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2008. 09.12」
[200919-174138]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 굴뚝이 높아야만 연기가 잘 빠진다. 굴뚝이 낮으면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아 연기가 잘 빠지지 않아 불편하다. 필자가 우리나라 양반 집안들의 고택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발견한 사실은 굴뚝이 의외로 낮게 설치된 집이 많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잘 몰랐다. 안동의 여러 고택들도 원래는 굴뚝이 높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90년대 들어와 집을 개보수하는 과정에서 굴뚝이 높아졌다.
굴뚝이 낮은 집을 꼽는다면 구례의 류씨(柳氏) 집안인 운조루(雲鳥樓)와 윤증(尹拯) 고택이다. 운조루도 1000석 이상을 하던 부잣집이었고, 요즘식으로 표현하면 매우 '럭셔리'한 고급주택이다. 집안에 은빛으로 빛나는 섬진강과 호쾌한 들판을 구경하기 위한 전망대인 '누마루'도 3개나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굴뚝은 채 1m도 안 된다.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연기가 땅바닥으로 깔린다. 안채에는 굴뚝이 아예 없고, 마루 밑의 축대 사이로 연기가 빠지도록 되어 있다. 연기가 밖으로 새지 않고, 집 마당 안에서 흩어진다. 집안 식구들은 이 연기를 들이마셔야 하니까 매우 불편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뚝 연기가 밖으로 잘 나가지 않도록 단속한 이유는 무엇인가. 주변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에 그 집 굴뚝에서 연기가 펑펑 나오면 '저 집은 또 맛있는 음식을 장만해 먹는구나!' 하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배고픈 시절에 부잣집 굴뚝 연기는 위화감 조성의 원인이었다. 위화감을 주지 않으려고 굴뚝을 낮게 만들었던 것이다.
'볍씨 1000석'을 했던 윤증 고택의 굴뚝도 1m 높이이다. 이 집도 역시 같은 이유에서 일부러 낮게 만들었다. 그 대신 추석 명절 무렵에는 추수한 나락을 곧바로 창고로 옮기지 않고, 일부러 대문 바깥에 일주일 정도 야적해 놓았다고 한다. 그 일주일은 배고픈 주변 사람들이 밤에 몰래 나락을 가져가도 눈감아 주는 기간이었다. 운조루도 역시 사랑채 앞에 커다란 쌀 뒤주를 설치해 놓고, 가난한 사람들이 조금씩 퍼가도록 배려했다. 이는 조선의 양반 부자들이 자신들의 가격(家格)과 유사시에 안전을 유지하는 전통적인 방법이었던 것이다.
글 - 조용헌
조선일보- 2008. 0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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