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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작가책방(소설/토드 홉킨스

청소부 밥 - 02 고독과 피곤

by 탄천사랑 2023. 4. 20.

·「토드 홉킨스, 레이 힐버트 - 청소부 밥」

 

 


고독과 피곤
로저 킴브로우는 부엌으로 연결된 뒷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갔다.
고요한 어둠이 집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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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지만 너무 피곤해서 잠을 이를 수가 없었다.
보고서 숫자들과 오늘 오갔던 수많은 대화, 이매일 내용들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잠을 자두지 않으면 분명 내일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질 것이다.
요즘 일이 돌아가는 형편을 생각할 때 늦잠을 자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란 것을 로저는 잘 알고 있었다.
결국 그는 알람을 6시에 맞추고 수면제를 찾아 한 알 삼켰다.
억지로라도 잠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집 안 가득 울려 퍼졌다.
두 딸 중 누군가 숨이 넘어갈 듯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달린은 벌떡 일어나더니 단거리 육상선수처럼 아이들 방으로 뛰어갔다.
로저도 그녀를 뒤따라갔다.
그가 방에 도착했을 때 달린은 이미 세라를 품에 안고 달래고 있었다.
세라는 놀란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지 땀에 흠뻑 젖은 채  훌쩍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로저가 물었다.
"무서운 꿈을 꿨대."  달린이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 우리 딸.  이제 다 괜찮아."  달린은 세라를 진정시키고 다시 침대에 눕혔다.
"자기는 먼저 가서 자.  별일 없을 거야."
"정말 괜찮겠어?"

로저는 근심스러운 듯 물었지만 수면제의 효과가 이제야 온 몸에 퍼져오고 있었다.

"자기가 옆에서 그렇게 불안해하면 애가 더 겁을 내잖아."

달린은 차갑게 대꾸했다.
로저는 하는 수 없이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몇 분 후 달린도 침실로 돌아왔다.

"세라는 괜찮아?"  로저가 물었다.
"사실 좀 걱정이 돼. 벌써 3일째 악몽 때문에 깼거든."  아내 달린이 냉냉한 말투로 대답했다.
"물론 자기는 늘 집에 없었으니 모르겠지만 말이야."

달린은 한결 차가워진 말투로 덧붙였다.

"이유가 뭔 것 같아?"  로저가 물었다.
"잘 모르겠어. 아침에 물어보면 무슨 꿈을 꿨는지 기억 안 난다고 하니까."
"병원에 가보는 건 어떨까?"
"자기는 당연히 못 갈 테고, 나 혼자 알아서 데려가 보란 말이지?"

달린은 눈썹을 치켜 올린 채, 약간은 요란스럽게 베게를 두드려 펴며 되물었다. 

"나 요즘 바쁜 거 알잖아. 이런 일은 자기가 좀 알아서 해주면 안 돼....?"

로저는 말끝을 흐리며 미안한 듯 얼버무렸다.

"안 되긴! 
  당연히 내가 해야지!
  이런 일은 항상 내 차지잖아.
  바쁜 당신이 어떻게 이런 자질구레한 일까지 신경 쓰겠어?"

달린이 목소리를 과장되게 높이며 말했다.
로저는 잠시 침묵하다가 가까스로 입을 열어 대꾸했다.

"무슨 뜻이야?  내가 집안일에는 관심도 없다는 거야?"
"뜻은 무슨 뜻? 그냥 말한 그대로야."   달린이 대답했다.
"그래?"   로저는 할 말을 잃고 머뭇거렸다.
"이제 그만해. 내가 내일 병원에 전화해볼게."

달린은 말다툼을 매듭짓고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아참!  저녁 잘 먹었어. 늦어서 미안해."  로저는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듯 화제를 돌렸다.
"애들이 많이 기다렸어.
  나중엔 지쳐서 식탁에 앉은 채로 졸고 있더라.
  늦으면 늦는다고 전화라도 한 통 해줘야 하는 것 아냐?
  그래야 기다리지 않지."   달린은 다시 차분해진 목소리로 차갑게 따졌다.
"미안해.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
  게다가 오늘은 사무실 청소부와 우연히 얘기를 하게 됐는데.......,"

로저가 사정을 설명하려 했지만 달린은 재빨리 말을 잘랐다.

"됐어. 일일이 변명할 필요 없어."
"미안하다고 하잖아.  일 때문에 그런 걸 어떡해."  로저가 말했다.
"진짜 미안하긴 한 건지... 
  그런 얘기는 하도 들어서 지겨워. 
  지금 우리 상황이 어떤지나 알고 있으면 좋겠어."
"나도 노력하고 있어.  한꺼번에 모든 걸 다 완벽하게 잘할 수는 없잖아."

"자기한테 완벽한 사람이 되라고 한 적 없어. 
  그냥 남들처럼 평범한 남편 노릇, 아빠 노릇 해주길 바랄 뿐이야.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알아? 
  매일 몇 시간씩 들여서 저녁 준비 해놔야 결국엔 식어서 버려야 하고, 
  밖에서 차 소리만 들려도 혹시나 해서 내다보고... 
  이런 얘기 한두 번 한 게 아니잖아. 
  진짜 모르는 거야,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거야?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건지 이제 기억도 안 나. 
  매일 똑같은 일로 말다툼하는 것도 이젠 정말 지겹다고!" 

"그렇게 말하지마.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
  사사건건 불만인 당신 기분 맞추는 거 나도 힘들다고!"

로저는 그렇게 반박하고는 대화의 빗장을 닫아 걸었다.

"그만하자.
  피곤해서 이만 자야겠어."

로저의 일방적인 종료 선언에 달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불을 껐다.
로저는 약 기운에 취해 금세 깊은 잠에 빠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깬 로저는 
조용히 일어나 샤워를 한 뒤 옷을 입고 급히 사무실로 향했다.
달린과 아이들은 아직 잠에 빠져 있었다.
그는 회사에 제일 먼저 도착해 불을 켜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살 바엔 차라리 사무실에 침대를 갖다놓는 편이 낫겠군.'  (p39)
※ 이 글은 <청소부 밥>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토드 홉킨스, 레이 힐버트 - 청소부 밥
역자 - 신윤경
위즈덤하우스 - 2006. 11. 15.

[220403-0728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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