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숙 - 캐나다 여행기」
캐나다 여행기
야호!
반복되는 일상에서의 탈출은 천국의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희망의 풍선이 둥둥 떠다닌다. 얼기설기 복잡한 것들을 대강 밀쳐두고 떠나려니 약간 켕기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아무튼 얼마나 가보고 싶던 나라였던가. 태고의 숨결을 그대로 간직했다는 자연경관이며,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정원 중에서 아름답기 그지없다는 ‘부챠드가든’이며 또한 선진사회복지를 구가하고 있는 나라이니 요람부터 무덤까지 얼마나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있을지.......
열 시간이 넘는 비행시간도 달게 고달팠다. 드디어 무공해 청정의 나라라는 캐나다에 발을 디뎠다. 뭐랄까, 아무 물이나 퍼마셔도 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시간을 무작정 거슬러 올라 나뭇잎으로 부끄러운 곳을 가리고 선악과를 따먹는 에덴의 하와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캐나다는 석유며 나무며 자연자원의 무한한 보고인지라 한 가지씩만 팔아먹고 살아도 수백 년을 버틸 수 있단다. 무지무지 부러운 나라라며 거품을 물었다. 그렇지만 아직은 내가 꿈처럼 그리던 캐나다의 속살은 보지 못하였다. 못 견디게 부러운 것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거대한 ‘록키회색곰’이 납작하게 엎드려 동면에 들어간 듯한 만년설에 뒤덮인 록키며, 도심에 있는 공원으로서는 뉴욕의 센트랄 파크 다음으로 넓다는 백이십 만평의 스텐리 공원은 빠듯한 일정으로 먼빛으로 일별만 했을 뿐이다. 그런저런 핑계로 캐나다의 때 묻지 않은 원시자연을 만끽해보리라는 희망은 여전히 희망으로 남고 말았다. 거인의 나라에 온 것은 분명 맞은데 나에게 맞지 않은 옷인 양 왠지 어설프고 편치 않았다.
첫 방문한 사회복지시설은 집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숙박시설이었는데 매월 정부에서 170만원의 실업수당을 주는데도 술이며 약물에 탕진해버리고 노숙의 삶을 택한 사람들.......무표정한 얼굴들.......얼어붙은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뒹구는 군상들.......이 숙박시설이 문을 여는 시간까지 대책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시설로 밀려오는 이유는 다른데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보고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함이란다. 캐나다는 개인주의가 강해서 외로움을 못 견뎌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설들은 정부의 보조와 비영리단체의 지원,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의 열성적인 참여하에 이끌어간다고 하였다. 시설을 사용하는데 일정한 자격은 없고 선착순이라고 하였다. 식사와 잠자리가 불특정 다수에게 제공된다는 것이었다. 배가 고프거나 따뜻한 곳에서 자고 싶으면 아무나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T.V에서 비슷한 시설을 본 것 같아 크게 감동받을만한 시설은 아니었다. 그때였다. 한 노숙자의 휠췌어를 밀어주는 또 다른 노숙자를 보았다. 우리나라에도 장애인 노숙자가 있었던가? 아무튼 휠췌어를 타는 노숙자는 못 본 것 같다. 캐나다에서는 휠췌어를 타고 있는 노숙자가 의외로 자주 눈에 띄었다.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는 것인지, 자유라는 포장지에 포장된 방임인지.......판단은 잠시 보류하기로 하고, 휠췌어를 밀어주는 그 노숙자의 표정에서 나는 작은 사랑을 발견했고 그때까지 우리보다 무얼 잘하고 있나하고 겨누어보던 가슴이 잔잔히 흔들렸다. 어떤 물질만의 도움이 아니라 한 번의 미소와 언 손을 꼭 쥐어주는 배려라는 인간의 미덕이 소중한 것 아니겠는가. 여러 시설들을 돌아보면서 건물이니 인테리어니 하는 물질적인 것은 이제는 부러워할 대상이 못 되었다. 대한민국! 더 이상 손가락 빨며 사탕 빨아먹는 선진국을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는 후진국이 아니었다. 우리 것이 더 아름답고 더 화려하고 그리고 풍족하였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내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내가 바로 세계에서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자부심이 들었다.
지화자~ 코리아!
얼쑤~ 대한민국!
그러나 자원봉사자가 넘쳐나고 일하는 사람들의 몸에서 우러나는 훈훈함이 부러웠다. 그늘에 깊숙이 손을 뻗치는 저녁햇살처럼 기회의 땅에서 삶의 희망을 뭉개는 사람들을 날카롭게 비판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며 껴안아주는 것 그것이 참다운 복지의 개념이 아닐까도 싶었다. 그러면서 스스로 재활할 수 있도록 작은 힘으로 밀어 올려주는 그런 몸짓이 행간에 언뜻언뜻 보였다.
