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톨트 브레히트 - 「코카시아의 백묵원」
가수. 그루쉐 바흐낫체는 도시를 떠나
그루시아의 군사도로를 따라 걷고
북쪽 산속으로 이르는 길을 걸르며
아이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우유를 사먹이기도 했고.
악사들. 이 인간적인 여자가 어떻게
피를 쫓는 개들과 덫놓는 사람들을 벗어날까?
인적이 없는 산속으로 걷고
그루시아의 한길을 걷고 걸으며
아이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우유를 사먹이기도 했지.
그루쉐 바흐낫체가 걸어간다.
아이를 자루에 넣어 업고 한 손에는 보따리를, 다른 손에는 커다란 지팡이를 짚고서.
한 농부의 오두막이 나타난다.
그루쉐. (아이에게) 점심시간이니까 사람들은 식사를 하겠구나.
우린 긴장한 채 풀밭에나 앉아 있자꾸나.
착한 그루쉐가 우유 한 주전자를 구해올 때까지.
(그녀는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농가의 문을 두드린다. 늙은 농부가 문을 연다.)
할아버지, 우유 한 병과 그리고 혹시 옥수수 과자를 구할 수 있을까요?
노인, 우유? 우린 우유를 갖고 있지 않아.
도시에서 온 군인 아저씨들이 우리 염소를 끌고 갔어.
우유를 원하면 군인들에게나 가보시구려.
그루쉐. 할아버지.
아기를 위해선데, 우유 한 병쯤이야 할아버지도 갖고 계실 테죠?
노인. 그런데 '하느님의 보상이 있기를!' 하는 인사말 따위가 무슨 소용인가?
그루쉐. '하느님의 보상이 있기를'하고 누가 빈말을 하기라도 했나요?
(그녀가 지갑을 꺼낸다) 제후들처럼 돈으로 지불할 거예요.
얼마가 되든지 값이 나가는 대로! (농부가 투덜거리면서 우유를 꺼내온다)
그런데 한 병에 얼마죠?
노인. 3피아스터. 우유값이 올라서.
그루쉐. 3피아스터나?
좋은 것도 아닌데도요? (노인이 말없이 그녀의 면전에서 문을 닫아버린다)
미헬, 너도 들었지? 3피아스터래!
그걸 우리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어.
(그녀가 돌아와서 앉는다. 아이에게 젓가슴을 내밀어준다)
그래도 우리가 다시 한 번 시도해보는 거야.
빨아봐.
그리고 생각해봐. 3피아스터를!
여기엔 한 방울의 젓도 들어 있지 않아.
하지만 넌 젖을 빤다고 생각할 테지.
그럼 된 거야.
(머리를 저으면서 그녀는 아이가 이젠 빨지 않는 걸 알아본다.
그녀는 일어나 문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두드린다)
할아버지, 문열어주세요. 돈을 낼게요! (낮은 소리로)
행운을 만나지 말라는 법도 없지. (노인이 다시 문을 열 때)
제 생각에, 그건 반 피아스터 값어치밖에 안 된다고 여겨져요.
아무튼 애가 뭘 먹긴 해야 하는데, 1피아스터면 어떨까요?
노인. 2피아스터
그루쉐. 다시 문을 닫지는 마세요. (그녀가 오래 지갑을 뒤적거린다)
여기 2피아스터가 있군요.
그런데 우유는 잘 보관돼야 할 텐데.
우리에겐 아직 갈 길이 머니까요.
목이 달아날지도 모르는 위험한 일이고 죄가 되는 짓이기도 하답니다.
노인. 군인이 우유를 뺏으려 하면 군인을 때려 죽이라구.
그루쉐. (아이에게 우유를 마시게 한다) 그건 굉장한 농담이시군요.
미헬, 마시렴!
이건 반 주일 일한 값과 같은 거란다.
여기서 사람들은 우리가 엉덩이나 씰룩거리며 돈을 벌었다고 믿는다구.
미헬, 미헬, 너는 내게 어느 정도 짐이 돼. (아이를 싼 금란 외투를 바라보며)
1000피아스터짜리 금란 외투를 가졌는데 우유 살 돈은 한푼도 없어. (그녀가 뒤돌아본다)
저기, 부유한 피난민을 태운 마차가 있군.
저런 것에 우리가 타야 하는 건데.
----
어느 대상의 숙소 앞에서.
금란 외투를 차려 입고 두 고귀한 숙녀에게로 다가가고 있는 그루쉐가 보인다.
그녀는 아이를 팔에 안고 있다.
그루쉐. 아, 숙녀 여러분들도 분명 여기서 숙박하려고 하시는 거죠?
모든 곳이 만원인데다 탈 것을 구할 수 없으니 지긋지긋하군요!
내 마부가 소식도 없이 돌아오질 않잖아요.
그래서 반 마일이 넘는 길을 걸어서 왔지 뭡니까.
게다가 맨빌로! 나의 페르시아식 구두는----, 당신들은 그런 신발을 아실 테죠!
그런데 왜 여기론 아무도 오지 않는 거예요?
