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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성장교육(인문.철학.교양.

행복한 자기 감정 표현 학교 - 나만의 착각

by 탄천사랑 2007. 6. 18.

· 「방미진 - 행복한 자기 감정 표현 학교」



 

나만의 착각
"오늘 과외 선생님 오시는 거 알지? 마치고 곧장 와! 그리고 버릇없이 굴지 좀 마. 
 선생님이 엄마를 어떻게 보겠어? 창피해 죽겠어. 정말 , 요한이 보기 부끄럽지도 않아?"

다다다다.
엄마가 학교 가려고 신발을 신는 내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머리가 빠직 빠직. 아~ 혈압 오른다. 엄마가 계속 잔소리를 쏘아댔다.

"어떻게 된 게 동생보다 못해."  뻥-  터져버렸다.
"에이! 짜증 나!"  나는 현관문을 냅다 걷어찼다.
"무슨 짓이야? 버릇없이!"  엄마가 소리를 꽥 질렀다.

 

나는 문을 쾅 닫고는 나와 버렸다.
기분이 엉망이다. 엄마한테 화를 내고 나오면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다.
그런데도 아침마다 화를 내게 된다. 하지만 어떻게 화를 안 내? 화나게 하는데!

학교에 오니 민호가 인성이에게 파워레인저 카드를 자랑하고 있었다.
나는 얼른 끼어들었다.

"오~ 이거 새로 샀나 본데!"
"아니, 뭐.....,"

민호가 어물어물하며 카드를 챙겨 넣었다.
'한 장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뭐야? 기분 나쁘게' 인성이가 슬금슬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민호도 책을 꺼내 숙제를 했다.

'뭐야? 이 분위기는?' 기분이 나빴지만, 딱히 뭐라 할 말이 없어 그냥 자리에 가서 않았다.
유쾌한이 나를 돌아보며 배시시 웃었다.
'뭐야? 지금 날 비웃는 거야?' 기분이 확 상했다. 어제 짝이 된 소근이는 내가 왔는데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를 싫어하는 건가?' 하긴, 어제부터 완전 똥 씹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싫어도 그렇지 인사 정도는 하는 게 예의 아닌가?
'이게 완전히 나를 무시하고 있네?' 혈압이 슬슬 올랐다.

쉬는 시간에 민호에게 가려고 일어서는데, 민호, 경주, 인성이가 후다닥 밖으로 뛰어나갔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나를 따돌리는 건가?’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눈이 아파지면서 가슴이 쿵쾅쿵쾅 뛰고, 머리에서 빠직빠직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근이가 얼른 고개를 숙였다. 
유쾌한과 눈이 마주쳤다. 유쾌한 이 뭔가 알고 있는 듯, 기분 나쁘게 씩~ 웃었다. 
반 전체가 나를 따돌리고 있다! 
분노가 끓어올랐다.  눈에서 불이 일고, 머리가 뻥하고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점심시간이었다. 
내 예상대로 민호, 경주, 인성이가 자기들끼리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가만히 앉아있자니 분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쏜살같이 쫓아나갔다.

공미남이 축구공을 툭툭 차며 몸을 풀고 있었다.
‘이게 다 저 자식 때문이야!’
어제 공미남과 싸운 것 때문에 애들이 나를 따돌리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나는 씩씩거리면서 공미남에게 다가갔다.

“야!”
“왜?” 공미남이 나를 쳐다봤다.

‘네가 나 따돌리자고 애들한테 말했냐?’ 하고 물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공미남의 뻔뻔한 얼굴을 보자 눈에서 레이저 광선이 나오는 것과 동시에 주먹이 나가버렸다.
'퍼억' 공미남이 운동장에 벌러덩 넘어졌다.

"이게 진짜!"

공미남이 벌떡 일어나 나를 때렸다. 그 뒤로는 기억이 없다.
정신없이 주먹을 날려대고 소리를 질렸던 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애들이 우리를 뜯어 말리고 있었다.

"야! 너 또 왜 이래?"
"진짜 못 말리겠다. 너는 시비 거는 게 취미냐?"
"싸움 잘하면 단 줄 아냐?" 아이들이 한마디씩 했다.

 

다들 나를 욕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나만 욕하는 거지? 내 얘기는 들어보지도 않고!' 억울했다.
자기들이 나를 따돌린 건 생각하지도 않고, 나만 잘못했다고 하다니.

"복수하고 말겠어!"

필살기를 연마하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공중 2회전을 돌아 적의 정신을 쏙 빼놓은 뒤, 
나비처럼 가볍게 날아가 적의 급소, 콧구멍을 공격하는 것이다.

