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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작가책방(소설/베르톨트 브레히트 - 코카시아의 백묵원

코카시아의 백묵원 - 1. 골짜기 쟁취를 위한 논쟁.

by 탄천사랑 2022. 7. 27.

베르톨트 브레히트 - 「코카시아의 백묵원

 


가수가 들러선 사람들에게 인사한다.

여자농부(우).  당신을 알게 되어 영광입니다.
당신의 노래에 관해 저는 이미 학교 다닐 적에 들었지요.

가수.  이번에는 노래를 곁들인 연극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집단 농장의 모든 동지들이 함께 연기하지요. 
우리가 옛날의 마스크를 가져왔답니다.

노인(우).  이건 오랜 전설들 중의 하나일 테죠?

가수.  아주 오래 된 전설이오.  
이건 '백묵원(白墨圓)'이라 불리는데 중국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물론 이 전설을 바꾸어 연기하는 것이지요. 
유라, 마스크를 한번 보여드리려무나!
동지 여러분, 
어려운 논쟁 다음에 여러분이 유쾌하게 환담하시는 건 우리에게 영광입니다.
옛 시인의 목소리가 소비에트의 트랙터 뒤에서도 그대로 울려 나온다고 여러분께서 여기시기를 우리는 희망합니다.
여러 종류의 포도주는 섞으면 엉터리 술이 되지만 옛 지혜에 새로운 것을 합치면 독특한 것이 된답니다.
우리 모두는 연기가 시작되기 전에 먼저 무얼 좀 먹어야겠습니다.  
그게 도움이 되니까요.

전문위원.  그 이야기는 얼마나 걸릴까요.  아르카디씨?
나는 오늘 저녁에 티프리스로 돌아가야 합니다.

가수.  (덧붙여)  원래 두 이야기로 된 거지요.  
두 세시간 걸려요.

전문위원.  (매우 친밀하게)  여러분이 그걸 좀 줄일 수는 없을까요?

가수.  안 돼요.


2. 고귀한 아이.
왼편 성문에서 빠른 걸음으로 뚱뚱한 제후가 나타난다.
그가 멈추어 들려본다. 오른쪽 아치문 앞에 두 기갑병이 기다린다.
제후가 그들을 보고는 천천히 그들 곁을 지나며 어떤 신호를 보낸다.
그 뒤 빨리 퇴장, 한 기갑병, 아치문을 통해 성 안으로 간다. 다른 군인은 보초병으로 머문다.
뒷면 여러 방향에서 '그 자리에'라는 혼탁한 외침들이 들려온다.
저택은 포위되었다.
멀리서 교회의 종소리, 저택 문으로 총독의 가족이 교회에서 돌아온다.

총독부인.  (지나가며)  정말 불가능할걸, 이런 바라크에서 살아날 수 있다는 건,
하지만 내 남편 게오르기는 물론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린 미헬을 위해 새로 건물을 지으실 테지.  
미헬이 전부야. 
미헬을 위해 모든 것을!

총독.  자네도 들었지. 
카츠베키 형제가 '즐거운 부활절이 되시길'하고 인사해준 소릴? 멋지고 근사해.
하지만 내 생각으론 누카에선 어젯밤에 비가 내렸었지. 
카츠베키 형제는 도대체 어디 있었지?

부관.  조사해봐야겠군요.

총독.  그래, 당장 착수해. 
오늘 아침에.

그가 하인들을 내몬다.
시몬이 드디어 그루쉐를 찾는다.

시몬.  그루쉐, 당신 여기에 있군. 
뭘 하려고 그래?

그루쉐.  아무것도 안해요. 
곤경에 닥치면 산속에 농장을 갖고 있는 오빠를 찾아갈까 해요. 
그런데 당신에겐 무슨 일이?

시몬.  내겐 아무 탈도 없어.  (다시 격식을 차려)
그루쉐 바흐낫체양, 내 계획에 대한 당신의 물음이 내게 충분한 보상이 되나봐요.
난 나텔라 아바슈빌리 마님을 호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니까요.

그루쉐.  그런데 저택지기들이 궐기하지 않았나요?

시몬.  (진지하게)  그래요.

그루쉐.  그 부인을 호위하는 게 위험하지나 않을까요?

시몬.   티프리스에서 사람들은 말하곤 하지. 
찌르는 것이 칼의 입장에서 어느 정도 위험한가?

그루쉐.  당신은 칼 그 자체가 아니예요. 시몬 카카바씨, 
당신은 그냥 사람인걸요.  
그 부인이 당신과 무슨 상관이에요?

시몬.  그 부인은 나와 상관이 없어. 
하지만 나는 명령을 받았으니 그렇게 달려갈 거요.

