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 김재순 법정 최인호 - 「대화」
우암 * 괴테는 '정치는 운명이다'라고 했습니다.
저의 정치 생활도 따지고 보면 50년 삶이 되는 셈인데, 괴테의 말이 실감 나는 요즈음입니다.
정치에 관해서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은데요.
처칠은 70세 때 정계 은퇴 시기를 묻는 기자들에게 '즐거운 파티 도중에 물려 나는 일은 좋지 않다'라고 했다지요.
금아 * 요즘 정치판을 보면 네가 더 많이 먹었느니 내가 더 많이 먹었느니 하며 밤낮 싸움만 일삼고 있어요.
정치가로서 부끄럽지 않은,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는 그런 정치를 해야 하는데...,
하느님이 주신 복으로 사람은 옳은 일과 그른 일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양심이라고 할까 이성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나 타고나는 것이지요.
그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알고서도 하는 거지, 모르고 하는 게 아니거든요.
세태는 점점 악화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정치에 가능성이 엿보여요.
예전에 비해 민주적인 시스템이 도입되었다고나 할까.
이젠 아무도 쿠데타 따위로 세상을 바꾸려는 생각은 못 하잖아요.
이것이 그나마 문화적으로 향상된 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암 * 제가 13대 국회의장으로 있을 때
거의 매일 저녁 국회 초심 의원 내외분을 공관에 초청하여 저녁 대접을 했어요.
그때마다 제가 한 애기의 줄거리는 이랬어요.
"이 나라에 훌륭한 인물이 있느냐고 물을 때,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준비하셨소.
'우리나라에 위대한 인물, 훌륭한 지도자가 없다고 한탄하는 사람이 많소.
하나, 그렇게 한탄하는 당신은 왜 지도자가 될 결심과 노력을 하지 않소!' 라고 하신
도산 선생 말씀이 기억납니다.
큰 인물, 위대한 정치가가 어디서 생겨난 것입니까.
그 모태는 국회가 아니겠습니까.
당신은 처음으로 국회에 나온, 이제 갓 심어진 묘목 한 그루인 셈이요.
이 묘목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꾸준히 물도 주고,
거름도 주어서 큰 제목으로, 화려한 꽃으로, 열매 맺도록 힘쓰시기 바라오."
정치를 흔히 '가능성의 기술'이라고 합니다.
국적과 종교, 민족과 문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류에게는 보편적인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자유, 평등, 박애의 개념이 존재하여 우리를 인도하고 있는데요.
그러나 이 개념들은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는 동시에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평등을 멋대로 강제하면 자유와 박애가 파괴되고,
자유만을 강조하면 약육강식의 세상이 되지요.
또 자기 희생 없는 박애는 거짓의 온상이 될 것이고요.
이때가 바로 '가능성의 기술'인 정치가 제 몫을 해야 할 때이지요.
자유, 평등, 박애 중 어느 쪽을 중시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정치가는 그런 때를 인식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한국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박애가 아닐까 합니다.
아량이라 해도,
관용이라 해도,
용서라 해도 좋겠지요.
몇 천 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인류 최고의 가치는 용서라는 생각도 듭니다.
정치뿐 아니라 매스컴도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인데요.
매스컴 얘기를 하니 저는 '저널리즘이 해서는 안 되는 두 가치가 있다.
즉 권력에 아부하는 것,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떠오르는데
선생께서는 요즘의 매스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금아 * 매스컴은 우선 거짓과 왜곡을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디까지 든 정직해야 되고, 또 있는 그대로를 보여줘야지요.
다른 것을 가져다 붙이거나 하지 말아야 하지요. (p46)
※ 이 글은 <대화>에 실린 일부를 필사한 것임.
피천득 김재순 법정 최인호 / 대화
샘터(샘터사) / 2004.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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