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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작가책방(소설/류시화. 정채봉

지구별 여행자 - 내 영혼의 여인숙

by 탄천사랑 2007. 11. 3.

류시화 - 「지구별 여행자

 

 

 

내 영혼의 여인숙
우주를 떠돌다 지구라는 여인숙에 온 한 영혼이 있었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몇 군데 직장을 다니다가 모든 것을 집어치우고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그것은 그 장소가 행복이 무엇인가를 깨닫기에 좋은 경험들을 
그에게 많이 가져다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삶 속에서 그는 자주 고통에 대해 생각하곤 했었다.
스스로의 삶이 너무 피곤하다고 여겨질 때도 많았다.
더듬이가 끊어진 여치처럼 생의 방향을 잃고, 눈을 깜박이거나 숨쉬는 것마저 힘들 때가 있었다.

그는 그렇게 삶을 흘려보내고 싶진 않았다.
그가 갑자기 인도로 떠난 것은 어쩌면 행복은 때때로 단순한 깨달음과 함께 
찾아온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올드 시타람> 여인숙으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여인숙 이름 앞에 왜 올드가 붙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올드의 진정한 의미까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기대했던 고풍스럽다는 뜻이 아니라 오래되고 형편없이 낡았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몹시 늙었다'는 뜻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여인숙 안에는 매우 늙은 노인이 한 명 있었는데, 그가 바로 여인숙 주인 올드 시타람 씨였다.
그는 왠지 행복에 대해 말할 수 있을 흥미로운 어떤 것들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그는 숙박을 결정하기 전에 먼저 방부터 구경하라고 말했다.
노인과 내가 계단을 올라가는데,
커다란 쥐 한 마리가 나보다 먼저 방을 점검하고 나오는 중이었다.

인도의 모든 신은 고유의 동물을 타고 다닌다.
시바 신은 소를 타고 다니고, 코끼리 신 가네시는 쥐를 타고 다닌다.
코끼리가 어떻게 쥐를 타고 다닐까 의아해하겠지만,
인도의 쥐가 얼마나 큰가를 알면 그 의문은 금방 풀린다.

쥐는 우리를 보더니 앞발을 땅에 짚고서 약간 당황해 했다.
그러자 나를 안내하던 올드 시타람 씨가 손을 내저으며 '신경쓰지 말라!'라고 말했다.
나에게 하는 말인지 쥐에게 하는 말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가 왜 그토록 당당하게 방부터 먼저 구경하라고 큰소리를 쳤는지 
나는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누가 봐도 지저분하고 누추하기 짝이 없는 방이었다.
벽의 페인트 칠은 벗겨지고,  침대는 그야말로 화장터 장작으로 쓰여지기 직전이었다.
여러 해 동안 밑바닥 여행을 전전해 온 나로서도 선뜻 발을 들여놓기 힘든 방이었다.

내가 '바후트 간단헤(너무 더러워요)!' 하고 말하자,
주인은 또다시 '네버 마인드(신경 쓰지 말라)!'하고 손을 내저었다.
나만 신경 쓰지 않으면 전혀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식이었다.

날은 저물고, 다른 곳을 찾기엔 여행에 지친 몸이었다.
아무래도 방값을 다 내는 게 억울해 깎아 달라고 요구하자,
올드 시타람씨는 인도인답게 매우 독특한 주장을 폈다.

"숙박비를 깎는다고 해서 방이 새것이 되는 건 아니잖소.
 당신이 지금의 이 방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방값을 깎는다 해도 완벽하게 만족하진 못할 것이오."

너무나 그럴듯한 논리에 나까지 덩달아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그는 볼펜을 세우며 자못 훈계하듯 말했다.

"한 가지가 불만족스러우면 모든 것이 불만족스러운 법이오.
 당신이 어느 것 한 가지에 만족할 수 있다면, 당신은 모든 것에 만족할 수 있을 것이오."

다 늙어 앞니가 두 개나 빠졌지만 입심 하나만은 당해 낼 재간이 없는 노인이었다.
문제는 아무리 눈 씻고 둘러봐도 
그 여인숙에는 만족할 만한 것이 한 가지도 없다는 것이었다.

