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오피니언 - 2006.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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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코넬大에서 만난 아프리카 학생 이야기
7년 전 미국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코넬대에서
당시 몸 담고 있던 매킨지의 회사 설명회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삼삼오오 헤어지는 학생들 가운데 문득 한 흑인 학생이 말을 걸어왔다.
"제 소개를 해도 될까요?"
그는 아프리카에서 학부 2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온 유학생이었다.
그런데 자기소개를 하며 건네온 그의 이력서 중 나를 당황하게 한 대목이 있었다.
그가 코넬대 학부 3학년부터 대학원까지 4년간 마쳤어야 할 학과를 8년째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유를 묻자, 그가 대답했다.
"그게 바로 내가 당신과 얘기를 나누고 싶은 이유입니다."
아프리카에서 단돈 200달러를 쥐고 뉴욕에 8년 전 처음 발을 디뎠다는 그는,
생활비를 버느라 한 학기 등록하고 한 학기 쉬기를 밥 먹듯이 했다고 한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학교 식당 웨이터에서 워싱턴 상원의원 어시스턴트까지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는 것이다.
어떤 비영리재단의 도움으로 코넬대까지 올 수 있었으며
세계의 인재들과 함께 수학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그는,
자신이 받은 만큼 사회에 돌려주는 인재가 되고 싶다며 조용하면서도 힘있게 소신을 밝혔다.
그는 나를 만나기 얼마 전 매킨지 뉴욕 사무소에 이력서를 보냈다가 탈락했다고 했다.
하지만 왜 자신이 이 회사에 가치 있는 인재가 될 수 있는지
증명할 기회를 찾기 위해 매킨지 회사 설명회를 찾아다녔고,
나를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줄 사람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사무소로 돌아온 나는 뉴욕 사무소의 내가 아는 한 파트너에게 이메일을 띄웠다.
왜 우리가 이런 인재를 이력서상의 허점만으로 간과하고 지나쳐서는 안 되는지,
한 번 퇴짜맞은 그에게 왜 다시 기회를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의 편지였다.
그로부터 1년 후 우연히 매킨지 샌프란시스코 사무소에서 나는 그와 마주쳤다.
더 이상 초라한 유학생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의젓한 신입사원으로 변모한 그를 보며 결국 해내고야 만 그의 의지와 노력에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이제 시작일 뿐이에요.
내가 작년 코넬 캠퍼스에서 들은 당신의 꿈에 비하면
지금의 성취는 단지 한 개의 계단일 뿐임을 잊지 마세요"라는 충고로 축하를 대신했다.
요즘 자주
"세계가 원하는 글로벌 인재는 어떤 모습인가"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내가 만났던 많은 인재들 가운데 나는 그를 떠올린다.
21세기가 원하는 인재상은 하나의 '스테레오 타입'이 아니다.
긍정적인 기상을 지니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해가며,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와의 절대경쟁에 엄격한 세계의 인재들.
그들의 공통점은 각기 다른 다양한 언어적·문화적 배경 속에서도
주어진 삶의 도전에 최선을 다하며 자신들만의 미래를 준비해왔다는 점이다.
요즘 냉혹한 취업의 현실 속에서 도전보다는 안정을 원한다는 우리의 젊은이들을 만나며,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그들이
글로벌 경쟁에 부딪치기도 전에 지레 '도전기피증'에 걸려 버린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올해 미국 유학생 중 한국 학생들의 숫자가 넘버원을 차지했다는데,
세계 최고의 글로벌 기업들에서 한국 출신의 프로페셔널들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글로벌 리더를 꿈꾸는 조기유학 세대들이 영어에 유창하고,
외국 명문대의 졸업장을 따는 것만으로 꿈을 이뤘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겉포장에만 치중하는 우리들의 '글로벌 인재'로의 노력은 이제 그 방향을 수정해야 할 때다.
대한민국 인재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만의 비전으로 당당히 어려운 현실을 이겨나가려는
그 흑인학생의 자신감과 도전의식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글 - 조세미 인재전략 국제컨설턴트
출처 - [조선일보 오피니언] 코넬大에서 만난 아프리카 학생 이야기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6/05/17/200605177071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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