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 지구별 여행자」
내 친구 여동생의 결혼식
쑤닐 차크라바티의 여동생 결혼식에 참석하기로 한 것은 그간의 우정에 따른 것이기도 했지만,
결혼식이 동인도 비하르 지방에서 열린다는 데도 이유가 있었다.
대학에서 인도 역사를 전공하고 지금은 힌두 대학의 시간 강사로 일하고 있는 쑤닐은
한때 나의 친구이자 통역자로 인도 전역을 함께 여행한 적이 있었다.
또한 그 자신이 바라문(인도의 신분 계급 중 첫 번째 성직자 계급) 사제이자 점성 학자여서,
해마다 내가 인도의 어느 지역을 여행하면 좋은가를 점쳐 주곤 했다.
물론 나는 항상 그 점괘와는 정반대로 돌아다녔지만,
쑤닐의 여동생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그 결혼식에는 꼭 참석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더구나 결혼식 장소는 내가 늘 가보고 싶어 하던 비하르 지방의 시골 마을이었다.
인도의 시골 마을을 여행하는 것이 나는 좋았다.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 작은 마을들에 가면,
인구 조사에도 포함되지 않은 순박한 사람들이 밥도 주고 잠도 재워 주었다.
그러나 비하르 주만은 예외였다.
한때는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곳이었지만 관리들의 부패로 가장 빈곤한 지역으로 전락한 이후,
비하르 지방 어디엘 가나 총을 든 디코이트(강도)들이 활개를 쳤다.
이번 쑤닐의 여동생 결혼식은
나로서는 비하르 주의 시골 마을을 여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시골까지의 여행에는 쑤닐과 나,
그리고 쑤닐의 영적 스승인 범상치 않게 생긴 아산티 구루지가 동행했다.
우리는 비하르 주의 수도인 파트나까지 기차로 간 다음,
그곳에서 택시를 타고 도시 외곽으로 가서,
다시 1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쑤닐의 고향 마을까지 걸어서 가든지
아니면 차를 얻어 타고 가기로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장장 스무 시간이 넘게 걸린 기차 여행은
구루지가 도중에 갑자기 사라진 것 말고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소똥 묻은 긴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그 사두는
기차가 도중의 한 역에 정차하자 아무 말도 없이 내려 그냥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기차 안을 아무리 뒤지고 다녀도 구루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쑤닐은 아무 걱정 없이 두 다리를 뻗고 만사태평이었다.
자기한테 중요한 것은 나지, 그 구루지가 아니라는 식이었다.
외국인인 내가 시골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그 결혼식은 충분히 빛이 나고도 남는다고 쑤닐은 거듭 강조했다.
기차역에서 택시를 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곧 날이 어두워질 것이기 때문에
강도들을 겁내는 어떤 택시도 장거리를 뛰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배짱 좋은 떠꺼머리 릭샤 운전수를 만나 오토릭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우리가 가격을 흥정하고 있을 때,
갑자기 등 뒤에서 그 소똥머리 구루지가 나타났다.
내가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해서 구루지를 쳐다보며 휘둥그레져 있을 때,
쑤닐은 정상 요금의 두 배를 주기로 하고 릭샤 운전수와 흥정을 끝냈다.
쑤닐도 구루지도 다시 만난 것이 전혀 아무렇지 않은 표정들이었다.
마치 구루지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정도라는 식이었다.
알다가도 모를 스승과 제자 사이였다.
내 생애에 몇 가지 불가사의한 일들이 일어나긴 했지만,
그중에서도 도중에 사라졌던 아산티 구루지가 펑하고 등 뒤에 나타난 것은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어쨌든 우리 세 사람은 또다시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오토 릭샤에 올라탔다.
운전수는 시동을 걸자마자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도로가 전혀 미친 듯이 달릴 상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제야 나는 운전대 앞에
왜 ‘시바 신이여, 우리를 보호하소서!’라는 기도문이 적혀 있는지 이해가 갔다.
신의 보호를 받지 못한 트럭 한 대는 개구리처럼 길옆에 뒤집혀 있었다.
나는 도중에 강도를 만나는 것보다 릭샤가 전복될까 봐 더 겁이 났다.
강도를 만나 죽는 것보다 차가 뒤집혀 죽을 확률이 스무 배는 컸다.
쑤닐과 아산티 구루지는 여전히 별일 아니라는 식이었지만,
나는 릭샤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으려고 두 다리를 뻗딩기며 안간힘을 썼다.
중간쯤 갔을 때였다.
웅덩이를 피하려던 릭샤가 길 위로 튀어나온 돌멩이에 부딪혀 펄쩍 뛰어올랐다.
릭샤 천장을 가로지른 쇠막대기에 이마를 세게 부딪친 나는
너무 아파서 내 영혼이 밖으로 튕겨 나가지나 않았나 걱정이 될 정도였다.
