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한국일보 소설 당선작 - 바둑 두는 여자 」
기연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무심한 표정으로 개찰구를 빠져나오던 그녀 앞을 가로막았다.
이 무슨 용기람.
순간의 망설임도 없는 자신의 행동이 내심 놀라웠다.
“최정 씨 맞죠?”
자신에게 말을 건 게 확실하다는 걸 눈치챈 그녀가 기연을 바라보며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갓 스물이 되었을 것으로 기연은 짐작했다.
신문 전면을 가득 채운 바둑계의 입신킬러 최정이 지금 기연의 눈앞에 있다.
초단인 열네 살 소녀가 9단 여섯 명을 내리 꺾어 ‘지지옥션배’에서 8연승을 거뒀다는 기사였다.
흑돌 만큼이나 까만 눈동자와 당찬 입매가 고스란히 기연에게 각인되어 있었다.
기사를 오려 스크랩북을 펴들고 인물란과 예술란 중 어디에 넣을지를 고민했던 것까지.
그때 본 열네 살의 최정과 눈앞에 실물이 중첩되어 지금의 상황이 더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저 반가울 뿐 그녀를 방해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바쁜데 죄송해요. 제가 최정 기사 팬이에요.”
“아, 감사합니다.”
옅은 미소를 머금은 그녀가 쑥스럽다는 듯 대답은 간결했다.
쑥스러움이 전이라도 된 걸까.
기연은 다음 말이 언뜻 떠오르지 않았다.
“바둑 잘 보고 있어요.”
“네에.”
누군가에게 마음을 담아 당신의 삶을 응원한다는 말이 이렇게 하기 어렵고 낯선 일이었다니.
그 틈에도 최정을 만났으니 오늘 상왕십리까지 온 이유는 이것으로도 의미가 있다, 고 기연은 생각했다.
그녀는 잠깐 우 교장을 떠올렸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오늘 이 대면은 없었을 테니.
“근데, 지금 어디 가세요?”
기연은 최정의 모든 것이 궁금한 듯 팬심을 드러내고 말았다.
차 한잔하며 그녀의 바둑 인생에 대해 인터뷰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이쯤에서 그녀를 놓아주어야 한단 생각을 동시에 하면서 나온 말이었다.
“아, 한국기원에 가는 중이에요.”
한국기원.
우리나라 바둑의 본산.
그 대단한 곳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녀가 신기했다.
한국기원은 어디쯤 있는지,
거긴 매일 나가는 건지,
기원에서의 하루 일과는 어떤지,
집은 어디며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학교 다닐 나이에 바둑만 두는 일은 행복한지…….
그녀가 이어폰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시선을 거둘 때,
서둘러 오늘 정말 반가웠어요,
계속 응원할게요.
거기까지였으면 좋았겠다고 집으로 돌아오는 열차에 자리를 잡고서야 기연은 생각했다.
“우리 악수나 한번 할까요?”
최정은 잡았던 돌을 무심히 어딘가에 툭 놓지만 대부분이 요석이요,
상대를 장고에 들게 하는 난공불락의 묘수일 때가 많다.
기연은 바로 그 손을 잡아보고 싶었다.
그녀는 손가락 부분만 닿을 정도로 손의 반쯤을 기연에게 내어주었다.
정치인들이 손을 내밀었을 때 기연이 하던 행태와 닮아있었다.
손은 따뜻했고 부드러웠다.
그들이 반쯤 내민 손을 꽉 잡았을 때의 불쾌감을 주지 않으려고
기연도 그만큼의 악력으로 그녀의 손을 감싸 쥐었다.
기연의 손에서 벗어난 최정이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를 하곤 역사 밖으로 빠져나갔다.
귀에 다시 이어폰을 꽂는 그녀의 뒷모습은 문득 최정이 아닐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 만큼 평범했다.
말주변이 좋다는 소리를 들어왔던 기연이
경이로울 정도로 반가운 사람을 만나 고작 이런 얘기밖에 할 수 없다니,
못내 아쉬웠다.
동방신기의 공연을 보러 일본을 몇 차례나 오갔다는 후배 K가 기억 저편에서 잠시 떠올랐다.
'초행길인데
잘 도착했나요?'
멍해 있는 기연의 주머니에서 문자 알람이 울렸다.
우 교장이 보낸 문자였다.
그는 지금 다리에 석고붕대를 감았을까,
아직도 부기 빠지길 기다리는 중일까,
궁금했다.
'이제 역에서 막 내렸어요.
도착하면 문자 드리겠습니다.'
몸은 좀 어떠시냐고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그간의 앞뒤 사정을 모르거니와 바둑학원을 제대로 찾아가는 일이 먼저였다.
