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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정원 일의 즐거움/즐거운 정원

by 탄천사랑 2021. 11. 27.

헤르만 헤세 -  「정원 일의 즐거움

 

 

정원을 소유한 사람에게는 이제 봄에 해야 할 많은 일들을 생각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생각에 잠겨 텅 빈 꽃밭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걷다 보면, 그 북쪽 가장자리엔 아직도 누르스름한 빛의 눈이 쌓여 있다.
봄이 올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들판과 시냇가,  경사진 따사로운 포도밭 주변에는 벌써 갖가지 초록의 생명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갓 모습을 드러낸 노란 꽃들은 수줍은 듯 즐거운 듯 생명에 대한 용기를 내어 풀숲에 숨은 채

어린 눈을 열어 고요하고도 기대에 찬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정원엔 갈란투스 식물만이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에는 봄이 제 발로 찾아오지 않는다.
벌거벗은 꽃밭은 사람들이 쟁기질을 하고 씨를 뿌려주기를 묵묵히 기다리고 있다.

 

일요일의 산책을 즐기는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이제 다시 좋은 때가 왔다.
그들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새 생명이 움트는 기적을 만족스럽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즐거운 색채를 지닌 초봄의 꽃이 푸른 목초지에 수놓이는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진이 흘러 끈끈한 꽃봉오리들이 나무를 뒤덮고 사람들은 은빛 버들가지를 잘라 방 안에 꽂아 둘 것이다.

 

그러면서 모든 것이 때가 되면

자연스레 나와 싹을 틔우고 개화하는 모습을 기쁘고도 놀라운 마음으로 바라볼 것이다.
그들은 이런 사색에 잠기지만 아무 걱정도 하지 않을 것이다.
눈앞의 것을 즐길 뿐, 밤 서리나 풍뎅이 따위, 쥐 나 다른 해로운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원을 가진 사람은 이런 봄날 그런 명상에만 잠겨 있을 수 없다.
그들은 이리저리 거닐다, 지난겨울 처리했어야 할 일들을 게으르게 흘려보냈음을 문득 깨닫는다.
올해는 어떨까 생각하면서 지난해에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나무와 꽃밭을 근심 어린 눈으로 살핀다.

 

저장해 둔 씨앗과 구근을 헤아리고

정원 도구를 점검하다 삽자루는 부러지고 정원용 가위는 녹슬어 있는 걸 발견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건 아니다.
프로 정원사는

겨우내 일에 대한 생각을 놓지 않았고 부지런한 사람과 현명한 주부는 만반의 준비를 해두었다.

 

부족한 연장도 없고, 칼이 녹슬거나 씨앗 포대가 젖어 버린 일도 없다.
지하실에 저장해 둔 구근과 양파도 썩거나 없어지지 않았다.
새해엔 정원을 어떻게 가꿀지도 깊이 생각해 두었고 혹시 필요할지 모를 비료도 미리 주문해 두었다.

 

모든 것이 모범적으로 준비된 상태다.
그들은 칭찬과 경탄을 받을 것이고

그들의 정원엔 올해에도 온갖 꽃이 만발하여 우리 같은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원에는 풀 한 포기 나지 않았다.
우리 같은 부류의 아마추어나 게으름뱅이,

꿈꾸고 겨울잠을 자는 사람들은 홀연 다시 봄이 온 것에 화들짝 놀란다.
아무 예감도 못한 채 느긋한 겨울잠에 빠져 있는 동안

부지런한 이웃이 해놓은 온갖 일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우리는 부끄러워진다.
소스라치게 놀라 게으름을 뒤늦게 만회하려고 정원용 가위를 갈고 조급하게 씨앗 상인에게 편지를 쓰다가,
반나절 아니 하루를 허둥지둥 헛되이 흘려보낸다.

