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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야나기 테츠코-창가의 토토/알몸으로 수영해요

by 탄천사랑 2008. 2. 16.

구로야나기 테츠코 -  「창가의 토토

 


토토에게 오늘은 기념할 만한 날이었다. 
왜냐하면 난생 처음으로 수영장에서 수영을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벌거벗은 채!

오늘 아침의 일이었다. 
교장선생님이 모두에게 말했다. 
1학년인 토토도 물론 상급생들보다 더 높이 깡총거렸다.

"갑자기 날씨가 더워져서 수영장에 물을 넣을 생각이다."
“와아!” 

 

아이들은 탄성을 지르며 발을 굴렀다.

도모에 학원의 수영장은 대부분의 수영장처럼 사각형이 아니라(땅이 그렇게 생긴 때문이겠지만) 
앞쪽이 약간 좁은 보트 모양 같았다. 
장소도 바로 교실과 강당 사이에 있었는데, 
토토와 아이들은 수업 중에도 궁금해서 몇 번이고 수영장을 보려고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물이 채워져 있지 않을 때의 그것은 마치 낙엽 운동장 같았지만, 
일단 청소를 하고 물이 채워지기 시작하자 아주 크고 멋있는 수영장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이윽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이 모두 수영장 주위에 모이자 교장선생님은 말했다.

"자! 

  그럼 체조를 한 다음에, 어디 수영을 해볼까?"

(잘은 모르겠지만 보통 수영을 할 때는 수영복을 입는 게 아닌가? 
 전에 엄마하고 아빠랑 가마쿠라에 갔을 땐 수영복이랑 튜브랑 여러 가지를 갖고 갔었는데…. 
 선생님이 오늘 가지고 오라고 그랬었나?)

토토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자 교장선생님은 토토의 생각을 알고있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수영복 걱정은 할 필요 없다. 

  자,   어서 강당으로 가 보거라."

토토와 1학년 아이들이 강당으로 달려가 보니 
벌써부터 큰 아이들이 꺄아꺄아 소리를 질러대며 옷을 벗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옷을 벗고 나서는 마치 목욕탕에 들어갈 때처럼, 
벌거벗은 채 교정으로 차례차례 뛰어나가는 게 아닌가!

토토와 친구들도 서둘러 옷을 벗었다. 
벗은 몸에 뜨거운 바람이 오히려 상쾌하게 느껴졌다. 
강당에서 나와 계단 위에 서자, 벌써 교정에서는 준비체조가 시작되고 있었다. 
토토는 맨발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수영선생님은 미요의 오빠,  즉 교장선생님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도모에 학원의 선생님이 아니라 다른 대학의 수영 선수였다. 
그리고 이름은 학교와 똑같은 도모에라고 했다. 
그만이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아이들은 도모에 씨를 따라 체조를 하고 몸에 물을 끼얹은 다음,

“꺄 - 꺄 - 와 - 와!!" 

 

갖가지 소리를 내면서 수영장에 뛰어들었다. 

토토는 잠시 주춤거리며,  아이들이 들어가 물이 키까지 안 차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들어갔다.

목욕탕은 물이 따뜻한데, 수영장은 찬물이었다. 
하지만 수영장은 커서, 아무리 팔을 뻗어도 온통 물이었다. 
마른 아이도 좀 뚱뚱한 아이도, 
남자아이도 여자아이도 모두 태어날 때의 모습 그대로, 웃기도 하고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잠수를 하기도 했다.

토토는 (수영장은 정말 재미있고 기분좋은 곳이야!)라고 생각하며 
로키와 함께 학교에 올 수 없는 것을 애석하게 생각했다. 
안 그렇겠는가! 
수영복을 입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았더라면 로키도 틀림없이 첨벙! 뛰어들어 수영을 했을 테니까.

그런데 교장선생님은 왜 수영복을 안 입고도 수영하게 했을까? 
물론 규칙때문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수영복을 가지고 온 아이는 입어도 상관없었고, 
오늘처럼 갑자기 수영을 하게 된 날은 준비가 안 되어 있으니까 벌거벗어도 상관없었다. 
따라서 그냥 벌거벗은 채 수영을 허락하는 까닭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서로 신체의 다른 점을 이상한 눈으로 훔쳐보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과 
자신의 몸을 억지로 다른 사람에게 숨기려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은연 중에 
'어떤 몸이든 저마다 아름다운 것' 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이다.

게다가 도모에 학원의 아이들 가운데는 야스아키처럼 소아마비에 걸렸거나 
키가 유난히 작다는 등의 신체적인 결점을 가진 아이들도 몇 명 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벌거벗고 같이 놀다보면 그런 아이들의 수치심도 없어지고 
나아가 열등감도 완화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결국 교장선생님의 바램대로 처음에는 그런 결점을 부끄러워했던 아이들도 점차 아무렇지도 않아졌고, 
사실 즐겁고 신나는 마음이 먼저이다 보니 ’부끄럽다' 는 생각 따위는 어느샌가 사라지고 없었다.
.
그럼에도 아이들 가족 중에는 걱정이 돼서 
'꼭 입도록 해라!' 면서 굳이 수영복을 챙겨보내는 집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들도 결국에는, 
토토처럼 아예 (수영은 역시 벌거벗고 하는 게 좋아!)하고 결정한 아이나 
또 '수영복을 잊어먹었다'며 헤엄을 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그 편이 훨씬 좋아 보여 같이 벌거벗고 신나게 헤엄을 친 다음, 
돌아갈 즈음에야 부산을 떨며 수영복에 물을 끼얹곤 했다.

이렇듯 도모에 학원의 아이들은 언제나 온몸이 새카맣게 타기 때문에, 
여느 아이들처럼 수영복 자국만 하얗게 남는 일은 거의 없었다.
※ 이 글은 <창가의 토토>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구로야나기 테츠코 - 창가의 토토
그림 - 이와사키 치히로
역자 - 김난주 
프로메테우스출판사 - 2004. 0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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