우 교장의 걱정도 그거였으므로.
기연은 서울에 처음 온 사람처럼 두리번거렸다.
네 개의 출구 중 어느 쪽으로 나가야 방향이 맞을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데이터를 켜고 검색 창에 오형제바둑학원을 입력했다.
지도앱도 기연처럼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다 서다를 반복했다.
일단 최정이 나간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국기원을 간다고 했으니 오형제바둑학원도 그 방향일 확률이 높다.
역사에서 도로로 이어지는 계단은 꽤나 가팔랐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올라오다 말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노인의 긴 한숨 옆으로 후드티를 입고 백팩을 멘 청춘들이 뛰듯이 계단을 오갔다.
집채 만 한 여행 가방을 힘들여 끌고 가는 외국인노동자들도 눈에 띄었다.
예기치 않은 이유로 여기에 와있는 자신처럼,
십분 뒤를 모르는 각자의 생이,
저들을 이곳까지 데려왔을 거라고 기연은 생각했다.
역사와 이어진 쇼핑센터의 소음이 열차 소리와 겹쳐 귓속을 파고들었다.
이월상품을 최저가로 판매한다는 홍보였다.
기연은 발길을 그곳으로 돌렸다.
열차 시간에 맞추느라 시간은 여유가 있었다.
거리상으로 15분 정도면 도착한다는 지도앱의 안내도 믿어보기로 했다.
바둑교실의 분위기도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는 상태에서 본래 멤버도 아닌 대타가 일찍 도착해 얼쯤해지지 않을까 싶던 터였다.
멀리서 눈에 들어왔던 옷들이 가까이 보니 별로였다.
기연이 좋아하는 회색, 군청, 갈색, 카키, 검정은 대부분 남성 옷들이었다.
지금도 그랬다.
그 얘길 하면 판매원들은 남녀공용이라 괜찮다고 권하지만 사이즈에서 기연은 언제나 제외였다.
연두, 주황, 노랑, 빨강, 보라로 취향을 바꾸거나 남자 옷을 사서 줄여 입거나 할밖에.
태어나자마자 분홍색과 하늘색으로 아이들의 성별을 구별 짓는 상술이 언제쯤 깨지려는지,
시간만 낭비한 기연은 씁쓸히 발길을 돌렸다.
지난달,
기연은 십여 년 해오던 글방을 그만두었다.
아이들이 흘린 과자부스러기며 책상 위에 달라붙은 지우개 가루를 쓸어내고
매일 같은 시간에 문을 여닫는 일에 지쳐갔다.
어쩌면 그건 핑계일지 모른다.
고단해도 아이들이란
저마다 귀여운 구석이 없지 않고 예기치 않은 순수함에 작은 떨림이 오기도 하는 법이니.
문제는 어른들이었다.
그들은 때로,
전혀 어른스럽지 않았다.
왜 상을 받지 못하는지 따지는 건 참을 만했다.
제시간에 아이를 보내지 않아 수업 분위기를 깼고,
빌려 간 책은 돌아오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연락도 없이 빼먹고 나중에 보충을 해달라거나
수업료를 제때 주지 않다가 그냥 이사를 가버리기도 했다.
통장으로 입금을 하지 않고 아이 편에 현금을 찔끔찔끔 쥐어 보내는 이해불가의 경우까지.
그들의 몰상식이 아이와 겹쳐질 때면 아이마저 보기가 싫었다.
문을 닫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할 즈음,
걸리는 건 자신의 앞날이 아니라 승재였다.
“말이 늦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지만,
다른 아이들처럼만 대해 달라”던 승재엄마의 바람을 기연이 지키지 못한 것인지도 몰랐다.
어휘가 늘고 아이들과의 관계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상을 받지 못했다고 시무룩해 하지도 다른 욕심을 부리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기연은 승재가 걸렸다.
그 무렵,
개교기념일 시화전에서 상을 받았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승재엄마의 들뜬 목소리가 글방 문을 닫아도 된다는 허락처럼 기연에겐 들렸다.
글방 문을 닫고 며칠 동안 기연은 집에서 뒹굴며 지냈다.
알람을 맞출 필요도 없고 꼭 밥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닌 날들이 이어졌다.
냉동실에 얼려둔 인절미나 토스트 한쪽이면 끼니가 되었다.
커피를 내려놓고 잊어먹는 경우도 있었다.
하루에 한 시간 걷던 산책도 내키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시리즈물을 보다 소파에서 잠들거나 바둑 중계에 빠져 희뿌옇게 밝아오는 새벽을 맞기도 했다.
초인종이 울려 벽에 붙은 인터폰 창을 올려다봤다.
통장이었다.
