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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내가만난글/비문학(역사.사회.문학.

아주 사적인 긴 만남 - 시인의 숲, 소년의 바다

by 탄천사랑 2010. 5. 31.

·마종기. 루시드 폴 -   아주 사적인 긴 만남(양장본 HardCover)」

 

 

part - 1 시인의 숲, 소년의 바다
2007. 08. 24. fri. am. 05:47
제가 본 북유럽의 바다는 눈이 물들도록 검푸른 빛이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아이슬란드의 바다도 그랬고, 덴마크에서 스웨덴을 넘어가면서 본 그 긴 다리 아래 출렁이던 바다도 그랬습니다.
'그 나라 하늘빛'은 유독 많이도 읽었던 시집입니다.  오랜만에 펼쳐본 시집은 책 모서리가 접혀 있었습니다. 


대서양 건너 마종기 선생님께 편지를 드립니다. 
여름이 다 가는 지금에서야 이렇게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게 된 제 게으름을 용서해 주십시오.
어느덧 막바지에 다다른 이곳의 학업과 그간 몇 가지의 긴박했던 음악 작업 탓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 인생에서 가장 거대한 '시인'이자 '음악인'이신 선생님께 
감히 편지를 올리게 될 것을 생각하다 보니,
'무슨 말로 편지를 시작해야 할까'. 
'부족한 글인데 어떻게 써야 할까' 하는 걱정 아닌 걱정에 자꾸만 주저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유럽에서 생활한 지도 어느덧 5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마무리할 때가 되었는지 주변에 해야 할 일, 정리해야 할 일, 
그 와중에 또다시 생겨나는 일들로 인해 살면서 처음으로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지냈습니다.
그러고 보니 불현듯 처음 이 차가운 유럽에 발을 디뎠던 2002년 12월이 생각납니다.
선생님은 처음 이국땅에 짐을 풀었던 그날을 기억하시는지요.

눈이 많이 내리던 12월의 첫날이었습니다.
약간의 두려움과 기대로 
스물두 시간의 비행을 거쳐 도착한 스톡홀름의 첫날밤엔 피곤함조차 느끼지 못했습니다.
왠지 모르게 우리말과 멀어질 듯한 두려움에 무작정 구겨 넣었던 시집들 중에,
처음 펼친 시집이 바로 선생님의 '이슬의 눈'이었지요.
한국을 떠나기 몇 달 전쯤, 
작은 클럽에서 공연이 끝난 뒤,
어느 착하고 소심한 팬이 
저에게 직접 건네주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맡겨놓았던 시집이었습니다.
고백하자면 한국에서는 그 시집을 펼쳐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차갑다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 없던 낯선 12월의 첫날, 
저를 지도하기로 한 박사님은 각오 단단히 하라며 잔뜩 겁을 주었지요. 
달랑 6개월짜리 비자를 손에 쥔 저에게 그는, 
반년 뒤 연구 실적이 좋지 않으면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날이 바로 선생님의 시를 처음 만나게 된 날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날의 기억은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답니다. 
하지만 북구의 겨울 낮은 무척 짧아서 스톡홀름의 거리는 오후 세 시면 어김없이 해가 지고, 
24시간 켜두어야 한다는 자동차의 불빛만으로 가득했지요.  

이른 저녁 아니,  
밤에 홀로 아파트의 식탁에서 처음 펼쳐본 선생님의 시집은 
그날 밤부터 저에겐 백석 시인의 '멧새 소리'와 더불어,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던 이국의 거리, 
지하철역, 
버스 정류장, 
실험실, 
심지어는 집 아닌 집에서의 텅 빈 시간을 밝혀주던 불빛이었습니다.

책장은 군데군데 접혀 있고,
나중에는 어느 페이지에 어떤 시가 있는지 다 기억할 정도가 되었지요.
그래서 마치 의사의 처방전을 찾듯 아플 때, 
피하고 싶을 때, 
위로받고 싶을 때, 
웃고 싶을 때,
어디에 있는 어느 시를 읽어야 할지도 다 알게 되었답니다.

