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2집 - 「반려동물,그 아름답고도 오랜 우정」
생명을 품고 흐르는 강
.... 언론인 홍세화는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홍세화 씨 책의 제목으로 쓰였다.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한겨래출판, 초판 1999)
상징적인 표현이다.
쎄느강이 나눈 프랑스의 좌우는 의회에서 자주 만나지만 거의 융합하지 않고
한강이 가른 남북은 휴전선을 사이로 대치하지만 통일을 염원하고,
한반도에서 운하가 차단한 생태계는 다시 회복되지 못할 것이다.
운하가 사라지기 전까지.
산은 강을 막지 않지만 강은 산을 넘지 못한다.
볕을 내려 보내는 태양을 지구가 돌고,
공전과 자전을 하는 지구 표면에 비가 내리는 한,
강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빗물을 흐르게 한다.
거스르지 않는다.
강이 생긴 이래 한 차례의 예외고 없었다.
강은 단순히 물이 흐르는 물리적 장소로 머무는게 아니다.
강을 따라 문화도 역사도 흐른다.
인체에 비유할 때 강은 혈관이다.
생명도 강을 따라 이어졌다.
덕분에 사람도 강에 기대어 살 수 있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대략 만 년 전, 인류는 경작을 시작했다.
지금은 사막으로 바뀐 '비옥한 초승달 지역',
다시 말해 나일강에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에 이르는 기름진 땅에서 인류는 최초로 농사를 지은 것이다.
이는 메소포타미아문명과 지중해문명을 끌어냈다고 학자들은 설명한다.
일찍이 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경작이 시작되면서 수렵채취 시절 몰랐던 이기적 편견이 인류 최초로 시작되었다.
필요한 농작물이라며 심고, 농작물을 심어야 할 자리에 자생하는 식물을 잡초라며 뽑아 버렸다.
내가 심은 작물을 탐하는 곤충을 해롭다며 쫓아냈고, 해충을 잡아먹는 동물을 이롭다고 반겼다.
농작물을 추수하면 먹을거리가 잠시 넘친다.
그 결과 수렵채취 시절 자연스레 조절되었던 인구는 정착지에서 점차 증가한다.
증가한 인구를 예전처럼 적은 수로 통제할 수 없다.
이때부터 인류는 계층을 구성한다.
편견은 결국 차별로 이어진 것이다.
늘어난 인구를 통솔하는데 중앙 집중적 권력이 필요하다.
농사짓는 자들을 부리며 권력을 휘두르는 자는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확장되는 경작지에 물을 공급해야 한다.
그래야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권력자는 농사꾼을 동원해 경작지 일원의 강을 관개하면서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하지만 인구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으로 늘었고 물이 모자라면서 땅마저 메말라갔다.
인류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토인비는 말했다.
"문명 앞에 숲이 있고 문명 뒤에 사막이 남는다"고. 비옥했던 초승달 지역의 현주소다.
강은 사람들의 자유로운 왕래를 어렵게 한다.
그래서 강이 사투리를 구별하거나 언어를 아예 다르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강은 모든 걸 연결해준다.
상류는 하류로 이어져 흐르고 강바닥은 지하수와 연결돼 있으며 좌우의 생태계는 강에 의존한다.
강물이 때때로 범람하는 덕분에 농사를 지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하나 더, 강은 역사를 묵묵히 담고 흐른다.
강을 차지하려는 인류의 다툼만이 아니다.
태고의 문명에서 현대의 찬란한 문명까지 담고 흐르는 강은
연어와 뱀장어들이 빚는 조화로운 생태계의 역사를 유구하게 이어주었다.
댐과 하구언으로 막히기 전까지 그랬다.
(하구언(河口堰) : 강어귀 둑 하굿둑. 강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강어귀의 넓이와
수심을 일정하게 유지하거나 바닷물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강어귀 부근에 쌓은 댐.)
강은 생명의 터전이다.
물이 없으면 생명현상은 유지될 수 없다.
강은 자신의 수면보다 낮은 곳을 향해 이리저리 굽이쳐 흘렸고,
그 과정과 결과로 독특한 생태계를 굽이마다 연출한다.
하구의 진흙과 하류의 모래,
중류의 자갈과 상류의 바위,
폭포와 깊은 소,
(소(沼) : 늪. 호수보다 물이 얕고 진흙이 많으며 침수(沈水) 식물이 무성한 곳.)
그리고 바위와 낙엽 사이의 실개천에 이르기까지 그 모습은 다채롭다.
수많은 생물들이 그 생태계 안에서 어우러진다.
바위를 타고 넘던 물줄기는 갑자기 휘돌아나가는 여울을 만들다 바닥이 평편한 강을 지나 조용히 바다로 흘러든다.
(여울 : 강이나 바다의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
그런 강이 있기에 플랑크톤에서 사람까지 삶을 의탁할 수 있다. (p150)
....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박경상
※ 이 글은 <숨, VoL.02>에 실린 일부를 필사한 것임.
숨 VoL. 02.
'내가만난글 > 스크랩(대담.기고.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강사신문-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 (0) | 2021.12.24 |
---|---|
도법, 신상환-스님, 제 생각은 다릅니다/<구사론>의 이제. 흙과 항아리의 비유 (0) | 2021.12.22 |
동아일보-“전통기업도 ‘플랫폼’ 활용 필요… AI로 ‘넥스트노멀’ 전략 수립을” (0) | 2021.12.02 |
제8회 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대전 - [소설 은상] '늪' (0) | 2021.11.16 |
쾌도난마 한국경제 - 서문을 대신해서 (0) | 2021.11.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