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 외 / 「대화」
최인호 * 스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얼마 전 스님에 관련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니까 천식으로 고생하신다 해서
가슴이 아팠는데 요즘은 좀 어떠신가요?
법정스님 * 네, 최 선생 오랜만에 뵈니 반갑습니다.
아직도 새벽이면 기침이 나오는데 전보다는 많이 가벼워졌어요.
나는 몸의 다른 부분은 건강하고 아무 탈이 없는데 감기에 잘 걸리고 호흡기가 약해요.
그때는 낮에 참전하고 경전을 읽는 시간보다 오히려 정신이 맑고 투명해 집니다.
그래서 기침 덕에 이런 시간을 갖게 되는구나
최 선생도 글쓰기 전에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더러 가져보세요.
촛불 커놓고 편한 자세로 아무 생각 없이 기대앉아 있으면 아주 좋아요.
텅 빈 상태에서 어떤 메아리가 울려오기 시작합니다.
내가 사는 곳은 지대가 높은 곳이라 최근에야 얼음이 풀렸는데
새벽녘 시냇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맑고 투명한 이 자리가 바로 정토(淨土) 요 별천지구나 싶어 고맙다는 생각도 듭니다.
기침 덕에 좋은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행복이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늘 있습니다.
내가 직면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고통이 될 수도 있고
행복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에는 기침이 나오면 짜증이 나고 심할 땐 진땀까지 흘렸지요.
어떻게 이 병을 떼어낼까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모처럼 나를 찾아온 친구를 살살 달래고 있습니다.
함께 해야 하는 인연이니까요.
기침이 아니면 누가 나를 새벽에 이렇게 깨워주겠느냐 생각하니 그것도 괜찮아요.
다 생각하기에 달려 있지요.
최 * 저도 한 10년 전부터 당뇨를 앓고 있는데요. 처음에는 당황도 되었지만,
'이 기회에 청계산에나 다니자'해서 지금은 거의 10년째 매일 산에 오르고 있습니다.
당뇨가 없었더라면 산에 안 다녔겠지요.
석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는데 의사가 '당뇨 때문에 남들보다 더 오래 사시겠지요' 하더군요.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가야지 생각했는데 직장에 구애받는 사람도 아닌데
매일이면 어떤가 해서 매일 가게 되었죠.
그렇게 다니기 시작한 것이 벌써 10년이네요.
신문에 연재소설을 쓸 때
'1천 회 연재라니 대체 그걸 어떻게 쓰십니까?'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지요.
하지만 처음부터 1천 회를 쓰는 게 아니지요.
1천 회를 생각하면 숨 막혀서 못 써요.
침착하게 1회 1회 쓰다 보면 1천 회가 되는 거지요.
1회 쓸 때는 1회만 생각하고, 2회를 쓸 때는 2회만 생각하고요.
청계산도 그런 식으로 다녔습니다.
지금은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어버렸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산에 갑니다.
어떤 뚜렷한 목적이 있다면 10년이나 못 다녔죠.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격렬하게 호흡하고 땀을 흘리는 것, 저는 그걸 정말 좋아해요.
아침 일곱 시 반에 집을 나가 여덟 시쯤 산에 오르기 시작해서 한 시간 15분가량 등산을 하는데
이제는 소문이 나서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분도 많아요.
눈 올 때 청계산에 가 보면 설악산이 따로 없어요.
스님 말씀대로 모든 게 생각하기 나름이에요.
30분만 달려가면 설악산 못잖은 멋진 산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요.
나는 청계산 주지다.
청계산은 내 산이다 생각하며 산을 오르는데 참 행복합니다.
행복이란 받아들이기 나름이란 스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법 * 그렇습니다. 행복이란 어디 먼 곳에 있는 게 아니지요.
우리에겐 원래 행복할 수 있는 여러 조건이 있고,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그것은 고마운 일이 될 수도 있고,
불만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소욕지족(少欲知足), 작은 것을 갖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알면, 행복을 보는 눈이 열리겠지요.
일상적이고 지극히 사소한 일에 행복의 씨앗이 들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최 * 행복의 기준이나 삶의 가치관도 세월에 따라 변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젊었을 때는 남보다 많이 성취하거나 소유할 때 행복이 오는 줄 알았는데 가톨릭 신자로 살다 보니
그런 것만도 아니더라고요. 예수 그리스도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처음 들었을 때는 대체 무슨 얘긴가 했어요.
지금은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 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가난 자체가 행복한 것은 아니죠.
사실 빈곡과 궁핍은 불행이잖습니까.
마음이 가난하다는 말은, 행복이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같은 온도에도 추워 죽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정신이 번쩍 들도록 서늘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모든 것은 마음에서 나오지만 특히 행복은 전적으로 마음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작고 단순한 것에 행복이 있다는 진리를 요즘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피천득 선생님의 글에
'별은 한낮에도 떠 있지만 강렬한 햇빛 때문에 보이지 않을 뿐' 이라는 내용이 있지요.
밤이 되어야 별은 빛나듯이
물질에 대한 욕망 같은 것이 모두 사라졌을 때에야 비로소 행복이 찾아오는 것 같아요.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 하면서도, 요즘 사람들은 행복이 아니라 즐거움을 찾고 있어요.
행복과 쾌락은 전혀 다른 종류인데 착각을 하고 있어요.
진짜 행복은 가난한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법 * 그래요. 행복은 자연에서만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요.
봄날 새로 피는 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무 잡념 없이 '아 아름답구나. 고맙다'는 생각만 듭니다.
개을 물 길어다 차를 끓어 마실 때도 그렇습니다.
차만 마시는 게 아니라 다기를 매만지는 즐거움도 함께 누리는데,
다기를 매만지고 있노라면 화두고 뭐고 내가 중이라는 생각조차 없어요.
그저 지극히 자연스러울 뿐이고 무엇엔가 감사하고 싶은 마음, 잔잔한 기쁨이 솔솔 우러납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행복이라 할 수 있을 테지요.
매화가 필 때면, 어떤 중국 사람은 매화 밭에 이부자리를 갖고 가서 며칠씩 먹고 자며 꽃구경을 한답니다.
연꽃이 필 때는 연못가에서 며칠씩 머물고요.
우리야 차 타고 가서 휘이 들려보고 매화 봤다고 하지만 중국 사람들은 좀 다르다더군요.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참 멋쟁이들이죠.
하찮은 꽃구경 같지만, 그처럼 우리 주위엔 기쁜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나 혼자 '아, 좋다. 좋다' 소리를 가끔 하는데 행복이라고 표현하기도 쑥스럽습니다.
최 * 작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보는 눈, 그런 눈이 보통 사람에게는 없어요.
그 눈을 어떻게 떠야 하지요?
대게는 심봉사처럼 공양미 3백 석이 있어야 눈을 뜬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냥 뜨면 되는데.
법 * 안목은 사물을 보는 시선일 텐데
그것은 무엇엔가 순수하게 집중하고 몰입하는 과정을 통해서 갖추게 될 것입니다.
똑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어떤 이는 가격이 얼마라는 식으로 보고
또 어떤 사람은 아름다움의 가치로 보지요.
이는 똑같은 눈을 가졌으면서도 안목에 차이가 있기 때문 아닐까요.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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