일 년이 지나 스위스로 학교를 옮기게 된 후에도 그 시들은,
낯선 도시에서 
아무리 마음을 독하게 먹어도 절망하던 고단한 하루의 샘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해가 늦게 뜨는 겨울 아침 강의시간,
창밖으로 들리던 눈 녹는 소리 나 아침 햇살에서도 받지 못하던 위로를 
선생님의 시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의 시와 산문을 모조리 다 찾아 읽고,
늘 되새김질하는 저와는 달리 선생님은 아마도 저를 모르시겠지요. 


저는 지금 스위스에서 생명공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연주하는 음악인이랍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설명하기 힘든 
저의 지금 상황을 선생님이시라면 단번에 알아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1998년 이후로 한국에서 몇 장의 앨범을 냈고, 
병역 특례업체에서 군 복무를 마친 후 
우연히 스웨덴의 어느 학교에 인연이 닿아 유럽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조금은 맞지 않는 옷처럼 보이는 실험 가운을 입으면서 
학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스웨덴을 떠나 취리히를 거쳐 이곳 로잔으로 온 후 2집 앨범을 만들 때에도,
선생님은 제게 항상 가장 훌륭한 음악 선생님이셨습니다. 
선생님의 시가 없었더라면 아마 제2집은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조용한 개선>  <이슬의 눈>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냄새가 난다>를 읽으며 지은 곡들입니다.
언젠가 선생님께서 제가 쓴 가사를 보신다면 
'이 가사는 내 시를 보고 썼구먼' 하며 괘씸한 듯 웃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언제나 저를 팽팽하게 긴장시키는 시 속에서 
선생님의 물리적 나이를 도저히 짐작하지 못하겠더군요.
그래서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외람되게도 선생님을 '형'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마치 어느 80년대의 시인이 
윤동주 시인을 영원히 '형'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복도 다 지나갔을 테지요.
이곳의 저녁 하늘도 해가 서서히 짧아지고 있습니다.
밤 아홉 시가 지나도 훤하기만 하던 여름은 지나가고 
요즘은 제가 좋아하는 가을 하늘빛을 점점 빨리 볼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공기에서도 조금씩 가을 냄새가 납니다.
가을이 온다고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할 때, 
이곳에 있는 동료 중 저를 이해해 주는 친구들은 거의 없지만 
이제 많이 무 더지기도 하고 웃어넘기는 법도 배운 걸 보니 
이제 저도 조금은 강해졌나 봅니다.

선생님이 계신다는 플로리다의 가을빛은 어떤가요.
그곳에도 가을이 있는지요.
우리나라처럼 그곳에도 가을의 향기가 나는지요.
머지않아 남미로 여행을 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시 속에 남아있는 흔적 탓인지 몬타나 평원이며 리스본이며, 
선생님이 다녀오신 곳을 제가 가게 될 때에는 늘 선생님의 시집을 가져가곤 합니다.

론니 플래닛은 한 번도 가져가 본 일이 없지만요.
저는 남미를 가보지 못했지만 남미, 
그중에서도 브라질 음악을 매일 듣는 브라질 음악의 팬이랍니다.
브라질에 가시게 될 때 좋아하는 음악들을 보내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실는지요.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도 
제가 사랑하는 뮤지션 중 한 명인 카르톨라의 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언제나 브라질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 
제 눈빛은 평소보다 두 배쯤 더 빛난다고 친구들이 말하더군요.
제가 아는 브라질 음악은 사람의 체온을 기준으로 늘 실험할 때 말하는 ,
바로 그 37도의 음악입니다.
선생님의 시처럼 말입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첫 편지를 띄웁니다.
선생님의 글을 감히 기다리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스위스의 로잔에서 조윤석 올립니다. 



※ 이 글은 <아주 사적인 긴 만남>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마종기, 루시드 폴 - 아주 사적인 긴 만남
웅진지식하우스 - 2009. 05. 18.

 [t-10.05.31.  20200506-191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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