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우라 마사시 - 무용의 현대」
지금, 왜 춤인가
1994년 3월
비뇰레 국제 안무가상 도쿄 플랫폼의 장소였던 아오야마 쇼우 게츠 홀은 젊은 세대의 열기로 가득했다.
입석은커녕, 발조차 들여놓지 못한 채 돌아간 사람도 있었다.
모던 댄스 공연으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그 열기는 일본의 60년대의 소극장 운동을 상기시킬 정도였다.
비뇰레 국제 안무가상은 문자 그대로 우수한 무용 작품을 세계적으로 표창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이며,
명칭은 주최 도시인 프랑스의 비뇰레에서 따온 것이다.
안무는 무용을 창작하는 것이다.
발레리나를 비롯하여 무용수에게 주어지는 상은 다양하지만
작품을 만들어내는 안무가에게 돌아가는 상은 그리 많지 않다.
'춤은 무엇보다도 우선 안무가, 즉 코레오그라피 choreographer에 의한 예술작품이다'라는
견해를 명확히 한 것에 이 상의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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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파인 아츠 Fine Arts와 퍼포밍 아츠 Performing Arts,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파인 아츠 Fine Arts는 미술, 즉 회화, 조각, 공예, 건축들을 가리키며
퍼포밍 아츠 Performing Arts는 연극, 무용, 음악 등을 가리킨다.
전자는 공간 예술이며 후자는 시간 예술이라 할 수 있는데 영화나 VTR과 같은 예외도 있다.
후자는 오히려 무대 예술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음악을 무대 예술에 포함시키는 것은 이상할지 모르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레코드나 CD는 기록이지만,
음악도 기본적으로는 무대에서 연주되는 것이니 훌륭한 무대 예술인 것이다.
퍼포밍 아츠는 몸으로 행해지는 예술이라 말하는 편이 좋겠다.
덧붙여 퍼포먼스라는 용어가 있으나, 이것은 퍼포밍 아츠와는 다르다.
퍼포먼스는 무엇인가를 행한다는 의미로 상연, 거행, 게다가 성능이라는 의미까지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흔히 말하는 퍼포먼스라는 용어와 그 내용이 상통하지는 않다.
퍼포먼스는 특수한 미술 용어로 미술가가 자기 작품의 일환으로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캔버스를 뛰쳐나온 화가가 거리에서 혹은 스튜디오에서 무엇인가를 한다는 말이다.
50~60년대에는 해프닝 또는 이벤트라고도 불리었으나 80년대에 와서 퍼포먼스라는 명칭으로 재등장했다.
퍼포먼스라는 것이 등장했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그것은 파인 아츠도 근본적으로는 퍼포밍 아츠의 요소를 포함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회화도, 조각도, 건축도, 먼 옛날에는 여러 종류의 종교적 의례와 함께 존재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종교적 의례는 무용과도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태고의 무용으로부터 모든 예술이 발생했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미술가는 퍼포먼스에 의해 태고의 기억을 상기시켰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퍼포먼스가 끼어 든 적도 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무대 예술의 중심은 역시 연극이었다.
아니, 19세기부터 그래왔다고 할 수 있다.
대전 후의 세계로 말하자면, 무대 예술의 주류는 장 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 사무엘 베케트 Samuel Beckett 등이 보여주는 부조리극이었고,
일본의 경우는
테라야마 슈우지 寺山修司 카라 주우로우, 스즈키 타다시 鈴木充志 등이 펼친 소극장 운동이었다.
그것이 80년대로 들어서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연극을 대신해서 무용이 그 큰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모리스 베자르가 <봄의 제전> 이나 <볼레로>로 유럽의 이목을 사로잡은 것이 60년대이고,
그 <볼레로>를 다시 베자르의 사랑을 받았던 조르쥬 동이 춤추게 된 것이 70년대 후반,
그즈음부터 무용의 표현력이 넓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같은 70년대 후반,
독일에서는 바우쉬가 탄츠테아터라는 이름으로 획기적인 무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힘들이 일제히 분출된 것이 80년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힘은 당시까지의 연극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나는 80년대 중반, 뉴욕에서 2년 정도 살았는데 당시 무대 예술의 중심이
연극에서 무용으로 옮겨진 사실은 누구의 눈으로도 명백히 확인할 수 있었다.
