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센스 - 「아름다워서 눈물 나는 가족이야기」
남자가 보내온 마흔여덟 송이의 장미에는 흑백의 꽃과 잎사귀만 존재할 뿐 그 어디에도 가시는 없었다.
30여 년을 건설현장에서 닳고 거칠어진 손마디를 가진 중년의 남자가 하나하나 그렸다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섬세한 장미는 송이 송이마다 마치 진짜 장미 꽃다발처럼 활짝 핀 것, 봉우리가 덜 피어 오른 것,
한 방울 정도의 이슬을 머금고 있는 것까지 화려했지만,
오히려 검정 볼펜으로 표현하기 더 쉬웠을 가시는 존재하지 않았다.
궁금함도 잠시,
갇혀 있는 몸으로 마누라의 마흔여덟 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투박한 양면괘지 하나 그득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미를 일일이 그려 보낸 남편이 고맙고 안쓰러워 눈물만 흐를 뿐이었다.
"얼라는?"
"밥 도!"
"자자."
경상도 남자와 결혼하면 이 세 가지 말 외엔 기대하지 말라는 풍월이 정말 맞아서일까?
남편은 정말이지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 사람이다.
경상도에서도 끝이라는 거제도 출신에 양반의 도리는 침묵이요,
남자의 덕목은 과묵이라는 시아버지의 가르침마저 더해졌으니
남편의 성격은 날 때부터 정해져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그 무뚝뚝한 성격에 반해 남편을 사랑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무슨 짓을 해도,
나무람 없이 빙긋이 웃어만 주던 남편의 모습이 항상 나를 보듬어주는 것만 같았고,
가끔 내뱉는 나지막한 목소리는 왠지 모를 절대적인 믿음까지 주었기에 아홉 살이나 나는 나이 차,
다 마치지 못한 학업을 내팽개치고서라도 그의 여자가 되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운영하는 건설회사 말단 직원이던 남편과의 결혼은 결코 순탄할 수 없었다.
나이 차는 봐주더라도 찢어지게 가난한 고향집을 뒤로하고 다섯이나 되는 동생들의 학비를 대기 위해
변변한 의복 한 벌 없이 회사에서 먹고 자며 타향살이를 하는 놈에게
가장 귀애하던 막내딸을 쉬이 내줄 성인군자는 이 세상은 물론 저 세상에도 없다는 것이 아버지의 변이셨다.
자신의 고용주이기도 하였던 아버지를 무척이나 어려워해 눈 한 번 바로 마주치지 못하고,
말 한 번 못하던 남편은 자신의 가장 큰 무기였던 침묵으로 시위를 시작했다.
하루 종일 건설현장에서 막일을 하던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우리 집에 와 막내딸을 주십사 대청마루 앞에 납작 엎드려 밤을 새우는 십여 일이 지나갔다.
아버지의 수없는 욕설에도 바가지로 퍼내는 물세례에도 한 마디 말없이 망부석처럼 자리를 지키던 남편의 모습에,
밤을 꼴딱 새우고도 지친 기색 없이 누구보다 열심히 현장에서 일하던 모습에
아버지도 마침내 두 손을 들고 결혼을 허락하셨다.
"남자란 자고로 저렇게 묵직한 게 진국이여."
끝내는 남편의 성격에 반해 딸을 허락한 아버지와 달리 남편과의 결혼은 내게 갑갑함의 시작이었다.
연애시절 하루 몇 마디 정도는 들을 수 있던 남편의 목소리는 결혼 후 점점 줄어들었고, 무뚝뚝함도 더해갔다.
거기에 셋이나 있는 아들을 뒤로하고 자신의 후계자로 남편을 점찍었던 아버지는 사우디로,
이란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남편을 데리고 나가셨으니, 나는 말로만 결혼한 생과부가 따로 없었다.
