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 「성냥팔이 소녀」
다섯 아이들이 조각 천으로 꽃을 만들어 생계를 꾸려 가는 가난한 동네
자그마하고 비좁은 다락은 몹시 추웠습니다.
벽에 생긴 커다란 틈을 지푸라기와 헝겊으로라도 막아 보려고 애썼지만,
매서운 바람은 방 안으로 ‘쌩쌩’ 들어왔습니다.
아이들 중에서도 특히 마음씨가 너그러운 여자아이는 꽃과 성냥을 팔러 시내로 내보내졌습니다.
몹시 추운 섣달그믐 늦은 오후였습니다.
신발이 없어 맨발인 어린 소녀는 살얼음이 낀 거리로 걸어 나갔습니다.
추운 날씨 탓에 거리에는 일찌감치 인적이 끊기고 매서운 겨울바람만이 불고 있았습니다.
눈마저 내려 거리는 온통 하얀빛이었습니다.
“성냥 사세요.”
성냥팔이 소녀가 가냘프게 외쳤습니다.
소녀의 맨발은 검붉게 얼어 있었고, 머리 위에는 하얀 눈이 쌓여만 갔습니다.
앞치마에서 성냥을 꺼내 들며 소녀는 다시 한 번 외쳤습니다.
“성냥 사세요.”
아무것도 먹지못한 소녀의 외침은 너무 작아 금방 눈 속에 파묻히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소녀는 하루 종일 성냥을 팔러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성냥은 한 다발도 팔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성냥을 파는 소녀를 누구 하나 불쌍하다고 쳐다보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너무 취워 성냥팔이 소녀는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습니다.
성냥을 팔지 못했다고 아버지한테 혼이 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설령 아버지한테 혼이 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집 안에 있는 것이나 거리에 있는 것이나 춥기는 매한가지 이기도 했습니다.
집집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습니다.
그들의 창문에서는 밝고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왔으며,
거위 굽는 냄새가 구수하게 풍겼습니다.
소녀는 한없이 부러운 눈으로 창문 안쪽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저녁이 다 되도록 누구 하나 소녀에게서 물건을 사지 않았습니다.
동전 한 닢을 소녀에게 건네주는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어린 소녀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시린 추위에 달달 떨면서 고통을 견뎠습니다
다리가 몹시 아팠던 소녀는 어느 집 담벼락에 기대어 서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에는 힘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습니다.
바람이 더욱 차가워지자 소녀는 몸을 잔뜩 웅크렸다.
소녀의 자그마한 손발은 추위로 거의 얼어붙었습니다.
소녀는 성냥 한 개비가 추위를 녹이는 걸 도와줄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 소녀가 성냥 통에서 성냥을 꺼내 그을 용기가 있었을까요?
네, 소녀는 성냥 한 개비를 꺼내 ‘쫙’ 그었습니다.
그러자 성냥은 살아 있는 것처럼 화르르 타올랐습니다.
한 손으로 바람까지 막아 주었더니,
성냥은 이내 환하고 깨끗하다 못해 신비롭기까지 한 광채를 뿜어내며 타들어갔습니다.
불꽃은 작았지만 무척 밝았습니다.
소녀는 그 위에 손을 올렸습니다.
그러자 아주 큰 난롯가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소녀는 두 발도 녹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두 발을 뻗었는데, 그만 성냥불이 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소녀는 다시 성냥개비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불을 붙였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잘 차려진 식탁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거위와 탐스러운 온갖 과일들,
초콜릿 비스킷,
크림이 듬뿍 얹혀진 조각 케이크가 둥근 식탁 가득 차려져 있었습니다.
소녀는 무엇을 먼저 먹어야 할지 고민을 하다가 조각 케이크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성냥불이 꺼지고 말았습니다.
성냥팔이 소녀는 아쉬워하며
자기가 무엇을 먹을지 고민만하지 않았다면
조각 케이크를 먹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녀는 다시 성냥개비에 불을 붙였습니다.
소녀는 화려하게 꾸며진 크리스마스 트리 옆에 서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트리에 꽂혀 있는 수많은 촛불들은 형형색색의 빛을 내며 축복하고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어느 부잣집에 성냥을 팔러 갔다가 우연히 본 그 트리보다 더 근사해 보였습니다.
소녀가 큰 별 하나를 트리 꼭대기에 얹으려고 사다리를 올라가려는 순간 성냥불이 또 꺼졌습니다.
소녀는 밤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트리에 꽂혀 있던 수많은 촛불들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 듯,
별은 각기 다른 빛으로 반짝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별 하나가 떨어졌습니다.
소녀는 별을 쳐다보다가 할머니께서 해 주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늘에서 별이 떨어진다는 것은
한 영혼이 하늘나라로 올라가고 있다는 얘기란다.”
소녀는 누군가가 죽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소녀는 다시 성냥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습니다.
그러자 환한 불빛 속에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할머니가 소녀를 보며 따뜻하게 미소를 지어 주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할머니 곁에 있고 싶어요.
제발 사라지지 마세요.
제발요.”
소녀는 할머니가 따뜻한 난로처럼,
잘 차려진 식탁처럼,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또 사라질까 봐 조바심이 났습니다.
그래서 남아 있는 성냥을 모두 꺼내 불을 붙였습니다.
불꽃이 그렇게 크고 환할 수가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손녀를 따뜻한 가슴에 안았습니다.
그리고 추위도 배고픔도 없는 세상으로 손녀를 데리고 갔습니다.
이튿날 아침,
사람들이 모여 웅성댔습니다.
한 소녀가 웅크리고 앉아 얼어 죽어 있었습니다.
소녀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한 손에는 타 버린 성냥다발을 쥐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소녀가 몸을 녹이려고 성냥에 불을 붙였다고 생각하며 가여워했습니다.
아무도 소녀가 작은 불빛을 통해
자신을 가장 아껴 주는 사람의 품에 안겼다는 것은 알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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