콧구멍을 제대로 공격하기 위해 손가락, 
특히 오른손 둘째, 셋째 손가락에 힘을 기르려고 
손가락 두 개로 필통 들어올리기 20회와 책상 내리찍기 15회를 했다.

한참 손가락 연마를 하고 있는데, 소근이가 우울하게 엎드려 있는 게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소근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버렸다.
'겁먹은 건가? 후후'

나는 지금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쉬는 시간이 되어도 어디 갈 데가 없어 그냥 자리에 앉아 있다.
아, 너무 괴롭고 힘들다.

자리에만 앉아 있다 보니, 자꾸 소근이가 눈에 들어왔다.
소근이도 하루 종일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얘도 왕따?' 따돌림을 당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친구가 없는 것 같다.
'왜 친구가 없지? 이상하게 생겨서 그런가?'
소근이는 외계인 같다.
굉장히 우울하게 생긴 외계인, 
눈이 밑으로 푹 꺼지고 입이 쪼글쪼글하고, 팔 다리가 가늘어 칙칙한 색깔의 외계 생명체, 이티. 

회색 이티.

자세히 보니까 눈이 밑으로 푹 꺼지진 않았다.
입이 쪼글쪼글 하지도 않다.
멀쩡하게 생겼다. 
그런데 왜 그렇게 보였을까?

'뭐지? 이 우울한 에너지는?' 소근이한테서 우울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다.
그리고 보니 어두운 그림자를 이불처럼 덮고 누워있는 듯, 소근이 주위만 어둡게 느껴졌다.
내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어서 일까?  소근이의 우울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집으로 가는 길이 너무 멀었다.
과외 선생님이 영어로 떠들어 댈 걸 생각하니 속이 다 울렁거렸다.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밖에 안 하는데, 
왜 제대로 수업에 집중을 하지 않냐 잔소리를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나는 과외가 없는 날은 영어, 수학, 전 과목, 미술, 바이올린 학원에 간다.
거기다 학습지까지 한다.
바이올린은 정말 하기 싫다.
끽끽거리는 소리도 싫고, 악보만 봐도 머리에 지진이 난다.
그런데도 엄마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내가 성적으로 대학을 갈 수 없을 경우를 위해 예체능을 해 놔야 한단다.
미치겠다. 난 그냥 친구들이랑 축구나 했으면 좋겠는데.

따돌림을 당하고 있어 축구를 하지 않고 집에 가니, 과외 시간에 늦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말 수업 받을 기분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수업 내내 한숨을 쉬다가 수업이 끝나자 엄마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끝났으면 빨리 좀 가지!' 나는 과외 선생님이 엄마와 이런 저런 얘길 하는 게 제일 싫다.
무슨 얘길 하던지 결론은 내 얘기일 게 뻔하니까.
역시나 그랬다.

"선생님 욱한이가 왜 이렇게 성적이 안 오를까요?
 과외며 학원이며 남들 하는 것 다 하는데."
"욱한이는 좀 산만한 것 같아요. 무엇보다 기억력이 좋질 않아요"

선생님 말에 엄마 얼굴이 확 굳었다.
기억력이 좋지 않다. 한 마디로 머리가 나쁘다는 말이었다.
'난 정말 머리가 나쁜 걸까?' 나는 공부를 잘 하고 싶다.' 정말 정말 잘하고 싶다.
욕심이 많아서 친구보다 성적이 낮게 나오면 이를 바득바득 갈 정도다.
그래서 친구들이 다니는 것보다 더 많은 학원을 꾹 참고 다닌다.
과외도 하기 싫지만 하지 않으면 성적이 떨어질까 봐 불안해서 안 할 수 없다.
내 교육비로 들어가는 돈은 엄청나다. 
그렇게 돈을 들이는 데도 내 성적은 오르지 않는다.

동생인 요한이도 성적은 그저 그렇지만 대신 음악에 소질이 있다.
그림도 잘 그린다. 나도 축구나 운동은 꽤 한다. 하지만 공미남이 더 잘한다.
공미남은 공부며 운동이며 못 하는 게 없다.
아, 나는 아무것도 잘 하는 게 없다. 게다가 머리까지 나쁘다.

선생님이 가시고 나서도, 엄마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엄마가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서 언제 온다는 거야?"

엄마가 짜증을 냈다.
아빠는 오늘도 늦는가 보다.
아빠가 늦게 오면 엄마 신경질이 더 심해진다.
전화를 끊은 엄마가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달그락 탕! 달그락 탕! 탕! 그릇이 부서지지 않는 게 신기하다.
조짐이 좋지 않다. 난 얼른 내 방으로 들어와 책상 앞에 앉았다.
숙제를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머리가 너무 아팠다.
이럴 땐 쉬어줘야 한다. 진정한 휴식을 위해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형, 나도."

