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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서 떠나온 고향 잊지 못하는 '이민자의 고통'글쓰기로 치유했죠"

by 탄천사랑 2021. 7. 20.

캐나다 한인작가 반수연씨

 

"떠났지만 닿지 못하는 삶 아닐까요.  한 예로 이민자는 한밤 중에 자다 깨어도 
 지금 한국이 몇시인지 알아요.  자동으로 몸속에 두 개의 시간이 흘러요. 
 저도 캐나다에서 매일 <한겨레> 뉴스를 봐요.  한국 정서도 잘 알고요. 도대체 
 지금 어디에 사는지 모르겠어요. 한국을 떠났지만 캐나다에 닿지 못하는 거죠.”

최근 단편 소설집 <통영>(강 펴냄)을 낸 반수연 작가에게 한국 이민자가 노년에 
겪는 고통의 특별함에 관해 묻자 나온 답이다.

경남 통영이 고향인 그는 33살 되던 1998년에 남편과 4살 아들과 함께 캐나다 
밴쿠버에 독립이민을 갔다.  어린 시절 고통스러운 가난의 기억이 자신을 짓눌렀던 
통영을 무작정 떠나고 싶었단다. 밴쿠버 생활 7년 만에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는 그 뒤로 16년이 지나 첫 소설집을 냈다.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작가를 만났다.

첫 소설집 <통영>을 낸 반수연 작가가 지난 13일 오전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며 책에 서명을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경남 통영 홀어머니 6남매 중 막내    “어릴적 시장통 ‘닭장집’ 가난의 기억”
1998년 남편과 무작정 밴쿠버 이민    식당 망하고 병얻으며 글쓰기 시작
등단 16년만에 첫소설집 ‘통영’ 출간  “저처럼 독자들도 과거와 화해하는듯”

책에는  ‘혜선의 집'(2020)  '나이프박스'(2018)  '통영'(2015)  '사슴이 숲으로'(2014)등 

'재외동포 문학상' 수상작 4편과 등단작인 '메모리얼 가든' 등 7편이 실렸다. 
죽음과 질병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어릴 적 고통스러운 기억 등 문학이 
보편적으로 다루는 주제들을 응시하는 단편소설들이다.  다르다면 작품 속 인물들이 
한국을 떠나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사는 이민자라는 것이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써내려간 문장에선 이민자의 삶이 생생하다.  성공한 아들을 
뒀다고 자랑하는 박 영감은 묫자리를 산 뒤 그간 벽장에 보관해온 아내의 뼛가루 
단지를 맡길 곳이 없다며 묘지 관리인에게 억지로 떠넘긴다.  (메모리얼 가든) 
세상에는 버려진 아이들이 많다며 결혼 전부터 입양 계획을 밝힌 베트남계 예비 
며느리를 의심스러운 눈길로 쏘아보는 한국인 예비 시모의 복잡한 심리가 펼쳐진다. 
(자리브를 추는 밤)  한국에서 맛본 전복죽 기억을 잊지 못해 가사 도우미에게 음식 
타박을 하는 나이 들고 병든 '혜선'의 고통 (혜선의 집)도 이민자가 처한 실존적 상황에 

대한 타당한 보고일 것이다.

작가는 이민을 하지 않았다면 소설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밴쿠버에 연 식당이 망할 무렵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때 몸도 많이 아팠어요. 
 성대 결절에 담낭 수술까지 했죠.  무엇보다 내가 선택한 이민이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게 견딜 수 없었죠.  (이민 전에는) 이민이 뭔지 몰랐고 나 자신도 몰랐던 거죠. 
 한국을 떠날 때는 여기(밴쿠버)만 봤고 여기서는 한국만 봤어요. 
 거대한 불가항력 속에서 존재를 상실하고 어찌할 줄 몰랐죠. 
 그렇게 삶의 유한성에 직면하면서 내 속에 있는 최후의 욕망을 들여다봤어요. 
 그게 글쓰기더군요. 
 그 뒤로 손님 없는 식당에서 한국에서 가져온 소설을 읽고 또 읽었어요.”

