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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심리적 조각 맞추는 고고학자 되야

by 탄천사랑 2016. 4. 16.

「매일경제 Citylife 제524호 2016. 04. 16.」

 

 

서울에 온 알랭 드 보통의 '사회적 꿀팁'

"자신의 심리적 조각 맞추는 고고학자 되야"

 

지난 3일, 고려대학교 인촌기념관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불안>의 작가 알랭 드 보통(47)의 강연을
들으러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사회 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법’에 대한 강연을 들으러 길게

늘어선 줄이 새삼 대한민국 20~30대가 지닌 ‘불안’을 드러내는 듯 보였다. 알랭 드 보통이 세운 10개국 인생

학교에서는 직업적 스킬 대신 정서적, 심리적, 철학적인 ‘직업관’을 가지고 타인의 경험을 나눈다.

격무와 스트레스, 무한 경쟁에 시달리는 한국 사회가 영국과 꽤 닮았다는, 그래서 한국인들의 불안에 대해

늘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알랭 드 보통의 입을 통해 사회 생활의 꿀팁을 얻어보자.

 

 

 

"런던으로 돌아가는 대한항공 비행기를 갑자기 내가 조종하겠다고 하면 다들 미쳤다고 하겠죠.
 성공한 사업가들은 내게 교회나 상담소를 가면 되지,  인생학교를 왜 만들었냐고, 비현실적이라고 말합니다.

 전 '트레이닝을 하나도 안 받고 조정석에 앉는 사람이 미친 짓'이라고 답하죠"


“인생학교, 왜 만들었나요?” 

“일과 사랑에는 스킬뿐 아니라 정서적 훈련도 필요하기 때문이죠.” 

 “일요일 저녁에 함께 있는 파트너를 생각해 보라(웃음).

연애 시절만큼 행복하지 않다. 

일도 결혼처럼 현실과 이상의 차이가 크다

그것이 스트레스를 만든다.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는 건 괜찮지만 누군가 골방에서 종이에 자신이 뭘 할지를 적고 있으면 이상하게 본다.

대학은 의학과 공학은 가르쳐주지만 누가 의사가 되야 하는지,

누가 엔지니어가 되어야 하는지는 안 가르쳐준다.

어떤 저명한 교수도 학생들에게 30년뒤에 어떤일을할 때 행복해 할지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행한 것이다.

당신의 천직은 어느날 갑자기 천사가 와서 귀에 속삭여주지 않는다.

수백, 수만 시간 동안 나와 대화를 해야 답이 나온다.

기술적 훈련 학교는 있지만 정서적인 훈련을 위한 학교는 없다.

그래서 인생학교를 만들었다.

성인이 됐지만 아직 감정적·정서적으로 서툰 성인들을 위해 ‘혼자서도 잘 지내는 법’,

‘꿈을 천직으로 바꾸는 법’ 등을 가르친다.

한국과 영국은 효율적 사회지만 사람들은 불행해 한다.

나는 그 불안이 굉장히 흥미롭다.

8번째 방문이지만 한국에 올 때마다 늘 이런 것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을 느낄 수 있다.

조직원리에 뛰어난 분들,

스킬이 뛰어난 분들은 많은데, 왜 자기 일을 좋아하는지 이유를 아는 사람은 적다.

왜 이 직업을 택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요즘 일터는 거대한 기계 같다.

너무 크고 방대하기 때문에 보람을 느끼기 어렵다.

좋은 직장에 다녀도 우울증 때문에 그만둔다.”


"영국 여왕의 침실은 이 강당보다 크겠지만 그녀를 부러워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나와 같은 학교를 나온 동창생이 잘나가면 부럽죠.

마크 주커버그의 페이스북을 보고 심기가 불편해지는 이유는 30대에 글러벌 회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가 나와 똑 같이 청바지를 입고 생활하기 때문입니다.

평등하다고 말하지만 평등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불편한거죠."

 


“선생님, 좋은 직장에서도 우린 왜 힘들까요?” 

“세분화된 조직 내에서는 일의 의미를 찾기가 어려워서죠.”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 때문에 내 안에 있는 중요한 것들을 죽게 내버려둔다.