부딪친 자리는 금세 혹이 되어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외곽 지대에 도착했을 때,
운전수는 돈도 제대로 세어 보지 않고 나는 듯이 되돌아갔다.
나는 저런 릭샤를 다시 타느니 차라리 강도를 만나는 게 백 배는 낫겠다고,
이마의 혹을 문지르며 투덜거렸다.
그러자 시바 신은 당장 강도들을 내려 보냈다.
우리가 백여 미터쯤 걸어갔을 때, 갑자기 날이 어두워졌다.
마음이 약간 불안해진 사이,
운 좋게도 등 뒤에서 지프차 한 대가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려왔다.
차를 잡는 것은 아무래도 외국인인 내가 유리하다는 판단이 들어,
나는 영화에서 본 것처럼 도로 한가운데로 뛰어나가 마구 손을 흔들어 댔다.
그러나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차는 우리가 있는 곳까지 오더니 스스로 속도를 멈췄다.
이차 세계대전 때 활약한 것 같은
낡은 지프차 안에는 군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총을 들고 앉아 있었다.
하지만 흉터가 난 얼굴에 총알이 가득 든 탄띠를 어깨와 허리,
심지어 허벅지까지 엑스 자로 두른 것으로 보아 그들이 군인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살짝 대머리인 쑤닐과 소똥머리인 구루지,
그리고 지저분한 장발머리인 나는
앞 좌석에 앉은 강도들의 우두머리가 시키는 대로 순순히 차 뒷좌석으로 올라탔다.
나는 몹시 반항하고 싶었지만, 쑤닐의 여동생 결혼식을 생각해 참기로 했다.
지프차 안은 강도들로 만원이어서, 우리는 뒷좌석의 부하들에겐 완전히 불청객이었다.
나는 행여나 강도들의 발이라도 밟을세라 무척 조심했다.
강도라고 해서 함부로 짓밟혀도 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두목은 험상궂은 강도이긴 했지만, 의외로 예의 바른 남자였다.
그는 내 국적과 나이, 직업을 묻고는 내가 시인인 것에 무척 호감을 가졌다.
그는 부하들이 들으라는 듯 자기도 한때는 시인이 꿈이었다고 하면서,
내가 낸 시집의 제목을 묻기까지 했다.
차마 나는 그 상황에서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제목을 말할 수 없어서
그냥 다른 시인이 낸 아무 제목이나 둘러댔다.
그러자 두목은 그 제목의 시를 읊어 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하는 것이었다.
누구의 청이라고 거절하겠는가.
결국 나는 강도들의 정서 순화를 위해 떨리는 목소리로 내가 쓴 시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를 영어로 외울 수밖에 없었다.
두목은 내가 낭송하는 동안 줄곧 내 이마에 난 혹을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이윽고 충고하듯 말했다.
“당신이 방금 읊어 준 그 시에는 아까 말한 제목이 전혀 어울리지가 않소.
제목을 바꾸도록 하시오.
차라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로 하는 게 나을 것이오.”
알고 보니 시적 감수성이 대단히 뛰어난 강도였다.
어쨌거나 한 편의 시를 통해 강도들과 우리는 예상외로 가까워질 수가 있었다.
나는 애써 태연을 가장하며 은근슬쩍 한 팔을 옆에 앉은 강도의 어깨에 두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얼른 팔을 거두었다.
우리가 쑤닐의 여동생 결혼식에 참석하러 간다는 사실을 알고 두목은 말했다.
“이런 시간에 걸어 다니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소.
앞으로는 조심하시오.
이 지역의 인도인들은 모두 날강도나 다를 바 없으니, 절대 믿지 마시오.”
강도가 다른 날강도를 조심하라고 진심 어린 충고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쑤닐의 시골 마을 입구까지 태워다 주고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대단히 친절하고, 또한 몹시 불가사의한 강도들이었다.
신분이 신분인지라 서로 연락처도 주고받지 못하고 헤어진 것이 못내 아쉬웠다.
강도들이 떠나간 뒤,
우리 세 사람은 한꺼번에 긴장이 풀려 제각기 길가 풀섶에 나동그라졌다.
이 기적 같은 일을 두고 쑤닐은 자신의 여동생의 결혼을 축하하는 시바 신의 축복으로 돌렸고,
아산티 구루지는 성자인 자신의 힘으로 돌렸으며,
나는 외국인이자 시인인 내 덕으로 돌렸다.
훗날 나는 우연히 <인디아 타임스>의 기사를 읽게 되었는데,
비하르 주에서는 여섯 달 동안에 살인 사건이 무려 2,600건, 납치가 1,200건,
강력 범죄가 무려 6만 건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하루에 14명이 죽고, 4시간마다 1명씩 납치된다는 것을 뜻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다리가 후들거리면서
내가 얼마나 운이 좋았는가를 깨달았다.
