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자기개발(경제.경영.마케팅/광장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그렇게 만화를 사랑하다!

by 탄천사랑 2016. 3. 26.

 

·「나예리. 송상훈 외 - 만화가가 말하는 만화가」


 

 

배고프다. 그래도 행복하다!
"선생님, 식사하세요~"
"아~ 난 됐으니까 먼저들 먹어. 대신 바나나 하나만 갖다 줄래?"
"... 계속 안 드셨는데 이걸로 괜찮으시겠어요?"

내 배에서 울리는 '꼬르륵' 소리를 들었는지, 
어시스턴트 M 양이 안쓰러운 듯 말하지만 사실 그녀도 잘 알고 있다. 
밥 잘 먹는 내가 바나나 하나로 끼니를 대신하거나 아예 굶여야 하는 이유를.
이제 본격적인 마감 막바지 카운트다운으로 접어든 것이다.

후딱 밥 먹는 데 걸리는 시간은 몇 분 남짓.
그 시간 자체가 아쉬울 만큼 급할 때도 있지만, 
마감 때 끼니를 거르거나 대충 때우는 건 꼭 시간 때문은 아니다. 
마감 기간 동안 평균 수면 시간은 두어 시간. 
간간이 철야까지 하고 나면 체력이 바닥으로 떨어져, 
배부르게 밥 먹고 나면 뒤따라오는 식곤증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수면이라기보다 거의 기절 상태에 가까운 ‘폭면’이 쏟아지면 커피 열 잔도, 
각성 음료 백 병도 효과가 없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건 정신력이라는 주장 따위, 사막을 굴러다니는 먼지 더미보다 더 부질없다. 
촌각을 다투는 시기, 잠드는 그 순간이 만화가에겐 또 하나의 사선(deadline)이기도 하다.

'마감'이라는 것 자체가 원래 급박한 성질의 것이겠지만,
만화가의 마감은 특히나 잡지 연재를 하는 경우 그 절박함은 곱절이 된다.
발간 날짜에 맞추지 못하면 원고 펑크라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다.
개인적으로 어떤 사정이 있었든 간에 엄청난 민폐이고, 질책을 피할 길이 없다.
그래서 마감 막판의 만화가는 
인기와 판매량 여부를 떠나 하나같이 배고픈 직업인이 되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만화 독자라면 아마 공통적으로 떠올리는 만화가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퀭하니 꺼진 눈과 초췌한 모습으로 편집부의 전화벨 소리에 식은땀을 흘려 대는... 바로 마감 중의 만화가 
아니, 아무리 만화를 사랑해도 그렇지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심지어 씻지도 못하는 극악의 몰골이라니.
더구나 요즘은 만화계 상황이 전반적으로 어려워 현실적인 비전도 미지수란다.
그렇다면 만화가, 이거 두말 할 것 없는 완전 3D 직종 아닌가.
도대체 누가 그런 일을 하고 있을까!

신기하게도 만화가가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은 언제나 많다.
그중 실제로 만화가가 되는 이를 헤아리기에 앞서 단지 보고 즐기는 것을 넘어 
스스로 '그려 보고 싶다'라는 꿈을 갖는 이들은 앞으로도 여전히 많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만화를 그린다는 건, 아니 무언가를 창조해 낸다는 건 정말로 '매력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상상을 해 보자.
하고 싶은 이야기, 만들고 싶은 세계가 있다.
내 마음속의 그 세계를 내가 원하는 형태의 그림으로 옮겨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 주고 들려주는 것이다.
허구인 나만의 세계가 현실의 독자들과 만나 때로 놀라울 정도로 교감할 때도 있다.
그것이 허구와 현실의 접점에서 이루어지는 창작의 또 다른 묘미이다.

물론 놀라울 정도의 행복감 뒤엔 그만큼의 고통이 따른다.
동료들과도 가끔 얘기하지만 만화가는 종합 예술가이자 막노동꾼이다.
만화가는 그림쟁이와 이야기꾼, 그 양쪽 역할 모두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음악으로 치면 원 맨 밴드, 영화로 치면 시나리오, 연출, 프로덕션, 디자인, 의상, 촬영 등 
제작 과정 일체를 혼자 하는 셈이랄까.
(물론 때로는 실력 좋은 어시스턴트들이 함께하는 행운을 만나기도 한다)

대부분의 만화가는 즐거움만 취해도 되는 독자로 시작해 작가의 길을 걷는 경우가 많다.
아마 그 역할 전환의 포인트는 어떤 희생과 고통을 감수하고라도 
자신만의 그림과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생산자이자 창조자가 되고픈 열망일 것이다. 

그것이 마감을 앞둔 것이든, 
여의치 않은 현실 때문에 겪는 것이든 
열망을 이룬 행복한 만화가에겐 '배고픔'과 친숙해질 수 있는 여유가 있다.


※ 이 글은 < 만화가가 말하는 만화가 >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나예리. 송상훈 외 - 만화가가 말하는 만화가
부키 - 2015. 07. 3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