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문화 정보/독서정보(기고.대담.칼럼.

서재, 꽃과 나비, 활자가 만개한 상록원(常綠園)-이학영 국회부의장

by 탄천사랑 2025. 3. 7.

 

 

월간 국회도서관 - 2025. 1+2 vol.527

국회의원의 서재
서재, 꽃과 나비, 활자가 만개한상록원(常綠園) 
잔잔한 음악을 켜놓고 편안한 의자에 앉아 누구 의 방해도 받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는 나만의공간에서의 독서. 

비단 애서가가 아니더라도누구나한 번쯤 꿈꾸었음직한 유랑이자 로망이다.

'서재’라는 공간은 그가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내면을 드러내 보여주는 공간이자 정신세계에깊게 은둔해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학영 국회부의장에게 서재는 억압된 현실을 벗어날수 있는탈출구이자

그가 언제나 회귀를 꿈꾸는 꽃과산들바람과 활자가 만개한 정원이다

활자로 노는 ‘오락기’나 다름없던 어린 시절의 책 
이학영 부의장은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렸을 때 꿈이라는 게 별거 없잖아요. 주변에서 보는 게 꿈인 것이죠. 그때는 제일 공부도 잘하고 훌륭한 사람이 학교 선생님이었어요. 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학교 도서관에는 책이 비치되어 있었다. 『플란다스의 개』, 『알프스 소녀 하이디』 같은 책들은 작은 소년을 넓은 미지의 세계로 이끌곤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라 다른 집보다 농사일이 적었어요. 게다가 천성적으로 밖에 나가 일하는 것보다 집 안에서 뒹굴뒹굴 책 읽는 게 더 좋았고요. 그땐 좀 게을렀던 것 같습니다(웃음).” 

늘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농촌에서 그가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세상의 질서에서 이탈해 혼자만의 성채를 가꾸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활자로 된 것은 닥치는 대로 읽었다. “중학생이던 누님이 빌려온 연애소설은 물론이고, 세계사 교과서까지 읽었어요. 당시 지도와 선박, 서양의 복식이 그려진 중학교 세계사 교과서는 시골 소년에게 설레는 마음으로 세계 여행을 꿈꾸게 만든 최고의 가이드북이자 오락기였습니다.” 

더 깊이 알면 더 널리 보인다고 했던가. 닥치는 대로 ‘포식‘하던 책에 익숙해지고 독서 없는 일상을 상상할 수 없게 된 건 대학교 진학 무렵이었다. 그가 읽은 책은 이미 뼈와 살로, 그리고 영혼으로 그를 이루고 있었다.

민주주의 실천을 위해 포기해야 했던 시인의 꿈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제때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그는 전북일보에서 1년간 신문 배달원으로 일했다. 동시에 전주시 노송동에 있는 인쇄소에서 틈틈이 필경사 일을 배우며 활자와 벗했다. 1971년 전남대학교에 입학해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며 문학 소년의 꿈을 이뤘다. 대학 3학년 문리과대학 학생회장이 된 그는 학생운동을 했다가 국가 권력의 핍박을 받았다. “다른 남학생들이 죄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붙잡혀 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학생회장을 맡고, 의도치 않은 계기로 학생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데모 같은 것에 별 관심도 없이 학교에 다녔는데 학생운동을 하는 친구를 잘 알고 있었다는 이유로 국가안전기획부에 붙잡혀서 고문을 당했어요. 그 계기로 학생운동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된 그는 수사관에 잡혀가 각목으로 구타를 당하고 사지가 묶인 채 물고문을 당했다. 풀려난 이후 국가로부터 배신을 당했다는 생각에 혼자서 며칠 밤 통곡을 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훗날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 때 본인이 밝히면서 널리 알려졌다.