부모님, 10년 전에 돌아가신 선생님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허망한 것은 없다.

사람들은 명함을 보고 1~2분 내로 상대를 판단한다.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더라도 직업이 나쁘면 무시한다.

그래서 우린 성공하고 싶어한다.

물질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게 아니라 뽐낼 만한 직업을 대중이 사랑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페라리를 타고 있는 이를 만나면 ‘저렇게라도 사랑받고 싶구나’ 라고 불쌍하게 여겨도 된다,

하하.

2~3% 경제 성장률을 가진 세대가 전 세대보다 뛰어나려면 8% 이상 경제성장률을 내는 사회에 살아야 한다.

모든 사람이 누구든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회에서는 ‘부러움’이 생겨난다.

신분사회에서는 불평등이 당연해서 실패를 사회의 탓으로 돌릴 수 있었지만 요즘은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

사회학자 에밀 두르켐은 이런 능력주의의 부작용 때문에 현대사회의 자살률이 높다고 말했다.

영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뿌리깊은 현상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바보처럼 행동하고 혼란 분노 좌절, 불안감을 느낀다.

나도 당신들도 누군가를 실망시키고, 꿈이 좌절된다.

인생학교의 좋은 점은 ‘이게 답이다’

‘한 수 가르쳐주마’라고 하지 않은 채, 서로 좌절 경험을 나눈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나만 불안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린  너무 정상적인 척 합니다. 하지만 모두들 조금씩 미쳐 있어요.

퇴근 후 동료와 한 잔 하면서 다들 '보스가 씨이코' '미친x'라고 하잖습니까. 누군 yes만 해서,

또 누군 'no'만 해서, 누군 리더십이 없어서, 누군 폭군 같아서,

사무실에 100명이 있다면 100명이 미친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각자의 생각을 표현할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선생님, 일에서 의미를 못 찾겠어요.” 

“죽음은 가까이 있어요. 나를 이해하는 감성 훈련을 늘 해야죠.” 

 “ ‘현재 꿈꾸는 직업은 무엇입니까?’라는 인생학교 설문지를 대기업 직원들에게 돌렸더니 1위가 빵집,

2위가 작은 호텔을 운영하는 것으로 나왔다.

남이 기뻐하는 모습을 바로 볼 수 있는 직업을 좋아하는 거다.

사람들은 좋은 직장에 다녀도 의미, 보람을 못 찾겠다고, 힘들다고 말한다.

따라서 큰 조직은 매일 직원들에게 왜 출근하는지, 어떤 의미인지를 상기를 시켜줘야 한다.

이력서에 학력뿐 아니라 ‘난 OO에 미쳤다’ 같은 칸이 있어야 한다.

대학에서 수줍음을 없애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직원에게 공식 회의석상에서 

“왜 발언을 안 해?”라고 호통 치면 그는 이것을 극복하지 못한다.

 

한국에는 예스맨이 너무 많다.

모두가 ‘문제 없다’고 말하기 때문에 사고가 난다.

정서적 티칭을 하지 않은 채, 위기가 닥치면

“왜 말을 안 했어! 바보 같이!” 이렇게 모욕을 준다.

 

하지만 바보라고 소리치는 분위기에선 아무도 학습을 못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우리는 언제든 다 죽는다는 걸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다.

그래서 중세 사람들은 테이블 아래에 늘 해골을 뒀다.

한국은 IT 강국인 만큼, 감성 지능에 관련된 부문에 대해서도 세상을 리드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고위 임원이라도 가정생활은 실패할 수 있고, 좋은 부모도 가난할 수 있다.

어떤 부분은 늘 실패하게 돼 있단 말이다.

그러므로,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성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꼼꼼하게 내가 누군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나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모든 사람이 '뭐든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회에서는 '부러움'이 생겨나죠.

실제로는 실현 불가능한 피라미드 사회니까요.

미디어로 둘러 쌓인 현대사회는 모든 게 너무 낙관적이거나 모든 게 너무 비관적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봐야 합니다.

돈만큼 의미가 필요하며,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가치를 느껴야 일할 수 있습니다.

 


알랭 드 보통과의 Q&A

“우리는 고고학자처럼 자신을 연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종의 항아리와 같아요.

