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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작가책방(소설/류시화. 정채봉

눈을 감고 보는 길 - 책머리에(법정) / 바다를 생각하며

by 탄천사랑 2008. 6. 11.

·「정채봉 에세이 - 눈을 감고 보는 길」

 

 

책머리에

내 눈시울에도 물기가 배었다.
정채봉 님의 책에 전에 없이 이런 글을 쓰게 된 것을 나는 기쁘고 고맙게 생각한다. 
작년 이맘때,  그렇다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 충격에 한동안 할 말을 잊었었다. 
몇 차례 편지로 또는 말로 음주에 대해 잔소리를 해온 터라 드디어 올 것이 왔는가 싶었다.

환자복을 입고 반쪽이 되어 병상에 누워 있는 그를 대하자 불안했던 생각이 얼마쯤 가시었다. 
그 이유는 그의 눈망울과 그 방안의 분위기에 어두운 구석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병상에서 다시 일어설 사람과 일어서지 못할 사람은 
그의 눈망울과 그 병실의 분위기가 의사의 말보다 더 잘 암시해 주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저자도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느 날 갑자기’ 일찍이 생각지도 못했던 일에 맞부딪힌다. 
그때마다 인생이 기우뚱하고 동요를 일으킨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충격 앞에 어떤 사람들은 절망과 좌절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 충격을 조금씩 받아들이면서 헤쳐 나간다. 
여기 생사의 갈림길이 있을 것이다. 
속이 찬 사람들은 크게 앓고 나면 그 삶에 무게가 실리고 보다 겸허해진다. 
그는 병상에서 그의 천주님에게 고향 바다와 같은 푸른 기도를 올린다.

태초의 기운을 지니고 있는 바다를 저에게 허락하소서, 라고. 
바다의 그 단순성과 바다의 가슴을, 
그리고 넘치지 않는 겸손과 부족함이 없는 여유를, 항시 움직임으로써 썩지 않는 생명을 염원한다.


정채봉 님의 그 선량하고 투명한 정서는 고향과 할머니의 사랑으로 빚어졌을 것 같다. 
남도의 정답고 끈끈한 언어와 인정이 그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의 눈매 깊숙이는 외로움의 그늘이 서려 있다. 
이런 그의 모습은 그의 글 곳곳에 아침이슬처럼 영롱하게 맺혀 있다. 

이따금 내 곁에서 자신의 속의 말을 내비칠 때, 
그가 내 가까운 살붙이처럼 가슴이 찡하면서 안쓰럽게 여겨질 때가 있다.

며칠 전 보내 온 엽서에는 순천에 가서 할머니와 어머니의 묘 이장을 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묘지가 산업 도로로 편입되는 바람에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면서 다음 같은 사연을 적고 있다.

'기억에 없는 어머니와의 첫 만남이 유골로 이루어지게 되어 눈물을 좀 흘렸습니다. 
 저의 나이 든 모습이 스무 살의 어머니로서 가슴 아파하실까 봐 머리에 검정 물을 들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사연을 읽고 내 눈시울에도 물기가 배었다.

저 지난주 성북동 절에서 오랜만에 만났을 때 그전보다 훨씬 건강해진 모습을 보고 나는 무척 반가웠다. 
그의 안에서 새로운 기운이 솟아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고향 바다와 같은 푸른 기도의 힘이 솟는 것 같았다.

《눈을 감고 보는 길》은 그의 명 때움을 기리는 책이기도 하다. 
가까운 이웃들이 이 책의 출간을 함께 기뻐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내 자신 일찍이 안 하던 짓을 그의 청에 기꺼이 선뜻 따른 것도 다시 건강을 되찾은 그를 무슨 일로든 거들고 싶어서다.

작년 이맘때 조마조마했던 일 돌이켜 보고 고맙고 기쁜 나머지 이 책에 사족을 붙인다

- 법정.




저자의 말

바다를 생각하며
작년과 금년 사이에 나는 울음을 많이도 참았다. 
어떤 날은 목을 치받고 올라오는 것을 어렸을 적에 코피를 제어하던 것처럼 
고개를 젖히고 긴 호흡을 해서 참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집게손가락으로 다른 부위를 아프게 해서 울음을 달아나게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나를 이렇게 달랬다. 
'이다음에 바다에 가서 울자.' 정말이지 나는 바다에 가서 울고 싶었다. 
푸른 바다를 보며 실컷 울어야 눈물의 원이 없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바다에 갔을 때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의 치맛자락을 붙든 것처럼 마음이 편해서 그냥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것은 바다가 나한테 주는 위로 때문이었을 것이다.

'너 이번엔 초췌해져서 왔구나. 
 세상살이가 고단하지? 
 그래, 그래, 너 말 안 해도 내가 다 안다. 
 인생은 그런 거야. 
 이 세상을 다녀가는 사람치고 슬픔이 없었던 사람은 없어. 
 우리 바다는 원래 세상 사람들의 눈물로 이루어진 거야.'

나는 바다와 내가 처음 만났던 것이 언제였던가를 생각해 본다. 
그런데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떠오르지가 않는다. 
먼 옛날부터 함께 있었던 것 같다. 
얼마 후, 나는 유추해 내었다. 
나와 바다가 알게 된 것은 엄마의 태중에 있었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엄마의 고향도 바닷가 마을이었으며 바닷가 마을 청년과 결혼하여 나를 가졌고, 
그리고 또 바닷가 마을에서 계속 사셨으니까.

나는 태중에서 엄마의 귀를 통하여 파도와 갈매기를 노랫소리를 들었으며 
엄마의 코를 통하여 바다 내음을 마셨고, 
엄마의 눈을 통하여 해가 뜨고 지는 바다와 비 오는 바다와 눈 오는 바다를 보았을 테지. 
그리하여 눈물 없던 엄마의 방에서 눈물 있는 바깥세상으로 나와서 
인생이라는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는 실제의 바다가 알게 모르게 나를 따라다녔다.

당신 나이 스무 살에 돌아가신 엄마는 나의 훈육을 바다에 부탁하셨는지 모른다. 
그래, 맞아. 유년 시절 바닷가 마을에 살 때는 저 바다처럼 부족함을 몰랐다. 
넘치지도 않았다. 
그날의 슬픔은 그날로 끝났고 그날의 즐거움도 그날로 끝났다. 
가슴에는 늘 파도 소리 같은 노래가 차 있었고 설혹 슬픔이 들어왔다가도 이내 개미끼리 박치기하는, 
별것 아닌 웃음거리 한 번에 사라져버리곤 했다.

그러나 바다의 품을 벗어나면서 마음의 모래 능선 같은 단순성이 잡초의 늪 같은 복잡성으로 변했다. 
호주머니 또한 조개껍데기 두어 낱만 들어 있어도 만족해하던 것이 지폐 한 다발이 들어가도 부족해하게 되었으며, 
그렇게 힘들게 쌓았던 모래성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버릴 수 있었는데 
도시에 나와서는 작은 무엇 하나도 버릴 수 없어 안달했다. 
하나 바다는 오늘도 나를 질책하지 않는다. 
연민의 표정으로 나를 그윽이 바라만 볼 뿐, 바다에 삼가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법정 스님의 서문을 이 책의 머리에 얹게 되어 기쁘기 한량없다.
그리고 그동안 나의 안부를 걱정해 준 독자분께 
이렇게 지면 인사를 드리게 됨을 양해해 주셨으면 한다.

- 눈밭의 메아리를 기다리는 아침에
   정채봉


에세이
정채봉 - 눈을 감고 보는 길
샘터(샘터사)  - 1999. 11. 17.

[t-08.06.11.  210604-18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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