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추운 겨울날의 해질 녘에 나는 단골 레스토랑에 가서 맥주(삿포로 중간 병)와 굴튀김을 주문한다.
그 가게에는 다섯 개짜리 굴튀김과 여덟 개짜리 굴튀김, 이렇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정말 친절하다.
굴튀김을 많이 먹고 싶은 사람에게는 굴튀김 큰 접시를 내어준다.
조금만 먹어도 되는 사람에게는 굴튀김 작은 접시를 내어준다. 나는 물론 여덟 개짜리 굴튀김을 주문한다.
오늘 나는 굴튀김을 배불리 먹고 싶으니까.
굴튀김에는 잘게 채 썬 양배추가 푸짐하게 곁들여 나온다. 달착지근하고 신선한 양배추다.
원하면 추가로 주문할 수도 있다. 추가 요금은 오십 엔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는다.
나는 정말로 굴튀김 그것이 먹고 싶어서이지 곁들여 나오는 양배추를 먹으러 온 게 아니니까.
처음에 수북이 담아준 양만으로도 충분하다.
내 접시 위의 튀김옷에서 아직도 지글지글 소리가 난다. 작지만 아주 멋진 소리다.
내가 보는 앞에서 주방장이 막 튀겨냈다.
큼지막한 기름 냄비에서 내가 앉은 카운터 자리까지 옮기는 데 불과 오 초도 걸리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는-예를 들어 싸늘한 해 질 녘에 갓 튀긴 굴튀김을 먹는 경우에는-속도는 큰 의미를 가진다.
젓가락으로 그 튀김옷을 둘로 툭 자르면, 그 안에 굴이 여전히 굴로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겉보기에도 굴이고, 굴 이외에 그 무엇도 아니다. 빛깔도 굴이요, 형태도 굴이다.
그것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느 깊은 바닷속에 있었다.
아무 말 없이 꼼짝도 않고, 밤낮도 없이 단단한 껍데기 속에서 굴 다운 것을 (아마도) 생각하며 지냈다.
그런데 지금은 내 접시 위에 있다.
나는 무엇보다 내가 굴이 아니고 소설가라는 사실이 기쁘다.
기름에 튀겨 양배추 옆에 누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쁘다.
내가 일단 윤회전생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도 기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다음 생에 굴이 될지도 모른다니,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것을 차분하게 입으로 가져간다. 튀김옷과 굴이 내 입 안으로 들어간다.
바삭한 튀김옷을 씹을 때의 감족과
부드러운 굴을 씹을 때의 감촉이 당연히 공존해야 할 식감으로 동시에 감지된다.
미묘하게 뒤섞인 향이 축복처럼 입 안에서 퍼져간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나는 굴튀김이 먹고 싶었고, 그리고 이렇게 여덟 개짜리 굴튀김을 음미할 수 있으니까.
게다가 짬짬이 맥주까지 마실 수 있다.
그런 것은 한정된 행복에 불과하지 않느냐고 당신은 말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최근에 내가 한정되지 않은 행복을 맛본 게 언제였을까?
그리고 그것은 정말로 한정되지 않은 것이었을까?
나는 생각해 본다. 그러나 결론은 좀처럼 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도 얽혀 있기 때문에 그리 간단히 결론지을 수는 없다.
굴튀김 안에서 무슨 힌트라도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 나는 한동안 남은 굴튀김 세 개를 골똘히 응시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나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는다.
나는 이윽고 식사를 마치고,
마지막 남은 맥주 한 모금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온다.
역을 향해 걸어갈 때, 나는 어깨 언저리에서 어렴풋하게 굴튀김의 조용한 격려를 느낀다.
그것은 결코 신기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굴튀김은 일종의 소중한 개인적 반영이니까.
그리고 숲속 저 깊은 곳에서는 누군가가 싸우고 있으니까.
※ 이 글은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무라카미 하루키 -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역자 - 이영미
비채 - 2011. 11. 12.
[t-14.02.09. 20210204-16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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