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 「버리고 떠나기」
또 가을이네
조계산에는 추석날 밤 비가 내렸다.
동산에 떠오르는 달 마중을 못하고,
마루에 앉아 후박나무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었다.
가을비 소리는 어쩐지 적막하고 쓸쓸하게 들린다.
비가 내리면 풀벌레 우는 소리도 묻히고 만다.
전등불 대신 촛불을 밝혀 놓고 벽에 어리는 그림자와 더불어 차향기에 젖었다.
요즘 나는 촛불 아래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새벽 예불을 마치고 아침 공양 전까지의 입선시간.
촛불을 밝혀두고 앉아 있으면 마음이 한결 차분하고 정신은 별빛처럼 또렷해진다.
전등불은 밝고 편리하지만 촛불만큼 아늑하고 푸근한 맛은 덜하다.
촛불을 살아있는 불꽃이라서 그런지 정감이 간다.
방금,
열엿새 만월이 산등성이 위로 둥실 떠올랐다.
구름 한점 없는 청명한 밤 하늘에 떠오른 정다운 얼굴.
하던 일을 밀쳐두고 뜰에 나가 어정거리며 달마중을 했다.
늘 보아도 달은 정답다.
해처럼 눈부시지 않아 마음 놓고 눈길을 보낼 수 있다.
달과 마주하고 있으면 아무 말이 없어도 무료하지 않다.
달 같은 친구가 있다면 그의 삶이 한결 푸근할 것이다.
가을 달빛에서는 하프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마른 바람에 그 그늘이 성글어진 후박나무 아래 앉아 귀를 모아도,
천지간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낮 동안 굴밤을 따 모으느라고
뒤꼍 굴참나무에 분주히 오르내리며 찍찍거리던 다람쥐 소리도 없고,
먹이를 가지고 다투는 산까치의 거친 날갯짓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여름 밤이면 으레 들려 올 머슴새(쏙독새) 소리도 이제는 없다.
이 적막강산에 들리는 소리라고는 다만 귀뚜라미와 풀벌레 우는 소리뿐.
그러나 귀뚜라미와 풀벌레는
밤의 고요를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막을 거들고 있다.
이 적막과 은은한 달빛으로 몸과 마음을 씻는다.
오늘 아침나절 나는 모처럼 투명하고 아늑하고 충만한 시간을 가졌다.
비가 개인 날 아침의 숲은 신선하고 청청한 기운으로 넘친다.
나무 잎새마다 햇살을 받아 번쩍번쩍 빛을 발하고,
상큼한 숲 향기가 폐 속까지 깊숙이 스며든다.
산새들도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뭐라 재잘거리면서 유쾌하게 날아다닌다.
이런 때 방안에 박혀 있는 자는 살 줄을 모르는 사람이다.
눈 부신 아침 햇살과 싱그러운 산들바람과 풀 끝에 맺힌 영롱한 이슬.
그리고 나무와 새와 풀벌레 등
산의 권속들이 온통 생기와 기쁨에 넘쳐 약동하고 있을 때는
생명의 기쁨을 함께 나누어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이 본질적인 삶인가를 몸소 드러내 보여야 한다.
나는 벗어부치고 일을 시작했다.
방석과 침구를 꺼내어 이 눈부신 숲의 잔치에 동참하도록 햇볕에 널어놓았다.
이제는 철이 가신 발을 거두어 다락에 넣었다.
그리고 청소, 방과 앞뒤 마루를 쓸고 닦았다.
내 마음에 낀 때와 얼룩까지도 말끔히 가시도록 구석구석 닦아냈다.
우물가로 내려가 오늘 아침에 벗어놓은 내의를 빨았다.
뒤깥 빨랫줄에 빨래를 털어 널면서는,
휘파람으로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를 불렀다.
이토록 찬란한 아침에 나는 비로소 가을을 맞은 셈이다.
며칠 전 추위에
긴팔 내의를 꺼내 입으면서도 가을이라는 생각을 미처 못했었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 후박나무 아래 너즈러진 수많은 잎들을 보고,
그 그늘이 어느새 엷어진 것을 보고
'또 가을이네'라고 중얼거리자 내 마음속에까지 그 가을이 스며들었다.
'또 가을이네'라고 무심히 내뱉은
그 말의 울림이 쓸쓸하고 적막한 메아리가 되어 속뜰에 울리었다.
지난 여름과 나는 아직 하직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가을을 맞으려면 이 가을을 잉태한 그 여름에 하직인사를 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이런 생각이 미치자
문득 여름철에 읽었던 몇권의 책이 떠오른다.
