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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사람들 - 그리움을 깨우는 맛을 찾다.

by 탄천사랑 2021. 12. 14.

「땅과 사람들 - Vol. 215」

 

그리스 음식점 '노스티모' 토드 샘풀 & 박은선 대표

7호선 내방역에서 내려 몇 걸음 걷다 보면,  오래된 건물 2층에 ‘NOSTIMO’ 라고 담백하게 쓰인 창문을 발견할 수 있다.
굳게 닫힌 투박한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치 다른 나라에 와 있는 듯 이질적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국내 유일의 그리스 음식점, 노스티모를 운영하는 토드 샘플과 박은선 대표를 함께 만났다.   글. 황정은 사진. 김병구


'잇쎈틱'한 레스토랑을 찾아

"저희는 맛집을 찾는 데 별로 관심이 없어요.
  맛집이 아니라 '그 나라의 맛'을 구현하는 음식점을 만나고 싶었죠.
  그래서 '잇쎈틱(Eathentic)'이라는 이름으로 전국 방방곡곡 다니며 한국 속 세계 음식을 찾아다녔어요.
  ‘잇쎈틱'한 맛은 '맛있다'는 기준으로 설명할 수 없어요.
  현지에서 먹은 그 느낌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어쩌면 혀끝보다 마음을 더 동하게 하는 느낌이랄까요?
  그 맛을 찾으러 다니다 보니 이렇게 직접 음식점을 만들게 됐네요.
  노스티모에서 그리스의 진짜 맛을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2020년 코로나19가 절정을 치닫고 있던 때,

토드 샘플(Todd Sample)과 박은선 대표는 그리스 레스토랑 '노스티모(NOSTIMO)'를 오픈했다.
기존 음식점들마저 문을 닫고 있는 상황에서 식당을 연다고 하니 지인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렸으나 두 사람의 의지는 확고했다.

지금이 어려운 시기는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루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위치와 장소를 찾아다닌 두 사람은 지금의 자리에 공간을 마련했다.

 

토드 샘플과 박은선 대표는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15년,  양복점을 운영하는 주인과 길을 지나던 손님으로 만났다.
당시 서초역에서 작은 양복점을 운영하고 있던 토드 샘플은
'지나던 길에 들른' 박은선 대표와 앉은 자리에서 몇 시간 동안 수다를 나누며 친구가 됐다.
관심사도, 취향도, 심지어 비즈니스를 바라보는 시선도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 두 사람은 금세 친구이자 동료가 됐고,
'잇쎈틱'으로 음식을 나눠 먹는 사이가 됐다.

 

잇쎈틱은 국내의 외국 음식 문화를 다루는 콘텐츠 플랫폼으로,  두 사람이 함께 세웠다.
'Eat'과 'Authentic'을 합친 말로 '그 나라의 진짜 맛'을 찾는다는 의미다.
이후 두 사람은 국내에 있는 글로벌 음식점 중 가장 현지다운 맛을 제공하는 음식점을 찾아다니며 SNS에 소개하는 일을 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 나라에서만 느낄 수 있던 그 맛'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해외에서 가장 행복하던 시절,
  혹은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경험한 '그 맛'을 가끔이라도 느끼고 싶은데 국내에서는 그게 쉽지 않으니 다들 아쉬움이 컸던 거죠.

  잇쎈틱으로 그 욕구를 채워주고 싶었어요.”


아는 만큼 맛있는 맛

어쩌면 혀끝은 당시 기억을 한 번 더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에 불과할 수 있다.
사람들이 현지 식당을 찾는 이유는 단지 '맛'만을 느끼러 가기보다는
현지에서 느꼈던 당시의 모든 무드를 다시 한번 경험하길 원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토드 샘플과 박은선 대표는
"맛은 금방 지나치지만 기억은 계속 남아 있는 법”이라며
"사람들 내면에 각자가 알고 있는 맛이 저장되어 있는 만큼,
  그 기억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음식을 찾고 싶었다”라고 이야기했다.

"5년 동안 잇쎈틱으로 전국의 현지 식당을 돌아다니면서 저희에게도 스토리가 쌓였어요.
  많은 음식점을 다니면서 알게 모르게 레퍼런스를 갖게 됐으니까요.
  이 외에도 직접 치즈를 만드는 박은선 대표에게는 치즈 스토리가,
  할아버지가 그리스 사람인 저에게는 그리스 스토리가 있으니
  이 세 개의 스토리를 합하면 노스티모가 더욱 탄탄하게 출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동안은 온라인으로만 대중과 소통했다면 이제는 오프라인에서 저희의 모습을 구체화하기로 한 거죠.
  그 전환점에는 저희 책이 큰 역할을 해주었고요.”

