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인터뷰] - 「‘미니멀리스트’ 이혜림 작가」
방 안 깊숙한 곳까지 밝은 햇살이 들어오는 요즘, 실내 구석구석 쌓아둔 물건들이 버겁게 느껴진다. 하루하루가 무겁고, 삶의 속도 또한 축축 늘어지는 게 다 이 짐 덩어리들의 무게 때문인 것만 같다. 대청소를 시작하지만 ‘언젠가 쓸 것 같아’ ‘추억이 담겨 있어’ 결국 버리지 못하고 주워 담는 스스로의 미련함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또 어떤가. 다 버리고 심플하게 다시 시작할 좋은 방법은 없을까. 10년차 미니멀리스트이자 최근 『어느 날 멀쩡하던 행거가 무너졌다』를 낸 저자 이혜림 작가를 만난 이유는 이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멀쩡하던 행거가 갑자기 무너졌다. 행거에 걸려 있던 옷가지들이 모두 앞으로 쏟아졌고, 그때 처음으로 내가 가진 옷의 무게를 느꼈다.” 하루 평균 1만 명의 독자들이 찾는 블로그 운영자이자, ‘브런치’ 시작 3개월 만에 30만 조회를 기록한 이혜림(34) 작가가 대학교 4학년 때인 10년 전 실제로 경험한 일이다.
이 작가는 당시 자타공인 맥시멀리스트였다. “하루라도 같은 옷을 입고 강의실에 가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늘 새로운 옷과 액세서리를 샀어요. 엄청난 독서광이기도 해서 읽지 못한 책들이 집에 잔뜩 쌓여있었지만 계속 새 책을 샀죠. 그러다 진짜 행거가 무너지고 정신이 번쩍 났어요.”
단순하게 살기의 목적은 ‘행복하기’
무언가 변해야 할 타이밍에 일본 작가 사사키 후미오의 책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표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햇살 가득한 원룸 한쪽 방에 다른 가구는 일체 없이 새하얀 이부자리만 펼쳐져 있었는데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졌다. 텅 비어 있는 방, 빈 벽과 여백이 가득한 저런 공간에서 살게 된다면 물건에 얽매이지 않고 늘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이 작가는 극한까지 물건을 버리고 비워냈다. “방안에 전신거울 하나, 작은 스탠드 하나, 4단 서랍장 하나, 이부자리 한 채만 남기고 모든 걸 다 정리했어요. 옷과 신발도 다 처분하고 ‘단벌신사’가 됐죠.”
그런데 극단의 미니멀리스트가 되어 목표를 이뤘다는 성취감도 잠시, 허무함과 우울함이 밀려왔다. “2~3개월 만에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니고 있던 물건 개수는 현저하게 줄었지만 그동안 버리고 비워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너무 지쳤고, 물건을 살 때마다 극심한 자기검열을 겪으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단벌신사’를 실천하겠다고 매일 같은 옷을 입다보니 누구를 만나는 일도 싫어지고 무기력해졌어요. 사사키 후미오처럼 쿠션 하나 없이 벽에 기대 책을 읽는 게 실제로는 정말 힘들더라고요. 이건 정답이 아니었구나 깨달았죠.”
이 작가는 자신만의 미니멀 라이프를 찾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나는 왜 물건을 줄이고 단순하게 살고 싶었나, 나 자신에게 물었더니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라는 답이 나오더군요. 텅 빈 방을 만들기 전, 무엇을 비울까가 아니라 무엇을 남길까를 물어야 했고, 어떻게 비울까가 아니라 어떻게 남길까를 고민했어야 했어요.”
이 작가는 ‘내가 필요로 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고민하며 텅 빈 방과 텅 빈 인생을 다시 채우기 시작했다. 정말 좋아하는 한 가지를 잘 쓰기 위해 필요 없는 것은 버리고, 안사고, 그렇게 돈과 공간을 절약하면서 ‘채우기 위해 비우는’ 자신만의 건강한 미니멀 라이프를 만들어갔다.
5년 전 결혼할 때 이 작가의 어머니가 가장 많이 한 말은 “다들 그렇게 살아”였다. 그때마다 이 작가는 “그래도 나는 이렇게 살 거야”라고 답했다. 둘 다 간호사인 한 살 터울의 부부는 결혼식도 스몰웨딩으로 치르고, 9평 원룸에서 단출하게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사실 부부의 미니멀 라이프 노하우는 결혼 후 2년 만에 직장까지 그만두고 떠난 1년간의 세계여행에서 얻은 게 많다. 언제 어디서든 떠나고 싶으면 떠나고, 머물고 싶으면 머물면서 자유롭게 사는 인생을 꿈꿨던 부부는 자신들이 가진 모든 짐을 캐리어 하나에 몽땅 넣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1년 후 돌아올 집을 위해 어느 것 하나 남기지 않았다. 살림살이와 가구를 몽땅 팔고나니 여행에 지고 갈 7㎏ 짜리 배낭 두 개, 친정집에 맡겨둘 리빙 박스 두 개, 캐리어 두 개, 컴퓨터와 침구세트만 남았다. “우린 인생의 즐거움을 위해 여행을 선택했고, 행복한 인생에 필요한 물건은 그리 많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결국 무게중심을 어디에 두고 살아야하는지가 중요한 거죠. 7㎏ 배낭 하나만으로 1년 간 충분히 행복했고, 앞으로도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가볍게 떠날 수 있도록 비워야겠구나 생각했어요.”