'여름' 하면 으례 이버릇처럼 붙어다니는 '무덥고 지루한'이란 수식어가 따르는데,
내게는 지난 여름이 결코 무덥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참으로 재미있고 유익한 몇권의 소설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때는 소설을 읽을 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데,
여름철은 무덥고 따분해서 다른 일은 제대로 할 수 없으니까 소설을 읽게 된다.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을 나는 너무나 재미있고 감명 깊게 읽었다.
한 친구가 먼저 읽고 보내준 책인데,
세 권으로 된 이 소설을 이틀 반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오로지 이 책에만 매달렸었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내 일과는 뒤죽박죽이었다.
예불시간과 공양시간과 취침시간 등이 제멋대로였다.
그만큼 이 소설은 강한 흡인력을 지니고 있다.
16세기말 조선왕조 중엽의 두터운 신분차별의 사회에서
뛰어난 의사 <동의보감(東醫寶鑑)>을 지은 허준(許浚)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다.
'불꽃보다 뜨거운 생애를 살다간 허준의 일대기'라고 저자도 말하고 있지만,
허준이 몸담아 살던 그 시대와 사회
그리고 그가 신의(神醫)가 되기까지 그 둘레의 인물들에 얽힌 이야기로 엮어졌다.
이 소설에서 가장 매력 있는 인물은 허준의 스승 유의태다.
그는 세속적인 명예나 이익에 물들지 않고
자신의 신념대로 꿋꿋하게 살다간 전인적인 양의(良醫)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어떤 것이라는 것을,
그는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준열하게 가르친다.
허준이 권문세도가인 어떤 대감댁 병환을 치료해 주고
그 대감으로부터
궁중의 시의(侍醫)가 되기 위해 추천서를 받았다는 말을 전해 듣고,
스승 유의태는 단호하게 허준을 내쫓는다.
"네가 내게서 배운 재주로 기량을 키우려 하지 않고,
벼슬 높은자의 서찰 따위로
네 앞날을 열려고 마음먹은 그 순간에 너는 이미 나를 배신한 것,
너와 나의 인연은 이제 끝났느니라. 썩 물러가라!"
또 어떤 제자가 약의 비방(秘方)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말을 듣고
유의태는 다음과 같이 꾸짖는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자가 어찌 비방을 얻을 수 있단 말이냐.
스스로 체험하지 않고서야 무엇이 비방이 될지 어찌 미리 알 수 있겠느냐.
세상의 어떤 병도 고치려는 욕심이 없는 자가,
세상의 누구의 병이라도 고치겠다는 맹세가 없는 자가
어찌 어디에 누구에게 쓸 비방(秘方)을 알 수 있단 말이냐!"
약을 처방하고 병을 다스리는 의술에 앞서,
의사가 의사이고자하는 그 심지와 품성을 더욱 중히 여기는 유의태였다.
그러면서 그는 의사가 갖추어야 할 첮째 요건을 자비심에 두고 있다.
뒷날,
위급한 환자를 보고도 치료를 거절한 자신의 아들을 가차없이 의절 내쫓아버리고,
허준이 과거시험까지 희생해 가면서
환자와 인근 마을주민의 병을 치료해 주었다는 소문을 전해 듣고
스승은 다시 그를 받아들인다.
유의태는 자신이 위암으로 소생하지 못할 것을 알고,
제자 허준과 친구들을 어느 날 어느 시까지 어디로 오라고 불러놓고
그 시각에 맞추어 미리 자결한다.
머리말 유서에는,
지체없이 해부를 하여 인체의 내부구조를 샅샅이 보아두라고 당부한다.
해부학 교실이 없던 시절에 제자를 위해 자신이 몸소 실험의 소재가 되어준 것이다.
이와 같은 스승 밑에서 허준 같은 명의가 안 나올 수 있었겠는가.
한 인간의 형성에 스승의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 것인가를
그는 우리에게 극명하게 깨우쳐준다.
이은성의 이 <동의보감>과 에릭 시걸의 소설 <닥터스>는
대조적으로 동양과 서양의 의도(醫道)를 상징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유의태는 그의 유언대로, 옷깃을 스치는 바람이 부는 양지바른 언덕에 묻힌다.
열엿새 둥근 달이 이제는 후박나무 위에 걸려 있다.
듬성듬성 별들이 돋아 있다.
옷깃으로 스며드는 한밤중의 바람끝이 차다.
달빛을 베고 그만 자야겠다. (p253)
- 90. 11.
※ 이 글은 <버리고 떠나기>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법정 - 버리고 떠나기,
샘터(샘터사) - 1993. 0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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