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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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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너는 자유다 - 그리고 1년 후

by 탄천사랑 2021. 10. 30.

손미나 - 「스페인 너는 자유다

 

- 에필로그 -

 

그리고 1년 후 방송을 접고 스페인으로 간다고 했을 때 내 주변 사람들의 빈응은 거의 비슷했다.
이 중요한 시점에 그렇게 일을 다 두고 떠나면 어떻게 하냐,
돌아왔을 때 그 위치에 다시 서지 못하면 어쩔 거냐,
시집은 안 갈 거냐,
그 나이에 공부는 해서 뭐하냐,  격려하기보다는 걱정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나는 잠시 재충전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마치 내가 순조로운 인생을 괜히 뒤엎으러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나도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그 당시의 나에게는 확실히 보장된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쓸데없이 1년만 낭비하면 오히려 다행이지만 오랜 시간 동안 열심히 이루어놓은 것들을
한순간에 잃을 수도 있는 모험이라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이 두려워서 내 안의 열정이 나를 떠미는 곳으로 떠나지 못한다면,
내가 온 가슴으로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난 오히려 그것이 더 두려웠다.

 

이제 겨우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안정과 최고만을 찿다가 더 이상의 도전도,  실패도,

변화도 없는 '죽은 삶'을 사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나는 두려움과 망설임을 누르고 마치 번지점프를 하는 마음으로 운명이라는 끈에 나를 맡기고 떠났다.

 

스페인에서의 1년이 나의 인생을 크게 바꾸어놓은 것은 아니다.
나는 원래의 내 자리로 돌아왔고 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여전히 '손미나'이고 한국인이고 아나운서이고 30대 초반의 싱글이다.

 

내 인생에 드라마틱한 변화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우려했던 것 처럼 1년간의 여행이

나의 인생을 뒷걸음질치게 하지도 않았다.
그 여행이 내게 가져다준 것은 겉으로 보이는 변화가 아니었다.
10년 전 미스터 디엥과의 우연한 만남이 젊은 날의 나에게 무한한 용기를 주었듯이
스페인에서 1년간 내가 겪었던 일들과 그곳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스페인에서 돌아온 후로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렸다.
내 앞에 놓여 있던 인생의 갈림길에서 내가 택하지 않은 그 길을 갔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을 알 수 없듯이,  내가 선택한 이 길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도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의 의지대로 선택한 길을 감으로써 나의 꿈과

나의 인생을 내가 직접 디자인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렇게 떠나지 않았더라면
언젠가 나의 젊은 날을 돌아보는 시기가 왔을 때 분명 가슴을 치며 후회했을 것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하기엔 늦었다고 느껴졌던 그때야말로,
실패한다 하더라도 한 번쯤 도전해 볼 수 있는 시기였음이 분명할 테니까.

 

 

내 자신에게 선물했던 소중한 한때를 함께해 준 나의 친구들과 나는

각자가 선택한 길에서 이미 또 한 조각의 꿈을 디자인했다.
나처럼 아나운서 생활을 하다 1년간 휴식과 공부를 위해 석사 과정을 밟았던 조아낀은 CNN 스페인의 앵커가 되었고,
다큐맨터리 작업을 같이 했던 마우리찌오는 얼마 전 유럽 내의 저명한 다큐맨터리 공모전에서

콜롬비아 청소년들의 마약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1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그랑프리를 차지해 까딸루냐 방송국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글로리아와 레안드로는 서로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얻어 같이 집을 구해 살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고,
각자의 나라로 돌아간 다른 동기생들도 방송국 PD로 혹은 신문기자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로베르또와 마누엘은 한국에 다녀가겠다는 약속을 지켰고,  마르따와 다비드의 아기 마리아는 얼마 전 첫돌을 맞았다.
그리고 나는 오랫동안 소망해 오던 책을 낼 수 있게 되었다.
두려움을 떨치고 용기를 낸 우리 모두는 인생의 커다란 선물을 얻었다.

내가 선택했던 길을 후회 없이 열심히 달려갈 수 있도록 내 운명에 찾아와준 나의 친구들,
어떤 순간에도 나를 믿고 힘을 실어주신 사랑하는 가족에게,
그리고 또 하나의 꿈을 디자인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
특히 세심한 배려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출판사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부족한 글이지만 이렇게 힌 권의 책으로 엮어진 진솔한 나의 이야기들이
가슴에 꿈을 품고도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p333)

 

 

이 글은 <스페인 너는 자유다>에 실린 일부를 필사한 것임.
손미나  -  스페인 너는 자유다 
웅진지식하우스 - 2006. 0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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