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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작가책방(소설/토드 홉킨스

청소부 밥 - 03 삶에 지쳤을 때는

by 탄천사랑 2023. 6. 28.

·「토드 홉킨스, 레이 힐버트 - 청소부 밥」



로저는 컴퓨터 모니터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곧 그 청소부를 만날 시간이었다.
로저의 머릿속으로 지난 일주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는 청소부를 처음 만났던 지난주 월요일보다 훨씬 지쳐 있었다.
경영진 접대로 골프장에서부터 칵테일을 곁들인 저녁식사까지 
동행하느라 주말에도 쉬지 못해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그리고 퇴근 전까지 
급한 이메일을 완성하려면 아무래도 청소부와의 약속은 미뤄야 할 것 같았다.
로저는 빠른 걸음으로 휴게실로 향했다.
청소부 밥은 이미 약속 장소에 도착해 녹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밥이 반갑게 미소를 지으며 그를 맞았다.

"그냥 그렇죠. 뭐."  

로저는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대답했다.

"저 미안하지만 오늘 약속은....,"
"너무 바쁘셔서 다음으로 미뤄야겠습니까?"  

밥이 말했다.

"그렇게 됐습니다.
 오늘 꼭 보내야 할 중요하고 민감한 매일이 있는데 
 하루 종일 다른 일에 시달리느라 쓰지 못했거든요.
 정말 죄송합니다.
 말씀은 다음 주에 듣기로 하죠."
"그럼, 그러십시오.
 자, 녹차라도 가져가서 드세요" 

밥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머그잔을 로저에게 건넸다.

"저번에 마셨던 그 쓴 차로군요"  

로저는 며칠 만에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맞습니다.
 입에는 쓰지만 몸에는 좋죠"  

밥이 로저를 향해 살짝 눈짓을 하며 말했다.

"녹차만 그런 건 아니라는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거죠?"  

로저가 눈치를 채고 물었다.

"금방 들켰습니다.  하하하"  

밥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로저가 물었다.

"첫 번째 지침 말인가요?
 지침의 내용만이라면 5초면 충분합니다."
"5초요?"  

로저가 의아한 듯 물었다.

"그렇습니다."  밥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 정도라면 약속을 미룰 필요가 없겠네요."

로저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로저의 모습을 바라보던 밥이 흔들림 없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친 머리로는 일할 수 없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로저가 물었다.

"말 그대로 입니다.
 앨리스는 항상 제게 이 말을 하곤 했거든요.
 지친 머리로는 절대 일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밥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로저가 궁금한 듯 물었다.

"지쳤을 때는 재충전을 해야죠
 이게 앨리스의 첫 번째 지침입니다."

밥이 그의 오렌지색 수첩을 톡톡 치며 말했다.
로저는 녹차를 한 모금 마시며 관심을 보였다.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급한 이메일은 어떻게 하시고요?"  

밥이 물었다.

"좀 있다 쓰죠. 뭐." 

로저는 마음을 완전히 돌린 듯 대답했다.

"사장님께서 이렇게 간절히 원하시는 걸 보면 앨리스가 아주 기뼈 하겠는데요."

밥은 즐거운 얼굴로 잠시 오렌지색 수첨을 들여다보더니 이야기를 이어갔다.

"앨리스와 갓 결혼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 당시 제 상황은 지금 사장님과 비슷했어요.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리다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죠.
 그런데 하루는 퇴근하고 집에 가보니 
 앨리스가 연장 박스와 소나무 널빤지를 준비해놓고 저를 기다리고 있지 뭡니까.
 그러고는 잡지에 나온 사진을 보여주며 똑같은 새장을 하나 만들어 달라더군요.
 게다가 그냥 평범한 새장도 아니었습니다.
 장식이 가득한 예쁜 새장이었죠."
"목수 일을 하셨나 보죠?"
"목수라고요? 아닙니다."  

밥이 재미있다는 듯 껄껄 웃었다.

"저도 사장님과 마찬가지로 사업을 했습니다.
 집에서는 못질조차 스스로 해본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앨리스에게는 안 동했죠
 무조건 새장을 만들어달라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만드셨어요?"

로저가 물었다.

"그럼요.
 앨리스의 부탁인데 거절할 수가 있나요.
 다음날 저녁부터 새장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정말로 짜증이 났습니다.
 그날도 회사 일로 완전히 지쳐 있었거든요.
 하지만 어쨌든 널빤지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한쪽에 모아두고 대충 설계도를 그려봤습니다.
 그리고 앨리스에게 필요한 재료들을 사다 달라고 부탁했죠.
 그렇게 꼬박 일주일을 매달려서 새장을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칠을 하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어떤 생각이요?
 혹시 너무 못 만들었다는 생각인가요?"

로저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농담을 던졌다.

"솔직히 잘 만든 건 아니었죠.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앨리스가 그 새장을 만들어달라고 한 이유를 마침내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밥이 미소 띤 얼굴로 대답했다.