아이라도 낳으면 좀 달라질까 하는 기대를 가져보았지만
아이 셋을 낳고도 남편은 여전했고 그럴수록 나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
불만이 최고조에 이르는 날은 다름 아닌 기념일이었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여자라면 누구나 기대하고 꿈꾸는 그런 날도 남편은 타지에 있거나 잊고 넘어가기 일쑤였고,
어쩌다 아이들이나 친지들에게 들어 알게 되더라도 고작 하얀 봉투 하나에 얼마의 돈을 집어넣어,
그것도 손에 한번 쥐어주는 법 없이 식탁이며 서랍 위에 툭 던져놓을 뿐이었다.
"누가 돈 달래?
어째 손이 없나? 장미 한 송이를 못 사오냔 말이야."하며 악을 써대도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빈 웃음뿐이었다.
무슨 말을 해도 소리를 질려봐도 언제나 침묵뿐인 남편 덕에 싸움은 언제나 나 혼자만의 것이었고
입이 마르고 속이 타는 사람도 언제나 나일 뿐이었다.
남편의 무뚝뚝함은 세월이 흘려도 내가슴엔 딱지가 앉지 않은 상처가 되어 나를 괴롭했고,
매해 돌아오는 두세 번의 기념일은
언제부턴가 말 없는 남편에게 꼬투리를 잡아 분풀이를 하는 날로 변해가고 있었다.
곰 같은 남편과 그렇게 20년을 넘게 보내고 살갑지 못했던 결혼생활에 회의가 쌓일 무렵
칠순이 넘도록 일을 놓지 못했던 아버지가 자식처럼 돌보고 가꾸던 회사는 갑자기 휘청거리기 시작하였고,
아버지는 이내 눈을 감으셨다.
장례식을 마치고 장인을 보낸 슬픈 마음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회사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니던 남편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고,
남편은 결국 회사의 빚으로 구치소에 가게 되었다.
변변한 집 한 칸 남은 것도 없이 허덕이던 가정 형편에 남편은 손 한 번 써보지 못한 채 1년 6개월의 형을 받게 되었다.
창살 속에서도 아무 말 없었던 남편은 면회시간이 끝나도 돌아가지 못하고 울며불며 매달리는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단 한마디를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두어 달 후 맞은 마흔여덟 번째 내 생일.
옥에 둔 남편에 대한 염려로 딸아이가 끓여준 미역국 한 모금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장미 마흔 여덣 송이가 그려진 편지를 받았다.
가시 없는 검은 장미 한 다발 아래에는 편지가 있었다.
'가끔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상점 주위를,
싱싱한 꽃들로 넘쳐나는 화원 주위를 서성거렸소.
허나 언제나 마땅하지 못한 것들뿐이었다오.
이곳에 와서야 당신에게 꼭 맞는 선물을 할 수 있게 돼서 기쁘오.
마흔여덟 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오.'
화사한 장미의 빛깔도,
향기로운 장미 내음도,
매혹적인 장미를 완성해주는 가시 하나도 구경할 수 없는 시커먼 장미 한 다발이
그렇게 수십 년의 세월을 '사랑해' 말 한마디 못했던 사내의 마음을 대신하고 있었다.
변덕스럽고 까다로운 어린아이 같은 아내에게 마땅한 선물을 찾지 못해
수 십 년의 세월을 돈 봉투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는 남편은 떳떳이 죗값을 치르고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너무 쇠약해진 몸과 정신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얼마 후 아버지를 따라 먼 곳으로 떠나갔다.
가시 없는 장미 한 다발은 내게 그렇게 생애 첫 선물이자 마지막 선물이 되었다.
무뚝뚝함을 남편의 도리로 여기고 살았던 남자,
평생을 큰소리 한 번 치지 못한 채 가족을 위해 언제나 숨죽여 살았던 사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는 끝내 하지못한 채 끝내 내 곁을 떠난 남편의 마지막 선물은
가끔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내 가슴을 찌른다. (p15)
- 안숙자 (서울시 관악구 신림1동).
우먼센스 - 2007. 5월호 별책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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