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사람들 - 2021 Vol. 214」
도서를 퍼내는 일도, 도시를 만드는 일도, 이기웅 대표는 '농사'에 비유한다.
전 과정에 '온 정성'을 쏟아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파주 출판도시의 기획자이자 총감독이다.
농사꾼의 정직함과 편집인의 섬세함으로 '북 유토피아'를 건설해온 실천가다.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다시 꾸지만, 그를 몽상가라 부르는 사람은 이제 없다. 글 - 박미경
책 편집과 도시 편집이 다르지 않는 이유
그의 인생길엔 아주 특별한 '동행'이 한 사람 있다.
굽이굽이 힘겨운 고갯길마다 때론 야단을 쳐주고, 때론 격려해오는 삶의 동반자. 바로 안중근 의사다.
'그분이라면 이렇 때 어떻게 했을까'를 곰곰이 짚어가다 보면 뿌옇게 흐리던 앞길이 문득 말갛게 펼쳐진다.
그 습관이 생긴 건 출판도시 건설이 큰 난관에 부딪힌 1993년, 안중근 의사의 옥중 기록을 다시 읽으면서다.
공허한 이상을 구체적 실천으로 완성한 그분의 삶이 다시 일어설 힘을 그에게 준 것이다.
이것이 자칫 '못 말리는 몽상가'에 그칠 수 있었던 그가 '뚝심 있는 실천가'로 우뚝 선 비결이다.
"그전 까진 파주가 아닌 일산에 출판도시를 계획했어요.
턱없이 비싼 토지 분양가 때문에 지금의 문발리로 오게 됐는데,
그 덕에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북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데 한발 더 가까워졌어요."
이른바 북한산 결의가 그 시작이었다.
1988년 뜻 맞는 출판인과 등산을 함께 하며 업계의 현황을 이야기했고,
그 대화가 씨앗이 돼 오늘날의 출판도시가 만들어졌다.
책 짓기는 '농사' 짓기와 같아서 모든 과정에 정성이 깃들어야 하는데,
중간 과정이 너무 생략돼왔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이었다.
기획부터 제작, 생산, 분류, 저장, 유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한 곳에서 이뤄지는 출판도시는 그렇게 싹을 틔웠다.
"만날 모여서 구상만 하던 어느 날 친구들이 나보고 앞장서라는 거예요.
도시 건설의 어려움을 가장 많이 이야기한 사람이 나인데,
가만 생각하니 어려움을 잘 아는 사람이 일을 진행하는 게 맞겠다 싶더라고요.
무엇보다 책을 제대로 편집해본 사람은 도시도 제대로 펀집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열심히 연구해 진행해보고 때가 되면 바통을 넘기려고 했는데 여태 그러지 못하고 있네요."
'북팜시티'를 꿈꾸다.
전문 편집인답게 처음부터 전문가에게 일을 의뢰했다.
공익을 위한 심부름꾼, 그것이 자신의 역할임을 잊지 않았다.
출판도시를 건설하면서 그가 건축가와 도시계획가에게 부탁한 네 가지 키워드는 절제, 균형, 조화, 사랑이다.
개발을 최대한 자제해 자연과 조화롭게 공존하고, 그 속에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배려하며 동행하길 그는 꿈꿨다.
숱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걸 끝내 묵묵히 증명해냈다.
1997년 개발이 시작된 파주 출판도시는 현재 출판의 원스톱 생산 체재를 구축한 1단계 사업과 영화계
출판계가 결합한 2단계 사업이 완료된 상태다.
구상 중인 3단계 사업은 절대농지를 이용해 쌀농사와 책 농사, 사람 농사를 함께 짓는 '북팜시티(Book Farm City)'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꿈이 있기에 그는 다시 힘을 내보려 한다.
"전체 부지 가운데 85%를 농지로, 나머지 15%를 산업단지로 조성해 친환경 문화도시로 만드는 게 꿈이에요.
여기서 책도 만들고,
농작물도 키우고, 아이들도 기르자는 겁니다.