"이유가 뭐였나요?"  로저가 물었다.
"앨리스는 저를 위해 그런 부탁을 했던 거였습니다."

밥이 대답했다.

"죄송하지만 도통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로저가 솔직하게 말했다.

"처음에는 분명 그 일이 지겨웠습니다만,
 마지막 날이 되어 가만히 돌이켜보니 둘째 날부터는 새장을 만드는 게 짜증스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죠.
 이전에는 아침에 눈 뜨면 회사 보고서부터 읽곤 했는데,
 그 일을 시작한 후에는 새장을 점검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날인가 넷째 날에는 일하면서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흘러나오더군요.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글쎄요..... 알 것도 같고.....,"

로저는 여전히 감이 안 잡히듯 주저하며 대답했다.
그러자 밥이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 때문에 지쳐 있을 때는 다른 활동을 통해 에너지를 재충전해야 한다는 사실!
 앨리스는 제게 그걸 깨닫게 해주고 싶었던 겁니다.
 그래서 취미생활이나 레저활동이 필요한 거죠.
 재미를 느끼는 일은 사람마다 다를 테니 먼저 자신에게 잘 맞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아마 저에게는 새장 만드는 일이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 일을 하는 동안 엄청난 아이디어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으니까요.
 며칠간 끙끙대던 일도 쉽게 해결되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샘처럼 솟아나서 창의적으로 일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피로도 전혀 느끼지 않았고요.
 에너지를 계속 쓰기만 하고 재충전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바닥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완전히 지쳐 나가 떨어지는 거죠" 
"지금의 저처럼 말이죠?"

로저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저도 그런 상황을 겪어봐서 잘 압니다"

밥이 대답했다.

"그럼 그 이후에도 새장 만드는 일을 계속 하셨나요.?"
"아니요.
 아쉽지만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새장은 자선단체에 기부했는데 팔리거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걸 배웠죠.
 스스로 재충전하는 법을 말입니다"
"그럼 그 이후에는 뭘 하셨어요?"

로저는 이야기에 열중한 나머지 차를 마시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사장님. 차 다 식 갰습니다"

밥과 로저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렀다.
밥이 말을 이었다.

"저는 중요한 것을 깨닫게 해줘서 고맙다고 했죠.
 앨리스가 말했습니다.
 '지친 머리로는 일할 수 없다' 고요.
 차에 기름이 떨어지면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몸도 에너지가 떨어지면 멈춰버린다고 하더군요.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맞는 재충전 방법을 찾았습니다.
 퇴근 후나 근무 중에 가볍게 산책을 하거나 
 책, 잡지 등을 읽으면서 생활에 활기를 불어넣는 거였습니다.
 그런 활동들이 하루하루 반복되면서 마치 밥을 먹거나 옷을 입는 것 같은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아갔고,
 저는 매일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스스로 재충전하는 시간을 갖게 됐습니다"

밥은 이야기를 마치고 녹차를 한 모금 마셨다.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군요"  로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사장님,
 일단 한번 시도해 보십시요.
 생각보다 쉬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되실 겁니다"
"가족들은 제가 얼마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지 모르는 걸요"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밥이 물었다.

"아내는 제가 일만 하고 가족들에게는 신경도 안 쓴다고 매일 불평이에요.
 두 딸아이도 바라는 게 어찌나 많은지 
 학교 공연이나 소프트볼 경기가 있을 때마다 보러 오라고 난리고요.
 제 몸은 하난데 어떻게 그 많은 일을 다 할 수 있겠어요?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가족과 일,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건 불가능한 것 같아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네요"

밥이 말했다.

"아무 생각 말고 일단 첫 번째 지칠 대로 해보십시오.
 가정과 직장 생활 모두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
 제가 장담하죠"
"지금 전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서 허우적대는 꼴입니다.
 지침대로 한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로저가 말했다.

"사장님, 
 그러면 한 가지만 약속해 주시겠습니까?"
"뭐죠?"
"다음 주 월요일에도 꼭 다시 만나는 겁니다"

밥은 이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일을 시작하실 시간인가요?"  로저가 시계를 보며 물었다.
"네, 그럼 다음 주 월요일에 뵙죠"

밥이 인사를 건넸다.

"네, 꼭 올게요"

로저는 다짐하듯 대답했다.
밥은 아무 말 없이 그의 오렌지 색 수첩을 한 장 찢어 로저에게 건네고는 
휴게실 밖으로 사라졌다.
로저가 건네받은 종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 첫 번째 지침: 지쳤을 때는 재충전하라

로저는 종이를 들고 사무실로 돌아와 다시 이메일 쓰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분 뒤, 그는 깜짝 놀랐다.
하루 종일 매달렸던 일을 단 10분 만에 이렇게 쉽게 끝내다니....,   (p51)
※ 이 글은 <청소부 밥>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토드 홉킨스, 레이 힐버트 - 청소부 밥
역자 - 신윤경
위즈덤하우스 - 2006. 11. 15.

[t-23.06.28.  230624-0904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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