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 2021. 10. 06」
종교인들의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이메일을 보다가 슬며시 미소짓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SNS를 많이 사용하실텐데요, 종교인들도 그렇습니다. 종교인들의 SNS 역시 보통 사람들처럼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풀어놓습니다. 성직 생활의 애환을 털어놓기도 하고 자신들의 활동을 일기처럼 소개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직업의식’(?) 때문인지 재미있는 사연 가운데에도 교훈이 녹아있곤 하지요.
노숙인에게 물품을 나누는 탄경 스님(왼쪽)과 스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기증 받은 물품 사진. /남강호 기자-탄경 스님 페이스북
“바쁘면서 힘들고 행복하다.^^ 오늘 이름을 밝히시지 않은 기증자분께서 쌀 600㎏과 두유 500개 그리고 빵 500개를 보내주셨다. 어떤 물건이 필요할 때면 항상 이렇게 전해온다. 그분들의 정성 조금이라도 헛됨 없이 필요한 이에게 나누리라.^^”
지난 8월 18일 탄경 스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쌀과 두유, 빵이 가득 쌓여있는 사진과 함께. 사단법인 다나 대표인 탄경 스님은 매주 화요일 저녁 서울 종로구 조계종 총무원 주차장에서 노숙인과 독거노인에게 식사를 나누고 있지요. 또 수시로 새벽에 노숙인들이 잠자고 있는 지하도를 찾아 필요한 물건을 나누고 있습니다. 십시일반 후원해주는 분들의 도움을 받고는 있지만 항상 간당간당하답니다. 그런데, 꼭 그렇게 쌀이 떨어지는 등 배식에 위기가 찾아오면 정말 기적처럼 누군가 필요한 만큼을 기부하신다네요.
스님은 비가 오는 어느날 배식에 나서면서 이런 글도 올렸습니다. “지금 밖에 비가 내린다. 조금은 힘든 나눔이 될 것 같다. 비가 와도 저들은 나를 기다린다. 이러니 내가 안 나올 수가 있나^^.”
성남 '안나의집'에서 배식을 앞두고 손하트를 그리는 김하종 신부(왼쪽)와 지난 9월 안나의집 추석 차례 모습.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김하종 신부 페이스북
스님의 ‘기적의 쌀’ 사연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분이 있습니다. 경기 성남 ‘안나의집’ 김하종 신부님(페이스북 계정은 Vincenzo Bordo)입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김 신부님은 IMF 직후부터 20년 넘게 성남에서 노숙인들에게 저녁 식사를 나누고 있습니다. 올해 만해대상도 수상하셨지요. 그런데 이 분도 항상 똑 같은 말씀을 하셨거든요. 쌀이 떨어져서 ‘오늘은 배식이 어렵겠구나’ 낙담하고 있으면 정말 기적처럼 누군가 꼭 필요한만큼 기부해주신다는 거죠.
김 신부님은 최근 1년 전 사연을 페이스북에 다시 공유했습니다. 한 여성 노숙인이 내민 은행봉투 사연이었습니다. 봉투 속에는 ‘예쁜 나뭇잎’이 가득 들어있었다지요. 그 봉투를 건네며 그 여성은 “꽃을 사드리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서 나뭇잎을 드린다”며 “잘 받아달라”고 부탁했답니다.
안나의집은 이제 상당히 유명해져서 봉사자들도 많이 찾는답니다. 그 중엔 청년도 많다지요. 다른 신부님들이 자주 묻는답니다. “성당에선 청년 보기가 힘든데, 여긴 왜 이렇게 많나요?” 김 신부님도 궁금해서 청년들에게 물어보았다지요. 답은 “나눔 실천하면 기분이 좋아요.”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많아서 행복해요.” “사랑을 느낄 수 있어서 기뻐요.” 등등이라네요.
노숙인을 돕는 산마루공동체 이주연 목사(왼쪽)와 지난 9월 11일 강원 평창 산마루공동체에서 열린 음악회 모습. /김한수 기자-산마루공동체
서울 공덕동 산마루교회 이주연 목사님은 벌써 20년 넘게 매일 아침 이메일로 ‘산마루서신’을 발송하고 있습니다. 이 목사님은 서울역 인근의 노숙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돕다가 작년부터는 강원 평창 산골에서 공동체를 일구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묵상 글을 보내주시는데요, 10월 5일자는 ‘주목 받으려 하지 마십시오’라는 내용입니다. ‘눈에 띄는 꽃이 아름다워도/달빛만 하지 못합니다.//깎아진 절벽이 멋질지라도/없는 듯이 있는 대지처럼/만물을 살릴 수는 없습니다.//오직 자신의 길을 다지며/없는 듯이 그러나 분명히/자신의 길을 창조해나가십시오.//하늘에서 흰구름처럼 웃음이 퍼질 것입니다.’
이 목사님은 서신을 통해 강원 평창 산마루공동체 근황도 전합니다. 지난 9월 11일에는 이곳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지요. 정식으로 음악을 공부한 분들과 함께 노숙생활을 하던 이들로 구성된 ‘해맞이찬양대’와 장애를 가진 청소년 합창단도 함께 공연했답니다. 녹음 우거진 솔숲에서 열린 음악회 사진만 봐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입니다.
종교인들의 유머를 읽는 맛도 남다릅니다.
불교계 글쟁이로 이름 높은 원철 스님은 최근 페이스북에 사진과 함께 짧은 선시(禪詩)를 올립니다. 이를테면 냉장고 속에 얼어붙은 성애 덩어리 사진에 ‘빙하’란 제목을 붙이고, 짧은 시를 붙였습니다. ‘냉장고 안쪽 오래오래 숨었는데/술래에게 들켜 질질 끌려 나왔네.’
‘바리깡’이란 작품도 있지요. 잔디 깎는 기계 사진에 ‘이마에 땀 흘리며 여름을 깎았더니/뒤통수를 식혀주는 가을바람 한 줄기.’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홍성남 신부가 상담소에서 촬영한 사진(왼쪽)과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 /고운호 기자-홍성남 신부 페이스북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홍성남 신부님의 페이스북 유머는 유명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지요.
한 젊은 신부가 선배 신부를 찾아와 “옷 벗어도 됩니까?” 물어봅니다. “응, 벗어”하자 “정말요? 저 사랑하는 여인이 생겨서 옷 벗으려는데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며칠 후 다른 젊은 신부가 찾아와 또 물어봅니다. “옷 벗어도 됩니까?” 선배 신부는 다짜고짜 후배를 두들겨패기 시작합니다. “벗으려면 벗어. 너 혼자 벗지, 왜 나한테와서 그래?” 그러자 후배 신부 울면서. “방안이 너무 더워서 벗겠다 그런건데. 그게 그리 큰 잘못인가요.”
홍 신부님은 ‘늦잠 자다 새벽 미사 놓친 악몽’ 이야기도 소개합니다. 남자들 ‘군대 두 번 가는 꿈’ 비슷한 내용인데요, 사제들만의 애환을 이렇게 유머로 풀어내시곤 합니다.
홍 신부님은 유머를 자주 소개하는 이유에 대해 “마음병 치유에는 웃음이 가장 좋은지라, 꼰대 유머 같은 실없는 농담을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글 -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출처 - 조선일보 / 김한수의 오마이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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