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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작가책방(소설/베르톨트 브레히트 - 코카시아의 백묵원

코카시아의 백묵원 - 3/2 북쪽 산속으로의 도주

by 탄천사랑 2022. 7. 30.

베르톨트 브레히트 - 「코카시아의 백묵원


젊은 숙녀.  게다가 위험한 도둑이오.
이 여자가 우릴 죽이려 했어요.
경찰에 넘겨야 할 사건이에요.
벌써 편두통이 닥쳐오는군.
오, 하느님.

하인.  이런 때에 경찰은 없어요.
(그루쉐에게)   짐을 챙겨요, 아주머니. 그리고 냉큼 사라져요.

그루쉐.  (화를 내며 아이를 안는다)  형편없는 인간들!
사람들이 나타나 이들의 머리를 잘라 벽에다 못질해 걸어야 되겠어!

하인.  (그녀를 밀쳐낸다)   주둥이 닥쳐, 그러지 않으면 노인장에게 데리고 갈 거야.
그 양반은 엄하셔.

늙은 숙녀.  (젊은 숙녀에게)   그 여자가 뭘 훔쳐가지나 않았는지 살펴보게나!

숙녀들이 오른쪽에서 무엇이 없어졌을까 봐 열심히 살펴보는 동안에 
왼편에서는 하인과 그루쉐가 대문을 나선다.



그루쉐가 어느 농가 앞에 선다.

그루쉐.  이제 네가 다시 오줌을 쌌구나.
너도 알잖니. 너를 위한 기저귀가 없다는 걸.
미헬, 이제 우린 헤어져야겠다.
도시에서도 이젠 멀리 떠나 왔어.
이제 여기까지 널 뒤쫓아올 만큼 그 사람들이 너 같은 꼬맹이에게 마음 쓰지는 않을 거야.
농부의 부인은 친절하단다.
그리고 우유 냄새가 좋지 않니?
자, 잘살아라. 
미헬아, 난 잊어버리마.
네가 내 등에 업혀 줄곧 걷던 밤도, 그리고 내가 네게 쓴 작은 액수의 돈에 관해 잊어버리렴.
그건, 호의였으니까.
네가 아직 너무 어리니 널 그냥 데리고 있고 싶다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단다.
내가 네게 철없음을 알려주고, 그래서 네가 오줌을 가리도록----,
아냐, 난 돌아가야 해.
군인인 내 애인이 곧 돌아올 거니까.
그런데 그 양반이 내가 없는 걸 알면 어떡하겠니?
그런 걸 너도 바라진 않겠지, 미헬?

한 뚱뚱한 여자 농부가 우유통을 문으로 들고 온다.
그루쉐는 그녀가 들어설 때까지 기다린다.
그 후에 그녀는 조심스럽게 집으로 다가간다.
그녀는 문으로 살금살금 접근하여 아이를 문지방에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나무 뒤에 숨어서 기다리자 그 농부의 부인이 문으로 나와 포대기를 발견한다.

여자 농부.  맙소사. 여기 대체 무엇이 놓여 있지?  여보! 

농부.  (나온다)  무슨 일이오?
죽을 먹고 있도록 그냥 놔두지 않구선.

여자 농부.  (아이에게)  네 어민 대체 어디 있지?
엄마가 없니? 사내아이 같은데.
그리고 포대기는 좋은 아마포로군요.
애는 귀한 집 자식인걸요.
사람들이 애를 문 앞에 버린 거예요.
보나 마나, 시대가 이렇다니까요!

농부.  우리가 그런 애를 먹여 살릴 거라고 그네들이 믿는다면 그들이야말로 돈 거지.
당신이 마을의 신부님께로 애를 데리고 가요.
그리고는 내게 말도 더 하지 말아요.

여자 농부.  신부님이 뭘 어쩌겠어요. 애에겐 어미가 필요한데.
자, 애가 깨어나요.
당신은 우리가 애를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고 믿나요?

농부.  (소리치며)   안 돼!

그녀가 아이를 안으로 안고 간다.
농부가 반대하며 따른다.
그루쉐가 나무 뒤에서 나와 웃으며 반대 방향으로 서둘러 사라진다.

병장.  아가씨, 우린 군인들이오.
아가씬 어디서 오는 거지? 
적과 수상한 관계를 가진 건 아냐?

