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관(藝術觀) - 자유, 그 빈 여백 (창간호)」
이번에 창간되는 문예창작과 회지는 기본적으로 소식지의 성격을 뜁니다.
하지만 보다 심도있고, 또 학우들의 관심사에 접근하고자 여러 코너를 만들었습니다.
[특집 - 문학적 상상력에 관하여] 에서는 글쓰기에 있어서
상상력이 얼마나 중요한지와 그 다양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자리입니다.
현재 활발히 창작활동을 하시는 선배님께서 후배들의 글쓰기에 도움 말씀을 주실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일정한 형식은 없습니다.
선배님의 편한 문체로 주제와 어울리게 써 주시면 됩니다.
특히 선배님의 경험을 함께 써주신다면 후배들에게 더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이상의 글은 나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한,
덜 익은 언어와 상상력을 삼베에 싸서 즙을 내게 한 청탁서의 내용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내게 있어서 상상력이란 형체가 없는 귀신같은 것이라서, 그것을 잡으려 하면,
오히려 그것은 멀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테두리를 정할 수 없는 상상력이라는 단어를 두고 고민을 하기 시작하였고,
이 글을 상상력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메워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1. 상상력이란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다. 지구상의 모든 동물 중에서 상상할 수 있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예술과 종교가 있는 것같다.
2. 인간이 만들어낸 우주인이 그렇듯 상상의 세계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그 어떤 상상의 세계도 현실에 근거한다.
3. 세상에는 진실이 없고 사실만이 있다.
이 사실에서 연상이 나오며, 그 연상이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이룰 때 그것을 상상이라고 힌다.
4. 철학이 세계를 이성으로 해석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면, 예슬은 세계를 감각으로 해석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철학의 세계 해석은 있는 세계를 분석하는 것이고, 예슬의 세계 해석은 없는 세계를 창조하여 있는 세계를 보완,
새로운 세계로 종합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념이나 주의는 현실보다 풍부할 수 없고, 현실은 예슬보다 풍부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이념은 현실의 하위 개념이고,예슬은 현실의 상위 개념이다.
최소한 인간에 한해서 말이다.
5. 자연은 완전하다. 그래서 자연을 흉내내는 것은 자연의 아류다.
시는 자연을 모방하지 않고 다른 자연을 만든다. 진흙으로 인간을 빚듯.
6. 시는 신성에 순응하지 않는다. 시인의 피는 배반의 피이며, 악마에 가깝다.
저주를 두려워 말라. 다른 세상을 꿈꾸는 자 많지 않나니
7. 상상력 연습의 기초는 다르게 보기가 아니라 반대로 보기이다.
계곡이 허덕이며 산을 오른다.고 말하는 것이 반대로 보기의 예이다.
8. 상상력이란 상상력이란 단어에 얽매이면 사라져 버린다.
밥 먹을 때나 화장실 갈 때, 버스에서나, 섹스중에도 떠오르는 단상들을 놓치지 말라.
그리고 그것을 상상의 세계로 확장시켜라.
9.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세상의 모든 글들이 진부해 보이고, 자신의 것만이 가장 완벽해 보일 때가 그때이다.
그러나 그때가 가장 위험한 시기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된다.
'써지는 대로 따라가지 말라. 위대한 예슿가는 남들이 할 수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없는 영역에 도전하는 거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못된 글일망정 자신이 잘 쓸 수 없는 방법에 대해 매진하라.' 이것은 나의 다짐이다.
10. 그러나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은 버리지 말라. 최고가 아니면, 예슬은 없다.
11. 객관성이라는 것은 거짓말이다. 누구도 남을 살(生)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다.
예슬에서 확보된 객관성이라는 것은 타자화된, 복수화된, 자신일 뿐이다.
12. 새로운 상상력이라는 것은 없다.
단지 다른 상상력만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현실에 근거하기 때문이며,
그 현실이 인간세계라는 한계에 있기 때문이다.
13. 새로운 상상력은 없지만, 예슬가는 항상 그 새로운 것을 꿈꾼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예슬가는 간첩이다. 항상 다른 세계와 내통하려 하기 때문이다.
14. 상상력은 지식과 경험과 연습에서 나온다. 하지만 대개의 예비 예술가들은 연습에만 의존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를 획득하기보다는 상상력이라는 괴물의 먹이가 된다.
15. 근본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 상상력은 자유롭지 못하다.
존재의 문제, 도덕의 문제(특히 금기의 문제) 등과,
지금 있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지속되어야 한다.
16.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나쁜 예술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예술 작품은 일정한 주파수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주의 언어는 주파수이고, 인간은 엄청난 법위의 주파수 중 극히 일부만을 읽을 수 있을 뿐이다.
그렇듯 예술 작품은 일정 범위의 주파수를 갖고 있는데, 감상자는 하나의 주파수로만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채널에 걸리지 않는다고 해서 쉽게 치부해서는 안 된다.