 

그러나 결국에는 우리도 준비를 마치고 일을 시작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처음 며칠 동안은 좋은 예감으로 가득 차 기쁘고 들뜬 마음에 일이 잘 진척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은 역시 어렵다.
새해 들어 처음 흘리는 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다.
우리가 신은 부드러운 장화는

찰진 흙 속에 푹 빠져 버리고 삽자루를 잡은 손은 물집이 잡혀 붓고 아파 오기 시작한다.
그러노라면 어느새 감미로운 3월의 태양이 좀 무덥게 느껴진다.

 

피로에 젖어 등이 아파 올 때쯤 우리는 몇 시간째 힘들게 하던 일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난로의 온기가 불현듯 이상하리만치 낯설고 엉뚱하게 느껴진다.
자녁이면 등불을 곁에 두고 정원에 관한 책을 읽는다.

 

.... 재미 삼아 정원을 가꾸는 사람은 고작 몇 달밖에 안 되는 따뜻한 기간에 많은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원한다면, 혹은 누군가 정원을 가꾸어달라고 요청한다면 온통 즐거운 것만 보게 된다.
생산하고 자신의 형태를 만들어 가는 가운데 넘쳐 나는 자연의 힘,
다양한 형상과 색채로 드러나는 자연의 유희와 상상력,
여러 면에서 인간적인 여운을 주는 작고 재미나고 소박한 삶. (p15)

 

.... 나는 늘 정원의 여름이 그토록 황급히 왔다가 간다는 사실이 놀랍고 걱정스럽다.
기껏해야 몇 달,  이 짦은 시긴에 정원에는 여러 종류의 식물들이 자라 맘껏 생명을 누리다 시들어 죽어간다.
화단에 어린 꽃을 심어 물을 주고 비료를 주면 금세 흙을 뚫고 나와 자라고 헛되이 번성한다.
그러다 불과 두세 달이 지나면 어느덧 그 어린 식물도 늙어 버린다.

 

이생에서의 목적은 다 이루었으므로 뿌리로 뽑히고 새로운 생명에게 자리를 내주게 된다.
이때 정원사는 여름이 순식간에 저만치 물러나는 것을 어느 누구보다 뻐저리게 느낀다.

 

정원에서는 생명체의 덧없는 순환을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 분명하고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생명이 움텄는가 싶으면 벌써 쓰레기와 시체들이 널린다.
잘린 어린 싹, 부러진 줄기, 질식했거나 아니면 다른 이유로 죽어 버린 식물들,
매주 그양은 늘어 갈 것이다.

 

.... 그것은 인간을 깊은 생각에 빠뜨리며,  모든 종교는 예감에 가득 차 경배하듯 거창하게 그 의미를 해석해 낸다.
이 작은 정원에서 조용한 가운데 빠르고 명확하게 일어나는 일을 두고 말이다.
지난해의 죽음에서 양분을 얻어 소생하는 여름은 없다.
모든 식물은 흙에서 자라 나올 때 그러했듯 역시 묵묵하고 단호하게 흙으로 돌아간다.

 

즐거운 정원을 기대하며 내 작은 정원에도 콩, 샐러드, 레세다, 겨자 따위의 씨앗을 뿌린다.
앞서 죽어간 식물의 잔해를

그 위에 거름으로 부어주면서 돌아간 것을 추억하고 다가올 식물을 미리 생각해 본다.
다른 모든 이들처럼 나도 이 질서정연한 자연의 순환을 자명한 사실로,

본디 내밀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아주 이따금, 

씨앗을 뿌리고 수확하는 어느 한 순간, 

땅 위의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유독 우리 인간만이 이 같은 사물의 순환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사물의 불멸성에 만족하지 못하고, 

한 번뿐인 인생인 양 자기만의 것, 

별나고 특별한 것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기이하게만 여겨지는 것이다.  (p17)

※ 이 글은 <정원 일의 즐거움>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헤르만 헤세 - 정원 일의 즐거움
역자 - 두행숙
이레 - 2001.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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