그루쉐, 놀란 채 서 있다.

병장.  멍청아, 이 여자가 우리 말을 알아들었어.
이건 좋은 징조의 놀람이지.
아가씨, 우린 이 지역에서 특정한 아이를 찾고 있어요,
당신 그런 애에 관해 들어본 적 있어요? 도시에서 온 앤 데 여기에 나타났다구요.
잘 생기고 훌륭한 아마포 포대기에 싸인---,

그루쉐.  아뇨, 난 아무 애기도 못 들은걸요.

그녀는 매우 놀라 갑자기 돌아서서 뛰어간다.
기갑병들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다가는 욕하면서 그녀를 뒤따른다.

농가에서 뚱뚱한 여자 농부가 몸을 굽혀 아이가 담긴 바구니를 들여다본다.
그때 그루쉐 바흐낫체가 달려든다.

그루쉐.  이 애를 감춰요. 기갑병이 오고 있답니다.
제가 이 앨 문 앞에 뉘어뒀는데 아무렴 저의 아들은 아닙니다.
훌륭한 가문 출신이지요.

여자 농부.  누가 온다고? 무슨 기갑병이라고?

그루쉐.  길게 묻지 마세요.
이 애를 찾아 기갑병들이 닥쳐온다니까요.

여자농부.  내 집 안에서 그 자들은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어.
하여간 처녀와 좀 얘기를 해봐야겠군 그래.

그루쉐.  (밖을 내다본다)   금방 그 자들이 나무 뒤로 나타날 거예요.
내가 뛰쳐오지 않을 걸 그랬나 봐요.
이 점이 그들을 자극했을 거예요.
난 어떡하면 좋지?

여자농부.  (역시 밖을 살펴보다가 갑자기 놀란다)
하느님 맙소사, 기갑병들이야!

그루쉐.  그들이 아이를 뒤쫓고 있다니까요.

여자 농부.  그런데 저 사람들이 들어오면?

그루쉐.  아주머니는 그들에게 이 애를 내줘서는 안 돼요.
아주머니의 아들이라고 말하세요.

여자 농부.  그러지.

여자 농부가 고개를 끄덕인다.

문을 두드린다.
여자들이 응답하지 않는다.
기갑병들이 들이닥친다.
여자 농부가 깊이 허리 숙여 인사한다.

병장.  여기 이 여자가 있군 그래.

그루쉐.  네가 우유를 아궁이에 얹어놓았어요.
그걸 그떄 기억해냈던 거예요.

병장.  하여간 그럴 수 있지. 안 그래?  
아가씨도 그점을 인정해야 돼.
나도 때론 돼지 같은 녀석일 수 있으니까.
아가씨에게 완전히 마음을 터놓고 있다구.
우리 두 사람만 있나면 여러 가지로 생각해봄 직도 한데---,

 (여자 농부에게)   마당에 가서 해야 할 일은 없나요?
암닭에게 모이를 준다든가----,

여자 농부.  (갑자기 무릎을 꿇으며)   군인 아저씨, 난 아무것도 몰랐을 따름인걸요.
이 집 지붕에 불을 지르지는 마세요!

병장.  당신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요?

여자 농부.  난 그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답니다.
이 여자가 애를 내 집 문 앞에다 눕혀뒀지요.
맹세코 그렇습니다.

병장.  (아이를 보고 휘파람을 분다)
아, 여기 바구니 안에 꼬마 녀석이 계시군.
멍청아, 1000 피아스터 현상금 냄새가 풍기는군.
이 늙은이를 끌어내어 단단히 잡고 있어. 
신문을 해봐야겠어.
짚이는 바가 있으니까.

여자 농부는 말없이 졸병에게 끌러 나간다.

병장.  내가 네게 얻어내려던 그 아이를 여기 두고 계셨군.   (그가 바구니로 다가간다)

그루쉐.  장교님, 이건 제 아이예요.
이 애는 당신이 찾으시는 그 애가 아닌걸요.

병장.  내가 살펴봐야겠어.   (그가 바구니 위로 몸을 굽힌다)

그루쉐.  내 아이예요.  내 아이라니까요.