10년 후인 1984년, 그는 '실천문학'에서 펴낸 『시여 무기여』라는 14인 신인 작품집을 통해 등단했다. 당시 사회운동 중이라서 조카의 이름을 빌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행정대학원에 입학한 그는 정책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순천 YMCA 사무총장,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공동대표,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노무현재단 이사, 국무총리실 부속 시민사회발전위원회 위원, 2006년 1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한국 NGO학회 부회장, 2006년 3월부터 2012년 1월까지 희망제작소 이사 등을 지내며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한 토대를 다졌다. 

편협한 세계관을 폭넓게 확장한 『토지』와 『전환시대의 논리』 
인생의 고비마다 사회적 메시지와 철학적 사유에 기반한 깨달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한 뼘씩 넓히게 해준 것은 ‘책’이었다. 그중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는 개인사·가족사·생활사·풍속사·역사를 망라한 드넓은 품과 태도로 몸과 마음을 감싸 안아주는 듯한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농민과 중인을 중심으로 양반부터 노비에 이르기까지 사회 모든 계급을 망라한 우리 민족 전체의 삶의 모습이 재구성되어 거대한 실존적 벽화를 그린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도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에 이르는 가장 험난한 역사적 흐름을 조망하고 있으며, 서사적 공간도 한반도 남단의 하동 평사리에서 시작해 진주·통영·경성과 만주의 용정·신경·하얼빈 및 일본의 동경 등으로 폭넓게 확대, 실제 삶의 세계를 파노라마처럼 전시한다. “한국 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작품 중 하나인 『토지』는 1969년에서 1994년까지 26년간 집필된 대서사시입니다. 구한말 동학 농민혁명부터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사건들과 뼈아픈 민중들의 삶이 담겨 있는 이 작품은 소설로 쓴 한국 근대사라 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 선보인 리영희 선생의 『전환 시대의 논리』는 그의 세계관을 확장한 또 다른 양서다. “책을 읽기 전에는 세상을 하나의 잣대로 봤어요. 냉전 시대라 반공이 기치였고, 미국은 우리의 구원자, 미국 외의 국가는 전부 적으로 여겨졌습니다. 『전환 시대의 논리』는 현대사와 국제정치의 현실을 보는 시각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일으킨 책입니다. 편협하고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은 책으로, 지금도 좁은 시야에 갇히지 않기 위해 들춰보는 책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출간했다는 이유로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2년간 옥살이를 한다. 유신시대에는 대표적인 금서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1999년 서평 전문지에 의해 ‘20세기 한국고전’으로 선정되며 민주적 시민운동에 앞장서는 이론적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암울했던 유신독재 시절, 한 줄기 빛과 같았던 책은 지금도 우상의 시대, 이성의 길을 비추는 소중한 빛이 되어 주고 있다


- 환경을 보호하고 노동자들의 권익을 신장하는 것은 그가 기꺼이 짊어지고자 하는 책무다. 

  국회의원의 책무가 아닌, 인간의 책무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시인은 시작(詩作)을 통해, 사유가는 사유를 통해 언어의 본질을 파수하듯 인간은 존재의 진리를 말하도록

  요청하는 존재에 응답해야 한다는 게 그가 지금껏 이정표처럼 믿고 따라온 삶의 진리다


오랫동안 불현듯 말을 걸어오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이 부의장은 지금까지 몇 권의 책을 썼다. 다른 이들의 길을 비추기 위해서였다. 『강』, 『꿈꾸지 않는 날들의 슬픔』, 『세계가 만약 하나의 집안이라면』, 『그리운 하나로』 같은 꾸준한 저서들은 그가 현실을 알리고 마음가짐을 단단하게 하고자 제법 무거운 기록의 의무를 느끼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그런 그에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특별한 유대감을 형성하게 되는 마음속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앞서 언급한 두 권의 책과는 사뭇 결이 다른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가난과 고통의 연속에서도 상상력을 잃지 않는 꼬마 제제의 이야기다. 철들기 전의 세계에 대한 미칠 듯한 그리움으로 압축되는 작품이지만 겨우 다섯 살짜리 꼬맹이가 구두닦이에 나설 만큼 온갖 풍상을 겪는 통과의례의 시련은 아프기만 하다. 아버지는 실업자이고 엄마와 누나가 공장에 다닌다. 매질은 다반사다. 이토록 어렵고 거친 환경을 제제는 특유의 상상력으로 자기만의 대체 세계, 즉 ‘움벨트’로 변화시킨다. 하지만 가난은 이 모든 명제를 무력화하는 블랙홀이다. 폭력과 빈곤의 세계에서 제제가 버티는 원동력은 ‘밍기뉴’라 이름 붙인, 집 뒤편의 라임 오렌지 나무에 있다. 발터 벤야민이 말했듯 인간은 망각된 과거가 던지는 눈초리의 대상이다. 지난날의 아픔과 고난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우리를 기다리다가 예기치 못한 어느 날 불현듯 말을 걸어온다. “마흔여덟 살 제제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힘은 저 옛날의 이별과 슬픔입니다. 책의 마지막을 만날 때마다 저는 언제나 먹먹해집니다. 소리 내어서 한번 읽어볼게요.”

