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칼릴 지브란은 그의 시에서
과일의 씨앗이 햇볕을 쐬려면 몸이 부서지는 고통을 겪어야 하듯이
우리도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통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노래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사랑을 원하고
인간이기 때문에 고통스럽습니다.
이 동화는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고
진정한 사랑에는 무엇이 숨어 있는지
고통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인지
깊게 생각해보고 싶어서 씌어진 동화입니다.
저는 이 동화를 쓰는 동안
모든 진정한 사랑에는 슬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사랑은 슬픔을 어머니로 하고 눈물을 아버지로 한다는 것을
사랑이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은 바로 고통 때문이라는 것을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면 바로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동화를 통하여 여러분들이 보다 더
고통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고통이 없으면 사랑이 없습니다.
2000년 11월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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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 빗자루.
내 고향은 전남 담양 죽순 밭이다.
'우후죽순'이라는 말에 딱 들어맞게 봄비가 내린 다음날,
삐쭉삐쭉 땅을 비집고 얼굴을 내밀자 빙긋이 웃음 띤 얼굴로 보름달이 나를 축하해주었다.
보름달뿐만 아니라 별들도 산 너머로 자꾸 별똥별을 만들며 나를 축하해주었으며,
먼동이 트자 찬란하게 빚을 뿜으며 햇살들이 골고루 내 몸을 어루만져 주었다.
행복했다.
세상에 태어나는 일은 이렇게 행복한 일이었다.
어둡고 추운 땅속에 살 때는 미처 느끼지 못한 행복감에 젖어 나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키가 커갔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아저씨와 아주머니 몇 분이 바구니와 괭이를 들고 들어와 죽순을 캐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들이 냉이나 씀바귀 따위의 봄나물을 캐는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여기저기 형제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와 가만히 고개를 들고 살펴보자
그들은 보통 괭이보다 훨씬 날이 길고 뾰족한 괭이로 땅속에 박힌 죽순을 캐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나를 캘까 봐 잔뜩 마음이 졸아들었다.
"오늘 장이 서기 때문에 빨리 캐어서 내다 팔 아야 한다" 거나,
"요즘 먹는 죽순이 가장 연하고 맛있어서 살짝 데쳐먹으면 제맛" 이라는 그들의 이야기에
내 마음은 더욱 졸아들었다.
나는 사람들의 밥상에 오르는 반찬감이 되기는 싫었다.
씩씩하고 당당하게 자라 멋있는 대나무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은 점점 내 가까이 다가왔다.
온몸에 식은땀이 쫙 흘렀다.
"보름달님,
저를 좀 살려주세요.
저는 요릿감은 되고 싶지 않아요.
대나무가 되고 싶어요."
나는 마음속으로 보름달에게 빌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비는 동안에도 그들은 점점 내 곁에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다가 어느 한순간, 한 여자의 발이 바로 내 앞에 딱 멈추어 섰다.
나는 '이제 죽었구나' 하고 눈을 감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여보, 이제 그만하지" 하는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이어 "그래요, 가서 아침이나 먹어요" 하는 여자의 목소리도 들렸다.
나는 속으로 살았다 싶었다.
나는 그들이 가고 난 뒤 찬찬히 주위를 살펴보았다.
나를 경계로 해서 내 뒤에 있는 죽순들은 그대로 살아 있었으나,
내 앞에 있던 죽순들의 모습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나중에 커서 죽부인이 되고 싶다고 수다를 떨던
죽순의 모습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나를 살려준 보름달님께 감사했다.
그러나 마음은 몹시 슬펐다.
죽어가는 형제들을 그대로 방관한 채 나만 살기를 원했다는 사실이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고통은 고통을 낳았다.
그들이 언제 또 주둥이가 뾰족한 괭이를 들고 와서 나를 캐갈지 두려워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잘 자라지 못하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살아남은 다른 죽순들은 다들 쑥쑥 잘 자랐으나 나만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비실비실했다.