병장.  질 좋은 아마포로군,

그루쉐가 그를 물러서게 하려고 그에게 덤벼든다.
그는 그녀를 홱 떨쳐버리고는 다시 바구니를 들여다본다.
그녀는 자포자기하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큼직한 나무토막을 본다.
절망 속에서 그걸 집어들고는 뒤에서 병장의 머리통을 내려친다.
그러자 그가 쓰러진다.
그녀는 빨리 아이를 안고는 밖으로 뛰쳐나간다.

반쯤 얼어붙은 개울에 그루쉐가 쪼그려 않아 두 손으로 아이에게 먹일 물을 퍼올린다.
그녀는 아이에게서 좋은 아마포를 벗겨내고 누더기를 입혀준다.

바람이 불어왔다.
황혼에서도 빙하의 나무다리가 분명하다.
한쪽 자일이 끊어져 반쯤 벼랑에 걸려 있다.
그루쉐가 아이를 데리고 올 때에 상인들, 즉 두 남자와 한 부인이 엉거추츰 그 다리 앞에 서 있다.
그래도 그 중 한 남자가 막대기로 걸려 있는 자일로 잡으려 애쓴다.

남자 1.  기다려요, 젊은 부인.
통로로는 오지 마세요.

그루쉐.  하지만 나는 내 애를 데리고 동편에 있는 오빠네 집으로 가야 해요.

남자 1.  (귀를 기울이며)  조용히,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그루쉐.  (큰 소리로)  완전히 썩어 문드러지진 않았어요. 
나는 건너가는 것을 시도해봐도 된다고 믿어요. ​ 

여자 상인.  악마가 몸소 내 뒤를 따른다 해도 나는 그렇게 해볼 수 없을 거야.
왜냐하면, 그건 자살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루쉐가 절벽을 내려다본다.
아래에서 계속 기갑병들의 소리가 둘려온다.

남자 2.  2000파트라니까.

그루쉐.  하지만 저 사람들이 더 위험한 존잰 걸요.

남자 1.  당신의 아이 때문이라도 건널 수 없어,
저 사람들이 당신 뒤를 쫓으면 목슴을 걸고 덤벼봐요.
하여간 아이를 데리고는 안 돼.

여자상인.  아마도 아가씬 정말 건너가야 되나 봐요.
아가씨, 애를 내게 맡겨요.
내가 애를 숨겨줄 테니. 그리고 혼자서 다리를 건너요.

그루쉐.  그렇게는 안해요. 우리는 함께 있어야 해요.
(아이에게)  함께 가야지, 함께.

그녀가 흔들리는 다리 위를 디딘다.
다리가 무녀져내리는 듯하자 여자 상인이 비명을 울린다.
하지만 그루쉐는 계속 걸어 건너편에 이른다.

기갑병들이 나타난다.
병장의 머리는 붕대로 감겨 있다.

병장.  여러분은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여자 하나를 못 봤소?

남자 1.  (남자 2가 막대기를 절벽으로 떨어뜨리는 동안)
봤지요.
저기 저 여자.
그런데 이 다리를 당신네가 건널 순 없어요.

건너편에서 그루쉐가 웃으며 기갑병들에게 아이를 보인다.
그녀는 계속 걸어가고, 나무다리는 남는다. 바람.

그루쉐.  (미헬을 바라보며)  바람을 무서워 마라.
한 마리 초라한 개 정도니까.
그건 단지 구름을 몰고 다니거나 대체로 얼음을 얼게 할 따름이지.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그루쉐.  그리고 눈이란, 미헬아. 지독한 것이 못 된다.
그건 다만 어린 소나무들을 덮어버려 그것들이 겨울 내내 벗어나지 못하지.
그럼 이제 너에 관한 노랠 부를 테니 들어보려무나!   (노래한다)

네 아버진 강도고
네 어머닌 창년데
네 앞에선 가장 성실한 남자도
허리를 굽히는 법이란다.

호랑이의 아들은 
작은 망아지에게 풀을 뜯어 먹이고
뱀의 자식은
어미에게 우유를 가져오지  (p94)
 이 글은 <코카시아의 백묵원>에 실린 일부를 필사한 것임.
 
4. 북쪽 산속에서
막 식사하려고 않은 뚱뚱한 농부 부부.
라브렌티 바흐낫체도 이미 냅킨을 목에 두르고 있다.
그때 창백한 그루쉐가 하인에 의지하여 아이와 함께 들어선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 코카시아의 백묵원
역자 - 이정길 
범우사 - 2007. 10.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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