무거운 배낭을 멘 채로 마냥 입씨름을 하고 있을 순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날은 그냥 그곳에 짐을 풀기로 했다.
그러나 정말로 짐을 푼 건 아니었다.
방안이 너무 더럽고 지저분해 도저히 배낭을 풀어놓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씻지도 않고 낡은 침대에 웅크려 새우잠을 잤다.
베개가 시멘트자루처럼 딱딱해, 날이 밝았을 때는 목이 뻣뻣이 굳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목운동을 하자 뿌지직 하고 목뼈에서 금 가는 소리가 났다.
인도의 여인숙들은 베개 속에 도대체 무엇을 집어넣길래 
그토록 딱딱한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세수를 하려고 배낭을 연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밤사이에 누군가 배낭을 마구 들쑤셔 놓은 것이었다.
그 누군가는 다름아닌 어제의 그 쥐였다!

나는 벌린 입을 하고 당장에 여인숙 주인에게로 달려가 따졌다.
쥐는 배낭을 뚫고, 스웨터를 구멍 내고, 비닐봉지에 든 비상식량을 모조리 먹어치웠다.
이상하게도 나는 꿈속에서 밤새 톱질을 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쥐가 배낭을 갉아 대는 소리였던 것이다.
정말 신이 타고 다닐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쥐였다!

하지만 더 강력한 건 올드 시타람 씨의 입심이었다.
내가 볼멘소리로 항의하자, 
그는 나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경건한 태도로 카운터 위의 코끼리 신상에 대고 
연기 자욱한 향을 피워 대며 말했다.

"신이 준 성스런 아침을 불평으로 시작하지 마시오.
 그 대신 기도와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시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불평을 한다고 해서 무엇을 얻을 수가 있겠소?
 당신이 할 일은 그것으로부터 뭔가를 배우는 일이오."

쥐구멍이 난 배낭으로부터 무엇을 배우라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치 인도 설화에나 나옴직한 여인숙 주인과 입이 뾰족한 생쥐였다.
나는 일부러 입을 삐뚤게 하고서 말했다.

"이제 보니, 이 여인숙의 스승은 스리 생앙쥐난다군요. 
 그걸 미처 몰랐소이다."

올드 시타람 씨는 내가 비꼬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난데없이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인용하고 나섰다.

"어제 죽은 것처럼 오늘을 살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라는 말이 있지 않소."

배낭에 난 쥐구멍을 간디의 명언으로 때우려는 수작이 역력했다.
이제 보니 그는 얼굴 생김새까지도 간디를 닮아 있었다.

결국 나는 본전도 못 찾고, 
아침도 거른 채 바늘귀와 씨름하며 배낭과 스웨터를 꿰매야만 했다.
스웨터는 올이 풀려 꿰맬수록 구멍이 더 커지는 느낌이었다. 
바느질을 하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일로부터 내가 배울 점이란 
이런 말도 안 되는 여인숙을 하루빨리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바느질을 끝낸 뒤, 나는 어지러운 영혼을 위로할 겸 근처 힌두 사원을 찾았다.
눈빛이 매서운 문지기는 내가 힌두교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단호하게 입장을 거절했다.
하는 수 없이 10루피짜리 종이돈을 네 겹으로 접어 뇌물로 바치자,
문지기의 눈빛이 사랑으로 넘치고 단호한 빗장도 금방 풀렸다.

그런데 가죽으로 만들었다는 이유로 신발과 함께 허리띠를
문 밖에 두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원 안을 기웃거리는 동안 
바지가 자꾸만 흘러내려 신에게 제대로 경배조차 할 수가 없었다.

엉거주춤 사원 구경을 마치고 여인숙으로 돌아온 나는,
날이 더워 방 옮기는 일은 엄두도 못 내고 곧바로 공동 세면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세면장의 샤워 꼭지가 어찌된 영문인지 한 바퀴 비틀어져 천장을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물을 틀면 일단 물이 천장을 타고 1미터쯤 흐르다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결국 샤워꼭지 밑이 아닌 엉뚱한 곳에 서서 샤워를 해야만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천장에서 흘러내린 께름칙한 물로 머리도 감고 빨래도 한 뒤, 
나는 여인숙 주인에게 투덜거렸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인도 감옥이라고 해도 여기보단 낫겠어요."

아니나 다를까, 
옥상의 긴꼬리 원숭이를 노려보며 올드 시타람 옹께서 한 말씀하셨다.

"당신이 이미 갖고 있는 것에 대해 만족하지 않는다면, 
 황금으로 만든 샤워 꼭지를 갖는다 해도 당신은 결코 만족하지 못할 것이오!"

