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태 - 「장하준. 정승일의 격정대화 쾌도난마 한국경제」
4. 우리 모두를 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그리며…
정승일 : 저는 노동 측에서 선도적으로
'강한 노동조합을 가진 나라가 기업 경쟁력도 강하다'는 걸 실증해 줬으면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강한 노동조합을 원치 않는 데다,
그것이 기업 경쟁력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에 대해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한편 노동 운동 측에서는 이 강한 노동조합이 조합원에게만 유리한 것이 아니라
기업에게도 좋은 일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는데,
우리 노동조합들은 아직 고민은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말하는 강한 노동조합은 민주노총, 한국노총 같은 중앙 조직이
강력한 권위로 산하 노조들을 지휘할 수 있는 통합적인 능력을 가지는 게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전체 국민 경제를 시야에 넣으면서 경영 측과 책임 있는 협상을 할 수 있어야 하고요.
이제는 노동 운동이 이 같은 실천을 통해
사회적 통합을 선도하면서 정부와 자본에게도 사회적 책임을 강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강력한 사회 세력 중 하나인 민주노총,
한국노총쯤 되면 기업 경쟁력과 산업 정책까지도 어느 정도 생각하기 시작할 때가 된 것 같고요.
그와 관련 집권을 목표로 하는 민주노동당은 더 말할 것이 없겠죠.
장하준 : 그러나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이나
전체 노동자를 대표한다고 하기에는 노조 조직률이 너무 낮아요.
경영자 단체도 사분오열되어 있고,
스웨덴의 경우 노조 조직률이 80%를 웃도는 데다, 경영자 단체도 SAF 하나밖에 없거든요.
정승일 : 독일의 경우 8시간 노동제가 법률로 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8시간 노동이 법률로 강제되어 있죠.
그렇다면 국가적 차원에서 책임 있게 협상할 수 있는 강력한 중앙 조직을 가진
노동조합이 결성될 수 있도록 법률 같은 것을 통해 유도할 수는 없을까요?
물론 경영자들의 중앙 조직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유도해야 할 거고요.
강압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스웨덴의 경우 노조 조직률이 80%를 웃돈다지만,
그 이유는 노조에 가입한 사람에게만 퇴직연금과 의료보험 등의
사회복지 시스템에 가입할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원이 될 수밖에 없는 메커니즘이 존재하더라고요.
이렇게 볼 때 노동과 경영의 중앙 조직들이 일정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을 때
산하 노조 및 기업들이 이를 따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할 겁니다.
그래야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가 '저들'과 합의했는데 정작 '나'는 못 지키겠다고 하면 사회적 합의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일정 정도는 사회가 강요를 해야죠.
장하준 : 하루아침에 그런 제도를 만들지는 힘들겠죠.
그러니까 노, 사, 정에 속하는 분들이 자기 집단의 입장뿐만이 아니라
국민 경제적 차원에서 넓게 보면서 타협하고자 하는 마인드를 갖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타협의 틀은 노, 사, 정이 아니라 '노사정 플러스'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노, 사, 정이 주 측이 되어야겠지만,
여기에는 농민이나 중소 상인도 포함되는 형식이 필요할 것 같으니까요.
이종태 : 오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우리 사회에서도 사회적 대타협은 필요하고,
또 분위기도 조금씩은 무르익어간다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역시 아직은 '상생이 안 되면 공멸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공유된 것 같지는 않군요.
그게 없이는 대타협이 불가능할 텐데….
어쨌든 오늘까지 이야기된 것들은 저 개인적 입장에서 볼 때 대단히 유익했습니다.
외람되지만 그간 한국 경제의 문제를 경제 부분에만 국한시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번의 대화 자리를 통해 한국 경제의 현재 고민거리들이 경제 부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데올로기적 혼선에 기인하는 바가 더 크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추상적 관념이 아닌 현실적 목표에 대한 국민들의 공감대 같은,
다소 현실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요소들의 중용성에 대해서도 새삼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이번 대화 자리를 통해 사춘기에 접어든 우리나라의 모습,
자기 정체성을 확인해 나가고자 하는 경계인으로서의 한국의 상황을 비로소 인식하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정말이지 바쁜 시간을 헐어가면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p229)
※ 이 글은 <쾌도난마 한국경제>에 실린 일부를 필사한 것임.
이종태 - 장하준 . 정승일의 격정대화 쾌도난마 한국경제
도서출판 부키 - 2005. 0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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