어쨌든 우리는 강도를 만난 덕분에
다른 날강도들을 신경 쓰지 않고 무사히 결혼식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쑤닐의 고향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한 떼의 열광적인 팬클럽을 갖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일손을 팽개쳐 두고 내게로 몰려왔다.
인도 수상이 방문한다 해도 그만큼 환영받을 순 없는 일이었다.
너무 늙어 거동이 불편해진 한 노인은 손녀의 부축을 받아가며 나를 따라다녔다.
신부 측 하객들에 둘러싸여 저녁을 먹고 났을 때였다.
내 아랫배가 공손히 꾸르륵거렸다.
허기졌던 차에 사람들이 건네주는 정체불명의 음식을 너무 많이 집어먹은 탓이기도 했지만,
오다가 강도를 만난 심리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음식들은 내 뱃속에서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와글와글 논쟁을 벌였다.
더 이상 예의를 차릴 수 없게 된 나는 재빨리 집 뒤의 들판으로 뛰어갔다.
그러자 저 외국인이 어떻게 뒤처리를 하나 보려고
아이들이 죽 몰려와 반원을 그리고 내 앞에 섰다.
들판 겸 화장실인 그곳에는 당연히 모기와 도마뱀들이 가득했다.
어떤 도마뱀은 갑자기 침입한 내가 기분 나쁘다는 듯 노란 눈으로 째려보았지만,
모기들은 대단히 우호적이었다.
내가 바지를 내리자마자,
모기들은 별로 먹은 것도 없는 여행자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어린 모기들은 무는 연습을 하려는지 내 엉덩이에 주둥이를 마구 비벼 댔다.
내가 저리 가라고 아무리 손짓을 해도
아이들은 어린 공작새 같은 눈을 뜨고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았다.
내가 휴지를 꺼내자, 한 소녀가 작은 물통을 내밀며 말했다.
“사히브,
그 더러운 종이를 쓰지 말고 이 물을 써요.”
소녀의 정성이 고마워서라도,
휴지를 도로 집어넣고 물로 뒤처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소녀는 자기 눈을 가리키며 “아크, 아크!” 하고 말했다.
눈이 힌두어로 ‘아크’라는 것을 가르쳐 주려는 것이었다.
내가 왜 그걸 가르쳐 주느냐고 묻자, 소녀는 그것도 모르냐면서 나를 나무랐다.
사람에겐 눈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눈으로 그 사람의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결혼식은 자정이 가까워서야 신랑 측 친척과 하객들이
트럼펫을 울리며 마을 입구에 도착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숲으로 난 오솔길이 갑자기 환해지면서 머리에 형광등을 인 결혼 행렬이 등장했다.
인도에서는 결혼식 때 배터리까지 동원해 줄줄이 머리에 형광등을 이고 다닌다.
물론 부자들의 결혼식에는 형광등 대신 샹들리에가 등장한다.
신랑 신부의 앞날을 밝혀 주겠다는 지나친 배려에서 생겨난 풍습이리라.
금잔화 꽃목걸이가 등장하고 쟁반 가득 혼례 음식이 오간 뒤,
손바닥에 신비한 그림을 그린 아름다운 신부가 등장했다.
신부는 오빠 쑤닐과는 달리 대단한 미인이었다.
쑤닐이 정말로 친오빠일까 의심이 갈 정도였다.
내가 시인이라는 걸 안 마을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내게 ‘신부를 위한 시’ 한 편을 청했다.
인도인들이 오나가나 이토록 시를 좋아할 줄은 나로서도 미처 몰랐던 일이었다.
계속 거절하다간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줄 것만 같아,
나는 어느 고대 인도 시집에서 읽었음직한 시 한 편을 즉석에서 암송해 주었다.
태양에 그을린 갈색 피부
밤처럼 검은 머리
공작새처럼 쳐다보는 눈
신은 이 아름다운 여인을 만들고 나서 어떻게 세상에 내보낼 수 있었을까
그는 눈이 멀었단 말인가.
신랑 신부의 사진 촬영 때는,
모든 하객들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내가 신랑 신부의 한가운데 서서 사진을 찍어야만 했다.
다들 내가 낭송한 시에 감동을 받은 게 역력했다.
나같이 보잘것없는 떠돌이 여행자가 그 결혼식에 참석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신부 측 가족들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에크, 도, 틴(하나, 둘, 셋)! 하고 플래시가 터지고
쑤닐의 스승 아산티 구루지와 나를 중심으로 둘러선 모든 사람들이 한 장의 사진에 박혔다.
신혼부부의 첫 순간이,
그리고 신비로운 내 여행의 한순간이
그렇게 동인도 비하르의 밤하늘을 뒤덮은 수많은 별자리들 속에 영원히 기록되었다. (p31)
※ 이 글은 <지구별 여행자>에 실린 일부를 필사한 것임.
류시화 - 지구별 여행자
김영사 - 2002.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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