‘사랑하는 마누엘 발라다리스 아저씨.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는 오늘 48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어린 시절이 계속된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제게 딱지와 구슬을 주신 분도 당신이었고, 사랑을 가르쳐 주신 분도 당신입니다. 뽀르뚜가 아저씨. 요즘도 저는 아이들에게 딱지와 구슬을 나눠주곤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는 인생은 위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사랑이 없는 인생은 위대한 것이 아니’라는 삶의 아포리즘은 여전히 유효해, 감정의 마모에 가뭄 든 논처럼 쩍쩍 갈라지곤 하는 가슴에 촉촉한 단비를 내리게 한다. 

존재의 진리를 말하도록 요청하는 존재에 응답할 의무 
집무실에서 매일 푸른 그러데이션으로 겹쳐진 지리산 그림을 마주하며 언젠가 자연과 함께 할 날을 꿈꾸는 그에게는 요즘 국회 밖에서 몰두하고 있는 일이 하나 생겼다.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로 떼죽음을 당하는 산양을 보호하는 일이다. “겨울이 되면 산양이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내려옵니다. 그런데 강원도에 가보면 산양이 곡식을 뜯어먹거나 밭을 망치지 못하게 철책을 둘러놨어요. 혹한에 폭설이라도 쏟아지는 날이면 많은 산양이 굶주려 죽습니다. 일부 구간만이라도 철망에 구멍을 내주고 있습니다. 산양에겐 그 구멍이 최소한의 ‘숨통’일 테니까요.” 환경을 보호하고 노동자들의 권익을 신장하는 것은 그가 기꺼이 짊어지고자 하는 책무다. 국회의원의 책무가 아닌, 인간의 책무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시인은 시작(詩作)을 통해, 사유가는 사유를 통해 언어의 본질을 파수하듯 인간은 존재의 진리를 말하도록 요청하는 존재에 응답해야 한다는 게 그가 지금껏 이정표처럼 믿고 따라온 삶의 진리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더없이 소중한 요즘, 그가 바라는 것은 평안한 일상이다. “대단히 큰 것, 화려한 것, 풍요로운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어제처럼 오늘도 아무 일이 없기를, 그리고 오늘처럼 내일도 아무 일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가족과 함께, 이웃과 함께, 직장에서 편안히 일할 수 있고 집에서 편안히 쉴 수 있는 평화와 안정의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는 손때 묻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꺼내 보곤 한다. 내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차마 보여주지 못한 마음을 읽어주는 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의 구절 구절을 곱씹으며 정치도 결국은 그런 것이라고 되뇐다. 그렇게 겨울을 지나고 꽃피는 철을 맞다 보면 다친 마음은 상처를 딛고 세상 속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될 것이다. 보통의 날들이 모여 인생이 되는 법이니 말이다

내 곁의 책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 J.M. 바스콘셀로스
전환시대의 논리 - 리영희
토지 - 박경리


글 - 임지영 사진 최충식
출처 - 월간 국회도서관 

[t-25.03.07.  20250303_14503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