다들 그렇게 살아도 나는 이렇게 산다
두 사람의 집엔 지금도 전자레인지·텔레비전·식기세척기·제습기·공기청정기·정수기 등의 가전제품이 없다. “남편은 여름에는 검정 반팔 티셔츠 다섯 장, 겨울에는 검정 긴팔 티셔츠 세 장을 번갈아 입으며 지내요. 덕분에 옷장과 신발장에 여유가 생겼고 넉넉해진 용돈으로 재테크를 시작했다고 좋아해요.”
이 작가 역시 1년 간 옷과 신발을 사지 않는 ‘노쇼핑’에 도전한 바 있다. “내가 가진 것으로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하니까 사고 싶은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지금까지 정말 필요해서 쇼핑을 한 게 아니라 습관처럼 무의식적으로 구매를 했던 거죠. 물론 극단적인 ‘노쇼핑’을 죽을 때까지 할 순 없어요. 하지만 일정기간 간헐적으로 ‘과연 내가 ○○없이 살 수 있을까’ 도전해보는 건 좋은 것 같아요. 내가 정말 좋아하고, 필요로 하는 게 뭔지 알면 버리고 남길 기준이 생기니까요. 일종의 습관의 재정비 시간을 갖는 거죠.” 요즘 이 작가의 옷장 속에는 총 서른 벌의 옷이 있다. 평소 원피스만 입기 때문에 겨울 원피스 두 개, 여름 원피스 두 개, 사계절 입을 수 있는 소재의 원피스가 서너 개. 그리고 카디건·코트·패딩점퍼·주말농장 룩(바지&스웨트 셔츠)·티셔츠 하나 등이 있다.
이 작가는 사고의 전환을 경험한 뒤, 줄이는 일은 꼭 물건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과다한 지출, 과한 업무, 복잡한 인간관계, 과식, 좋지 못한 습관이나 마음가짐일 수도 있죠. 지금 이 순간 이게 내게 꼭 필요한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가 고민하면서 취사선택하는 것. 이게 미니멀 라이프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이 작가는 10년간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면서 제로웨이스트 운동, 선택적 채식주의를 시작했다. 비워낸 자리를 건강한 것으로 채우자 결심하면서 주변 모든 것이 선순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겼고, 처음부터 버릴 일 없도록 지구에 무해한 삶을 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미니멀 라이프는 수단이 돼야지 목적이 돼선 안 돼요. 무조건 버리고 비워서 텅 빈 공간을 만드는 게 최선은 아니거든요. 제가 바라는 ‘건강한 미니멀리즘’은 내가 무엇을 하기 위해 비우는가를 먼저 생각하는 거예요. 돈·체력·시간·에너지·물건·인생 등등 인생의 모든 것은 유한해요. 남들이 하는 대로 모두 욕심내다보면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을 맞죠. 그럴 때, 내게 필요하고 소중하고 좋아하는 것만 남기면 모든 게 명확해지면서 하나하나 정말 알차게 쓸 수 있게 되죠.” (2면)
- 삶에서 ‘불필요’와 ‘군더더기’를 줄이고 비우며 갖게 된 여분의 시간과 에너지, 공간,
돈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시작할 수 있다는 데 집중하자.
미니멀 라이프의 결과로 내가 얻게 되는 것이 뭔지 계획을 잘 세운 후 비우기를 시작하는 게 바람직하다.
- 먼저 버려야 할 것들 : 동일한 목적으로 여러 개 갖고 있는 것, 고장 난 것, 그저 처분하기 귀찮아서 방치한 것들.
더는 쓰지 않지만 비싸게 사서 아깝다는 것들에도 미련을 버리자. 옛날 구매 가격과 지금의 가치는 전혀 다르다.
- 가끔은 일정 기간 ‘○○없이 살기’ 챌린지를 해보자.
내가 정말 좋아하고, 필요로 하는 게 뭔지 확실히 알 수 있고, 버리고 남길 것들의 기준이 생긴다.
- 한번 소유한 물건은 애지중지 소중히 쓰다가도 만약 이 물건의 쓰임이 다한다면 미련 없이 기꺼이 비우겠다는 마음을 갖자.
있을 때 충분히 누리겠다는 마음이 중요하다.
- 삶의 모습이 모두 같을 수 없듯, 미니멀 라이프도 모든 사람이 같은 모습일 수 없다.
- 많을 때보다 적을 때 더 소중함을 느낀다. 머리끈이든, 음식이든 여러 개면 관리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 더는 사지 않는 것들 : 클렌징오일, 린스, 바디워시(욕실에선 비누 한 장으로 충분하다).
스킨, 에센스, 아이크림(여름에는 덜 바르고 겨울에는 더 발라주면 로션 하나로 충분하다).
주방·욕실의 발 매트(남의 집에 있으니까 사봤는데 없어도 상관없더라).
형형색색의 펜과 디자인 문구(버리고 나서 제일 안 찾는 물건들이다).
- 책을 구입하는 목적은 읽기 위해서다. 그러니 이미 한번 읽음으로써 책을 구매한 가치를 다했다고 본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은 독서노트에 적음으로써 그 책은 내게 충분한 가치와 기쁨을 주었다.
‘언젠가’ 읽기 위해 보관하는 ‘인생 책’은 책장 한 칸 분량이면 충분하다.
- 단순하게 살다보면, 어느새 돈 쓰는 방식도 더없이 단출해진다.
미니멀한 소비, 가벼운 삶을 살다보면 통장에 돈이 남는다.
내가 사고 싶다면 언제든 살 수 있을 만큼 여유로워지면 굳이 지금 당장 살 필요가 없어진다.
- 물건에 감정을 담지 않는다. 영원히 ‘소중한’ 물건은 없다.
- 지진·화재 등 생명의 위기 앞에서 꼭 챙겨야 하는 물건을 때때로 생각해보자. 의외로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는 데 놀랄 것이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중앙선데이 - 2022. 0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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