기연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도 전화를 받지 않아서 왔어.' 문을 열자마자 몸부터 들이민 통장은
잠깐이면 된다며 권하지도 않은 차를 마다하듯 손사래까지 쳤다.
“기연 씨,
글방도 닫았는데 알바 하나 안 할래?” 통장의 말은 앞뒤 없이 이어졌다.
“퇴직한 교장 선생님인데 자서전을 쓰고 싶대.
깔끔한 사람이야.
자기도 만나보면 알 거야.”
통장은 이 아파트를 분양받을 때 기연과 같이 입주한 몇 안 남은 이웃.
따로 만나거나 집안 사정을 나눌 정도는 아니지만 기연에게 말을 놓는 유일한 동네 주민이다.
기연은 하고 말고를 떠나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어떻게 아시는 분인데요?”
“여기 자치회에서 알게 됐지. 이 아파트에 사셔.”
“아, 그래요.
그런데 교장 선생님까지 하신 분이면, 직접 쓰시면 될 텐데 왜…?”
한번 만나나 보라며 통장은 전화번호를 건넸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
아까운 재주 필요한 데 쓰란 말도 덧붙였다.
게으름에 막 재미를 붙이려는 기연에게 통장의 제안은 성가신 일이었다.
그런데 유명인이 대필 작가를 고용해 자서전을 쓰는 경우는 봤어도 일반인이 의뢰하는 거라면,
연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긴 했다.
역을 조금 벗어나자 영업을 하는 중에도 재건축이나 증축을 하는 건물들이 꽤 많았다.
가느다란 목재와 알루미늄 파이프로 얼기설기 떠받힌 공사현장은
그 밑을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까 싶게 불안했다.
고개를 수그리고 걷느라 기연은 오형제바둑학원을 조금 지나쳤다 다시 돌아왔다.
상가건물 4층에 자리한 바둑학원은 이름값에 비해 오래된 건물이었다.
다행히 공사 중은 아니었다.
북향인 탓인지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음습한 먼지내가 훅 끼쳐왔다.
2층엔 문 앞에 우편물이 어지럽게 널린 태국 마사지 숍이,
3층엔 붉은 입술이 벽 전체에 그려진 칵테일이란 술집이 자리하고 있다.
문 앞에 젖은 대걸레가 있는 것으로 봐선 영업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침내 4층,
오형제바둑학원이란 나무명패가 두꺼운 유리문 옆에서 기연을 맞았다.
문을 밀고 들어가면 된다.
어쨌든 우 교장 대신 수업에 참가하는 게 기연이 할 일이었다.
손잡이를 밀고 들어서려는 순간,
문이 확 열렸다.
청년이 문을 밀고 밖으로 나오려다 기연을 보고 들어오겠냐는 듯 주춤했다.
가벼운 눈인사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기연은 안으로 들어갔다.
우 교장의 집은 강변에 접해있는 동이었다.
분양을 받을 때 값이 좀 더 나가 기연으로선 넘볼 수 없었던.
도로와 인접해있는 기연의 집과는 직선거리로 200미터나 될까.
가까운 거리,
같은 아파트에 살았지만 그들은 서로를 모르고 지내왔다.
이렇게 와 줘 고맙다며 우 교장은 기연을 반갑게 맞았다.
어디서 뵐까요,
기연이 물었을 때 집에서 만나면 좋겠다는 그의 청을 따른 데 대한 인사였다.
“우선 차를 좀 끓일게요.”
우 교장은 전기주전자에 물을 붓고 다구 일습을 두 사람이 마주 앉은 다탁으로 옮겨왔다.
광목다포에 가지런히 얹힌 다기들이 소꿉장난처럼 귀여웠다.
지리산 세작이라고 쓴 둥근 통에서 대나무수저로 떠낸 차를 백자다관에 담았다.
끓인 물로 다관 안에 넣은 차를 헹궈낸 후 한 김 식힌 물을 다시 부었다.
차가 우려지는 동안 나무집게로 빙글빙글 돌려가며 찻잔도 따뜻하게 데워냈다.
그때까지 우 교장도 기연도 말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둥근 받침에 찻잔이 올라앉고 맑은 차가 담기자 바닥에 붙어있던 연꽃잎이 막 피어난 듯 일렁였다.
어서 들라며 우 교장이 먼저 입을 뗐다.
처음 본 사람.
하루 전까지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
이름만 겨우 아는 사이.
단 둘뿐인 지금 이 자리가 기연은 이상하게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바둑을 좋아하시나 봐요.”
일인용 소파 앞에 놓인 바둑판과 그 옆에 쌓인 바둑책들을 보고 기연이 물었다.
“좋아하죠.
