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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작가책방(소설/류시화. 정채봉

새는 날아가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 공감과 연민

by 탄천사랑 2017. 5. 20.

·「류시화 - 새는 날아가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공감과 연민

나와 배우 김혜자가 함께 네팔을 여행할 때의 일이다.
카트만두 외곽의 유적지에 갔다가 길에서 장신구들을 펼쳐 놓고 파는 여인을 보았다.
이름난 관광지라서 노점상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녀가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김혜자가 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옆으로 가서 앉는 것이었다. 물건을 사려는 게 아니었다. 

그제야 보니 그 여인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울고 있었다. 
눈물이 턱을 타고 흘러내려 싸구려 장신구들 위로 번졌다. 
놀라운 일은 김혜자 역시 그녀 옆에 앉아 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말도 없이 여인의 한 손을 잡고 울고 있었다.
먼지와 인파 속에서 국적과 언어와 신분이 다른 두 여인이 서로 이유도 묻지 않은 채 쪼그리고 앉아서 울고 있었다.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도, 방송작가가 따라온 것도 아니었다. 
배우 김혜자의 연기가 아니라 인간 김혜자의 자발적인 공감의 눈물, 연민의 눈물이었다.


공감능력은 생존이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공감 능력은 인간의 잔인성을 억제해 준다. 
   타인의 처지에 공감하려는 본능적인 성향을 외면하면 사람들을 사물화 하게 되고, 
   서로를 사물로 대할수록 세상은 더 위험해진다.”라고 ‘감성지능 EQ’의 저자 대니얼 골먼은 썼다.

연구 결과 공감 능력은 뇌 속에 내재해 있으며,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타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침팬지보다 지능이 낮은 레서스원숭이에 대한 행동 실험에서도, 
자신이 먹이를 집을 때마다 우리 안의 다른 원숭이들에게 전기 충격이 가해진다는 것을 

인지한 원숭이는 차라리 굶어 죽는 쪽을 택했다. 

먹이를 얻어먹을 때마다 다른 원숭이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들리자 실험대상 원숭이는 

12일 동안이나 먹기를 거부해 실험이 중단되었다. 
유아기의 아기는 자신이 괴로울 때는 자주 울지 않지만 다른 아기들이 우는 것을 보거나 들으면 

더 쉽게 울음을 터뜨린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뇌신경학자들은 최근에 발견된 거울 뉴런 mirror neuron을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이 하는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도 뇌는 마치 자신이 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느낀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신경세포가 거울 뉴런이다. 
즉 옆사람이 울면 나의 뇌는 나 자신이 울 때와 동일한 부분이 활성화된다. 
옆사람이 웃거나 행복할 때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거울처럼 반영한다고 해서 붙여진 '거울 뉴런'은 인간의 공감 능력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현대 뇌 과학의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꼽힌다.
타인의 처지와 감정을 이해하도록 도와 인간과 인간을 이어 주고,
​감정과 감정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거울 뉴런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뇌는 다른 사람과 관계 맺도록 배선되어 있으며, 이것은 생존의 필수 요건이다.
이 신경세포에 손상을 입은 사람은 타인에 대한 연민과 관심이 결여되어 사회성이 부족하고,  
이기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이며, 심하면 자폐증으로 나타난다.

공감은 행복에 직결된다. 
만일 당신이 강렬한 기쁨이나 깊은 슬픔을 보이는데 
상대방이 돌처럼 무신경하다면 당신은 자신이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낄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부족은 진정한 관계를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공감이다. 
북적대는 관광객들과 노점상들 속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여인을 발견한 것도 놀라웠지만, 
언어도 통하지 않는 타인의 슬픔에 대한 무조건적인 공감 능력, 
우는 사람 옆에서 함께 울어주는 마음이 김혜자를 진정성 있는 배우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이윽고 네팔 여인의 눈물은 옆에 앉은 김혜자를 보며 웃음 섞인 울음으로 바뀌었으며,
이내 밝은 미소로 번졌다.
공감이 가진 치유의 힘이었다.
우리는 함께 아파함으로써 위로받고 강해진다. 

헤어지면서 김혜자는 팔찌 하나를 고른 후 그 노점상 여자의 손에 300달러를 쥐어 주었다.
그 여인에게는 거금이었다. 
여인은 놀라서 자기 손에 들린 돈과 김혜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떠나면서 뒤돌아보니 여인은 서둘러 좌판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왜 그런 큰 돈을 주었느냐고 묻자 김혜자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누구나 한번쯤은 횡재를 하고 싶지 않겠어요? 인생은 누구에게나 힘들잖아요"

김혜자는 그 팔찌를 여행 내내 하고 다녔다.
그 무렵 김혜자 역시 힘든 시기를 보낼 때였다.
그녀의 고뇌와 절망은 대중이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타인의 아픔에 대한 진실한 공감! 능력으로 자신의 아픔까지 치유해 나갔다.
공감은 '나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 관심을 갖겠다는 선택'이다.

훗날 내가 네팔에서의 그 일을 이야기하자 김혜자는 말했다.

"그 여자와 나는 아무 차이가 없어요,
 그녀도 나처럼 행복하기를 윈 하고, 작은 기적들을 원하고, 잠시라도 위안받기를 윈하잖아요.
 우리는 다 같아요.''

 

 


※ 이 글은 < 새는 날아가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류시화 - 새는 날아가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더숲 - 2017. 02. 25.
류시화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poet.ryushiva

[t-17.05.20.  210502-172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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