동생인 요한이가 기웃거렸다. 나는 모르는 척 계속했다.
동생이 옆에서 찡찡댔다. 짜증이 확 일었다.

"이제까지 안 하다가 왜 내가 하니까 와서 난리야? 이게 진짜 나를 무시하냐!"

나는 동생을 냅다 밀었다.
별로 세게 밀지도 않았는데 동생은 바닥에 엎어져 울어댔다.

동생은 걸핏하면 운다. 그것도 작은 소리로 흐느끼면서 오랫동안 운다.
진짜 슬프게 운다.
어쩔 땐 내가 울려놓고도 그 울음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울고 싶어질 정도다.
만약 동생이 배우가 된다면 눈물 연기의 일인자가 될 게 틀림없다.
이렇다 보니 둘이 싸우면 내가 늘 불리하다.
혹시나 엄마가 들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야! 그만해! 안 그러면 진짜 죽는다!"

내가 동생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뿔싸! 엄마가 싸늘한 표정으로 문 앞에 서 있었다.
엄마는 빠른 속력으로 다가와 다짜고짜 내 머리를 공격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동생은 왜 패! 왜! 
 허구한 날 동생이나 때리고! 툭하면 싸움질이나 하고! 네가 제대로 하는 게 뭐야!"

머리가 얼얼한 게 정말 아팠다.
억울한 마음과 함께 뭔가가 욱하고 치밀었다.

"에이 씨!"
"에이 씨이? 그게 엄마 앞에서 할 소리야?"

엄마는 더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내 머리를 또 한 대 후려쳤다.
눈에서 빛이 파바박 튀었다.

"아악! 왜 나한테 화풀이야!"

나도 소리를 꽥 질렀다. 엄마가 움찔했다.
하지만 곧, 공격 태세를 갖추고 나를 향해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뭐가 어쩌고 어째? 화풀이? 네가 뭘 잘못했는지 몰라?"
"흐어어어엉, 흑흑흑. 흐어어어엉. 끅끅"

동생이 겁에 질려 울어댔다. 얘는 한번 울면 그칠 줄을 모른다.
짜증이 솟구쳤다.

"넌 작작 좀 울어! 그만 못 그쳐?"

엄마가 동생한테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 틈을 이용해 얼른 방을 나와 욕실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했다.
동생이 흐느끼는 소리와 엄마가 화를 내며 거실을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겨워 죽겠어. 애들이 공부를 잘 하길 해? 말을 잘 듣길 해?
 엄마가 어떻게 사는지 알고나 있는 거야! 뒷바라지 해봤자 무슨 보람이 있어야지."

엄마가 다시 아빠한테 전화 거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그깟 술자리가 애들보다 더 중요하다는 거야?"

맨날 똑같은 얘기, 지겹다.
아빠는 우리한테 관심이 없다. 집에 와서도 우리와 놀아주는 일은 거의 없다.
아마 시간을 재보면, 
우리 얼굴 쳐다보는 시간보다 텔레비전 모니터 쳐다보는 시간이 3배는 더 많을 거다.

그러고 보면 엄마도 불쌍하다. 엄마는 우리 교육에 열성이다.
여기 저기 강좌를 찾아 듣고, 유명한 학원을 알아보려 다닌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기대에 못 미친다.

나는 그것만 생각하면 가슴이 꽉 막히는 것 같으면서 막 화가 난다.
'아까 그렇게 화 내는 게 아니었어,
 내가 화를 내지 않고 차분하게 얘길 했다면, 엄마도 그렇게까지 길길이 뛰지는 않았을 텐데'

하지만 참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화가 튀어나가 버린다.
'잘못했다고 할까?' 그런 말은 못 하겠다.
엄마는 소파에 우울하게 앉아 있을 게 틀림없다.
조용한 걸로 봐서 엄마도 조금은 후회하고 있겠지?
나는 슬그머니 욕실 문을 열고 나왔다.

퍽!
쿠션이 날아왔다.
무방비로 당한 공격이라 얼굴에 정통으로 맞았다.
머리에서 파직파직 하고 불꽃이 일었다.
엄마는 소파에서 일어나 방문을 쾅 닫으며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기운이 쭉 빠졌다.
눈물이 울컥 올라왔다.
하지만 동생이 볼까 봐 얼른 눈을 비벼댔다.  (p69)



※ 이 글은 <행복한 자기 감정 표현 학교>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방미진 - 행복한 자기 감정 표현학교
다산어린이 - 2007. 08. 24.  

   [t-07.06.18.  20210605-17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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