너무 좋아해서 탈이에요.”
“어머,
탈이 날 정도면 얼마나 좋아하시기에?”
어른들이 반듯하게 생겼다고 할 때 적합한 인상의 우 교장은 사람 좋은 얼굴로,
그러게 말입니다 하고 웃어넘겼다.
차가 아직 남아있는 찻잔에 우 교장은 다시 차를 부었다.
기연은 얼른 두 손으로 찻잔을 살짝 잡았다 놓았다.
기연의 시선이 잠시 머물렀던 가족사진을 돌아보며 우리 식구들인데 이제 나 혼자 남았어요,
바둑 격언에 장고 끝에 악수 둔다고,
난 장고도 제대로 해보지 않고 악수만 둔 게 아닌가 싶어요.
기연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벽 정중앙에 걸린 가족사진은 고생기 없어 뵈는 부부와 정장 차림의 딸과 아들이,
공익광고의 가족 모델처럼 완벽해 보였다.
목 안으로 차 넘기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기연은 애를 썼다.
첫 만남이니 자서전을 써줄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한 얘기를 나눌 거란 예상은 빗나갔다.
“2년 전,
아내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애들은 장례 때 보고 못 봤어요.”
불행은 오래전 시작되었다고,
우 교장은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담담히 자신의 가족사를 기연에게 털어놓았다.
고1때 가출한 딸을 친구 집도 피시방도 아닌 담임의 집에서 찾았을 때가 기회였을지 모른다고.
딸이 왜 그랬을까는 안중에 없었다고.
우 교장은 ‘자신의 딸이 가출했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버지로서 자신의 머리를 제대로 깎지 못한 데 대한 반성보다,
교육자로서 누가 알까 체면이 먼저였다.
아이와 아내를 나무라고 담임에게조차 무책임하다며 비난만 퍼부었다.
그 시간 이후, 아이들과는 더 서먹해졌고 아내와도 부부로서의 신뢰를 잃어갔다.
호봉이 올라갈수록 친구들은 부부 교사인 우 교장네를 중소기업 못지않다고 부러워했다.
아내는 후배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며 명예퇴직을 원했지만 그는 만류했다.
아내가 학교에서 벗어난 건 폐암진단을 받고 난 뒤였다.
우 교장에게는 부족한 거 없는 가정이었지만,
가족들 사이에 온기가 사라진 지 오래란 걸 우 교장만 모르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뭐든 열심히 하라고만 했지,
싫다면 왜 싫은지,
하고 싶다면 그 이유가 뭔지……
돌이켜보니 그런 걸 물어본 적이 없어요.”
우 교장의 회한은 깊어 보였다.
기연이 선뜻 말을 받지 못했다.
“내 이름 우명환을 빗대서 유명한 딸,
유명한 아들이라며 고등학교 내내 놀림을 받았다는데 그것도 몰랐으니,
이름만 애비였지.”
얘기 끝에 그는 쓴 입맛을 다셨다.
아내가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기 전까지도 그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항암치료 덕인지 잠깐 차도를 보였거니와, 불행이 자신에게 그리 가까울 리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아내가 투병 중에도 그는 자신에게 집중했다.
자서전을 쓰는 친구들을 보면서 교육자로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그 작업이 괜찮아 보였다.
전동열차로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H시에서 서울까지 오르내리며 신문사 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자서전 쓰기 강의까지 들어두었다.
항암치료를 끝낸 아내가 대학병원에서 집으로,
집에서 요양병원으로,
요양병원에서 다시 대학병원으로 옮겨가는 동안 세상 보는 눈이 달라졌지만 되돌리기엔 너무 늦은 뒤였다.
어떤 조건으로 일을 맡을지,
인생의 어느 시점을 중심으로 하는 게 좋을지,
분량이나 기한은 어떻게 할지 등의 구체적인 내용이 오가진 않았다.
익숙한 일도,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 형편도 아닌 기연으로선 반드시 해야 할 일인지도 의문이었다.
당분간 시간이 되는대로 편하게 보는 것까지 합의를 봤다.
바둑학원 입구에 놓인 계산대에 서 있던 남자가 기연을 향해 어떻게 오셨냐고 물었다.
저간의 사정을 말해야 할까,
양 사범의 수업에 왔다고 해야 할까 기연은 잠시 망설이다 후자를 택했다.
그는 가운데 쪽에 난 중문을 고갯짓으로 가리키며 거기로 들어가면 된다고 했다.
앉아있는 사람 수에 비해 바둑학원은 조용했다.
통에서 바둑돌을 집어내는 소리만 달그락거릴 뿐.
성인 남자들이 대부분인데 엄숙한 표정으로 바둑판을 들여다보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도 두엇 눈에 띄었다.