늙은 숙녀. 주인이 기다리라고 했답니다.
도시에서 난리가 터진 뒤로는 온 나라에서 예의범절이란 걸 볼 수 없게 됐지요.
주인이 나타난다.
매우 권위 있게 수염을 기른 노인이며, 하인을 데리고 있다.
주인. 귀부인들, 당신들을 기다리게 한 이 늙은이를 용서하세요.
내 어린 손자가 내게 꽃이 핀 복숭아 나무를 보여주었지 뭡니까.
저기 산기슭, 옥수수밭 저쪽, 거기에 우린 과일나무며 버찌 나무를 심으려 했답니다.
거기서 서쪽으로 가면---- (그가 가리킨다) --
바닥이 돌투성인데, 농부들이 거기로 양을 몰고 가곤 해요.
당신들은 분명 복숭아꽃을 봤을 텐데. 분홍빛이 대단하답니다.
늙은 숙녀. 당신 집 주위는 기름진 땅이로군요.
주인. 신이 축복을 내려주셨지요.
꽃핀 나무들이 선 남쪽은 어떻던가요.
여러분! 여러분은 분명 남쪽에서 올라오시는 길이지요?
젊은 숙녀. 제가 말씀드려야겠군요.
저는 경치를 눈여겨 볼 겨를이 없었답니다.
주인. (정중하게) 알겠습니다. 그 먼지투성이로 보아서도.
우리 군사도로를 천천히 걸어오시면 볼만한 게 많은데.
그러나 서들러 오시면 소용없습니다.
늙은 숙녀. 여보게, 수건을 목에 두르게.
여기 저녁 공기가 어느 정도 찬데.
주인. 귀부인들, 당신들은 빙판이 된 양아 타우지방에서 내려오신 거로군요.
구루쉐. 그래요. 저는 제 아들이 감기 들까봐 걱정돼요.
늙은 숙녀. 넓은 대상(隊商)의 숙소가 있군요!
어쩜 우리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주인. 아. 숙녀님들이 방을 원하시는 거죠?
하지만 숙소는 찼답니다.
숙녀님들, 게다가 하인들은 달아나버렸지요.
송구스럽군요.
어쨌거나 아무도 받아들일 수 없답니다.
신원 조회를 하지 않고서는 말이예요---.
젊은 숙녀. 하지만 길바닥에서 밤을 세울 순 없잖아요.
주인. 귀부인들,
피난민이 많은 이런 때에 매우 존경을 받으시지만 관청으로부터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는 분들이 묵을 수 있는 걸,
게다가 특별히 주의를 해줘야 하는 그런 숙소를 만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도 아실겁니다.
그래서----,
늙은 숙녀. 여보세요. 우린 피난민이 아닙니다.
여름 한 철 산속에서 지낼 곳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그게 전부인걸요,
우리를 손님으로 환대해줄 것을 요구하는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아요.
우리가 그런 생각을 사실 꼭 필요로 할 수도 있지만---.
주인.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숙인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렇지야 않으시겠지요.
저는 다만 드릴 수 있는 작은 방이 귀부인들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봐 의심하는 거죠.
저는 한 분당 60피아스터를 계산해야 합니다만, 숙녀분들은 모두 함께 오신 거죠?
구루쉐. 물론입니다.
저도 머물 곳이 필요해요.
젊은 숙녀. 60피아스터라고!
그건 목을 잘라버릴 만큼 지독한 값이군요.
주인. (냉정하게) 귀부인들, 목을 잘라버릴 그런 마음은 없어요.
그러나---- (가려고 돌아선다)
늙은 숙녀. 목슴 운운할 거야 없잖아?
여보게 들어가자구! (하인을 따라 들어선다)
젊은 숙녀. (의심스러운 듯이) 방 하나에 180피아스터!
(그루쉐를 돌아보며) 그런데 아이를 데리고 있으니 안 되겠는 걸.
만약 애가 울기라도 하면 어쩌지?
주인. 방은 180피아스터요.
두 사람이든 세 사람이든.
젊은 숙녀. (그러자 그루쉐에게 다른 목소리로)
다른 한편으론 당신이 길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해보니 끔찍한 노릇이오.
자, 부인. 함께 들어가십시다.
젊은 숙녀. 180피아스터라니!
제가 그렇게 놀란 적은 없어요.
사랑스런 이고르가 집으로 돌아온 이후엔.
늙은 숙녀. 자네는 이고르에 대해 말할 텐가?
젊은 숙녀. 하여간 우린 네 사람입니다.
아이도 역시 한 사람이니까요. 안그래요?
(그루쉐에게) 당신이 적어도 방값의 반을 부담하지 않으시겠어요?
그루쉐. 그건 불가능합니다.
보다사피 저는 급히 떠났어요.
그런데다가 부관이 내게 충분한 돈을 집어넣어주는 걸 잊어버렸지 뮙니까.
늙은 숙녀. 당신은 그럼 60피아스터도 없나요.
그루쉐. 그만큼은 제가 지불하지요.
젊은 숙녀. 침대들은 어디 있지요?