그루쉐.  그러니까 군인 아저씨는 어리석은 인간이죠.
어떤 걸 위하지 않고서도 헛되이 위험 속에 뛰어드니까 말이예요.
(저택에서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을 때)  
나는 제 3별관으로 가야 해요.
서들러야겠어요.

시몬.  바쁘니까 다투어서는 안 되겠군요.
좋은 일로 다투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물어봐도 될까요.  
아가씨에게 양친이 계세요?

그루쉐.  없어요, 단지 오빠만.

시몬.  그럼 아가씨가 알고 있었던 게로군요?
나는 건강하고, 보살펴야 될 식구도 없어요. 
매월 10피아스터를 받는데, 회계주임 일로 20을 더 벌죠.
그리고 사실은, 사실인즉슨 진심으로 청혼하는 바입니다.

그루쉐.  시몬 카카바, 
그 말씀이 내 마음에도 들어요.

시몬.  (작은 십자가가 달려 있는 가느다란 목걸이를 자신의 목에서 벗긴다)
이 십자가는 어머니가 남겨주신 거예요. 
그루쉐 바흐낫체, 목걸이가 은으로 된 건데, 
이걸. 자, 걸어요.

그루쉐.  고마워요. 시몬.  그가 그것을 그녀의 목에 걸어준다.

시몬.  난 말을 매야 해요. 아가씨도 알다시피.
아가씨는 제 3별관으로 가는 게 좋겠군요. 
그래야 탈이 없지.

그루쉐.  그래요. 시몬.  그들은 헤어지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시몬.  나는 군대가 성실할 때에야 거가로 부인을 데리고 갈 거요.
전쟁이 끝나면 내가 돌아오지.
두 주일이나 세 주일이면.
내 약혼녀에게 내가 돌아올 때까지의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기를 바라오.

그루쉐.  시몬 카카바, 당신을 기다릴게요.

시몬.  고마워요, 그루쉐 바흐낫체.
자, 잘 있어요!
---

부관. 빨리 걸어나간다.

총독부인.  가장 필요한 것들만! 
빨리, 상자 뚜껑을 열어!
내가 가져가야 될 것들을 너희에게 꺼내주겠어.

상자들을 내려서 연다.

총독부인.  (특정한 금랍장식을 가리키며)  저 초록색 옷과 물론 저 털가죽 조각이 붙은 것을!
의사들은 어디 있지?  다시 몸서리나는 편두통이 밀려오는군.
이건 줄곧 관자놀이에서 시작된다니까. 
진주 단추가 붙은 그 옷을----.

부관.  (되돌아온다)  서두르시지요. 나텔라 아바슈빌리 마님.
도시에서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시 퇴장)

총독부인.  (젊은 부인을 놓아준다)   맙소사!
그 폭도들이 나를 폭행할 거라고 여러분도 믿나요?
왜?   (모두들 침묵한다. 그녀가 스스로 상자 속을 뒤적이기 시작한다)
금란(錦欄) 윗도리를 찾아!
여러분도  모두 도와요!
미헬은 뭘 하지?
잠을 자?

유모.  물론입니다, 마님.

부관.  (매우 흥분하여)  나텔라 마님, 곧 나오세요!
최고 재판소의 재판관인 우리의 일로 오르벨리아니의 목이 금방 매달렸습니다.
봉기한 양탄자 직공들에 의해서죠.

총독부인.  왜? 
그 은색 옷도 가져가야 해.
그건 1000피아스터짜리야.
그리고 거기 있는 것과 모든 모피를, 그런데 포도색 옷은 어디 있지?

부관.  (그녀를 끌어내려 애쓴다)  교외에서는 폭동이 일어났다구요.
우린 곧 떠나야 합니다.  (한 하인이 달려나간다)
애는 어디 있지?

총독부인.  (유모를 부른다)   마로, 애가 떠날 준비를 해!
넌 어디 틀어박혀 있었어?

부관.  (나가며)  아마 우린 마차를 포기하고 말을 타야 할걸요.

총독부인.  (두번째 부인에게)   달려가!
이걸 그냥 마차에 던져 실어!

부관.  마차는 못 가요.
오세요, 아니면 혼자 말을 타고 가겠어요.

총독부인.  마로! 애를 데리고 와!  (두번째 부인에게)
찾아봐, 마샤!
아니, 먼저 옷가지를 마차에 실어.
말을 타다니, 그건 말도 안 돼!
난 그따위 생각은 하지도 않고 있는데.  (몸을 돌리며 불길을 보고는 놀란다)
불이야!   
(그녀가 달려나간다. 부관이 그녀를 뒤쫓는다. 
 두번째 부인이 옷꾸러미를 든 채 머리를 내두르며 그녀를 따른다)

여요리사.  불타는 건 동쪽 대문임에 틀림없어요.