전에 몇 번 가봤던 일반기원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두 칸 정도의 계단을 오르면 바둑에 관한 책들이 진열된 책장이 있고,
오른편으론 다양한 바둑판들이 원형질의 나무 냄새를 풍기며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전시용인지 파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왠지 마음 놓고 구경해선 안 될 것 같아 기연은 눈으로만 훑어보았다.
그때 책장 옆 미닫이문을 열고 나온 젊은 남자가
“천천히 둘러보세요,
필요하시면 부르시고요.”라며 기연 옆을 비켜 지나갔다.
아직 수업을 시작하려면 여유가 있었다.
나뭇결이 은은하고 색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견고한 원목 바둑판을 기연은 손으로 가만히 만져보았다.
남편의 서재 어딘가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자신의 집 바둑판을 떠올리며.
바둑을 둘 때면 다리 한 개가 짧아 살짝 기운 바둑판에 종이를 접어 괴곤 했던.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양 사범이 바둑학원으로 들어섰다.
여기저기서 부산한 인사가 오갔다.
기연은 화들짝 놀라 얼른 두 개의 계단을 내려섰다.
인사가 끝나고 양 사범이 중문 안으로 들어가자 기연도 그 뒤를 따랐다.
교실 반 만 한 강의실엔 얼추 서른 명도 넘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기연은 몸을 낮춰 빈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때 양 사범이 앞쪽 비어있는 한 자리를 손짓으로 권했다.
기연은 거절할 새도 없이 그가 권한 앞자리에 앉는 수밖에 없었다.
우 교장 집을 몇 차례 드나들던 어느 날,
뜻밖에 기연을 맞이한 건 거실 중앙에 놓인 바둑판이었다.
두 사람은 바둑판 앞에 약속이나 한 듯 마주 앉았다.
“우리 집에 온 사람 중에 바둑에 관심을 보인 사람은 김 선생이 처음이에요.
아, 물론 여자들 중에 말입니다.
어렸을 때 바둑을 두다 아버지한테 크게 혼난 다음부터 금기시되다시피 해서 미련만 있지,
나도 잘 두진 못해요.
아내와 두고 싶기도 했는데 아내도 아이들도 관심을 안 갖더군요.”
대부분 그렇듯 기연도 어릴 적 오목을 두면서 바둑을 시작했다.
방학이면 사택에 머물렀던 아버지는 일직을 서는 선생님들과 자주 바둑을 두었다.
기연은 그 옆에 붙어 앉아 검은 돌을 잡는 사람이 먼저 둔다는 것,
집이 많은 사람이 이긴다는 것,
‘아다리’를 막지 못하면 돌이 죽는다는 것,
축을 모르고 계속 놓다가는 그야말로 낭패라는 것까지 어렴풋이 깨우쳐갔다.
바둑판 전체에 흑돌 아홉 점을 깔고 아버지와 마주 앉았던 5학년쯤의 기억이 기연에겐 아직 생생하다.
시골 학교에서 H시로 전학을 오고나선 더 이상 어깨너머로나마 바둑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점포 앞에 앉아 바둑을 두던 노인들을 가끔 버스 바깥 풍경처럼 지나쳤을 뿐.
남편과도 종종 바둑을 두었다.
결의는 프로기사 못지않게 비장했지만 매번 지는 쪽은 기연이었다.
대학입시를 치른 후,
바둑 월간지를 구독하고 아이들 학습지처럼 집으로 배달되는 문제집을 꼼꼼히 공부했다는 남편.
그의 기력은 기연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바둑이 끝나면 초기 포석을 복기하고
어디서부터가 패착이었는지를 차분히 설명해 주었지만 기분이 상한 패자에겐 들리지 않았다.
그때까지 기연에게 바둑은, 승부를 가르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는지 모른다.
우 교장은 일단 넉 점을 깔게 했다.
자신을 의식하지 말고 혼자 연습한다 생각하고 두고 싶은 곳에 척척 놓으라고 했다.
그 말이 기연에겐 위로가 되었다.
남편에게선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우 교장은 바둑을 두는 내내, 표정 변화도 그 어떤 충고도 하지 않았다.
내리 두 판을 두는 동안 기연은 막 입대한 아들도,
비행기로 12시간이나 떨어져 있는 남편도, 자신의 미래도 모두 잊을 수 있었다.
앞에 앉은 우 교장의 존재마저도.
집으로 돌아오는 기연의 이마 위로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졌다.
가을을 서둘러 기다릴 자신은 없지만 여름만큼은 얼른 지나가면 좋겠다고,
비라도 한바탕 퍼부었으면 좀 낫겠다고 기연은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자서전보다는 자제분들에게
아빠로서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속내를 직접 쓰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소견입니다.