조금만 바람이 강하게 불어도 곧 쓰러질 것만 같아
댓잎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조차 듣기가 싫었다.
세월은 흘렀다.
늠름하게 잘 자란 형제들이 하나 둘 대밭을 떠나기 시작했다.
죽순이 자라 대밭을 지키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대밭을 떠나 다른 삶을 사는 것도 퍽 중요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으나 형제들이 다들 떠나가자
나도 대밭을 떠나 다른 무엇이 되고 싶었다.
소쿠리나 광주리가 되어도 좋고, 죽침이나 합죽선이 되어도 좋았다.
어느 시골집 마당의 바지랑대가 되어
가을 하늘을 나는 고추잠자리를 날아와 앉게 하는 것도 좋을 듯 싶었다.
아, 아니, 의로운 검객이나 김삿갓과 같은 풍류시인이 쓰고 다니는 삿갓이 되어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낱 헛된 꿈일 뿐 나는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그저 밤마다 대밭을 지키는 대밭지기 역할만 하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밤,
나는 정말 다른 삶을 살고 싶어 보름달님에게 빌었다.
"보름달님,
저도 이곳을 떠나 다른 삶을 살게 해 주세요.
정말 부탁합니다."
그렇게 빌었기 때문일까.
하루는 죽순 캐던 아저씨가 와서 내 몸을 싹둑 잘라 집으로 가져가 무엇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흥분이 되었다.
내가 무엇이 될지 궁금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눈을 떠보자 나는 대나무 빗자루가 되어 있었다.
내 비록 삿갓이 될 수 없다 할지라도 다른 형제들처럼 쥘부채나 필통 같은
좀 고상한 것이 되는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아저씨는 나를 곧 시장에 내다 팔았다.
나는 시장에 나가자마자 팔려버렸다.
나를 사간 사람은 어느 절에 있는 젊은 스님이었다.
이왕이면 젊은 색시가 와서 사갔으면 했으나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스님은 매일 아침마다 나를 들고 대웅전 앞마당을 쓸었다.
대웅전뿐만 아니라 해우소 뒷마당도 쓸었다.
대웅전 앞마당을 쓸 때는 그래도 괜찮았으나 스님들이 대소변을 보는 해우소를 쓸 때는
속이 다 메스꺼워 내 신세가 처량했다.
그래도 나는 부처님이 계신 곳이다 싶어 열심히 기쁜 마음으로 마당을 쓸고 또 쓸었다.
그러나 차차 세월이 지나자
부처님 계신 곳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마냥 기뻐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대웅전 앞마당을 쓸면 쓸수록 내 몸이 점점 닳아 없어졌다.
어느 날,
나는 내 몸이 아주 작아진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스님께 말했다.
"스님,
스님께서 마당을 쓰실 때마다 내 몸이 자꾸 닳아 없어집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마당을 쓸지 않았으면 합니다."
내 말이 뭐가 그리 우스운지 스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너는 마당을 쓸면서 마당이 없어지기를 바라느냐?"
나는 할 말을 잃고 잠시 스님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네 몸이 닳지 않고 마당이 깨끗해지기를 바라느냐?
그럼 넌 너 대신 마당이 닳기를 바라느냐?"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계속 스님만 쳐다보았다.
그때였다.
스님의 말씀이 갑자기 아침햇살처럼 내 마음을 환히 밝혀주기 시작했다.
내가 간절히 원하던 삶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이 닳아 이 세상의 한 모서리가 눈부시게 깨끗해진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싶었다.
그 후,
나는 계속해서 대웅전 앞마당을 쓸었다.
그리고 지금은 몽당 빗자루가 되어 사람들이 똥과 오줌을 누면서 근심을 푸는
해우소 안을 참 기쁜 마음으로 청소하고 있다.
아마 여러분들은
어느 산사의 해우소에 가서 가끔 나를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 - p124 -
※ 이 글은 <모닥불>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입니다.
현대문학북스 / 2000. 11.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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