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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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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와 막대기

by 탄천사랑 2021. 3. 10.

「월간 가정과 건강 - 2021. 02. Health Life |권두 칼럼」

 

 

지팡이와 막대기
오늘을 사는 우리도 사는 게 힘들고, 지쳐 쓰러지려 할 때 의지할 힘이 되는 지팡이를 손에 쥐자. 
삶에서 수많은 역경과 시련이 닥쳐올 때마다 이를 물리치는 막대기를 손에 쥐자.

물리칠 힘이 없으면 불안하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이를 당장 물리칠 힘(백신이나 치료제)이 없으니, 사람들은 감염에 대한 두려움과 병이 들어 ‘이러다 자칫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겠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불안에 떤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A. H. Maslow)의 욕구 단계설에 따르면, 사람은 가장 기초적인 <생리적(Physiological) 욕구> 다음으로, <안전과 안정(Safety & Security)의 욕구>가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언제나 안전을 도모하고, 안정을 추구하지만, 우리의 삶은 여전히 크고 작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우리네 삶에 위기나 시련이 이르러 왔을 때 이를 버틸 힘, 이길 힘, 물리칠 힘이 없으면 초조해지고 불안해지며, 깊은 시름에 빠지기도 하고 좌절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돈이 힘이다. 돈이 떨어지면 불안하고, 돈이 생기면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어떤 사람에게는 건강이 힘이다. 건강을 잃으면 “이러다 죽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며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하며 불안해한다. 그러다 건강을 되찾으면 “괜한 걱정했다.”라며 크게 안심한다. 살다 보면, 우리는 인생에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건강을 잃어 쉽게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물리적인 힘이나 돈, 건강 등이 삶의 힘이 된다는 걸 부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때로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의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 격려와 칭찬이 어떤 이들에게는 힘겨운 인생을 살아갈 힘(動力)이 되기도 한다.

짚어서 지팡이
인생을 살다 보면, 삶의 위기는 안팎으로 찾아온다. 때로 인생에 시련이 닥쳐, 힘이 들 때 의지할 곳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어 점점 다리에 힘이 없어지면, 노인들은 지팡이를 짚고 지팡이에 의지해서 걷는다. 내가 중학생 시절이었던 것 같다. 시골에 사시는 할아버지께서 기차를 타고 서울역까지 올라오시면, 나는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할아버지를 모시러 서울역으로 마중을 나가곤 했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손에 지팡이를 지니셨다. 서울에 올라오시면 꽤 여러 날 우리 집에 묵으셨다. 시골에서 부지런히 농사일만 하시던 할아버지께서 대도시에 있는 우리 집 안에 머무시는 건,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여간 고역이 아니셨을 것 같다. 이따금씩 답답한 마음에 동네 한 바퀴라도 도실 때면 언제나 내 이름을 부르시며, “재만아! 단장(短杖) 가져오이라!” 하셨다. 그냥 “할아버지 지팡이 가져와라!” 그러셨다면 얼른 알아들었을 텐데, 처음에는 “단장 가져오이라!”라는 말이 “먹는 장 중에 고추장, 된장, 춘장 말고 단장도 있나?” “오이에 찍어 드신다는 말씀인가?” 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중에는 신발장에서 할아버지의 단장 지팡이를 꺼내 할아버지께 척척 가져다 드렸다. 할아버지는 그 단장 지팡이만 있으면, 그것에 의지해 동네 어디든 힘차게 걸어가셨던 기억이 있다. 지팡이는 할아버지에게 의지할 큰 힘이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 장애인에게 ‘흰 지팡이’는 사람의 눈과 같다. 그 흰 지팡이만 있으면, 차도와 인도를 나누는 연석(緣石)도 마치 지팡이에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잘 오르내린다. 산을 오르내리는 등산객에게 등산 스틱(지팡이)은 산을 오를 때 힘을 의지할 것이 되고, 산에서 내려올 때는 무릎에 가해지는 충격을 완화해 주어 등산객들에게 필수품이 되었다. 이처럼 지팡이는 분명 사람들에게 짚어서 의지할 힘이 되고, 안전하게 길을 걷거나 안전하게 산을 오르내리는 데 유용한 도구임에 틀림없다. 