요리사.  사람들이 떠났어. 식량을 실은 마차도 버려두고.
그런데 우린 이제 어떻게 빠져 나가지?

마구간지기.  그래, 얼마 동안은 불길한 집구석이야.
(세번째 시녀에게)   술리카, 내가 이불 몇 개를 가져올게,
우리도 줄행랑 쳐야지.

유모.  (아치문에서 장화를 가지고)   마님!

뚱뚱한 부인.  그 분은 이미 나가셨어

유모.  그럼 아이는?!  (그녀가 아이에게로 달려가 안아 올린다)
애를 남겨두고 떠났군. 
짐승 같은 사람들이.   (그녀가 애를 그르쉐에게 넘겨준다)
이 애를 잠깐 안고 있어.   
(거짓말로)   내가 마차를 살펴볼 테니.   (그녀도 총독 부인을 쫓아 뛰어나간다)

그루쉐.  사람들이 주인님을 어떻게 했지?

마구간지기.  (손으로 목자르는 시늉을 해보인다)   꽥!

뚱뚱한 부인.  (사람들이 그녀를 데리고 나가는 중에)
오 하느님 오 하느님 오 하나님, 
빨리 빨리, 모두들 떠나요. 
그들이 오기 전에.
그 폭도들이 들이 닥치기 전에!

세번째 부인.  니나 아주머니는 그 귀부인보다 더 관대하게 처신하셔.
게다가 다른 일에도 눈물이 많고,   (그녀는 그루쉐가 아직도 안고 있는 아이를 알아본다)
그 아이를! 
넌 애를 안고 뭘 하지?

그루쉐.  애가 뒤쳐졌어요.

세번째 부인.  그 여자가 아들을 눕혀놓고 떠났다고?
외풍을 쐬도 안 되는 미헬을!

그루쉐.  유모가 이 아이를 잠깐 안고 있으라고 맡겼는걸요.

여요리사.  그 여자는 돌아오지 않아, 이 멍청한 것아!

세번째 부인.  이 일에서 얼른 손을 떼!

여요리사.  그 부인을 노리는 자보다는 이 아이를 노리는 자가 더 많을걸.
애는 상속자니까.
그루쉐, 넌 착한 마음을 지녔어.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넌 현명한 여자는 아니야.
내가 네게 일러두는데, 
이 아이가 문둥병에 걸렸다고 하더라도 상황이 이보다 더 나쁘지는 않을거야.
두고 봐, 네가 탈이 날테니.

그루쉐.  (단호하게)   이 아이는 문등병에 걸리지 않았어요
애가 또렷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걸.

여요리사.  그럼, 네가 그 애를 바라보지 마.
넌 어리숙하니까 네게 모두가 떠맡기는 거라구.
누군가가 네게 부탁하거든 뺑소니를 쳐.
넌 잘 달리지 않니, 도망치라구.
우린 소달구지를 타고 갈 건데, 너도 얼른 처리하고 함께 타고 가도 돼.
맙소사, 지금 벌써 온 동네가 불타고 있군!

그루쉐.  나도 갈게요. 

그루쉐가 아이를 내려놓고는 한참을 그를 들어다 본다.
여기저기 놓여 있는 트렁크에서 옷가지를 꺼내어 아직 잠자는 아이를 덮어준다.
그 다음 그녀는 저택으로 그녀의 물건을 가져오려고 달려간다.
말밥굽 소리와 여자들의 비명도 들린다.
뚱뚱한 제후가 술취한 기갑병들과 등장, 한 사람이 창에다 총독의 머리를 매달고 있다.

그루쉐가 조심스럽게 둘려보면서 입구에 이르는 동안 뚱뚱한 제후는 기갑병들을 데리고 퇴장한다.
다시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
그루쉐가 보퉁이를 들고 아치문으로 간다.
거의 그 곳에 이르러 아이가 아직 있는지 보려고 둘러본다. 

불빛이 약해진다.
저녁이나 밤이 된 듯하다.
그루쉐가 저택으로 가서 등불과 어린아이에게 먹일 우유를 가지고 왔다.

그루쉐는 이제 아이 곁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앉아 있다.
한번은 작은 등잔을 켜서 아이를 비춰보고, 다음번에는 금란 외투로 아이를 감싸 따스하게 해준다.
그런 와중에도 그녀는 귀를 기울이며 아무도 오지 않는지 돌아본다.
아침녂엔 심한 유혹에 빠져들며 아이를 전라품처럼 안고 도적처럼 살금살금 빠져 나갔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 코카시아의 백묵(범우 희곡선 2)

역자 - 이정길
범우사   - 2007. 10.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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