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학 635」
지그재그의 미학
엄현옥
계단의 영화라고 할 만한 <기생충>에서 계단은 권력을 상징하는 특별한 장치였다.
박 사장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오르막과 계단을 올라야 했다.
집 안에서도 계단을 통해 거실로 나왔다.
그와 반대로 몰락산 소시민 기택의 가족이 집에 가기 위해서는 지하세계로 이어질 듯한 계단을 내려갔다.
그들의 수직 상승의 욕망은 치밀한 작전에도 자신이 올라간 만큼 폭우 속에서 처절하게 내려와야 했다.
<조커 joker>의 명 장면도 계단과 밀접하다.
주인공 아서는 세상 질시와 고통을 참으며 아픈 어머니를 돌본다.
무시당하며 사회적 죽임을 당한 그는 계단에서 춤추며 조커로 다시 태어난다.
그의 어머니께 학대받은 과거를 알게 된 고통과 사회적 약자의 분노를 기괴한 춤사위로 표출했다.
아서가 조커로 변할 때마다 계단은 변환점의 무대로 등장했다.
그가 모든 고통을 내려놓고 계단을 내려오며 춤추던 장면은 관객에게 야릇한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피에로 분장과 오래된 계단의 절묘한 조화는
범죄를 유발한 조이었으나 내면의 페이소스를 대변하며 파고들었다.
<마틴 에덴>에도 보이지 않는 계단이 있다.
잘생긴 선박 노동자 마틴 에덴은
어느 날 선착장에서 깡패들에게 공격을 당하던 남자를 구해준 인연으로 그의 집에 초대된다.
그곳에서 남자의 누이 엘래나를 만나 사랑하나 헤어진 후에 마틴이 엘레나 집에 벽 그림보고는
“그림이 아름다워서 가까이 다가갔는데 얼룩밖에 안 보이네요.”한다.
성공한 마틴의 삶도 가까이 보면 얼룩만 보인다.
엔딩에 마틴의 자살을 암시하듯 바닷가 태양 쪽으로 혜엄치던 장면은
목적을 위해 살아가지 않겠다는 냉소주의적 태도가 담겨 있다.
인간은 탄탄대로이길 바라지만 시련과 좌절에 마음 모서리가 닿으며
조금씩 위로 올라가다가 부침을 겪으며 지그제그 모양으로 굽어지고 꺾인다.
산을 오를 때 힘이 부치면 완만한 곳으로 방향을 바꿔 갈지자를 닮은 길을 오른다.
오르는 일은 내려감을 전제한다.
인간의 삶이 죽음에 다가가는 일이듯
한 걸음씩 계단으로 오르는 일도 사실은 한 발씩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 월간 문학 635 에서.
[t-24.04.03. 20240401-1622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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