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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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쓰야도 그런 일이 있다는 건 알았다.
다만 그게 1980년 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뿐이다.
1975년 소련에 의한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문이었다.
그에 항의하는 의미로 미국이 가장 먼저 올림픽 참가를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결국 일본도 미국을 따라 보이콧의 길을 택했다.
쇼타가 휴대폰으로 검색해 본 내용을 요약하면 그런 얘기였다.
이 사건의 상세한 경위에 대해서 아쓰야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렇다면 얘기가 간단하네.
내년 올림픽에 일본은 출전하지 않을 테니까
경기 따위는 싹 잊어버리고 마음껏 남자 친구를 간병해 주라고 편지에 써 보내면 되잖아."
"그런 걸 써 보내봤자 달 토끼라는 사람이 믿어줄 리가 있겠어?
정식으로 보이콧이 결정되기 직전까지도 선수들은 틀림없이 출전할 거라고 믿고 있었던 모양이던데."
"우리가 미래에서 편지를 하는 거라고 밝혀버리면.....,"
거기까지 말하고서 아쓰야는 얼굴을 찌푸렸다.
"안 되겠지?"
"그러면 분명 우리가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하겠지."
아쓰야는 혀를 끌끌 차면서 애먼 탁자만 주먹으로 쿵 쳤다.
"근데....,"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던 고헤이가 머뭇머뭇 말했다.
"꼭 이유를 밝혀야 해?" 아쓰야와 쇼타가 동시에 그를 바라보았다.
"아니, 내 말은....," 고헤이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굳이 이유 같은 건 밝히지 않아도 되잖아?
어쨌든 당장 훈련을 그만두고 남자 친구를 간병하는 게 좋다고 써 보내면 될 거 같은데....
어때, 그러면 안 될까?"
"맞아" 쇼타가 말했다.
"안 될 거 없어. 그렇게 하면 돼.
이 여자는 자신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우리한테 조언을 청했어.
지푸라기에라도 매달리는 심정인 거야.
그렇다면 굳이 이유 따위는 알려줄 필요도 없어.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마지막까지 곁에 있어주는 게 옳다.
그 사람도 마음속으로는 그것을 원할 것이다,라고 확실하게 대답해 주면 돼."
쇼타가 볼펜을 들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보내면 어떨까?"
다 쓴 뒤에 아쓰야에게 보여준 편지글은 방금 그가 말한 것과 거의 같은 내용이었다.
"응, 괜찮네."
"좋았어."
쇼타가 편지를 들고 나가면서 뒷문을 닫았다.
귀를 기울이자 우유 상자의 덮개를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덜그럭하고 닫히는 소리도 귀에 들어왔다.
그 직후였다.
가게 쪽에서 뭔가 털썩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아쓰야는 가게로 달려 나갔다.
셔터의 우편함 밑에 놓인 상자를 들어다 보자 편지가 들어 있었다.
- 답장 정말 고맙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이렇게까지 속 시원한 답장을 해주실 줄은 몰랐어요.
좀 애매하다고 할까,
뭔가 막연한 말씀으로 결국에는 나 스스로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그런 충고를 해주실 거라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나미야 씨는 그런 어중간한 말씀은 하지 않으시는 분이네요.
그렇기 때문에 '고민 상담이라면 나미야 잡화점'이라고 많은 사람들에게서 사랑과 신뢰를 받는 것이겠지요?
'사랑한다면 마지막까지 곁에 있어주는 게 옳다.'
그 한 문장이 제 가슴을 찔렀습니다.
정말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해요.
망설일 필요가 전혀 없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그 사람도 마음속으로는 그것을 원할 것이다'라는 말씀에는 도저히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습니다.
실은 오늘 그 사람에게 전화를 했었어요.
나미야 씨의 충고에 따라 올림픽 출전을 단념하겠다는 말을 하려고요.
그런데 내 심정을 미리 알아차린 것처럼 그가 먼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내게 전화할 시간이 있으면 좀 더 훈련에 집중하라고요.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기쁘지만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이에도 경쟁자들은 저만큼 앞서가는 것 같아 너무 걱정스럽다고 했어요.
저는 아무래도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네요.
올림픽을 포기하겠다고 말하면 그 사람은 너무 실망한 나머지 자칫 병세가 더 악화될 것 같아요.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한, 저는 차마 그런 말을 꺼낼 수가 없습니다.
이런 걱정을 하고 있는 나는 역시 의지가 약한 사람인 걸까요?
- 달 토끼 드림.
편지를 다 읽고 아쓰야는 먼지투성이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대체 뭔 소리야.
이 여자,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네.
우리가 해준 말을 듣지 않을 거라면 애초에 상담 같은 건 하지를 말든지."
"별수 없잖아.
이 여자는 설마 미래의 사람이 상담해 주는 거라고는 상상도 못할 테니까."