SNS에서 주로 대중과 소통하던 토드 샘플과 박은선 대표는
<미식으로 세계일주>를 통해 5년 동안의 행적을 짧게나마 갈무리하는 시간을 보냈다.
SNS에 소개한 음식점 중 몇 곳을 골라 핸드북 사이즈의 책으로 펴냄으로써
대중이 이 한 권을 들고 오롯이 국내에서 '미식의 세계일주'를 횡단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책을 내고 나니 친구들도 그제야  '너가 이런 일 하고 있었구나?'라며 제 일에 대해 쉽게 이해하더라고요.(웃음)
  그동안 저라는 사람을 설명하려면 본의 아니게 설명이 길어지곤 했는데,
  책이 나온 다음에는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돼서 좋아요.
  사실 저희가 하는 일이 기존에 없던 것이다 보니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었거든요.
  책으로 정리를 해놓으니 대중에게도 다가가기 편하고,
  무엇보다 그동안 저희의 행적을 조금이나마 정리한 것 같아 좋았어요.
  덕분에 노스티모를 오픈할 용기도 생겼고요.”


맛을 넘어 문화를 느낄 수 있도록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계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한편으로는 분리됐지만 동시에 더욱 거세게 혼재되고 있는 것이다.
각자의 문화가 서로의 나라 틈새를 파고들고 있는 지금,  음식은 과연 어떠할까.
이에 대해 토드 샘플과 박은선 대표는
"음식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하지만 이럴 때 일수록 글로벌 음식점을 창업하는 사람들은 오리지널리티를 분명히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셰프의 재해석'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죠.
  그런데 이 단어가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재해석을 잘 하려면 '해석'을 제대로 해야 하잖아요.
  창의적 재해석을 마음껏 뽐내는 것도 좋지만 그 전에 '오리지널'을 충분히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경을 넘나드는 수많은 음식이 존재하는 이 시대에 글로벌 음식점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통성을 충분히 보여줘야 할 거예요.”

정통성이 중요한 이유는 고객으로 하여금 '왜 이곳에 와야 하는지' 이유를 갖게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이유를 만들지 못한 레스토랑은 결국 오래 못 가 문을 닫고 만다.
토드 샘플과 박은선 대표는 '정통성'에는 현지 문화를 얼마나 잘 담고 있는지도 포함된다고 이야기한다.

"저희 레스토랑 손님 중 어떤 분은 신혼여행으로 갔던 그리스를 그리워하며 방문하고,
  어떤 꼬마 손님은 <그리스 로마 신화>로만 접한 그리스를 궁금히 여겨 방문합니다.
  얼마 전에는 한 손님이 혼자 가게에 들어서더니 우조(Ouzo, 그리스 전통술)를 주문하더라고요.
  그리스는 한국에 아직 낯선 나라이기 때문에 우조를 아는 분이 많지 않다는 걸 알기에 처음에는 그분을 신기하게 바라봤어요.

 

  그분의 이야기가 궁금했죠.
  그리스와 어떤 스토리가 있는지가요.
  그러던 중 음식을 서빙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다가 그 분이 그리스의 한 가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래서 혼자 그리스에 가 그 가수의 공연을 보았다는 것,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가수의 고향까지 다녀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결국 그곳에서 마신 우조가 지금도 가끔 생각나 노스티모에 오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멋지지 않나요.
  과거의 추억을 담은 우조 한 잔,  모든 걸 담고 있는 한 잔이잖아요.
  저희는 앞으로도 자기만의 스토리를 안고 오시는 분에게 그 스토리에 정성껏 귀 기울이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현지의 맛과 가장 가까운 맛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겠죠.”

 

음식을 제공하지만 단순히 혀끝의 감각을 자극하는 것이 아닌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각자의 스토리,
그 안의 그리움을 어루만지고 싶다는 토드 샘플과 박은선 대표.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주는 음식의 힘을 믿는다는 두 사람은 노스티모에서 그리스의 맛을 요리하는 것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잇쎈틱'으로'그 나라의 진짜 맛'을 보여주는 음식점을 찾아 전국을 다닐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p43)

 

 

땅과 사람들 - 2021 December Vol.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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