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프랭클 - 죽음의 수용소(원제: Man's search for meaning)」
로고세러피의 기본 개념
이제 내가 만든 이 이론에 왜 '로고세러피 logotherapy'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얘기하겠다.
로고스 Logos는 '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로고세러피 혹은 다른 학자들이 '빈 제3정신 의학파'로 부르는 이이 롱은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물론,
그 의미를 찾아 나가는 인간 의지에 초점을 맞춘 이론이다.
로고세러피 이론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인간의 원초적 동력으로 본다.
내가 로고테라피를 프로이트 학파가 중점을 두고 있는 쾌락의 원칙이나 아드리안 학파에서
'우월하려는 욕구'로 부르는 권력에의 추구와 대비시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정신 의학
아주 오랜 기간 - 실제로 반세기 동안 - 정신 의학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그저 하나의 수단으로만 보았고,
그 결과 정신 질한 치료를 하나의 테크닉으로 만 간주해 왔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런 종류의 꿈은 충분히 꾸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수평선 너머로 어렴풋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심리학의 얼굴을 한 의술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한 정신 의학이다.
그러나 아직도 자신을 그저 하나의 기능인으로 생각하는 의사가 있다면,
그는 환자를 병 너머에 존재하는 하나의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기계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여러 개의 사물 속에 섞어 있는 또 다른 사물이 아니다.
사물들은 각자가 서로를 규정하는 관계에 있지만 인간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규정한다.
타고난 자질과 환경이라는 제한된 조건 안에서
인간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판단에 달려 있다.
나는 살아 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 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
우리 세대는 실체를 경험한 세대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정말로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우슈비츠 가스실을 만든 존재이자 또한 의연하게 가스실로 들어가면서
입으로 주 기도문이나 <셰마 이스라엘>을 외울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 이 글은 <죽음의 수용소>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빅터 프랭클 - 죽음의 수용소
역자 - 이시형
청아출판사 - 2005. 08. 10.
[t-24.04.16. 20220402-0702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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