"전화로 얘기했다는 걸 보니까 지금 그 사람하고 떨어져서 지내는가 봐."
고헤이가 편지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너무 딱하다."
"그 남자도 참 답답한 사람이야." 야쓰야가 말했다.
"여자 친구의 심정을 좀 알아줘야 할 거 아냐.
올림픽이라고 해봐야 결국 운동회를 좀 화려하게 하는 것뿐이잖아.
아무리 아픈 사람이라지만 자꾸 고집을 피우면서 여자를 힘들게 하면 어쩌자는 거야."
"남자는 남자대로 괴롭겠지.
올림픽 출전이 여자 친구의 꿈이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고,
자기 때문에 그걸 포기하게 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도 있겠지.
남자로서 강한 척한다고 할까, 어떻게든 버텨보려는 거야.
난 그 남자 심정도 이해가 돼."
"바로 그게 답답하다는 거야.
그 남자는 그런 식으로 억지를 쓰면서 자기 도취에 빠져 있는 거라고."
"그럴까?"
"뭐, 뻔하지.
비극의 주인공, 아니, 비극의 영웅처럼 굴고 있는 거야."
"그럼 답장을 어떻게 해줘야 할까?"
쇼타가 편지지를 앞으로 끌어당기며 물었다.
"우선 남자 친구를 정신 차리게 하는 게 선결 과제라고 해.
남자한테 확실하게 말해주면 된다고, 기껏해야 스포츠 정도로 여자 친구의 발을 묶어놓을 일이 아니다.
올림픽 같은 건 운동회하고 별 다를 것도 없으니까 괜히 집착할 거 없다.
그렇게 써."
쇼타는 볼펜을 든 채 미간을 좁혔다.
"여자가 그런 말을 자기 입으로 직접 하기는 좀 어려울 텐데."
"어렵든 말든, 아무튼 말을 해야 한다니까."
"그렇게 밀어붙일 일이 아니야.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굳이 고민 상담을 왜 했겠어?"
아쓰야는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으이구, 머리 복잡해 죽겠네."
"다른 사람에게 대신 말해달라고 하는 건 어떨까." 고헤이가 응얼응얼 말했다.
"대신 말해달라니, 누구한테?" 쇼타가 물었다.
'남자 친구가 중병에 걸렸다는 얘기는 아무한테도 안 했다잖아."
"그거, 부모에게도 그런 얘기를 안 했다는 건 역시 안 좋은 거 아닐까?
말을 하면 다들 이 여자의 심정을 이해해 줄 거 같은데."
"좋아, 그거야." 아쓰야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 여자의 부모에게 말하는 것도 좋고, 남자 쪽 부모에게 말해도 돼.
아무튼 아프다는 걸 다 불어버리는 거야.
그러면 이 여자에게 훈련을 받으라는 말은 아무도 안 할 거라고,
그런 식으로 써서 보내."
"알았어."
쇼타의 볼펜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 당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일단 나를 믿어주십시오.
속는 셈 치고 내 말대로 하세요.
분명하게 말해서 그 사람은 잘못하고 있습니다.
기껏해야 스포츠 아닙니까.
올림픽이라고 해도 단순히 규모가 큰 운동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것 때문에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연인과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너무 바보 같아요.
그 점을 반드시 그 사람에게 이해시켜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당신 대신 내가 그 사람에게 얘기해 주고 싶을 정도예요.
하지만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당신 부모님이나 그 사람의 부모님에게 말해달라고 하세요.
병에 대해 털어놓으면 누구라도 당신을 도와줄 겁니다.
더 이상 망설이지 마세요.
올림픽은 이제 잊어버리세요.
내가 해가 될 얘기를 하겠습니까.
꼭 그렇게 하세요.
나중에 내 말을 듣기를 잘했다고 생각할 거예요.
- 나미야 잡화점.
편지를 우유 상자에 넣으려 갔던 쇼타가 뒷문을 열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그만큼 분명하게 못을 박았으니까 이번에는 괜찮겠지?"
아쓰야는 대답 대신 가게를 향해 소리쳤다.
"고헤이 답장 왔냐?"
"아직 안 왔어." 가게 쪽에서 고헤이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아직? 거 이상하네." 쇼타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금까지는 금세 답장이 왔었는데? 뒷문이 안 닫혔나?"
다시 한 번 확인해 보려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때 가게 쪽에서 '왔다!'라는 소리와 함께 고헤이가 편지를 들고 돌아왔다.
- 한참 동안 소식 드리지 못했네요.
달 토끼예요.
애써 답장해 주셨는데 한 달 가까이 답장을 못하고, 죄송해요.
빨리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사이에 합숙 훈련이 시작되어 버렸거든요,
하지만 그건 단순한 변명인지도 모르겠어요.
어떻게 답장을 써야 할지 망설였던 것도 사실이니까요.
