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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숙영-애첩기질 본첩기질/고슴도치 사랑

by 탄천사랑 2008. 1. 7.

「이숙영 - 애첩기질 본첩기질」

[210120-171137]




옛날 옛 적에 눈이 안 보이는 소년과 귀가 안 들리는 소녀가 있었다.
둘은 서로를 무척 사랑했지만 소년이 사랑한다고 소녀의 귀에 대고 말하면 소녀가 들을 수 없었고,
소녀가 사랑한다고 글로 쓰면 이번에는 소년이 볼 수 없었다.

단순한 이야기지만 우리 현실에서도 이런 슬픈 사랑를 하고 있는 남녀가 많을 듯하다. 

그것은 <고슴도치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각각 사나운 맹수에게 쫓긴 암수 고슴도치 둘이 산 속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하게 되었고, 
둘은 으스러지게 안고 싶었지만, 안자마자 몸의 가시가 서로를 찔렀다고 한다.

이 가시가 상징하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라면 아무리 가시에 찔러 피가 나더라도 그 고통을 감수하며 사랑으로 안을 것 같다. 

고통 없는 사랑이란 하나도 없으니까,
단지 가시가 많은 고슴도치들이나 눈먼 소년과 귀가 안 들리는 소녀처럼 
숙명적인 장애요건이 결정적으로 큰가, 아닌가 하는 차이는 있겠지만....,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감히 <사랑지상주의자>라는 표현을 붙이기를 즐겨하며,
그 점에 관해서는 부딪쳐오는 운명에 과감하게 맞설 자세가 언제나 되어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사랑을 하여 
  사랑을 잃는 편이 
  한번도 사랑을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시인 테니슨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지금 빠져 있는 사랑에 회의가 일고,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고민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휘트면의 얘기도 들려주고 싶다.

<때때로 내가 사랑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분노에 휩싸일 때가 있다.
  보답 없는 사랑에 시간을 낭비하는 게 아닌가 하고...., 그러나 나는 지금와 생각한다.
  세상에 보답 없는 사랑이란 없다고.......,>



주위에서 때때로 학교와 집, 
혹은 직장과 집만 왔다갔다하며, 
연애할 생각도 않고 무미건조하게 청춘을 보내는 미혼남녀들을 만날 수 있는데,
그들 중 몇몇은 <성처 받기 싫어서> 사랑을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논리라면 아무 괴로움도 못 느끼는 <죽음>이라는 상태가 가장 바람직할 것 같다.
삶과 사랑은 다른 말로는 고통이고,
그러한 고통의 가시까지 껴안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만 찿아간다.

신형원씨 노래 <외사랑>에는 눈물이 흐를까 두려워 차마 눈을 못 감는다는 구절이 있는데,
그렇게 눈물이 흐를까봐 눈을 감지 못하는 처절한 괴로움이 정도차는 있어도 
어떤 사랑에든 수반될 수 있을 것이다. 

신은 사랑의 기쁨과 함께 고통의 가시를 줬으니까, 
사랑을 껴안으려는 사람은 고슴도치의 가시에 찔리우는 아픔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행복과 불행은 다른 얼굴의 쌍둥이라는 정채봉 씨의 동화처럼,
사랑과 고통도 비록 모습은 다르지만 원류는 같은 이란성 쌍둥이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신은 사랑의 기쁨과 함께 고통의 가시를 줬으니까,
사랑을 껴안으려면 사람은 고슴도치의 가시에 찔리우는 아픔을 감수해야 될 것이다.

그런데 고통이라는 가시를 가지고 있는 사랑도 아무에게나 가지를 않는다.

독일에 가서 괴테에 대해 물어본다면 그의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아! 그 바람둥이요?'
라고 할 정도로 연애와 사랑으로는 일가견이 있다고 정평이 나 있는
괴테가 바로 그런 말을 했으니, 
믿지 않고 어찌 배길 것인가?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찾아간다는 바로 그 말을....,  (p267)


이숙영 - 애첩기질 본첩기질
문학사상사 - 1990.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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