하인. 침대 따원 없어요.
저기 이불과 자루가 있지요.
저걸로 여러분이 스스로 자리를 마련하여야 해요.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여러분을 땅굴로 모시지 않은 것만으로도 기뻐하셔야지요. (퇴장)
젊은 숙녀. 당신도 이 말을 들었죠?
내가 곧 주인에게로 가서 회초리로 때려주라고 해여겠네요.
늙은 숙녀. 바로 자네 남편처럼?
젊은 숙녀. 당신은 너무 노골적이시군요. (그녀가 운다)
늙은 숙녀. 우리가 어떻게 해서 잠자리 비슷하게라도 꾸며낼까?
그루쉐. 제가 해보지요. (그녀가 아이를 내려놓는다)
여러 사람 곁에선 늘상 더 쉽게 살아갈 수 있게 마련이지요.
당신은 아직 마차도 갖고 계시고. (바닥을 쓸면서)
매우 놀랍게도 제 남편이 점심식사 전에 말했지요.
"사랑스런 아나스타샤 카타리노브스카,
어느 정도 누워 쉬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당신은 걸핏하면 편두통을 앓잖아요"하고 말입니다.
(그녀가 자루를 끌어오고, 잠자리를 마련한다.
숙녀들은 그녀가 하는 일을 따르다가는 서로 쳐다본다)
제가 총독님께 말씀드렸지요.
"여보, 게오르기.
60명의 손님이 식사하려 오시는데 내가 누워 있을 수는 없지요.
하인들에게만 맡겨들 수도 없는 법이라고요.
그리고 미헬 게오르기비치는 내가 없으면 뭘 먹지 않아요."
(미헬에게) 미헬, 너도 보듯이 모든 게 척척 되어가지.
내가 네게 말한 대로야!
(그녀는 순간적으로 숙녀들이 그녀를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으며 또한 속닥거리고 있음을 알아챈다)
그래요.
여기 맨바닥엔 어쨌건 누울 수가 없어요.
제가 이불을 두겹으로 깔았지요.
늙은 숙녀. (명령하듯이) 당신은 침대 꾸미는 솜씨가 정말 좋군.
아주머니.
자, 손을 좀 보여주실까!
그루쉐. (놀라) 뭐라셨지요?
젊은 숙녀 당신의 손을 이리 내밀어봐요! 구루쉐가 숙녀들에게 손을 내보인다.
젊은 숙녀. (환호하며) 봐요, 거칠어요! 하녀라니까!
늙은 숙녀. (문으로 가서 밖으로 소리친다) 여봐, 이리 좀 와봐요----!
젊은 숙녀. 넌 붙잡혔어, 사기꾼.
뭘 모의하고 있는지 고백해!
그루쉐. (당황하여) 저는 아무것도 숨기고 있지 않아요.
제 생각으로는 당신네들이 우릴 마차에 태워주리라고 여겼지요.
한 구간만이라도.
아무든 제발 소리지르지는 마세요.
제가 스스로 나갈 테니까요.
젊은 숙녀. (늙은 숙녀가 계속 하인을 부르는 동안) 그래, 네가 나간단 말이지?
하지만 경찰과 함께 가야지.
우선 머물러.
이 곳에서 꿈짝도 마, 넌!
그루쉐. 하지만 저는 60피아스터를 하여간 지불하려고 했지요.
여기에. (지갑을 내보인다)
보시다시피 저는 돈을 가졌어요.
여기 10피아스터짜리 넉 장, 그리고 5피아스터짜리, 아니 역시 10짜리로군요.
자, 이러면 60입니다.
저는 단지 애를 마차에 태울 요량이었지요.
그건 사실입니다.
젊은 숙녀. 뭐, 마차를 타겠다고!
이젠 끝장이야.
그루쉐. 지체 높으신 마님, 제가 고백하지요.
저는 하찮은 신분의 여잡니다.
제발 경찰을 부르지는 마십시요.
아이는 귀족 출신입니다.
이 아마포를 보셔도 알 거예요.
이 애는 피난가는 중이예요.
당신들처럼.
젊은 숙녀. 높은 신분이라, 그건 봐서 알겠군.
애 아버지가 왕자라도 되나?
그루쉐. (늙은 숙녀에게 거칠게) 소리지르지 마시라니까요!
여러분은 한치의 동정심도 없으십니까?
젊은 숙녀. (늙은 숙녀에게) 조심해요.
이 여자가 당신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이 여잔 위험해!
도와줘요!
살인자예요!
하인. (나타난다) 무슨 일이오. 도대체?
늙은 숙녀. 이 여자가 숙녀 행세를 하며 여기로 숨어들었어.
아마 도둑년인가봐요.
젊은 숙녀. 게다가 위험한 도둑이오.
이 여자가 우릴 죽이려 했어요.
경찰에 넘겨야 할 사건이에요.
벌써 편두통이 닥쳐오는군.
오, 하느님.
베르톨트 브레히트 - 코카시아의 백묵원
역자 - 이정길
범우사 - 2007. 10.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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