선생님을 뵙는 동안 제가 느꼈던 솔직한 심정입니다.
직접 쓰시기 뭣하시면 자서전의 성격을 띠어도 괜찮을 거 같긴 합니다.
여기까지 썼을 때 우 교장에게서 장문의 문자가 왔다.
'김기연 선생, 부탁이 있어 문자 보냅니다.
별일은 아니고 내가 엊그제 거실에서 넘어져 다리를 좀 다쳤어요.
부기 빠지는 대로 깁스를 하게 되면 당분간은 움직이기 어렵겠지요.
지난번에 얘기하려다 못했는데, 양 사범님의 바둑 수업에 김 선생이 대신 좀 가주면 어떨까요.
서울이라 번거롭긴 하겠지만 바둑을 좋아하고 배울 기회이기도 하니 거절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주소와 전화번호 첨부합니다.'
기연은 자신이 썼던 내용을 임시저장으로 남겨놓았다.
우 교장의 문자에만,
어서 쾌차하시길 바란다고,
바둑 수업은 참여하겠다고, 흔쾌한 답을 지체 없이 보냈다.
그렇게 ‘알 수 없는 십분 뒤의 일’이 시작되었다.
자신을 총무라고 소개한 사람이 출석을 불렀다.
얼핏 보기에 50, 60대 남성이 대부분이고 70대 이상의 노인이 몇, 기연을 포함한 여성이 세 사람이었다.
‘김기연’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 기연은 어리둥절했다.
‘우명환’이 호명되면 대답하려고 긴장하고 있던 차에 자신의 이름이 불렸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로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어정쩡하게 대답은 했지만 궁금증은 풀리지 않은 채였다.
모든 분들이 40기 수업을 끝까지 완수하셔서 기량을 높이시기 바란다며
몇 가지 협의 사항에 대한 안내를 덧붙이고 총무는 양 사범에게 자리를 넘겼다.
“가로 1자4치,
세로 1자5치의 작은 바둑판을 흔히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하죠.
여러분들이 다 들어보셨을 얘긴데요,
그렇습니다.
바둑은 인생과 같아요.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打)라, 내가 살고 남을 공격해야 한다는 뜻이죠.
순리대로 두어야지 수를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욕심을 내면 낭패 보기 일쑵니다.
바둑은 누구나 둘 수 있지만 격이 있는 바둑은 무조건 두기만 해서 되는 건 아니죠.”
고사성어를 인용한 바둑 해설로 유명한 양 사범의 이야기가 구수하게 이어졌다.
“기본을 갖추고 차근히 두다 보면 기력은 좋아지게 돼 있어요.
바둑을 배우려는 여러분의 자세, 열정을 저는 높이 삽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자리에 오셨다는 건 이미 아마추어를 벗어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에요.
이론과 실제를 병행하는 이 수업만 잘 따라오시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오래 다니신 분도 있고 처음 오신 분도 있어요.
서로 좋은 스승이 되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양 사범의 개강 인사가 끝나고 간단한 이론 수업이 이어졌다.
흔하게 접하는 사활이지만 헷갈리기 쉬운 예를 들어주었다.
이론 수업을 마치자 총무가 나섰다.
오늘은 첫날이니 인사도 나눌 겸 기력이 비슷한 분들끼리 두어보면 좋겠다는
그의 말에 엉거주춤 기연도 바둑판 앞에 앉았다.
첫날부터 바둑을 둘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기연과 마주 앉은 노인은 누가 봐도 노인으로 보였다.
얼마 남지 않은 머리숱에 작은 체구는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다.
노인이 먼저 말을 붙였다.
“몇 급이나 둬요?”
기연은 마치,
처음 본 사람이 몸무게가 얼마냐고 묻기라도 한 듯 당황스러웠다.
“급수요?
급수랄 게 있나요, 전 잘 못 둡니다.”
기연의 말에 노인의 얼굴엔 희미한 반색이 돌았다.
그럼 일단 두 점을 깔아 봐요.
기연은 그의 요구대로 흑돌 두 점을 바둑판 위에 놓았다.
칠판에 바둑 격언을 적고 있던 양 사범이 어느새 옆에 와 있었다.
“서로의 실력을 잘 모르니 일단 맞수로 두세요.”
돌은 다시 거둬지고 기연이 흑돌을 잡았다.
백돌을 잡은 노인은 첫 수를 기연이 둔 수 옆에 소리 나게 날일 자 걸침으로 놓았다.
화점 부근에다 착점하는 기본 정석을 무시한 수였다.