깨지고 난 수십 개의 조각들을 풀로 붙여서 원래 어떤 모양인지 알아 본다는 면에서 고고학과 비슷하죠.

 

이미 <일의 슬픔과 기쁨>을 통해 노동, 직업의 의미에 대해 말한 바 있었던 알랭 드 보통은 연단 위에서 때론 유머러스하게,

때론 콩트를 하듯이 청중을 들었다 놨다 했다. 그를 향해 쏟아진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수많은 질문을 소개한다.

 

Q. 해골을 보지 않아도 매일매일 내 감성지능을 체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첫째,  거울이 될 수 있는 친구를 만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는다.

둘째,  매일 저녁마다 내가 했던 일을 반추해본다.

           땅에서 예술품을 발견해 흙을 털어내고 원래 모습을 찾아내는 고고학자처럼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

 

Q. 철학자라는 자신의 직업은 마음에 드나?

철학은 책 쓰는 것과 비슷하다.

뭘 쓸지 모르지만 일단 시작한다.

많이 쓰면 그 단어의 정글 안에 뭔가 나타난다.

커리어도 마찬가지다. 성급해져선 안 된다.

‘작가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라는 작가 지망생에겐 

“다시 2년 더 쓰고 돌아오라”고 말해준다.

 

Q. 한국의 직장인들에겐 ‘월급 이상으로 일하는 것은 손해’라는 의식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일의 심리보다는 인간관계에 많이 주목한다.

일의 심리는 훨씬 흥미롭고 다이내믹하며 복잡한 심리적인 스킬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관점만 달리하면 굉장히 흥미롭고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가 많다.

 

Q. 당신이 현재 꿈꾸는 성공은 뭔가?

인생학교 서울 성공,

7월에 발간될 소설 대박?  하하.

현재 하고 있는걸 더 잘하고 싶다.

인생학교 학생들이 훈계가 아닌 즐거움으로 직업에 대한 가치관을 배우고,

20년 만에 처음 쓰는 소설도 성공하길 빈다.

 

Q. 당신도 스트레스를 받나?

물론이다.

시간과 체력은 한계가 있는데 야심, 상상력은 풍부하니 조바심이 나는 거다.

난 그럴 때 자연을 보러 가거나 아이들 앞에서 광대처럼 행동한다.

아버지가 엄격하셨기 때문에 아이들에겐 무서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연기를 잘해선지 다행히 애들은 내가 정말 바보인 줄 안다.

여러분들도 자신을 바보로 만들어주는 순진무구한 아이들이 있다면 스트레스가 풀릴 거다.

 

Q. 지금 일이 내게 맞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만두기에는 나이도 많고, 익숙해졌다.

사람들은 다가온 도전에 온전하게 응하지 않으며 고민만 한다.

그 길 끝에서 끝장을 보지 않은 채 요령만 찾으며 기술적인 방법만 찾다 보면 한 발자국도 못 나간다.

과연 지금까지 10년 한 게 아까워서 남은 50~60년을 계속 질문만 하다 갈 건가.

한쪽 발만 담근 채 질척거리지 말고,

이 일이 지닌 가치와 내가 생각하는 의미의 교집합을 찾기 위해 두 발을 담그고 푹 젖도록 끝까지 가봐야 한다.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1969년생.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철학자. 프랑스 예술문화훈장(2003) 수상.
저서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일의 기쁨과 슬픔><여행의 기술><우리는 사랑일까><불안> 등이 있다.

캠브리지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20대 초반에 세상을 놀라게 한 베스트셀러를 써냈음에도 결국 그가 깨닫게 된

것은 ‘인생을 잘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을 어떻게 우리 실생활에 적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예술, 교육, 문화계 지인들과

2008년 런던에 인생학교(The School of Life)를 세운다. 20명 내외로 3시간 정도 진행되는 인생학교는 일,

사랑, 관계, 죽음 등 살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과 더 좋은 삶을 찾는 과정을 돕는 글로벌 프로젝트다.

인생학교 서울은 지난해 10월 탄생했다.            p36-39

 

 

글 - 박찬은 기자.

사진 - 인생학교 서울.

출처 - 매일경제 Citylife 제5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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