마구 때려서 막대기
막대기는 사람이 곤경에 처했을 때, 외부로부터 오는 적이나 짐승을 물리쳐서 자신과 자신의 소유를 보호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예로부터 양치기 목동들은 양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막대기를 가지고 짐승을 내쫓거나 싸워서 물리쳤다. 손에 막대기만 들려 있으면 무서울 것이 없었다. 막대기는 무기(武器)가 되어 사람이 큰 위기에 처했을 때 물리치는 힘이 되었고, 자신과 양 떼를 안전하게 지키는 유용한 도구였다. 고대 임금들은 통치자의 막대기, 통치자의 홀(笏)을 가졌다. 이것은 왕권을 상징하였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왕이었던 크세르크세스(Xerxes, BC 485~465)는 자기 제국의 신하와 방백들 앞에 왕후 와스디(Vashti)의 미모를 자랑하고 싶어 불러냈으나 이를 불쾌하게 여긴 와스디는 수차례에 걸쳐 거절했다. 자기의 체면이 상했다고 여긴 왕은 그녀를 폐위하고 에스더(Esther)를 왕후로 간택했다. 당시 페르시아 제국은 인더스강 유역에서부터 에티오피아 북부 나일강 상류 리비아 지방에 걸쳐 127개의 도를 다스리는 강력한 나라였다. 왕의 손에 쥔 홀(막대기)은 엄청난 힘을 가진 막대기(?)였다. 하루는 총리대신 하만이 에스더의 사촌 오빠인 모르드개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으로 유대인을 미워하게 되었고 유대인을 전멸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며, 유대인의 재산까지도 몰수하라는 왕의 조서를 받아 냈다. 이 계획을 알게 된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온 유대인에게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금식하며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당시에는 왕이 “무론 남녀하고 왕의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아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홀(金笏: golden scepter)을 내밀어야 살”(에스더 4장 11절)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결국 에스더는 어떻게든 유대 백성을 억울한 대학살로부터 구해 내기 위하여 “죽으면 죽으리이다”(에스더 4장 16절)라며 죽음을 각오하고 당당히 왕 앞에 섰다. 다행히도 왕이 “손에 잡았던 금홀을 그에게 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홀 끝을 만”(에스더 5장 2절)지며 왕 앞에 이르렀고, 유대 백성의 구명(求命)을 호소하여 유대인들은 전멸의 위기를 모면하였다. 이와 같이 통치자의 막대기는 한두 사람의 생명이 아니라 한 민족의 생명을 좌우하는 막강한 힘을 가졌다.

안전과 안정의 상징, 지팡이와 막대기  
훗날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라 손에 홀(笏)을 쥐었던 다윗도 한때는 양치기 목동이었다. 그는 자신이 양을 치던 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 유명한 <시편 23편>을 썼다. 그는 산과 들을 누비며 피곤에 지쳐 걷기조차 힘들 때, 손에 지팡이를 의지해서 힘을 얻었다. 양이 길을 잃고 헤맬 때는 크고 둥근 지팡이의 손잡이를 이용해 양을 구출하였으며 양 떼를 안전한 우리 안으로 이끌었다. 때로는 짐승이 양을 공격하기 위해 다가오면 막대기를 휘둘러 물리치며 양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지켰다. 그의 손에 지팡이와 막대기는 자신이 돌보는 양들에게 안전(安全)과 평안(平安)을 가져다주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사는 게 힘들고, 지쳐 쓰러지려 할 때 의지할 힘이 되는 지팡이를 손에 쥐자. 삶에서 수많은 역경과 시련이 닥쳐올 때마다 이를 물리치는 막대기를 손에 쥐자. 불안한 세상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지팡이와 막대기는 여전히 큰 힘이 되고 큰 위로(comfort)가 된다. 목동 다윗이 읊조린 시(詩)가 지금까지도 우리의 귓전에 크게 울리며, 우리 마음과 삶에 참된 평안을 주고 있지 않은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安慰)하시나이다.”
 (Your rod and Your staff, they comfort me.) 시편 23편 4절


박재만 - 본사 편집국장<한국수필가협회>, <재림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국제 PEN클럽> 한국 본부 정회원. 수필집으로 『끝에서 본 너머』 외 5권이 있다.
출처 - 월간 가정과 건강  http:// https://www.sijo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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