이곳에 들어온 젊은이들이 자신의 집을 손수 지으며, 그 과정에서 땅과 건축에 대해 배우고 말이지요.
땅을 땅답게 돌려주고 싶어 계획한 일인데, 땅을 반납해야 한다는 대목에서 고개를 젓는 사람이 많아요.
쉽지 않겠지만 작은 규모로라도 그런 도시를 꼭 만들고 싶어요."
열화당, 책으로 이어온 206년.
올해는 그가 열화당을 창립한 지 꼭 50년 되는 해다.
거창한 자축연이라도 벌일 수 있으련만, '절재'가 몸에 밴 이 출판사는
900여 권의 책이 담긴 <열화당 도서목록 1971~2021>를 펴내는 것으로 50주년 기념행사를 대신했다.
욕심을 제어하는 능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간에 대한 인식이 조금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열화당은 그가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살았던 강릉 선교장의 사랑채 이름이다.
그의 선조들이 대대로 터전을 잡은 이 고택에는 '만권의 서책;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책이 많았고,
그 가운데 열화당은 '사설 도서관'이라 해도 좋을 만큼 책의 향기가 그윽한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군불 때는 심부름을 하며 어린 날을 보냈다.
책이 곧 삶이었다.
"5대조이신 오은(鰲隱) 이후(李厚) 할아버지가 1815년에 지으신 사랑방이에요.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나오는 글귀 중 '가까운 이들의 정다운 이야기를 즐겨 듣는다'라는
의미를 담아 열화당이라 명명하셨죠
그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으니 50주년이 아니라 206주년이에요.
서울분점으로 시작해 현재 파주 분점을 운영 중이죠.
수많은 학자와 문인이 모여 진리를 논하던 어린 날의 열화당처럼,
출판사를 예술과 학문의 사랑방으로 만들려 노력해왔어요."
열화당이 '인문 정신'의 기원이라면 선교장은 '북팜시티'의 모델이다.
강릉 일대에 대농장을 만들어 농민들이 자율적으로 농토를 경작하며 어려울 때마다 서로 돕고
나누던 공동체 경제의 중심이 선교장이었기 때문이다.
산과 집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그래서 눈부셨던 그곳에서의 사계절은 지금도 그의 뇌리에 또렷이 남아 있다.
기억의 샘에서 희망의 물을 긷는 남들이 부쩍 잦은 요즘이다.
삿됨도 없고 헛됨도 없이.
열화당은 이름바 '잘 팔리는' 책을 펴내는 출판사가 아니다.
당시로선 매우 낯설게 여겨지던 미술 전문 출판사로 출발해,
사진문고 시리즈와 전통문화 시리즈처럼 시각적으로 품격 있는 책을 만드는 데 주력해왔다.
'뚝딱' 만드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한 한 권 한 권의 책,
가치 있는 도서만 출판해왔다는 자부심이 그의 표정에 오롯이 묻어난다.
열화당 책 박물관도 그의 자부심을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다.
2012년 문을 연 이곳에는 열화당의 도서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발간한 예술 서적이 분야별로 다양하게 전시돼 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동서고금 책 농사의 수확물을 음미하는 공간'이다.
여기가 그의 '소우주'인 것이다.
자신이 보고 싶어 하나씩 모아 온 이곳의 책들이 더 많은 이의 소우주가 되기를 그는 소망한다.
"실은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 하나 있어요.
우리 옛 학자들이 논하던 세상의 이치를 손수 한글로 풀어써서 세상에 내놓고 싶은데,
출판도시 건설에 집중하느라 그 일을 할 틈이 없었어요.
정성껏 번역해서 한국만의 원리를 다음 세대에게 전달했으면 해요."
사무사(思無邪)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경구다.
논어에 나오는 말로 '생각하는 것에 삿됨이 없다'는 뜻이다.
삿됨 생각 없이, 헛된 욕심 없이, 그는 오늘도 꿋꿋이 책의 숲을 거닌다. (p26)
- 열화당 이기웅 대표.
※ 이 글은 <땅과 사람들>에 실린 일부를 필사한 것임.
땅과 사람들 - 2021 November Vol.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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