그렇게 상대의 기력을 모른 채 바둑돌이 하나둘 놓여나갔다.
기연은 양 사범과 총무가 바둑판 사이를 오가며 보고 있다는 사실이 의식되었다.
초반이 넘어가면서 곤마가 생기고 생사를 돌봐야 할 때가 되자 주시의 눈길에 신경 쓸 여유는 남아있지 않았다.
무리하게 대마를 잡으려다 우상 귀에 지었던 노인의 집이 가일수를 하지 않아 두 집 나기가 힘들어졌다.
응수타진삼아 들여다 본 수가 유효했다.
노인은 바둑판 가까이 몸을 숙였다.
기연은 가슴이 쿵쾅거렸다.
우 교장과 둘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노인은 기연과 비슷한 기력을 가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여자라고 만만히 보았는지 서두르다 충분히 볼 수 있는 수를 놓친 것이다.
노인이 바둑돌을 달그락거리기 시작했다.
때가 되면 조용히 꺼내면 될 것을 손으로 바둑돌을 휘젓고 있었다.
분명 ‘격이 있는 바둑’은 아니었다.
처음 만난 데다 나이가 많은 상대에게 이기고 있는 기연으로선 뭐라 할 수도 없었다.
바둑이 끝났다.
그는 거칠게 사석을 메우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자신의 실수를 자책하는 소리로 들렸다.
그는 노기 어린 눈빛으로 기연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돌을 걷고 다시 새로 대국이 시작되었다.
수업 잘 마치고 열차에 올랐습니다.
'몸은 좀 어떠세요?'
열차에 앉자 피곤이 몰려왔지만 기연은 우 교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이가 제일 많은 노인과 세 판을 두었는데 모두 이겼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노인이 다음에 다시 한판 붙자고 한 말도 하지 않았다.
‘두자’도 아니고 ‘붙자’는 말이 몹시 거슬렸지만, 그 말을 그냥 넘겼다는 것도.
텔레비전 진행자들이 ‘다르다’고 해야 할 때 ‘틀리다’라고 쓰면
해당 프로에 댓글을 달거나 전화까지 하던 그녀로선 넘기기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노인 앞에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상왕십리역에서 H시까지 오는 한 시간여 동안
기연은 오랜 여행에서 돌아온 것처럼 바깥 풍경이 낯설어 보였다.
차창에 비치는 자신을 또 다른 자신이 지켜보고 있는 것도 같고, 지난 하루가 꿈인 듯 아득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바둑채널에서 화면 아래 슬라이드로 양 사범의 수업에 대한 광고를 본 것도 같았다.
바둑에 관심 있는 분, 기력을 올리고 싶은 분이면 누구나 환영합니다!
'멀리까지 다녀오느라 애썼어요.
나는 괜찮아요.
곧 퇴원할 테니 병문안은 안 와도 됩니다.'
피곤과 상념이 혼재된 멍한 상태에서 우 교장의 문자를 받았다.
기연은 문자를 반복해 읽었다.
병문안에 대한 얘긴 꺼내지도 않았는데 그는 선을 긋고 있었다.
우 교장이 알려주지 않는다면 병세가 어떤지, 입원한 병원이 어딘지도 알 길이 없다.
처음 소개해준 통장이 있긴 하지만 통장이라고 그와 개인적인 사정까지 주고받을지는 의문이다.
집에 도착해 샤워를 하고도 쉬 잠이 오지 않았다.
그동안 우 교장을 만나고 올 때마다 해두었던 메모들을 훑어보았다.
대부분 자신을 자책하는 얘기였다.
장성한 자식들이니 이해를 바라거나 섭섭함이 있을 법도 한데 그런 대목은 눈에 띄지 않았다.
노트북을 꺼냈다.
뽀얗게 내려앉은 먼지 탓에 손자국이 선명히 찍혔다.
노트북은 완전히 방전된 상태였다.
돌아누운 연인을 달래듯 기연은 콘센트에 코드를 꽂았다.
너무 늦은 사람은 없습니다.
기연은 버릇처럼 제목부터 붙였다.
그리곤 그동안 우 교장을 만나게 된 이유와 과정, 나눈 대화를 보고 들은 대로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몇 시까지 작업을 했을까.
책상 위에 엎드린 채 아침을 맞았다.
커피를 내리며 통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라앉은 목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그녀가 이렇게 일찍 웬일이냐며 반겼다.
짐작한 대로 소식통인 그녀조차 우 교장의 상황은 알지 못했다.
한 달이 지난 뒤, 기연은 노인에게 졌다.
노인은 자신의 나이가 80인데, 지난번에 내리 세 판을 지고 나서 포석에 사활까지 내내 공부를 했다고 고백했다.