우리처럼 아옹다옹 하지 않아도 젊어서 열심히 일하기만하면 안락한 노후가 보장되기 때문일까. 사람들의 표정에 여유가 넘쳐났다. 여유가 있어야 그늘진 주위가 눈에 들어오고 손이 내밀어지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측은지심 아니겠는가.
돌아오는 기내에서의 일이다. 캐나다 항공의 스튜어드와 스튜어디스가 머리가 희끗하고 제법 나잇살이 들어 보이는 것이었다. 마침 스튜어디스 중에 아리따운 우리 한국여성이 있어서 물어보았다.
“저분들 나이 들어 보이시는데 몇 살쯤 되셨어요?
“아마 예순 살이 넘으셨을 거예요.”
“네? 정년이 몇인데요?”
“육십오 세요.”
우리나라 항공회사의 스튜어디스는 정년이 55세인데 일이 너무 힘이 들어서 3년 정도하면 대개 그만두고 55세 정년을 채운 사람은 딱 한 사람 있다고 인터넷서핑에서 본 것 같다.
스튜어디스가 그렇게 힘든 직업이라면 우리 나이로 치면 환갑이 넘어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안쓰럽거나 혀를 끌끌 차는 것이 우리의 정서일 것이다. 그러나 그 나이까지 진정으로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환하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존경스럽기까지 하였다. 아침노을이 눈부시게 빛나는 아름다움이라면 저녁노을은 오랜만의 귀향처럼 안정된 따뜻함일 것이다. 정년을 연장하자고 하면 마치 노인들이 젊은이의 일자리를 잠식하는 것처럼 보이는 풍토는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청년들이 그들의 젊음을 바쳐 일할 자리와 노년들이 그들의 경험과 사랑을 펼쳐나갈 자리는 분명 차별화되어야할 것이다. 고령사회니 초고령사회니 하여 젊은이들에게 잔뜩 부담만 줄 것이 아니라 노인들도 자신들의 능력만큼의 일자리에서 일을 함으로써 보람되고 떳떳한 노년을 보낼 권리가 있는 것이다.그렇게 되어야만 세대 간의 진정한 조화가 이루어지리라.
과연 캐나다항공의 스튜어디스의 표정은 우리들의 어머니처럼 온기가 은은하게 풍겨 나오고 손길 또한 어머니의 그것처럼 한없이 다정했다. 60세가 되면 외모로부터 자유롭고, 70세가 되면 이성간의 사랑으로부터 자유롭다더니 겉치장과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직업에 열정을 바쳐 올인하는 모습은 얼마나 보기 좋은가! 자신의 일의 소중함을 느끼고 순간순간 감사로써 일에 매진하게 되는 것은 언제부터일까? 의무감에서 어쩔 수없이 처리하던 업무에서 언제부턴가 생명력이 느껴지고 피가 돌기 시작하더니 일이 마치 나의 분신인 듯 혼신의 힘을 다하게 된 지금에, 돌이켜보면 부끄러웠던 시절이 참 많았다. 옛 말씀에 미련을 먼저 낳고 나중에 지혜를 낳는다더니 킴벌리 커버거의 시처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에게 주어진 일에 더 열심히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짝 다가갔을 것이다. 이번 캐나다 여행은 외적인 볼거리보다 우리들 영혼 속에 깃들여 있는 사랑과 평화를 들여다볼 기회가 된 것 같다. 이 뿌듯함을 되살이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퇴비로 삼아 더욱 기름진 토양이 되리라. 나의 인생의 꽃밭에 고운 사랑의 꽃나무들을 가득 키울 것이다. 너울거리는 노을이 불타오르듯 활기차다.
눈 내리는 록키
전숙
록키는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찾아올 마음이 있으리라
어머니는 록키에도 머물렀던 것일까
어머니의 순전한 날숨이
나의 찌든 폐부를 달래고
어머니의 더운 젖줄이 팔각수가 되어
뿌리 없는 욕망을 정화시킨다
딸들의 귀가를 예비하시고
당신의 손발을 얼려
한 아름 눈꽃다발에
호호 꽃눈잔치 만발한
외씨 같은 버선발로 달려나오신
눈 내리는 록키여,
어머니의 눈물이여!
글 - 전숙
출처 - 맑음-전숙 http://ss8297.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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