편지에 그 사람이 잘못한 거라고 확실하게 적어주신 것을 보고 좀 놀랐어요.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신 사람에게는
설령 불치병에 걸린 환자라도 단호하게 나무라시는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거든요.
기껏해야 스포츠, 기껏해야 올림픽...., 네, 그렇지도 모르겠어요.
아뇨, 아마 그 말씀이 맞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우리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고민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 사람에게 제 입으로 그런 말은 도저히 할 수 없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올림픽이 별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건 잘 알지만,
저와 그 사람은 지금껏 목숨을 걸고 이 대회를 위해 뛰어왔으니까요.
다만 병에 대해서는 가까운 시일 내에 양가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아직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실은 그 사람의 여동생이 출산한 지 얼마 안 되어 부모님이 한 것 기뻐하시는*************** 때에요.
좀 더 행복한 시간을 누리게 해드리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 심정은 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이번 합숙 훈련 중에도 그 사람에게 몇 변 전화를 했어요.
열심히 훈련을 받고 있다고 말했더니 무척 기뻐했습니다.
그런 게 연극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아요.
그래도 제가 올림픽을 깨끗이 잊어버리는 게 좋을까요?
경기를 포기하고 간병에만 전념해야 할까요?
그게 정말 그 사람을 위한 일일까요?
생각하면 할수록 자꾸만 망설여지네요.
- 달 토끼 드림.
아쓰야는 와아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편지를 읽다 보니 너무 답답했던 것이다.
"이 바보 같은 여자, 대체 뭐 하는 거야.
그만 포기하라는데 기어코 합숙 훈련에 가다니, 그 사이에 남자가 죽기라도 하면 대체 어쩔 거야?"
"남자 친구 앞에서 합숙 훈련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겠지."
고헤이가 느릿느릿 한 어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 훈련이 결국 다 쓸데없는 일이잖아.
뭐가 생각하면 할수록 망설여지네요, 냐고. 우리가 이렇게 애써서 알려주는데 왜 말을 안 들어."
"그러니까 그건 남자 친구를 걱정해서 그런 거라니까."
고헤이가 말했다.
"차마 그 사람의 꿈을 깨뜨릴 수 없어서 그런 거라고."
"어차피 그 꿈은 이뤄지지 않아.
결국 이 여자는 올림픽에 나갈 수가 없다고, 제기랄, 그럼 어떻게든 알려줄 방법은 없을까."
아쓰야가 다리를 달달 떨면서 말했다.
"여자가 부상을 당했다고 하면 어떨까?" 고헤이가 말했다.
"어딘가 다쳐서 올림픽에 나갈 수 없다고 하면 남자 친구도 포기할 거 아니야."
"엇 그거 잘하면 통할 거 같은데?"
아쓰야는 찬성했지만 쇼타가 손을 내 저였다.
"그건 안돼.
남자 친구의 꿈이 망가진다는 사실은 달라질 게 없어,
달 토끼는 지금 그걸 못해서 고민하는 거야."
아쓰야는 콧잔등에 주름을 잡았다.
"꿈은 무슨 빌어먹을 꿈 타령이야? 꼭 올림픽 출전만이 꿈의 전부는 아니잖아."
그러자 쇼타가 뭔가 생각난 듯 눈을 둥그렇게 떴다.
"바로 그거야.
꼭 올림픽 출전만이 꿈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시키면 돼.
뭔가 다른 거, 올림픽을 대신할 꿈을 갖게 해줘야 해.
이를테면....," 잠시 생각하고 나서 그는 말을 이었다.
"아이!"
"아이?"
"아기 말이야.
이 여자가 임신한 걸로 하면 어떨까?
물론 그 남자의 아기야.
그럼 올림픽은 포기할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자기 *****자식이 태어난다는 꿈을 가질 수 있어.
어떻게든 병을 이겨내려고 다시 힘을 낼 수도 있어."
이 아이디어를 아쓰야는 머릿속에서 정리해 보았다.
다음 순간, 손뼉을 쳤다.
"***********쇼타, 너 천재다.
그걸로 가자.
아주 완벽해. 남자에게 남은 시간이 앞으로 반년쯤이라고 했지?
그때까지는 거짓말을 해도 들킬 리 없어."
"좋았어."
쇼타가 다시 탁자 앞에 앉았다.
이번에는 성공할 것이다.라고 아쓰야는 생각했다.
남자가 암 선고를 받은 때가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지금까지의 편지 내용으로 보면 몇 달씩이나 된 느낌은 아니었다.
그때까지는 그저 평범하게 지냈던 것 같으니까 아마 둘이서 잠도 잤을 터였다.
피임을 했는지도 모르지만 그런 건 대충 둘러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답장을 우유 상자에 넣자마자 셔터 우편함으로 날아든 편지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았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조언에 깜짝 놀랐고, 그리고 역시 대단하시다고 감탄했어요.