흔히 좋은 작품은 확장된 주파수를 갖고 있다.
쉽게 읽히기도 하지만, 다시 보면 또 다르게 읽힌다.
그것은 겹의 아름다움이며 샘처럼 끊임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만이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지하지 못하더라도, 아주 다른 범위의 확장된 주파수를 갖고 있는 작품이 있을 수 있다.
17. 감나무에 감이 열리듯, 배나무의 배가 익어 떨어지듯,
탱자나무의 탱자가 가을이면 노랗게 익듯 인간이라는 식물은 매일 똥이라는 열매를 낳는다.
인간은 날마다 가을이다.
18. 7년 동안 땅속에 있다가 일주일 정도 지상에 나와 소리내고 죽는 매미의 일생을 슬프다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이 지상에서 산다고 해서 지상의 삶만이 아름답다거나 삶다운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생물의 생명은 지상의 삶과 지하의 삶으로 구분된다.
지상의 삶은 다시 셋으로 쪼개어지는데, 하늘에서의 삶과 땅 위에서의 삶과 물에서의 삶으로 구분된다.
인간이 쉽게 갈 수 없는 곳은 지하로서,
유독 인간은 그곳을 죽어서야 갈 수 있는 고통스러운 곳으로 생각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지하에는 지상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많은 종류의 생물이 살고 있고,
그 하나인 개미의 무게 종합이 40억 인구의 무게를 넘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은 지하에서 어느 종류의 생물 못지않게 잘 살고 있다.
메미의 유충인 굼벵이도 그중 하나일 뿐이다.
오히려 인간인 우리는 지하와 지상을 고루 살아보고 가는 메미에 비해 얼마나 좁은 세상을 살고 있는가.
19. 빈 집에 짐을 풀었다.
한 1년 정도 아무도 살지 않았던 집, 사실은 집이랄것도 없는 간이 시설이다.
보일러를 고치고 펌프를 가동시키니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룻밤을 지내고 나니, 곰팡이가 번져 있던 방안이 사람 냄새로 가득 찬 것 같았다.
사람이란 독한 짐승이어서, 무성했던 마당의 풀들이 누렇게 변해 갔다.
이틀을 지내고 나자 어디서 날아왔는지 파리들이 득실거린다.
처음에 왔을 때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던 파리들이 사람 냄새를 맡고 달려온 것 같다.
그 파리들이 나 죽은 후에 나를 띁어먹을 것을 생각하니 파리 한 마리만 몸에 붙어도 잠을 잘 수가 없다.
흙으로 돌아가는 길이 멀지 않구나.
저 파리들과 파리의 새끼들이 사후의 내 육신을 분해하리라.
분해되지 않고 어디로 갈 수 있단 말인가.
다른 무엇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세기말에 우리들 모두 분해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다른 모습으로 살아나기 위해서는 저 파리떼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 만약 인간이 지구상의 생물 중 가장 진화된 것이라면, 그 인간 중 여자가 더 진화된 것임에 틀림없다.
그 한 예로 남자는 정액이 나오는 곳과 소변이 나오는 곳이 한 구멍이다.
하지만 여자는 소변이 나오는 곳과 성교하는 구멍이 따로 있다.
생식기의 구분도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 남자들의 세상이다.
극심한 콤플렉스는 자기 개발의 채찍이 된다.
21. 바지 입은 남자와 치마 입은 여자. 옷은 그들의 성기를 닮아 있다.
요즈음 바지 입은 여자가 많아진다는 것은 남성화된 여성이 많아진다는 것과 무관하게 보이지 않는다.
22. 나는 거리에 서 있는 나무이며, 마른 이파리 위에 꽃을 피우는 국화이다.
나는 선풍기이며, 전화기이다. 나는 양파링 봉지이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빗겨 내리는 빗이며, 그녀가 씹고 있는 껌이다.
나는 쓰고 버린 콘돔이며, 그 안에 든 정자이다.
나는 풀이 무성한 무덤이며, 죽은 자의 몸속을 더듬는 구더기이다.
나는 눈빛이 날카로운 뱀이며, 수억 년 전에 소멸했다는 공룡이다.
나는 수세식 변기이며, 안 보이는 세계로 내통한다.
이상의 잔술은 시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연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상상이란 질서 없는 진술의 나열이 아니라, 체계를 가진 세계를 뜻한다.
23. 무덤은 초가지붕을 닮았다. 무덤은 여자의 젖가슴 같다.
무덤은 관능미의 궁둥이. 무덤은 반으로 갈라놓은 시계,
어미 거북의 등에 붙은 새끼 거북들처럼, 어미인 산등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는.
24. 나는 스스로를 규정하는 것을 싫어한다.