브로드웨이의 꽃은 뮤지컬도 연극도 아닌 무용이었다.
그 이유는 세계적으로 정치와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끝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고르바초프의 등장은
동서 냉전의 끝맺음을 고함과 함께 무용의 시대가 시작됨을 고했다고 생각한다.
입에 침을 튀겨가며 정치를 논했던 시대에 무대예술의 중심은 연극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데올로기의 싸움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관념이 아닌 신체로 옮겨졌다.
정치가 아닌 생활로 옮겨진 것이다.
무용은 인간에게 삶의 기쁨을 가르쳐 준다.
태어나, 자라고, 그러고는 늙어 죽어 가는 인간의 삶의,
그 희로애락을 거의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 준다.
이러한 무용의 매력이 사람들의 마음을 이제야 드디어 사로잡게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명의 성숙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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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도 무대 예술의 중심은 연극에서 무용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상카이 주쿠를 비롯하여,
히지카타 타쯔미가 창시한 부토의 흐름을 이어가는 이들이 제 각기 활동하는가 하면,
그들과 구별되는 테시 가와라 사부로가 등장하여 세계의 주목을 이끌었다.
60년대부터 70년대에 걸쳐 연극의 소극장 운동이 달성한 역할을
80년대부터 90년대에 걸쳐서는 무용이 완수했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중요한 것은 세계 경제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일본의 수도 도쿄가 세계 예술의 움직임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도시가 되었다는 것이다.
도쿄는 현재 50~60년대의 뉴욕에 필적하는 도시라 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해외의 일류 무용단이 거의 매달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일본으로 오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동경이 무대 예술의 움직임을 볼 수 있는
가장 유리한 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점이 일본의 젊은 세대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가 없다.
무용의 범위는 넒다.
유럽을 중심으로 논해보더라도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과 같은 클래식 발레가 있고,
그것에 대한 반발로 탄생한 이사도라 덩컨 Isadora Duncan 이나
마사 그레이엄 Martha Graham의 모던 댄스 modern dance, 그에 이어 모던 댄스를
비관적으로 섭취한 발란신이나 모리스 베자르 Maurice Bejart의 모던 발레가 있다.
예를 들어보면, 모스크바의 볼쇼이 발레나
페테르부르크의 키로프 발레는 클래식 발레를 중요한 레퍼토리로 하고 있으며,
파리 오페라 발레단이나 런던의 로열발레단 등은 클래식 발레와 모던 발레를 같은 비율로 공연하고 있다.
베자르 발레단이나 포사이드 발레단은 모던 발레의 아성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네덜란드 댄스시어터를 이끄는 지리 킬리언은 모던 발레와 모던 댄스를 통합시켰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모던 댄스로부터 출발한 피 나 바우쉬는 현재 연극의 전위 前衛라고 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있다.
그밖에 모던 댄스의 나라 미국을 살펴보면 그레이엄 무용단, 커닝햄 무용단 등이 있으며,
그 후로 트와일라 타프 Twyla Tharp나 마크 모리스 Mark Morrisroe, 와 같은 젊은 세대가 뒤를 잇고 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유럽의 모던 발레와 아메리카의 모던 댄스의 '결혼'으로 인해 태어났다고 할 수 있는
누벨 댄스라고 하는 조류가 프랑스를 중심으로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중에서도 벨기에의
안나 테레사 드 키어스 매커 Anne Teresa De Keersmaeker의 로사스 무용단이 특히 주목받고 있다.
열거하자면 끝도 없지만,
세계 무용의 현재를 이끌고 있는 이들 무용단 대부분이 몇 번이고 일본 무대에 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플라멩코로는 안토니오 가데스 Antonio Gades나 오요소가 유명한데
이들도 수 차례 일본 무대를 방문하고 있다.