왜 통영을 떠나고 싶었을까? 
"제가 학교 다닐 땐 통영에 인문계 여고, 남고가 딱 하나씩 있었어요. 
 고향은 달리 말해 '서로 아는 곳'입니다. 
 저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도 아는 곳이죠. 
 운명을 규정짓는 분위기라고 할까요.” 

그는 어린 시절 서호동 시장통 '닭장집'에서 살았다. 공중변소를 썼고 집이 좁아 
식사 준비도 바깥 복도에서 했단다.
"경찰이던 아버지가 마흔에 돌아가신 뒤 어머니가 시장에서 장사하며 6남매를 키웠죠. 
 아버지 없는 집이라고 무시도 당했어요.”

소설집을 낸 직후 작가는 고향을 찾았다. 
"어머니는 요양원에 계시고 언니와 오빠 넷이 지금도 통영에 살아요." 

이번 통영행은 어땠을까? 
"이렇게 고향과 화해하기 위해 그 먼 길을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었죠. 
 (고향에 대해) 조금 마음이 열렸다고 할까요. 
 모든 감정의 경로를 다 거친 뒤 도달하게 된 평온이죠.” 

23년 전과 지금 통영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제가 떠날 때만 해도 통영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지금은 '우리들의 이상향’같은 곳이 되었죠. 
 고향이라는 게 조금 희석된 느낌입니다. 
 제 소설에도 굴 공장에서 굴을 까는 엄마가 나오는데요. 
 예전에는 굴까는 엄마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이번에 보니 여고 동창 중에도 굴까는 친구가 있더군요. 
 반복되고 순환되는 기시감을 느꼈죠.”

그는 밴쿠버에서 식당이 망한 뒤 수학 강사와 하숙으로 살림을 꾸렸고 남편은 목수로 
전업했다가 지금은 교육청 공무원으로 일한단다. 
"성공한 이민자라고 할 수 있죠."

영어를 쓰는 땅에서 한국어로 소설을 쓰기 위해 감당해야 할 노력이 궁금했다. 
"한국어는 저에게 사유의 언어이죠. 
 의식적으로 생각을 한국어 문어체로 합니다. 
 커피를 마실 때도 이 행위를 한국어 문어체로 표현해보죠. 
 산책할 때도 의식적으로 문어체 문장을 지어보곤 해요."

그는 2012년부터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로 고국 '친구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민자 작가에게 에스앤에스의 유용성은? 
"너무 좋죠. (한국과의) 거리가 확 좁혀졌으니까요. 
 다른 좋은 작가들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게 가장 좋고요.
 그리고 제 생각을 조금 붙잡을 수도 있어요.
 일기장에 적어도 되지만 페북에선 소통이 되니까요.” 

그는 "소설집이 출간 한 달 만에 2쇄를 찍었다"며 
"페북에서 제 글을 읽고 신뢰가 쌓인분들이 책을 사준 것 같다"고 말했다. 

<통영>에 대한 독자의 관심을 어떻게 해석하냐고 물었다. 
"제 소설을 보며 옛 기억을 되살리고 과거와 화해하는 것 같아요. 
 소설의 순기능이죠. 
 제 소설이 낯설지만 보편적인 이야기로 들린 덕분이겠죠."

그는 지금 고향을 배경으로 장편 소설을 쓰고 있다고 했다. 
"6·25 때 거제도에는 인민군이 하루도 머물지 않았지만 통영에는 하루 반 머물렀다고

 해요. 그런데 그때 통영에서 보도연맹원(좌익 계열 전향자) 약 천 명이 학살당했어요. 
 그 후손들이 좁은 통영에서 계속 살아야 했죠. 
 역사의 업이죠.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그 후손들에게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 쓰려고 해요.” 

그는 이민자의 노년에 대한 글도 계속 쓰겠다고 했다. 
"고향이 그리운 것은 인간의 보편 정서입니다. 
 이민자의 노년은 누구도 쓸 수 있지만 저는 당사자성이 있어요. 
 당사자로서 증언할 부분이 있죠."

글.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사진.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021. 07. 19 한겨레 23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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