남들이 뭐라고 하는 것은 귀담아 듣지만 내가 나를 판단하는 것은 극히 조심스럽다.
그래서 나는 나의 시가 무엇을 말하고자 한다든가,
어떠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든가, 하는 것들을 피하곤 한다.
왜냐하면 규정이란 것이 자칫 잘못하면 나를 한정할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25. 얼마 살지 않았지만, 이따금 맺히는 것이 있다.
분이 풀리지 않는다가, 말이 통하지 않을 때 가슴에 박히는 돌맹이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은 소화도 되지 않는 것이라서 한 해 두 해 지날수록 쌓여만 간다.
그리고 노년에 접어들 무렵, 중치가 탁 막히는 것이리라.
중치가 탁 막혔을 때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그대로 중치에 막혀 죽든가, 아니면 중치를 막은 돌맹이 비슷한 것을 녹여 없애는 것이다.
문학이란 그런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중치가 탁 막힌 것을 녹여 주는 것, 그것도 자신의 것만이 아니라, 타인의 것까지 풀어주는 것,
어쩌면 풀어져 있는 가래 같은 그것,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26. 풍수에 관한 책 몇 권을 읽다 보면 땅이라는 것이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땅이 곧 사람이며, 호랑이이고, 사자이고, 말이고, 쥐이며, 거북이라는 것을 우리 조상들은 일찍부터 말해 왔다.
사실 나는 그것을 좀 믿는 편인데, 땅이 생명이라는 것은 비단 풍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고도 쉽게 증명된다.
뜰의 일정한 부분을 정해두고 불을 질러보라.
그 자리에는 몇 년 동안 풀이 자라나지 않으리라.
왜냐하면 화상 입은 자리가 그렇듯 신경이 죽어서 어떠한 풀도 털도 나지 않는 것이다.
27. 십이지신상에서 쥐가 가장 먼저인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열두 마리의 짐승들이 달리기 시합을 하였다.
돼지가 꿀꿀거리며 달렸으나 개보다 빠르지는 못하였다.
개가 몹시 빠르게 달렸으나 닭 쫓던 개인지라 날개 있는 닭을 이기지는 못하였다.
그때 원숭이가 나뭇가지를 옮겨가며 재빨리 앞질렸다.
그러나 미끄러지듯 추월해가는 뱀과 용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말이 더 빨랐다.
토끼가 더 빨랐다.
범이 더 빨랐다.
달리기는 며칠간 계속되었고 호랑이는 자신이 가장 빠른 줄 알았다.
그러나 결승점이 보이는 지점에 와보니 끄덕끄덕 황소가 결승테이프를 끊기 직전이었다.
소는 잠도 자지 않고 달려왔던 것이다. 심판들은 모두 황소가 일등이라고 판정하는 찰나였다
느닷없이 쥐가 소머리에서 뛰어내려 일등이 되었다.
쥐는 소꼬리에 붙어 있다가 결승점이 가까워지자 소의 머리로 이동하여 뛰어내린 것이었다.
28. 내 상상력의 알은 그리움이다. 둥근 그 알이 가슴속에서 자꾸 자란다.
그것은 항아리처럼 징징 울린다. 둥근 독이 내 안에서 점점 커진다.
커다란 독이 내 몸을 뚫고나와 나를 감싼다.
나를 가둔다.
내 안에는 시퍼런 독만 남아 있는 것일까. 독에 갇힌 나는 온몸에 그리움의 독이 올라.
29. 나는 상상력이라는 짐승을 잡기 위해 결국 그 짐승을 죽이고 말았다.
그 놈의 목을 비틀어 지푸라기로 그슬른 셈이다.
죽은 이 짐승을 가지고 상상력을 말하려 했다니 나도 참 한심하다.
이제 그대는 죽은 이 괴물의 모습을 지우고 살아 날뛰는 상상력을, 야생의 말들을 보기 바란다.
30. 김광석의 유작 앨범을 듣다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서른이란, 열이나 스물의 공통된 받침인 ㄹ이 ㄴ으로 바뀌는 나이라고,
내 나이 서른, ㄹ에서 ㄴ으로 넘어가듯 그만큼 버리고 가야 하는데, 아직도 채우는 데 열중하고 있다.
얼마나 더 채워야 버릴 수 있을까, 얼마나 더 살아야 서른일 수 있을까 (p21)
글 - 이대흠(88)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
'내가만난글 > 스크랩(대담.기고.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황- 自歎(자탄) (0) | 2008.09.25 |
---|---|
조선-부잣집의 낮은 굴뚝 (0) | 2008.09.18 |
뇌 (0) | 2007.07.20 |
김은영-자존심의 파워/자존심과 부부관계 (0) | 2007.05.31 |
코넬大에서 만난 아프리카 학생 이야기/조세미(인재전략 국제컨설턴트) (0) | 2007.04.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