번복해 말하게 되지만 도쿄는 지금 세계의 공연 예술의 교차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젊은 세대가 그 자극을 받지 않을 리 없다.
아마도 머지않아 새로운 무용수, 새로운 안무가들이 앞 다투어 나올 것이다.
한 가지 애석한 것은 정부나 자치단체에서 그것을 뒷받침 할 계획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해외의 유명 무용단의 대부분이 국립이나 공립이라는 것과는 너무나 큰 차이다.
하지만 일본의 소극장 운동만 하더라도 지원되었던 것은 없었다.
그래도 젊은 재능은 성장 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보는 쪽도 그에 맞추어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우수한 무대는 우수한 관객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어쨌든 분명한 한 가지는 지금 우리는 무용으로부터 눈을 뗄 수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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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금 왜 춤일까, 가 아니라
오히려 왜 지금까지 춤이지 않았나,라는 의문을 가져야 할 것이다.
왜, 춤은 여태껏 긴 역사 속에서 멸시를 받아 왔는가? 또 그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춤은 기껏해야 한 세기 동안에 융성해진 체육보다 훨씬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체육뿐만 아니다.
춤은 음악이나 연극, 미술, 문학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음악이나 연극, 미술, 문학, 그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는 민족이 설사 있다 가정하더라도,
춤을 가지고 있지 않는 민족은 없을 것이다.
음악이나 연극도 오히려 춤으로부터 파생되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시초에는 물론 모든 예술이 혼합되어 있었다.
그것이 제각기 예술로 분화되어져 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원시의 혼합 상태에 가장 가까운 예술 형태가 있다고 한다면
바로 무용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래나 연극도 신체 표현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노래도 연극도 몸짓을 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윽고 몸짓으로부터 분리되어 노래는 노래만으로 연극은 연극만으로 독립하지만
그것은 춤의 긴 역사 안에서는 아마도 최근의 일에 속할 것이다.
춤은 어떤 의미에 있어서 인간의 존재 양식 그 자체이다.
또한 인간이란 어떠한 존재인가를 여실히 파헤치는 예술이다.
춤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의 양상을 파악하게 하는 바로 그런 예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춤이 왜 긴 세월 동안 멸시받아 왔는가는 분명히 의문을 던져 볼 문제이다.
아마도 그것은 교육의 현재 실정을 의심해 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존 로크 John Locke의 <교육에 관한 고찰>이라는 저서가 있다.
이와나미 문고에서 출판되었으므로 교육자라면 한 번쯤 읽어보았을지도 모를 책이다.
이 책에서 춤에 관하여 많이 언급하고 있는데 화제가 되는 부분은 읽기, 쓰기, 춤,
외국어를 배우는 일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자면
- 어린이들의 신체 동작에 대해서는 이전에 말한 것처럼
무용교사가 가장 적절한 때에 무엇이 가장 적합한가를 그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라고 한 것은 뇌리에 깊이 박혀 지워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교사들은 춤의 'ㅊ' 자도 입에 담지 않는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존 로크의 <교육에 관한 고찰>이 출판된 것은 1693년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존 로크는 글로 상식 이외의 것을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적어도 17세기까지 춤은 교육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사실 17세기에는 태양왕 루이 14세를 비롯해 일반인 중에서도 춤의 고수가 많았다.
그렇다면 18~19세기 동안
교육에 관해서도 무용에 관해서도 무언가 결정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추측은 아마도 틀림없을 거라 생각되는데,
18~19세기가 바로 산업혁명의 시대였기 때문이지 않나 생각된다.
산업혁명은 인간의 생활 거의 모두를 바꾸어 놓았고
교육 또한 그때에 크게 바뀌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 이 글은 <무용의 현대>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미우라 마사시 - 무용의 현대
역자 - 남정호 외
늘봄 - 2004. 07. 15.
[t-10.05.19. 20210512-1812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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