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미 외 - 부부로 산다는 것」
꿈을 함께 이루어가는 행복 / 그녀의 불안감을 나눠주는 것
그녀는 방송에서 '사교육 문제가 어쩌니' 하면서 떠들어댈 때에도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사교육 때문에 새벽 1시까지 부부 싸움을 하게 될 줄도 몰랐다.
딸아이는 학교에서 항상 상위권 성적을 유지해 왔다.
그동안 학원에 보내지 않고도 6학년까지 잘해 왔다.
그런데 막상 6학년 2학기가 되고 보니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중학교 공부는 초등학교 공부와는 차원이 다르다던데,
중학교는 과목도 많아지고 양도 많아지고,
또 아무리 지금 잘한다고 하지만 중학교 가면 다른 초등학교에서 잘하던 아이들도 많이 올 텐데'
그녀는 아는 사람의 소개로 학원을 보내기 시작했다.
아이는 학원에서도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그런데 요즘 학원은 아이들을 우월반으로 나누어서 반 배정을 하고 있었다.
특목고반, A반, B반, C반 등의 순으로 반을 나누었다.
며칠 전에 학원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가 특목고반에 배치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같은 학원인데도 특목고반의 수강료가 일반반의 두 배가 넘는다는 사실을 듣고 막막해졌다.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우등생 반에 들어간다는 사실에 가슴이 뿌듯하고 행복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엄청난 수강료를 듣고 나니 걱정이 앞설 뿐이었다
'요즘 월급쟁이들 사정이 뻔한데,
어떻게 한 달에 50만 원이나 되는 큰돈을 학원비로 달라는 말인가.
아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작은 아이도 가르쳐야 하는데'
어차피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남편에게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저기요. 민주 학원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이번에 반 배치를 다시 하는데 우리 민주가 제일 잘하는 반에 들어갔대요.
그런데 그 반은 학원비가 좀 비싸네요."
"얼만데?"
"저기요. 그게 좀 비싸서....,'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얼만데 그래? 도대체 얼마나 비싸기에 이렇게 말씀을 못 하시나..., 10만 원 정도 하나?"
"뭐요? 10만 원? 내가 10만 원이면 자기한테 말도 하지 않고 보낸다.
45만 원이래요"
순간 남편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얼마? 40이 어쩐다고?"
"45만 원이라고요. 뭐 45만 원만 하는 줄 알아요?
교재비에다가 가끔씩 하는 특강비 등등을 합하면 50만 원도 더 들어갈 것 같아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남편이 한 마디 던졌다.
"학원 당장 그만둬."
사실 그녀도 황당했지만, 단번에 학원을 그만두라는 그의 말 한마디에 화가 치밀었다.
"학원비가 비싸다는 건 나도 인정해요. 하지만 가르치는 게 다르단 말이에요.
교제도 다르고 선생님들도 다르고, 반 인원도 많아야 3명이란 말이에요.
남들은 그 반에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간다는데
자기는 어떻게 생각도 안 해보고 그렇게 관두란 말부터 할 수가 있어요?"
"야, 민주가 지금 고등학교 2. 3학년이라면....
아니, 중학교 3학년이기만 해도 내가 이렇게 기가 막히지는 않겠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6학년짜리를 얼마를 주고 학원을 보낸다고?
민주 스스로도 지금 잘하고 있잖아.
그 정도면 됐지, 뭘 얼마나 더 잘해야 한다고 그 돈을 내가면서 학원을 보내야 되는데?
난 우리 애들 공부 잘하는 거 원하지 않아"
"아니, 왜 공부 잘하는 거 원하지 않아? 난 우리 애들이 공부 잘하는 게 좋아.
꼴등보다는 중간이 좋고 중간보다는 1등이 좋은 거 아니야?
난 내가 공부를 많이 못해 후회가 많아서 우리 얘들은 공부를 잘하면 좋겠어.
공부를 잘해서 나중에 선택받는 입장보다는, 선택하는 위치에 있었으면 좋겠어"
어찌나 화가 나던지 존댓말도 사라져 버렸다.
"너 솔직히 말해봐. '우리 아이는 특목고 반에 다닌다. 우리 아이 잘났다'
하는 우월감 같은 걸 느끼고 싶어서 보내려고 하는 거지?"
그녀는 남편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너무도 속이 상해서 울면서 말했다.
"내가 이렇게 살 줄 몰랐어. 아이들 학원비 때문에 속상해하면서 살 줄 몰랐어"
"내가 돈 때문에 그러는 거야? 사교육, 사교육 하더니 나한테도 그런 일이 생기네.
그 돈 있으면 나를 줘라. 차라리 내가 주말마다 아이들 데리고
박물관이며 연극이며 음악회 같은 곳에 데리고 다닐 테니까.
학원 보낼 생각하지 말고 그 돈을 나를 줘"
"치, 박물관은 무슨 박물관. 휴일이면 방바닥 하고 사돈 맺자고 하는 사람이...."
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피식 웃어버렸다.
그들 부부의 다툼은 그것으로 끝이 났지만 그녀는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과연 그 돈을 주고 학원을 보내야 하는 건지,
그것이 아이를 위한 것인지,
정말 남편의 말대로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고집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그녀는 불안했을 뿐이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학원에 안 다니는 아이들이 없었다.
모두가 사생결단을 내자는 것처럼 학원에, 과외에 난리를 치고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스스로 잘하니까 그냥 구경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불안하기만 했다.
이러다가는 남들이 황새걸음으로 갈 때
자신의 아이만 뱁새 걸음으로 쫓아가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됐다.
잠든 줄 알았던 남편이 뒤척이며 한 마디 했다.
"이래서 다들 이민 간다고 하나보다. 정말 한국에서 못 살겠다"
엄마들은 항상 아이 때문에 불안합니다. 경쟁 위주의 세상이 엄마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듭니다.
엄마들의 교육열이나 이기심만을 탓할 일이 아닙니다. 세상의 메커니즘이 더욱더 불안감을 가중시킵니다.
그녀의 고민을 들어보세요.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계속 듣다 보면 결국 당신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고민을 나누어 가지세요.
아이 교육의 절반은 아빠 책임입니다.
※ 이 글은 <부부로 산다는 것>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08.03.17. 20210302-171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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