는 입장이다.
그리하여 나는 나 자신의 삶에서 극히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
(우리 어머니의 죽음이 그런 경우였는데, 그 당시 나는 한동안 어머니의 죽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고통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길이
고통의 세계를 가장 빨리 통과할 수 있게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을 고수해 왔다.
다시 말해 나는 고통과 그보다 높은 힘에 나 자신을 내맡겼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도 그와 같은 힘에 맡겼다.
일몰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몰이나 일출이라는 것이 존재하려면 먼저 위와 아래가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 지구에 위와 아래는 없으며, 그것은 착각의 근원지인 인간의 뇌 속에나 존재할 따름이다.
서로 반대되는 것은 모두 착각이다.
흰색과 검은색도 착각이고 삶과 죽음도 착각이며 선과 악도 착각이다.
당신에게는 일몰로 보이는 것이 내게는 일출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 두 가지 모두 착각이다.
지구가 하늘 아래 떠 있는 원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일출과 일몰을 눈으로 보고 또 믿는다.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지구가 그와 같은 원반 모양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정작 별들이 뜨고 지는 것을 알지 못한다. (p181)
※ 이 글은 <삶을 견디는 기쁨>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16.07.28. 210702-18194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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