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정동칼럼」
야콥 할그렌 주한 스웨덴 대사가 3년의 임기를 마치고 돌아간다. 할그렌 대사는 분쟁조정 전문가로,
부임 전 스웨덴의 외교정책 싱크탱크인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부소장으로 일했다. SIPRI
는 북·미 정상회담의 사전 조율을 주관한 기구다.
임기 중 한국·스웨덴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양국 정상의 국빈 방문이 있었고, 남·북·미 정상회담 준
비에도 관여했으니 첫 부임지에서 알찬 임기를 보낸 셈이다.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면 그사이 주름
이 부쩍 늘었는데 일 때문이 아니라 “한국이 너무 아름다워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타고 다녀서”란다.
임기를 연장해 좀 더 머물고 싶었지만 가족회의를 통해 스웨덴에 돌아가기로 결정했다며 못내 아쉬
워했다. 그간의 노고에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도 이제 한동안 못 보게 된다니 섭섭함이 앞선다. 할그
렌대사도 범죄소설 애호가라 책 이야기만으로 한두 시간 훌쩍 보내는 친구이기도 했고, 서로의 문화
에 대해 의견을 솔직하게 주고받는 동료이자 스승이었다.
처음 할그렌 대사를 만난 것은 대사관저에서 스웨덴의 핵심 가치인 ‘라곰(중용)’에 대해 좌담을 하는
자리였다. 시작하기 전에 “ ‘야콥’이라고 부를까요, ‘대사님’이라고 부를까요?” 묻자 “스웨덴 문화 알
잖아요. 여기 오니 다들 공손하게 대해서 무척 어색합니다. ‘야콥’이라고 불러주세요. 나도 ‘수정’이
라고 부를 겁니다”했다.
처음 할그렌 대사를 만난 것은 대사관저에서 스웨덴의 핵심 가치인 ‘라곰(중용)’에 대해 좌담을 하는
자리였다. 시작하기 전에 “ ‘야콥’이라고 부를까요, ‘대사님’이라고 부를까요?” 묻자 “스웨덴 문화 알
잖아요. 여기 오니 다들 공손하게 대해서 무척 어색합니다. ‘야콥’이라고 불러주세요. 나도 ‘수정’이라
고 부를 겁니다”했다.
할그렌 대사는 궁금한 것이 무척 많았다. 더불어민주당이 민주당이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속했던
새정치국민회의였다가 열린우리당이 됐다고 하자 외우는 수밖에 없겠다며 학구열을 불태웠지만, 지
난 선거 때 창당한 열린민주당과 더불어민주당의 관계는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국민의힘과 자유한국
당, 미래통합당, 새누리당은 무엇이 다르냐며 혼란스러워했고 신한국당까지 나왔을 땐 더 이상 묻기
를 포기한 듯 보였다. 100년이 넘게 당명이 바뀌지 않는 나라에서 왔으니 그럴 법도 하다.
그밖에 노동조합이 의무휴가제를 왜 반대하는지, 북유럽에서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하면 눈총을
받는데 한국에서는 왜 페미니즘이 그토록 지탄을 받는지 궁금해했다. 자신이 이해하는 페미니즘은
모든 이에게 기회를 주고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이라며 페미니스트 정부를 지향하는 스웨덴을 대표해
대사관 운영에도 이를 적용했다. 지난해 스웨덴대사관이 주최한 행사의 발표자 구성비는 여성 49.5
%, 남성 50.5%다.
이런 일도 있었다. 스웨덴 대사관 직원 중에 친한 분이 성북동으로 이사를 갔다. 관저도 성북동에 있
어 탄소배출도 줄일 겸 대사님 차로 함께 출근하시면 어떠냐고 했더니 웃으며 “스웨덴 대사는 출퇴근
때 관용차 이용 못해요. 저보고 태워달라고 하실까봐 걱정입니다” 했다. 관저가 가파른 언덕에 있어
자전거로는 오르지도 못할 위치라 할그렌 대사에게 어떻게 출퇴근하시냐고 물으니 전철 타고 마을버
스 탄다고 했다. 덧붙여 여름에 너무 더워서 출근할 때 관용차를 탄 적이 세 번 있다고, 정장을 입어야
하는 일정이 있어 걸으면 땀이 많이 나서 그랬다며 겸연쩍이 답했다.
과거 외국에 체류하거나 방문하며 한국 대사들을 뵐 때가 있었다. 요즘은 나아졌지만 출퇴근과 개인
의 대소사에 관용차 이용은 물론이었고, 차는 대부분 벤츠였다. 한국도 자동차 제조사가 있는데 왜
벤츠를 탈까 싶었다. 한 외국 친구가 “한국 대사도 한국 차를 안 타네” 말한 적도 있었다.
할그렌 대사는 말하길, 대사는 그 나라의 가치와 문화는 물론 제품을 알리는 역할도 담당한다며 당연
히 자국 제품을 우선시하고 자국산이 없는 경우 부임지의 제품을 이용하는 것이 관례라고 한다. 그래
서 스웨덴 대사는 볼보를 타고, 일본 대사는 렉서스를, 핀란드 대사는 현대차를 탄다.
부임한 지 2년 즈음이었나 점심을 먹고 걷다가 할그렌 대사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수정, 한국
은 스웨덴과 달라 대사라고 하면 다들 남다른 사람으로 여기고 특별대우를 합니다. 혹시 나도 모르게
익숙해져 버릇이 없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 때도 있습니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그런 조짐이 보
이면 친구로서 가차 없이 말해주세요.” 그러겠다고는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한을 앞두고 후임 대사는 스테판 뢰벤 총리가 방한했을 때 실무팀을 책임졌던 외교통이라며 총리
의 의중이 반영된 인사라고 귀띔해주었다.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며 연락처를 넘기고 가겠다
고 했다. 분명 좋은 분이 오시겠지만 아마 야콥 할그렌만큼 좋은 친구는 다시 없을 것 같다.
Hej da, Jakob.
※ 이 글은 <경항신문>에 실린 기사을 필사한 것임.
하수정 북유럽연구자
경향신문 2021. 08.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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