나는 인도의 소처럼 혀를 내두르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옥상에 빨아 널은 내 티셔츠를 누가 훔쳐 간 것이다.
여인숙 종업원은 원숭이 짓이 틀림없다고 주장했지만, 
내가 보기엔 원숭이처럼 생긴 그 종업원 짓이 틀림없었다.
몇 년 동안 인도 여행 때마다 입고 다닌 소중한 티셔츠를 잃어버린 나는 
화가 나서 종업원을 윽박질렀다.
앞가슴에 지혜의 눈이 그려진, 낡았지만 소중한 티셔츠였다.

내가 종업원과 이마를 맞대고 노려보고 있을 때,
카운터에 앉아 있던 올드 시타람 씨가 내게 물었다.

"당신은 행복의 비밀이 무엇인지 아시오?"

내가 말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고 입을 다물고 있자, 
그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했다.

"행복의 비밀은 
 당신이 무엇을 잃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얻었는가를 기억하는 데 있소.
 당신이 얻은 것이 잃은 것보다 훨씬 많다는 걸 기억하는 일이오."

그는 지금 내게, 
아끼는 티셔츠를 잃긴 했지만 내 자신이 이미 행복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행복의 비결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는 단순한 소똥 철학자나 궤변론자가 아니었다.
그는 시종일관 내게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라, 
그리고 그 일로부터 배우라고 말하고 있었다.
고통이란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그것을 사실 올드 시타람 씨 개인만의 철학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고대 인도에서부터 이어져 온 사상이었다.

기원전 천 년 경 베단타학파의 한 현자는 말하고 있다.

그대가 바꿀 수 있는 일에 대해선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대가 바꿀 수 없는 일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걱정한다고 해서 그것이 바뀌진 않을 테니까!

그렇게 실랑이를 하며 며칠을 올드 시타람 여인숙에 머무는 동안 
나는 본의 아니게 주인 남자로부터 자주 설법을 들어야만 했다.
하루는 내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주방의 더러운 위생 상태에 대해 불평을 터뜨리자, 그가 말했다.

"난 지금까지 20년 넘게 이 여인숙을 운영해 왔지만, 
 늘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소.
 한쪽은 언제나 불평을 해대는 사람들이고,
 다른 한쪽은 똑 같은 상황에서도 늘 즐겁게 지내는 사람들이오.
 당신이 어떤 부류에 속하고 싶은가는 당신 스스로 선택할 일이오."

그러고 나서 그는 덧붙였다.

"당신은 지금 인도에 여행을 온 것이지, 불평을 하러 온 건 아니잖소."

따지고 보면 그의 말이 옳았다.
다른 외국인 투숙객들은 옥상에서 일광욕까지 즐기며 잘도 지내는데,
단돈 50루피(1,500원)를 내고 묵으면서도 나만 유독 불평이 많았다.
그것은 단지 여인숙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문제는 내 안에도 있었다.

올드 시타람 씨의 지적은 세상이 어떠한가 보다,
우리가 그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가르침에 다름 아니었다.
그의 지적대로 나는 아직도 이 여행에서 배워야 할 것이 많았다.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는 그 단순한 진리를 일깨워 준
올드 시타람 씨를 나는 결코 잊지 못하리라.

서너 해 뒤, 
내가 다시 올드 시타람 여인숙을 찾았을 때 그곳은 놀랍게도 <뉴 시타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시타람 씨는 앞니를 다 빠뜨린 뒤 구부정한 허리로 갠지스 강을 건너 세상을 떠나고,
풍채 좋은 아들 시타람 씽이 그곳을 멋진 여인숙으로 개조해 놓았다.
간판도 새롭고, 이름답게 모든 것이 '새것'이었다.

올드 시타람은 간 곳이 없었다.
나는 뉴 시타람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이튿날 다른 곳으로 떠났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금빛 나는 샤워 꼭지와 푹신한 베개가 있었지만, 
올드 시타람 씨가 갖고 있던 어떤 영적인 향기가 사라지고 없었기 때문이다.

올드 시타람 여인숙은 내가 인도 여행에서 묵었던 그 어떤 여인숙보다 
명실공히 더없이 독특하고 인상적인 곳이었다. 
나는 잠을 자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움을 얻기 위해 그곳에 간 것이었다.

그리고 이 지구라는 여인숙 역시 나는 불평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움을 얻기 위해 여행을 온 것이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올드 시타람 여인숙에서 내가 배운 것이 바로 그것이다.  (p45)

 

 

 

※ 이 글은 <지구별 여행자>에 실린 일부를 필사한 것임.
류시화 - 지구별 여행자
김영사 - 2002.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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