기연은 노인에게 세 번 놀랬다.
솔직하다는 것.
승부욕이 대단하다는 것,
저 나이에도 노력하면 된다는 것.
그러나 만면에 웃음기를 감추지 않고 한 판 더 ‘붙자’고 했을 땐 단호히 거절 의사를 밝혔다.
그는 더 이상 안쓰러운 노인이 아니었다.
수업에서 돌아올 때마다 기연은 짧게나마 우 교장에게 보고 인사를 보냈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
기연은 헛일인 줄 알면서도 두 군데의 대학병원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외부 사람에게 입원환자의 정보를 알려줄 수 없다는 원론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단순히 깁스를 한 것이라면 대학병원이 아닐 수도 있었다.
H시가 작다지만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나 마찬가지였다.
기연은 맥이 빠졌다.
서울을 오가는 일도, 바둑을 두는 일도 왠지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계속 다녀야 하는 건지도 망설여졌다.
수강생들은 그동안 낯이 익어 멀리서 온다며 기연에게 모두 호의적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대부분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열차 시간을 핑계로 기연은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양 사범과 수강생들은 이제 수업도 몇 번 안 남았으니 오늘은 꼭 먹고 가라고 붙잡았다.
“김기연 씬 멋진 아버님을 두셨어요,
아버님은 기력이 어떻게 되시나요?”
예약해뒀던 열차 시간을 막차로 바꾸고 있는 기연을 향해 양 사범이 던진 말이었다.
기연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버님이라면, 우 교장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아,
그게 정확한 급수는 저도 잘 모르지만 바둑은 무척 좋아하세요.”
거짓말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그렇게 얘기하는 게 편할 것 같았다.
우 교장이 자신을 딸이라 얘기했을 리는 없을 터였다.
40기수를 이어오는 동안 딸이 아버지를 신청해준 적은 있어도
아버지가 딸을 신청해준 적은 처음이라는 양 사범의 말에, 기연은 기꺼이 그 수혜자처럼 웃어 보였다.
마지막 열차에는 오늘 안으로 집에 돌아가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자리에 앉았지만 서 있는 사람에, 자리를 찾거나 지나다니는 역무원까지 부산스러웠다.
그 와중에 기연은 문자를 써내려갔다.
답이 없을 줄 알면서도.
'선생님,
저는 오늘 많이 놀랐습니다.
제 이름으로 수업을 신청하셨다니요,
얼른 나으셔서 뵐 수 있길 바랍니다.'
초인종이 여러 번 울렸는데도 기연은 눈을 뜨지 못했다.
인터폰 창에서 통장의 얼굴을 확인하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부스스한 것도 잊은 채 기연은 현관문부터 열었다.
통장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우 교장 소식이란 걸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간병인을 통해 아파트 관리소로 연락이 왔대.
넘어져 다리를 다친 건 맞는데 그게 단순한 골절이 아니고,
폐암이 뇌까지 번져 쓰러졌던 거래.
아들한테 연락하느라 수술이 좀 늦어졌나봐.
그동안 중환자실에 계속 계셨고,
문병 오지 말라던 건 아마 예감을 하셨던 모양이야.
지금 대학병원 장례식장에…….”
통장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기연은 벽을 짚고 겨우 버티고 있었다.
빈소는 화환과 오가는 사람들로 소란스러웠다.
기연은 조용히 영정 앞에 섰다.
아버지도 아니고 스승도 아닌, 그런데 그 모두인 것 같은 이분은 내게 무엇인가.
눈을 들어 영정사진을 마주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국화를 한 송이 들고서야 겨우 영정에 눈을 맞추었다.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묻어두었던 설움 같은 것이 목을 타고 올라왔다.
기연은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상주와 예를 갖추고 난 뒤, 그녀는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그동안 틈틈이 정리해 뒀던, 기연이 우 교장과 만난 이유이기도 한 결과물이었다.
당신이 직접 살펴보고 내용이 제대로 쓰였는지 확인받을 도리는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봉투를 받아 든 남자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기연은 남자가 자신을 알아본다고 짐작했다.
우 교장이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아들이었다.
그는 아버님이 전해 달랬다며 양복 안주머니에서 편지 봉투 하나를 건넸다.
'내가 김 선생에게 빚이 많아요.
누구에게도 해본 적 없는 내 이야기 들어줘 고마웠어요.
바둑 수업은 맘에 들었는지요?
우리 다음에 만나면 맞수로 한 판 두어요.'
불안한 글씨체로 병원 메모지에 적힌, 우 교장이 기연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였다.
글 - 남궁순금
출처 - 2022 한국일보 신춘문예 https://hankookilbo.com/Collect/6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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