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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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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 가는 길

by 탄천사랑 2024. 4. 9.

·「석당 윤석구 시집 - 늙어 가는 길」 



 

늙어가는 길


처음 가는 길입니다.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길입니다
무엇하나 처음 아닌 길은 없지만 
늙어 가는 이 길은 몸과 마음도 같지 않고 
방향감각도 매우 서툴기만 합니다

가면서도 이 길이 맞는지 
어리둥절할 때가 많습니다
때론 두렵고 불안한 마음에 
멍하니 창 밖만 바라보곤 합니다
시리도록 외로울 때도 있고 
아리도록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

​어릴 적 처음 길은 호기심과 희망이 있었고
젊어서의 처음 길은 설렘으로 무서울 게 없었는데
처음 늙어 가는 이 길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지팡이가 절실하고 
애틋한 친구가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래도 가다 보면 혹시나 가슴 뛰는 일이 없을까 하여 
노욕인 줄 알면서도 두리번두리번 찾아봅니다

​앞길이 뒷길보다 짧다는 걸 알기에 
한 발 한 발 더디게 걸으면서 생각합니다

아쉬워도 발자국 뒤에 새겨지는 뒷모습만은 
노을처럼 아름답기를 소망하면서 
황혼 길을 천천히 걸어갑니다

​꽃보다 곱다는 단풍처럼 
해돋이 못지 않은 저녁 노을처럼 
아름답게 아름답게 걸어가고 싶습니다.

---


노인은 난로 앞에서도 춥다


노인은 들켜도 
상처받지 않는
짝사랑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자연을 더욱
사랑하고 싶어 한다

항상 봄을 그리워하는
노인의 가슴은
노을보다 진하고
이별보다 서럽고
실연처럼 눈물겹다

죽은 듯 했던 
나뭇가지에도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고
얼어붙었던 대지에도
새로운 생명이
솟아오르는 봄처럼
노인은 그 봄을
한시라도 놓치고 싶지
않으려 한다

마른 풀잎처럼  
시들어가던
노인의 심장에도
새로운 사랑이
새로운 꿈으로
봄을 사랑하고 싶어
겨울에도 
다시 돌아올 새 봄을
간절히 기다리며
그리워한다

작은 숨소리에
살아 있음을 느끼며
그래도 누군가를
지독히 사랑하고 싶은
노인의 길고 긴
겨울밤의 고독은
아프기만 하다

이제 몇 번이나
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
내 몸 구석구석에서
불어대는 
찬바람 조차도 두려워
견디기 힘들어진다

그렇다
노인은 난로 앞에 있어도
외롭고 춥다...


윤석구 - 늙어 가는 길
이안 - 2020. 11. 27.

  [t-24.04.09.  20240407-1247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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