분명 올림픽을 대신할 만한 꿈을 만들어준다는 것은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임신했다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도 설마 낙태를 하면서까지 올림픽에 출전하라고는 하지 않겠지요.
틀림없이 건강한 아기를 낳기를 바랄 거예요.
하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잇어요.
첫째는 임신 시기예요.
그와 마지막으로 관계를 가진 것이 석 달쯤 전이었어요.
그런데 이제야 임신 사실을 알았다고 하면 좀 부자연스럽지 않을까요?
그 사람이 어떻게 임신인 줄 알았느냐고 물으면 어떤 해답을 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게다가 만일 그 사람이 내 말을 믿어준다면 아마 부모님께 즉시 말씀드릴 거예요.
당연히 저희 부모님에게도 그런 말이 건너가겠지요.
나아가 친척이나 지인들에게도 임신 소식이 퍼질 거예요.
하지만 저는 그들에게 거짓 임신이라고 솔직히 말할 수가 없겠죠.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니까요.
저는 연극을 그리 잘 하는 편이 아닙니다.
거짓말도 못하는 편이에요.
임신했다고 하면 주위에서 이런저런 얘기가 많을 텐데 과연 그 속에서 계속 거짓말을 해낼 수 있을지,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요.
시간이 지나도 배가 부르지 않으면 이상하니까 나름대로 배를 불룩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주위에 들키지 않고 그런 일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에요.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어요.
병의 진행이 늦어질 경우, 그 사람이 아직 살아 있는 동안에 가공의 출산 예정일이 닥쳐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에요.
그날이 되었는데도 아이가 태어나지 않으면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걸 들키게 되잖아요.
사실을 알고 그가 얼마나 실망할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아프네요.
훌륭한 조언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그런 이유로 저로서는 하기 어려운 일이에요.
나미야 씨, 저와 함께 고민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상담에 응해주신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만족스럽고 감사의 마음 가득합니다.
역시 이 일은 스스로 답을 찾지 않으면 안 될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 편지에는 답장을 해주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몇 번이나 번거롭게 폐를 끼쳐서 정말 죄송해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 달 토끼 드림.
"에이, 이게 뭐야?" 아쓰야는 편지지를 내던지며 벌떡 일어섰다.
"지금까지 실컷 고민하게 해놓고 막판에야 답장을 해주시지 않아도 괜찮다니,
이게 말이 돼? 애초에 이 여자는 남의 의견을 들을 마음이 없었던 거야.
우리가 한 말을 죄다 무시해버리잖아."
"이 여자가 하는 말도 맞는 것 같아.
계속해서 거짓 연기를 하는 건 어려운 일이잖아." 고헤이가 말했다.
"야, 시끄러.
연인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에 무슨 태평한 소리를 하고 있어!
필사적인 마음을 먹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법이야." 아쓰야는 주방 식탁 앞에 앉았다.
"네가 답장을 쓰려고? 그러면 글씨체가 또 달라지는데." 쇼타가 물었다.
"됐어, 그딴 건 아무튼 따끔하게 혼을 내줘야 속이 풀릴 것 같아."
"알았어.
그럼 네가 말로 해.
내가 받아쓸 테니까" 쇼타가 아쓰야 맞은 편에 앉았다.
- 달 토끼 씨에게
당신은 바보입니까? 아니, 분명 바보입니다.
나도 나름대로 고민한 끝에 좋은 방법을 알려줬는데 왜 내 말을 듣지 않습니까?
올림픽 따위는 깨끗이 잊어버리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요?
올림픽을 위해 아무리 열심히 훈련해 봤자 아무 소용 없다니까요.
당신은 절대로 올림픽에 나가지 못해요.
그러니까 당장 그만두세요.
다 쓸데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망설이고 있는 것 자체가 쓸데없는 것이에요.
그럴 시간이 있으면 지금 당장 그 사람에게로 가보세요.
당신이 올림픽을 포기하면 그 사람이 슬퍼한다고요?
너무 슬퍼서 병이 악화된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당신이 올림픽에 못 나가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에요.
세계 여기저기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어요.
지금 올림픽이고 뭐고 따질 겨를이 없는 나라도 아주 많다고요.
일본 역시 남의 일이 아닙니다.
그걸 이제 곧 알게 될 거예요.
하지만 이제 됐습니다.
당신 좋을 대로 하십시오.
그러다가 나중에 실컷 후회하세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말합니다.
당신은 바보입니다.
- 나미야 잡화점.
6
쇼타가 새 양초에 불을 붙였다.
눈에 익은 탓인지 촛불 몇 개로도 방 구석구석까지 환히 보였다.
※ 이 글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히가시노 게이고 -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역자 - 양윤옥
현대문학 - 2012. 12. 19.
[t-16.03.24. 210303-1546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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